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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에 세뇌된 사람들...

 

비교 종교학 공부해 보면..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각 나라, 각 문명의 문화와 역사와

여러가지 유사점이나 관계가 깊은지 알게 될텐데..

특정 종교에 세뇌되어 그 종교만이 절대적인 진리인양 착각하고..

열심히 자신의 젊음과 헌금을 바치고..

이곳에서마저도..

전도와 설파에 여념이 없는....

동전을 볼 때 앞면만 보지 말고..뒷면..측면도 봐야하거늘..

그들은 언제쯤 우물에서 진정한 세상을 보게 될 것인가?

 



2005-08-31 08:10:51
2051 번 읽음
  총 3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듀오 '05.8.31 1:35 PM 신고
    아마도..
    자신들이 믿는 "천국" 이란곳에 가면 믿겠죠.. 아직까지 가본사람음 없으니까요.. 사람이 죽으면 그또한 신이 되죠.. 그걸 우리나라에선 귀신이라고 하며 서양에선 영혼이라고 하져.. .

    자신들이 무엇을 믿던간에.. 자신들이 죽도록 믿고 있던 천국에가서 그때가서 자신들이 한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일인지 알겁니다.... ↓댓글에댓글
  2. 2. 미르 '05.8.31 11:52 PM 신고
    어떤 종교를 믿든지 ....
    올바른 믿음을 가졌다면 그는 이미 천국의 문앞에 있다고 봅니다.한 조사에 따르면 종교인이 가장 오래 산다고 하더군요.그만큼 마음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되어 지는데요.사실 조그만것에도 항상 고마워하고 만족하며 산다면 그곳이 천국일수 있지만 욕심과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면 신이 만들어논 천국에서도 만족할수 있을까요?오히려 모든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는것에 불만을 느낄수도 있습니다.고대 로마는 무한한(?) 자유를 보장받는 공화정이었으나 그들 스스로 싫증을 느껴 결국 독재자를 만들고 맙니다.또한 그 참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는 주장이 나온걸 보면 모든것이 채워져야만 행복을 느낄수 있는건 아니라고봅니다.애초에 불가능 하지만 불가능하기에 그런 이상을 가지고 사는건 아닌지....사실 종교나 신화를 액면 그대로 보면 터무니 없는것 같지만 그속의 의미를 좀더 생각하면 나름대로 정말 오묘합니다.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만약 옛날에 자식이 부모에게 왜 농사는 일년내내 지을수 없나요 라고 물으면 그냥 그런 쓸데없는건 알아서 뭐해라고 하는것 보다,땅의여신 데메테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거인이라는뜻의 자이안트가 거대신족인 기간테스에서 유래했다등등을 가르쳐주는게 훨신 의미있다고 봅니다.지금 우리는 산타 클로스가 없다는걸 알지만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그 이야기를 지금도 우리 자식에게 하듯이.....결국 어른이 되어 그것이 거짓이라는걸 알게되어서도 우리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고 묻지 않을겁니다.실존 보다 의미가 더 소중하니까요. ↓댓글에댓글
  3. 3. 닉네임 '05.9.1 11:58 AM 신고
    미르님이 말씀하신 정도의 것이라면..
    그 시대..그 문화가 수용할 수 있는 상식적 믿음..꿈..희망이 아닐까요?

    그런 믿음들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고,
    미화될 수 있고, 삶을 풍요하게 할 수 있으며, 많은 의미가 담겨질 수 있죠..개인적으로 마음에 안식이나 평안도 얻을 수 있으며..보다 풍요한 삶을 꿈꿀 수 있고..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죠..

    문제는 생사를 거는 절대적 믿음들의 대부분은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증오와 다툼의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요?

