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게시물을 올릴수있는 게시판입니다.
  • 유년추억
  • 학교생활
  • 입시준비
  • 대학생활
  • 군생활
  • 알바생활
  • 취업준비
  • 직장생활
  • 원룸생활
  • 연애중
  • 결혼준비
  • 집안살림
  • 자녀교육
  • 창업준비
  • 이민유학
  • 노후생활
  • 전체보기


넬슨VS이순신

 
저번~준가요?이순신장군이 견내량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도대첩이 방영되었죠.전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불멸의 이순신이라 꼭 빼 놓지 않고 보는데요.참으로 통쾌하더군요.근데 옆에서 같이보던 아는동생이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하더군요.바로 그 예의 넬슨 제독을 덜먹이면서 이순신장군이 넬슨제독과 맞먹는다나요?맞먹다니오.
넬슨은 이순신 장군의발끝에도 못미칩니다.군인으로보나 평범한인간으로보나....일본의해군영웅 도고헤이하치로 정도면 넬슨과 맞먹겠지만....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은 러일전쟁당시 이순신 장군의1자진을개량한 한자 "정"자진을 펼쳐 러시아함대를 대파한 일본의 영웅입니다.그는 스스로 이순신장군을 마음의스승이라고도 했죠.적군에게 조차 존경받았던 이순신장군.23전23승무패의신화.각종진법과세계최초의철갑선등.....굵직한것만 몇개 나열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데....반면 넬슨제독에 관한 기록을보면 그렇게 좋은 평가만 있는게 아니더군요.세계4대해전중의 하나인 트라팔가르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명언하마디(영국은 모두가각자의 의무를 다할것을 기대한다....라고예전의 기록에는 적혀있었지만 사실은 본인넬슨은 모두가 각자의 의무를 다할것을 기대한다라고 밝혀졌죠.)남긴게 전부인데다 간통으로 악명높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는 한 영국대사의 아내인 헤밀턴 부인과의 사이에서 엠마라는 딸아이까지 두었습니다.그리고 그의 최후의 전투인 트라팔가르에서 전사한것도 용감하게 싸워서가 아니라 화려한 제독복장을 입고 갑판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저격병의 표적이 될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사했답니다.예전에 저에게 역사과목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넬슨은 영웅이고 이순신장군은 성웅이라고....성스러운 영웅과 역사의 그 수많은 영웅중의 한명인 넬슨이 비교될수없다고.......


미르
written by 미르 (guyver)
2005-05-23 00:42:33
2711 번 읽음
  총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파란 '05.5.23 10:59 PM 신고
    충무공....이순신...장군님.
    그 분이 더 위대한 것은 정말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고 무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순신이 아닌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만큼 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할 것입니다. 러일전쟁은 애시당초 일본에 유리한 전투였고,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은 그가 그 자리에 없더라도 전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전 국토를 일본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속에서 살아야 했을것입니다. ↓댓글에댓글
  2. 2. 은도리 '05.5.23 11:20 PM 신고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한다면....
    이순신이 A형이고 넬슨이 지기싫어하는 O형이라고 생각됨니다만...
    넬슨은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환장한 사람입니다.
    그 명예욕이 승리의 원동력이 돼긴 했지만요.
    그의 영웅성은 전략적 천재성과 인간적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넬슨은 교과서적인 전략전술의 의표를 찌르는 작전을 구사해 수적으로 우세한 적을 궤멸시켰다. 또 작전의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는 것은 물론 전투에서 늘 선봉에 섬으로써 부하들의 신뢰를 샀다. 명령을 내리면서도 "지시한다"보다는 "믿는다"는 표현을 써 부하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냈다. 혹자는 이를 넬슨의 마술이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관에게 잘 보이려 안달하거나 왕족에게 줄을 서기도 한 젊은 시절의 미숙했던 모습, 넬슨의 사생활(넬슨은 나폴리에서 만난 유부녀에 빠져 부인과 헤어지고 사생아를 낳아 길렀다.)
    이런것을 보면 넬슨은 인간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인격적 이런걸 넬슨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인 듯 합니다.
    넬슨과 이순신이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떄문에...
    이순신은...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에게 더 많이 시달리죠.
    이순신의 성격상 적이 저절로 생기니까요...그 똥고집...
    이순신이 부하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부터 군기부터 잡는 이순신을 누가 달가워 하겠습니까. 이순신이 부하들의 마음을 얻는데에는 오랜기간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 했던 넬슨과는 달리 이순신의 초기 전적은 패로 얼룩져있습니다. (해군지휘관이 돼기 이전 함경도에 있을 때) 이런 경험때문인지 몰라도 해전에서 꼼꼼함이 드러남니다.
    이순신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이런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거북선이나 이런 것은 다 부하들과 머리를 맞댄 결과입니다.
    실패작으로 평가되던 학익진을 해전에 응용한 것정도가 그가 스스로 낸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판옥선에 달 화포를 개량하거나 한 것은 이순신이 아니라 그의 휘하 장수들과 부하들이었습니다. 이순신에게 있는 것은 사람을 끄는 어떤것. 부하들을 믿는 것....부하들과 함께 하는 것...등 이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눈이죠. 거북선은 임란이 터지기 전부터 건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임란이 닥친 후에 부랴부랴 만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싸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만든 후에야 싸우는 이순신과,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명예욕과 자신의 전략에 대한 믿음만으로 출전하는 넬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그의 잔머리가 대부분의 전투에서 적중하기는 했지만요.

