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종교 이단 만들기
신종교 중에는 내부에서 드러난 스스로의 문제점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으나 주류종교의 '이단 만들기'에 의해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차별화 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게토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제도권 종교나 세속사회의 비판이 비판의 수준을 넘게될 때 신종교의 구성원들은 '외부'의 공격을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 내지 악마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극단적인 대응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결국 폐쇄적인 공동체로 몰입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세속적인 삶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결혼과 가족, 직장과 사회, 사회적 규범과 가치를 부정하게 되거나 간혹 살인과 폭력, 집단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단 사이비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해당 종교의 폭력성은 크게 문제시하면서 그들이 폭력화되기까지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던 제도권으로부터의 무언의 폭력은 간과되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제도권의 편에 서서 신종교를 이단 사이비로 차별화 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국가기관이나 사회 일반의 왜곡된 시각 역시 간과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하나의 신종교가 사이비라고 가정할 때 제도권의 주류종교가 그들을 공격하여 이단으로 차별화 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이비이거나 사기성이 있는 종교라면 특정한 시대적 상황에서 제한된 사람들을 상대로 일시적인 부흥 현상을 나타낼 수는 있으나 결코 일정 규모 이상의 종교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방송매체를 통해 물의를 빚은 몇몇 신흥교단들이 방송보도 후 급격히 교세가 몰락한 것이 비근한 사례입니다.
또한 사기성이 있는 종교일수록 특별한 사회적인 관심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하더라도 종교 내부의 자기모순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사에 보면 사이비가 아닌 정상적인 신종교가 등장할 때 오히려 더욱 거센 이단 사이비 논쟁이 불붙어왔고 심지어 이단 사이비로 내몰기 위해 늘 폭력과 살육이 저질러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통을 자처하는 제도권의 주류종교는 수많은 피를 뿌려가며 현재의 위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강력하고 올바른 신종교가 등장할 때 제도권의 주류종교는 더욱 불안감에 떨게 됩니다.
강력하고 올바른 신종교가 등장할수록 그에 대한 차별화과정에서 늘 은밀한 폭력이 동원되는 것은 제도권의 신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드러내는 반증이라 할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이 자신의 지위와 정통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단 사냥을 하면서 6천여 만 명을 종교재판에 의해 살육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근대 종교사에 보면 카톨릭과 개신교, 영국 성공회와 카톨릭, 성공회와 개신교간에 있었던 상호 이단 정죄와 살육의 폭력성이 생생히 증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가혹한 십자가형에 처한 유대교의 폭력도 그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러한 종교사의 생생했던 폭력의 현장을 되돌아보면서 한국에서 간혹 불거지는 정통과 이단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고해야 합니다.
이단문제는 한 종교의 내부문제일 뿐인데 왜 자꾸 밖으로 새어나와 사회의 이목을 끄는 것일까? 이단으로 몰린 쪽에만 문제가 있고 이단으로 몰아가는 제도권이나 사회 일반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