    종교전쟁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네요.. ↓댓글에댓글
    • ㄴ 1. 미르 '05.9.1 11:41 PM 신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의미를 얼마만큼이나 올바르게 또는 폭넓은 아량으로 생각할수 있느냐가 문제겠지요.사실 종교는 믿음의 대상만 틀릴뿐 저마다 헛점도 있고 의미도 크지만 서로가 배척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의미도 그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그것이 틀릴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부정하기 때문에 폐단이 생기죠.사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왜곡 되었는지 일일이 나열할수 없지만 대표적인 십자군 원정을 예로 든다면 분명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바로 토테미즘의부정입니다.즉 나무나 ,돌 ,물,바람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섬기지 말라는거죠.물론 다른신을 섬기지 말라고도 했죠.그렇다면 십자군 원정의 목적중의 하나였던 잃어버린 성배를 찾는다는 발상도 용납이 안될뿐더러 그 십자군 원정때문에 수많은 무슬림들이 희생 되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들의 하나님을 알게해준 유대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다는 겁니다.그것은 우리가 야만적인 종교로 믿어왔던 이슬람왕국의 통치자 샬리프오마르의 대자비와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또하나 믿음에 충실한자가 문제가 아니라 항상 급진적이고 충동적인일부 맹신자가 문제가 됩니다.믿는다고 다 그렇게 되는건 아닙니다.너무나 간단한 이치.도둑의 손에 식칼이 쥐어진다면.......단지 그런 자들의 손에 종교라는 식칼이 쥐어졌다고 봅니다.종교에 의해 그들이 변화 되어야 되는데 그들이 종교를 이용하는 행태가 벌어졌으니....그리고 그들의 이용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종교는 이단이나 사이비로 몰아 부치기 일쑤죠.
    • ㄴ 2. 미르 '05.9.4 12:20 AM 신고
      추가로 덧붙이면 저도 특정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종교와신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노력할뿐입니다.한마디로 신을 존중하지만 그에 의지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또한 신앙을 가진자들이 무신론자들을 뭐라 할수 없듯이 무신론자 역시 너무 그들을 편견으로 볼필요 없다는게 제 주관입니다.어떤 이유에서든 서로 미워하고 욕하고 싸우는건 좋지 않으니까요.
  4. 4. 포상 '05.9.2 4:52 PM 신고
    종교란 한 사람이 느낀 개인적인 관념일 뿐입니다.
    종교란 한 사람이 느낀 개인적인 관념일 뿐입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포상 '05.9.2 4:55 PM 신고
      사람들이 살아 가면서 느끼는 환상......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지요. 그져 자신의 앎이 최고의 가치로만 느끼지요. 그러다가 먼곳으로 가고 말지요....
    • ㄴ 2. 포상 '05.9.2 5:01 PM 신고
      너무 보갑게 생각치 마시고 서로 아껴주고
      보담아주고 ... 그렇게 그렇게 사람하며 사는 거지요.
      이세상에는 진리란 없지요...
      空이지요 空이란 비어있서 자신이 채우기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한다는 뜻이지요... 절대적이고 고정된 모습은 존재치 않습니다. 空의 그릇에 사랑의 뜻은 담으면 사랑이 되고 선을 닮으면 선인이 되고, 욕망을 담으면 탐욕에 차고 아집으로 뭉처진 악한이 되지요...
      종교란 자시만이 느끼는 개인적 관념이요 환상일 뿐입니다.
      자신의 본심을 찾는 자유인이 모두 됩시다.
  5. 5. 도마령 '05.9.3 4:59 PM 신고
    깊게 볼필요도 없소
    일단 좀 유명하다 싶은 사이비종교 교주 여자 관계만 봐도 ㅇ.ㅇ 이오 이혼은 기본이오 불륜은 필수 어린여자는 취미랄까 ? 거기다 재산은 교회돈이 내돈이오 .내돈이 내돈이라 . 빠지는분이 이상한것이오 . 그저 천국에 혹해서 천국은 남이 보내주는게 아니오 . 자신이 만들어 가는것이지 성실히 자신의 삶에 충실한사람 남을 위해 봉사한 사람은 천국이 있으면 갈것이오 안보내주면 그 신이 정상이 아니지 ↓댓글에댓글
    • ㄴ 1. 화이터 '05.9.9 8:21 PM 신고
      하긴 로마인들이
      님과 같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종교를 바라보기도 했지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절기인 유월절을 오해하여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상한 사이비 종교라고 여기기도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예수님이 세워 주신 종교가 사이비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 사이비들은 그런 난잡한 관계가 다반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곳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없지요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야지만이 갈수가 있는 것이지요
      성실히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하나님안에서 계명과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천국가는 길이지요
      만일 자기자신만의 삶으로 천국을 가겠다고 한다면 지금 자신이 남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자기자신이 살고 있는 것 자체로도 많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지요 물론 자기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여기겠지만 말입니다.