    비교한다면 이순신이 성웅이고 넬슨이 영웅이라고 하는데...맞는 말입니다.
    넬슨은 자신의 천재적인 머리와 부하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만드는 능력 덕에 그런 전공을 세울 수 있었고, 이순신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부하들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전공을 세울 수있었습니다. 게다가 장수라고 거들먹거리면서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지도 않았죠. 만약 그랬다면 판옥선에 개판을 하자는 의견(귀선을 실전에 사용하자는 의견)은 나대용 개인의 망상으로 끝나고 말았을 겁니다.

    또 비교하자면 넬슨이 심각한 패널티(심각한 배멀미)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극복했다는 것임니다. 물론 그의 명예욕이 뒷받침되었겠지만요.
    넬슨을 다룬 책에 "넬슨 제독은 배를 탈때마다 배멀미를 심하게 했다. 특히 나폴레옹의 함대를 물리칠 때도 심한 배멀미와 신경통, 우울증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배멀미하는 해군제독...왠만한 명예욕이 아니었으면 저런 상태로 함대를 지휘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실패에서 계속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고요. 넬슨같았으면 자신의 함대가 패전하였다면 원인이고 머고 간에 술집에 틀어박혀서 패인이 돼었을 인물임니다. 나는 질 수 없어! 내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단 말이야 하고 말이죠
    넬슨이 죽으면서 한 말과 이순신이 죽으면서 한 말은 천차만별임니다.
    이순신은 부하장수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고 하였던 반면...넬슨은 "신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노라" 고 하면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아직 정신적으로는 미숙했던 것일까요.
    각자 받은 재능이 달랐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넬슨에게는 천재적인 머리....그리고 이순신에게는 부하들과 하나되는...그리고 꼼꼼함...(준비성이라고 해도 돼나요.) ↓댓글에댓글
    • ㄴ 1. 락의지존 '05.5.24 6:04 PM 신고
      손꾸락...
      안뿌러졌소?
    • ㄴ 2. 미르 '05.5.23 11:55 PM 신고
      ㅎㅎㅎ
      역시 이런 좋은 리플이 올라올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걸 기대했구요.물론 처음 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던것 같은데요...제가 좀 흥분하는 바람에...하지만 트라팔가르해전이 세계4대해전이 되었던것은 넬슨의 역량이라기 보다는 상대가나폴레옹의 프랑스라는 네임벨류와 그가 영국인이었다는점 때문에 페널티를 얻었다는 느낌이들어서 더욱 흥분하고 말았죠.차라리 노량해전에 더 장엄한 느낌을 받는건 저 뿐인가요?더욱이 적들에게 두려움을 넘어선 존경의 대상이 되고만 그분의 숭고한 행적등.......
    • ㄴ 3. 미르 '05.5.24 12:18 AM 신고
      이건 여담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최후에 남기신말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고 하셨다는데 안타깝게도 이부분은 확인 되지않았다고 하는군요.하지만 그분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충분히 그랬을것으로 모두 짐작했기에......일부 사람들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알고 계신분들이 있는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 코미디입니다.어느 얼빠진 부하가 자신들의 상관의 죽음을 적에게 알린단 말입니까."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역시 조금은 무리가 있는데요.그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단정지어 버렸다는겁니다.현실적으로는 "내가 잘못되더라도 동요하지말고 분전하라"정도...이런 종류의 유언을 부하장수중에 이순신장군의 임종을 지켜본 장수가"장군의 유고를 알리지마라"라고 했을것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3. 3. 앤디김 '05.5.24 5:55 PM 신고
    한마디로 비교될수 없습니다.
    넬슨도 그렇고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그렇고 모두 국가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원하에 싸웠습니다. 양쪽의 전력도 비슷하거나 약간 수세의 전력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순신장군은, 당신스스로가 백성을 먹여살려야 했고, 군사를 조련하고, 전함을 만들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죠.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선조로 부터 시작하여 조정 대신들의 시샘과도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전력차도 늘 상당히 나거나...최대 10배이상이었죠..ㅡㅡ;;그러한 조건에서 23전 23승을 하며 조선을 혼자힘으로 구했습니다. 만약 이자리에 넬슨이 아니라 넬슨 할아비가 와도 해낼수 있었을까요?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는 이순신의 라이벌로 원균으로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패장으로서의 원균은 차치하고서라도, 원균은 이순신의 조족지혈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순신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라이벌이란 서로 비슷한것이니까요. ↓댓글에댓글
  4. 4. 나누구게 '05.5.27 6:55 PM 신고
    불멸의 이순신中
    ( 불멸의 이순신中)
    ================================================================
    칠 년 전쟁 동안 이순신은 언제나 전위(前衛)였다. 그 이전까지 어떤 장수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며 준비하고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연합 함대를 꾸린 것도 최초의 일이었고, 거북선을 선두에 세운 것도 학익진을 편 것도 처음이었으며, 만 명이 넘는 장졸이 한산도라는 섬에 장기간 주둔한 것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장졸 이천 명을 죽음으로 내몬 돌림병에 맞선 일도, 장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둔전을 대대적으로 일군 일도, 부산을 섬멸하여 하루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라는 선조의 명을 따르지 않고 버틴 일도, 울돌목 그 좁고 시끄러운 바닷길에서 열세 척의 군선으로 왜선 133척과 맞서야 했던 것도 모두 최초의 순간이었다.

