향후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인터넷 종량제가 관련 산업까지 심각히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터넷 종량제를 실시해도 핸드폰 요금처럼 다각화된 요금체계로 운영된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산업기술재단과 산업기술인터넷방송국(www.enfun.net)은 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인터넷종량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온라인 사업자와 관련 학계 및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 “인터넷 종량제는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게 분명하다”면서 “요금 인상이 아닌 합리적이고 다각화된 요금체계는 수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9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인터넷 종량제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하는 공개토론회가 열리고 있다.ⓒ미디어다음
이날 토론회는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사회를 맡았고 패널로는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와 배경율 상명대 교수(컴퓨터공학과),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장이 참석했다.
“종량제 시행하기도 전에 사업자들 망할 것”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인터넷 종량제가 인터넷 공간 활성화로 만들어졌던 ‘신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식 대표는 “지금도 인터넷 사업자들은 패킷(회선 사용량)에 따라 사용료를 내는 일종의 종량제에 따르고 있다”면서도 “본격적인 종량제 실시에 따라 사업자들도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해야 할 텐데 아마도 그 전에 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성토했다.
현재 인터넷 정보 이용 행태의 추이변화대로면 인터넷 사용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네티즌들에게 사업자와 KT에 이중으로 이용료를 내라고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픽과 사진 등 이미지에서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로 인터넷 정보 이용이 옮아가는 것이 추세이기 때문. 네티즌의 이용률이 줄어들면 배너광고 등 수익도 감소하고 사업자는 당연히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
민경배 소장은 “종량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그 동안 성장해 온 인터넷 쇼핑몰도 대부분 망할 가능성이 높다”며 “서핑을 통해 상품과 가경에 대한 정보를 얻고 물건을 싸게 사던 것이 돈이 들면 차라리 발품 팔아서 오프 매장을 이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배경율 교수는 “쓰레기 종량제처럼 종량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일반 네티즌들은 사용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며 “관련 산업들은 자연스레 위축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 그는 또 “인터넷을 통한 정보 획득이 어려워지면서 정보 격차(디지털 디바이드)도 심화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핸드폰 요금처럼 이용자에 맞는 다양한 요금제라면 수용 가능”
패널들은 종량제의 의미가 인터넷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 합리적인 과금을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현재 KT처럼 독점적인 사업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종량제가 추진된다면 그 결과가 ‘요금인상’만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전응휘 정책위원은 “기본적으로 많이 낸 사람이 그만큼 부담한다는 종량제는 의미가 없다”며 “사용자의 다양한 특성에 따라 핸드폰 요금처럼 다각화된 요금제가 이뤄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5%의 이용자가 회선의 95%를 이용한다고 할 때 나머지 95%의 사용자에 대한 요금할인이 돼야 합리적이라는 것.
임종인 교수도 “사업자와 일반 네티즌이 현행 정액제처럼 자신이 얼마를 낼 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종량제이다”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요금체계가 제시돼야 종량제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KT가 한다고 하면 게임 끝…KT와 정보통신부는 투명하게 추진해야”
이날 인터넷 종량제 논의의 당사자인 KT가 정작 토론회에 불참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패널들도 사업주체인 KT와 정통부는 종량제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응휘 정책위원은 “관련 법규에 따라 정부가 KT를 시장지배사업자로 판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KT가 종량제를 한다고 하면 시행하는 데 걸림돌이 전혀 없다”며 “이런 점에서도 KT는 더더욱 종량제 추진 과정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경배 소장은 “각 가정마다 달려있는 계량기처럼 인터넷 사용량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패킷 측정을 위한 개발이 쉽지 않은 일이다”며 “웜 바이러스 등에 걸려 자신의 컴퓨터가 중간 숙주 역할로 계속 인터넷에 접속된 것으로 나타나면 그걸 어떻게 잡아내겠냐”고 물었다. 이런 점에서도 그는 “KT와 정통부는 분위기만 뒤숭숭하게 만들지 말고 구체적인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면서 논의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회자였던 정관용씨는 “KT측 관계자의 출연을 요청했으나 지금은 참석할 수 없다고 답변해왔다”고 전했다.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