      세상은 모순된 세상이므로 최선이라는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의 경우를 낳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핵이 인류에게 이로운 점도 주고 있지만 해악도 그만큼 큰 것처럼 말입니다.
    • ㄴ 2. 도마령 '05.9.16 7:36 PM 신고
      포인트가 어긋났소 ^^
      일단 화이터님이 믿으시는 교회에서 제가 쓴글들의 일이 없다 말하는게 어떻소 . 성경이나 하나님이야기 빼고 현실적으로 말이오
      또한 최선이 최악을 낳는다 하여 노력하지 않는다라 하면 그건 그야말로 넌센스 아니겟소 사는것 자체가 많은 사람 피곤하게 만들면 어느 사이비 처럼 빨리 자살이라도 해야겠소?
  6. 6. 파란 '05.9.3 9:42 PM 신고
    종교에 시비걸면 죽을 지도....
    종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기도 하던데.
    사람 미치게 하기도 하고,
    모든 종교가 사이비 같기도 한데.
    뭐라고 하면 쉽게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파란 '05.9.3 9:46 PM 신고
      덧붙여...
      이건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당신은 비교종교학이라고 합니다만,
      그것 조차도 당신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절대적 진리도 없고,
      상대적 진리도 없죠.
      세뇌에 관해서,
      우리는 지나가며 내뱉는 말, 흥얼걸리며 들은 노래에서 조차도 세뇌되고 있으며, 시간이 감에 따라 한편으로 뇌 속에서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굳이 단어의 정의를 따지려 든다면 장기적으로 뇌리에 남게 하는 것이 겠죠, 사소함이 모여 작은 일들이 우리 뇌에 쌓여 우리를 형성하는 걸.....
  7. 7. 닉네임 '05.9.4 1:55 AM 신고
    비교종교학에 절대성을 부여하진 않습니다.
    비교종교학은 말 그대로 종교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완성된 학문이 아니기에 결코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죠.

    고고학이나 여느 학문처럼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절대주의나 상대주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철학에 있어선 주로 시대적 상관주의(숲을 보느냐? 나무를 보느냐? 그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 시대적 관점에 따른 해석의 차이)적 입장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주된 생각의 결론은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점, 서로의 차이점의 인정, 자신을 되돌아 봄, 그리고 공존입니다. ↓댓글에댓글
  8. 8. ㅡㅡㅋ '05.9.6 12:18 PM 신고
    믿거나 말거나..
    그 사람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안믿는사람은 안믿는대로 살고 믿는사람은 믿는대로 사는거다

    그 자유가지고 우리가 뭐라 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살고있는 자신의 삶도 벅차지 않은가?