    이 미증유의 순간들이 닥칠 때마다 이순신은 최초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처음 겪는 일이기에 성공 실패는 예측하기 힘들다. 이순신은 홀로 근심하고 또 근심하였다.
    실패할 가능성들을 최대한 줄이고 필승의 길을 찾기 위해, 서책을 읽고 해도를 살피며 직접 바닷길을 확인하고 뛰어난 인재를 구하며 점까지 쳤다.

    그래도 결과가 언제나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돌림병 치유에 노력하였으나 조방장 어영담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을 잃었고, 250척의 군선을 만들어 남해 바다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었으나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한계 상황 속에서 다시 홀로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한 새로운 근심을 시작하고 있다.

    (중략)

    칠 년 전쟁 내내, 선조는 전쟁 영웅으로 부각된 이순신에 대해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이순신도 물론 이런 어심을 알았고, 또 최초로 전혀 새로운 근심을 시작해야만 했다. 휘하 장수들 역시 류성룡의 실각과 함께 이순신을 향해 조여 오는 운명의 피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이순신은 끝내 쿠데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 관음포에서 장렬히 전사했지만, 평생 이순신과 나폴레옹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던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

    장수의 길을 버린 이 정치군인은 왕실과 조정이 자신을 핍박하고 목숨마저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철두철미 본분을 다한 이순신의 최후 앞에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했을까?
    …
    …
    =======================================================


    작가의 글입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덜렝이 '05.5.28 12:35 AM 신고
      거거거..그냄새나는것들 예기는 뭐하러..
      이순신장군은 국민을위해죽은사람이고 박씨는 국민을밟고일어선사람인데
      어찌여기다붙인데????
  5. 5. 별명없음 '05.5.29 4:48 AM 신고
    일본 도고 제독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왜냐하면..그 때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영국이 해안 봉쇄를 했습니다..그래서..그 시대 러시아 무적 함대가 유럽 해협을 거쳐 우리나라 해협까지 오는 동안 물자 원조를 제대로 받지도 못했지요...한 마디로 우리나라에 해협에 도착 했을 때는 빈털터리 그 자체 였지요..기진 맥진..육지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밥도 배불리 못 먹고..이런 상태에서 ..일본 도고 제독이 러시아 함대를 물러쳤지요...현 시대 웬 만한 해군 제독들도 저런 러시아 함대를 상대로 해서 싸웠다면 ..지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지요..
    이해 하셨습니까??
    역사는 항상 그 뒤에 숨겨진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댓글에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캐시선물





365ch.com 128bit Valid HTML 4.01 Transitional and Valid CSS!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