    더 이상 할말이 없다 ↓댓글에댓글
  9. 9. 화이터 '05.9.7 9:50 PM 신고
    절대성이 없는것으로 비교를 하니
    그것이 안타까운 일이지요
    어차피 절대성이 없으니 역사적 문화적 탐구도 세뇌에 지나지않지요
    그렇게 탐구해서 얻어지는 것 그것또한 세뇌의 산물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리로 판단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닉네임 '05.9.7 10:46 PM 신고
      절대적 진리의 모순..
      절대성의 기준은 교파마다 다릅니다. 이건 곧 절대성이 도전받는다는 증거죠.
      상관주의적 관점은 각각의 절대성을 고수하는 교파나 역사적 문화적 탐구속에서 그 다양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진리로 판단한다는 것이야 말로 무엇이 진리냐?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절대주의는 자연스럽게 상대주의를 양산하고 그 절대성에 반하는 모든 것은 비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 ㄴ 2. 화이터 '05.9.7 10:52 PM 신고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말씀이 진리입니다
      교파로 보는 것이 아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지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라볼수가 있겠지요
      상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없으니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 되겠지요
    • ㄴ 3. 닉네임 '05.9.7 11:23 PM 신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지금 여러분이 교회에서 배우는 말씀은 결코 순수한 하나님 말씀 그자체와 동격이 아닙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말인가요?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순수한 하나님(완전체)말씀 그 자체를 통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순수한 하나님 말씀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각 시대마다 피나는 노력으로 교리적으로 해석한 내용들의 결과물이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배우고 이해된 하나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정확무오하나 그 교리적 해석이 정확무오한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면 교리적 해석의 차이는 각 시대마다 도전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와서 그 대표적인 예는 성서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해가 그 좋은 예죠..

      초기 칼뱅이즘시대와 현대의 여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해석은 분명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순수한 하나님 말씀은 오류가 있었고..오늘날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류가 없는 절대적인 것일까요?

      이것은 말씀하신 순수한 하나님 말씀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관점의 몰이해 또는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듣고 배우는 것이 순수한 하나님 말씀 그 자체라는 것은 교리적 해석의 틀안에 있음을 이해하지 못함이며..아울러 그 교리에 불변하는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세계 유수의 신학자들에게 물어보십시요.
      당신이 보고있는 있는 성서가 절대적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인가?

      오히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시대적 이해와 현상이라고 말할 겁니다.
    • ㄴ 4. 화이터 '05.9.8 9:37 PM 신고
      모든 기준은 성경의 하나님말씀이 기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우는 말씀은 결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한 말씀을 허락해주신 것이지요!
      완벽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하시지도 않으시지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구원에 진리를 바로 볼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바라보기 때문에 교리적 해석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습니다.
      교리적 해석으로 여러 가지 교파와 종파가 나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이므로
      그렇게 나뉘었다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연구한 산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여성의 현대적인 지위에 대해서도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을 따릅니다.
      칼뱅이 어떻게 보았던 현재 시대에 어떻게 보던 그것은 그 사람들이 보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10. 10. 닉네임 '05.9.7 10:53 PM 신고
    일례로..수학과 인문학의 차이..
    수학에선 A>B 이고..B>C이면 A>C는 절대 참이 됩니다. 이 절대성에 반하는 C>A는 반드시 거짓입니다. 그러나 사회현상으로 따져보면 이것은 참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경기에서 A라는 선수가 B라는 선수를 이겼다고 해서..항상 A선수가 선수 C를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의 다양성을 여러 포커스에 맞추어 각 시대적, 문화적으로 이해를 해야하고, 그 폭을 넓혀서 자신들이 믿어왔던 신념들에 변혁을 준비해야 할 열린 자세가 항상 필요합니다.

    이것은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신념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화이터 '05.9.8 9:38 PM 신고
      어차피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떤 학과의 차이가 아니라 성경의 기준으로 바라보셔야 합니다.
    • ㄴ 2. 닉네임 '05.9.8 12:43 PM 신고
      그리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해서도 조금 잘못 이해하고 계시네요..
      화이트님께서 윗 글에서도 조금 잘못 이해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겠지요.

      상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없으니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 되겠지요
      =====================================================================

      이 말의 뜻은 절대적 기준으로 볼 때, 절대적 기준에 반하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다로 들리네요..

      이런 해석이면, 상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기준이 없으니(절대주의를 부정하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 되겠지요. 상대주의는 절대주의에 반하는 것처럼 기준이 없다가 아닙니다.

      소피스트들에 의해 주창된 상대주의 - 예: 프라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란 올바른 진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입니다.

      즉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죠.

      이와 같이 상대주의는 진리의 주관성을 인정합니다. 즉 상대주의의 기준은 인간 개개인의 주관성인 것입니다.. 절대주의에 비추어 볼 때 기준이 없는 ..마치 무가치한 것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이에 반한 소크라테스의 절대주의는 누구에게나 타당한 진리는 존재한다는 진리의 객관성을 주장합니다. 진리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혹은 절대성을 부정한다)..관점의 차이인 것입니다.

      제가 절대주의나 상대주의를 신뢰하지 않는 핵심적 이유는 그 사상들과 이해가 시대적, 문화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객관적이려 할지라도(절대성을 추구할지라도) 이미 결정된 시대적,환경적 영향과 이로 인한 최종적인 객관성속에서도 주관적 해석(상대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불변하는 전체를 볼 수 없고), 그 상대주의적 주관성 역시 진리의 객관성 못지않게 시대적, 문화적 변이 속에서 또 다르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성의 시대적 문화적 변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위에서 말씀드린 여성에 대한 성서적 지위의 이해입니다. 이것은 인간세계에서의 절대성에 대한 이해는 항상 불변하는 고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성의 문화적 시각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잉카문명을 완전히 멸절한 스페인의 예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제사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 역시 따지고 보면 상대주의입니다.

      오랜 옛날 중국에선 자신의 부모가 죽으면 그 뼈까지 다 씹어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서양주의적 기독교문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시대 그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하게 됩니다. 상대주의에 빠지게 되고 보다 기독교적인 문화가 무엇인지 따지게 되고, 정죄하게 됩니다. 급기야 자신들의 문화의 기준으로 그들의 문화를 죄악시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이라면 그 시대 그 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보다 기독교적인 문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융화하고 보다 더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고유의 문화를 멸절시키는 것은 상대주의의 우월성에 빠진 것이지..결코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대주의를 문화적 절대성에 대입시켜 해석한 잘못된 오류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 역시 종종 이런 우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절대성, 상대성에 대한 신념 이상으로, 각 시대적 이해와 연구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배우는 정확무오한 성서는 그 자체로서의 성서가 아니라, 당 시대적,문화적,교리적 해석의 틀안에서 이루어진 이해와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학이나 여느 학문처럼 지금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상관주의적 관점에 대한 수용과 인식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11. 11. 화이터 '05.9.8 6:26 PM 신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진리에 대한 기준을 잡게 되면
    그 순간 그 내용은 진리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자체가 진리 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더하거나 빼지말라 하셨으니까요

    저는 상대주의 기준이 인간 개개인이기에 절대주의 비추어볼 때 기준이 없는 무가치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타당한 진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준할 때의 내용이지
    자기 자신의 주관으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는 오류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님께서 절대주의도 상대주의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그럼 어떤 사상이신지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때에 따라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화와 진리를 같은 시야에서 보시면 안되겠지요
    또한 “오랜 옛날 중국에선 자신의 부모가 죽으면 그 뼈까지 다 씹어먹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같은 지역인 중국에서 조차 하지 않은 문화일 것입니다.
    그런 문화가 진리 일수는 없는 것 이지요
    서양주의적 기독교문화를 진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이지요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마치 진리가 타 지역의 문화나 기독교국가의 문화와 같이 여기고 있지만
    그것은 진리의 기준을 잘못 잡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 이였지만 유대인들의 것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들것도 받아들이고 로마인들것도 받아들이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을 얻기 위하여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이렇게 되었다하여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처럼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14: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루스드라는 신당에서 제사지내는 일들이 다반사여서 그들의 문화대로한다면 사도바울이나 바나바가 그들의 문화인 제사를 인정하고 자기들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문화로 인해서 진리를 거스리면 안되기에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말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 진리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12. 12. 닉네임 '05.9.9 11:51 PM 신고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제 글을 다시 읽어보십시요..

    전 정확무오한 성서 그 자체의 절대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논점은 절대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라고 말씀하셨죠.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과거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비진리입니까?
    미래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또 뭔가요?

    물론 이런 의미는 아니겠죠.

    우리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이 곧 그 시대의 진리입니다.
    그 시대의 진리란 것은 도대체 뭐라고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까? 아닙니다. 그 시대가 이해한 것입니다.

    왜 성서를 볼 때 시대마다 동일한 해석도 있지만. 그 해석이 차이가 나는 것이 있을까요?완전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무오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시대적 인간의 한계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제가 상관주의적 입장에 가까운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상관주의는 위에서 설명드렸습니다.

    화이터님도 성서를 보시겠죠..몇 권짜리 성서를 보시나요? 66권인가요?

    -----------------------------------------------------------------------
    칼뱅이 어떻게 보았던 현재 시대에 어떻게 보던 그것은 그 사람들이 보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지금의 성서는 칼뱅이 정립한 것입니다. 480여년 전 그 기초위에 기독교가 세워진 것입니다. 화이터님께서 기준으로 바라보는 성경을 재정립한 매우중요한 분입니다. 칼뱅이 어떻게 보았던 상관없다는 식의 말씀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칼뱅시대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아닌 다른 기준으로 바라봤을까요? 칼뱅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었습니다. 이건 막무가내의 답변이죠..

    성서는 누가 썼씁니까?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인간이 받아적었습니까?

    이런 주장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문자주의자들은 모세오경이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모세가 받아적었다고 주장합니다. 그 진위여부는 논외의 문제므로 생략합니다.

    마태,마가,누가, 요한복음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누가 썼습니까?
    하나님의 택정함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아주 특별한 기록물입니다. 맞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깊이 연구해 보십시요.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은 물론이고, 각 저자마다의 독특한 특색과 문체, 개성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그들의 문체가 똑같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각자각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성서를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특함을 활용하시며 역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서에 대해서 왜 각 시대마다 이해와 해석이 다를까요?
    그건 화이터님도 인정하셨듯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과 시대적 한계 때문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이 원어성경입니까? 해석된 번역본이죠..
    번역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나라 그 문화에 가장 적합하게 특별하고, 선별된(사람까지도) -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 이해되고 해석된 것이 곧 번역성서입니다. 맞습니까?

    최초의 한글성서기록자가 혹 예수의 제자라고 말씀하진 않으시겠죠.(물론 동일한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최초의 성서번역, 각종 개정 증보판, 신번역한글성경은 기독교역사책에 나오니 이 역시 다룰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원어를 공부할까요? 왜 목사님들이 원어를 예를 들어가면서 설교할까요?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것은 그 나라 그 문화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보다 원래의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번역본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고 말씀하진 않으시겠죠? 스아, 세겔,므나,달란트, 규빗등..수많은 화폐단위나, 길이, 부피, 무게등의 단위들을 번역서만으로도 이해하고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번역에 의해서 그 단위를 해석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원어를 본 목사님이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르쳐주셨나요?

    성서의 귀절을 예를 들어 저에게 말씀하셨는데요..

    계시록을 볼까요? 요한이 꿈을 꿉니다...

    그의 말들중엔 이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요한계시록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이런 "같더라~~"라는 표현이 계시록에만 8회가 등장합니다.

    같더라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꿈이 요한에게 현현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요한은 꿈을 꾸고, 자신이 꾼 꿈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들..표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과 같더라"라고 한 점 속임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불변의 계시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종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무오한데 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요한이 ~같더라라고 기록합니까? 요한이 잘못 된 것입니까? 정확무오한 성서가 오류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정확무오의 절대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절대성이 아무리 특별한 영적인 사도들에게 임하여도. 그 시대, 그 문화에선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성서에 분명 존재하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간의 불완전성, 인간의 시대적 한계성입니다. 만일 요한이 명확하게 이해했다면..녹보석이더라.. 거문고 타는 소리더라..라고 적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현현하시고, 역사하십니다만 사도 요한도 100% 통달하지 못합니다.)

    욥기 38장을 읽어보십시요.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무오함과 그 이치와 뜻을 통달할 수 있습니까?

    솔로몬의 전도서를 읽어보십시요. 그가 아무리 궁구히 깨달으려 노력하였으나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까?

    우리는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순간에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성서)를 날마다 조금씩 깨달아갈 뿐입니다.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상관주의입니다.


    예수 이전 선배들(선지자들)이 알지 못했던 그림자같은 예언들이 하나님의 영감속에 계시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완전하게 성취되고, 이해되고 해석됩니다. 예수님 이전시대의 사람들은 이사야서를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본체가 예수님시대에서는 예수님에 의해 그 본체가 드러나고, 실현되고, 그 예언이 성취되고 완성됩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이사야서의 내용을 깨닫고 이해하고, 그 분이 누구인지 해석합니다. 그것이 곧 신약의 4복음서입니다. 맞죠?

    특히 성서는 예수님의 행보속에서 아주 특별하고, 아주 많은 것들이 성취되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은 것이 있죠. 그 대표적인 예가 계시록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오신 날 얼굴을 마주보듯, 아주 명확하게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약속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은 지금도 우리가 그 과정속에 살고 있는 것이지 이미 성취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완성된 것이라면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존재할 수 없죠. 이러한 깨달음과 성취의 과정이 우리 시대에만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린 우리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 위에 현재의 믿음의 터전을 갈아 그 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사도들이 전하지 않았다면. 칼뱅이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선교사들의 성서를 건네주지 않았다면..대한민국 그 누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서를 알 수 있습니까? 조상들이 이루워 놓은 수많은 결실과, 수 많은 나라의 번역본 중 하나인 성서를 지금 대한민국의 화이터님은 보고 계신 거구요.. 그 성서는 결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울러 가까운 미래에도 비록 우리의 선배들은 몰랐지만, 우리가 새롭게 깨닫게 될 것들을 전해주고..그들은 좀 더 하나님의 절대성에 지금의 우리보다 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이죠..

    이와 같이 성서를 바라보는 시대적 이해의 한계와 발전성에 절대성을 부여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칼뱅은 비판받았습니다. 왠 줄 아십니까? 그는 기독교강요라는 위대한 서적도 집필할 정도로 탁월한 자였지만. 자신의 성서적 이해와 믿음에 절대성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만을 양산할 뿐이었죠.

    지금은 않 그럴까요? 지금도 기독교에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성서를 이해하는 우리 자신의 이해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서 그 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불완전한 시대적 이해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절대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죠..저는 그런 절대주의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은 모두 그렇게 하죠..성서가 기준이다..이단도 성서를 기준으로 도전합니다. 물론 누가 더 성서적인가라는 학술적 논쟁이나, 비교는 가능합니다. 또한 논쟁간에 성서적 공통점도 존재하구요..아주 명확한 구절들로 이단 사이비(일례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한다거나, XX가 곧 예수라는 식의)도 충분히 추려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발전해왔고..앞으로도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적 비공통점이나 난해구절, 해석, 논쟁속에서 누가 더 성서적인가라는 이해와 해석은 어떻습니까? 이런 부분들에는 성서 그 자체에 보다 더 가까워 질 순 있어도, 우리의 이해와 해석이 성서의 기준과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순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서가 기준이다라는 말은 따지고 보면 오용된 것입니다. 오히려 각교파, 각개인, 각교리, 각 신학적 관점에 따른 성서적 이해가 기준이다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거죠.

    그러므로 그러한 성서적 이해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때문에 그런 절대성을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이죠.

    만일 구약의 예언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성취하시고,완성하셨듯..인간의 이해가 이미 통달되었다면 지구상의 모든 반목과 전쟁, 기아와 질병, 이데올로기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곳 계시록의 성취이며,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와 완성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군요..이런 반목과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대역사를 아직 완성하지 않으셨음입니다. 둘 째는요? 명확하게 터득하지 못한 그 무엇을 가지고 인간들끼리 지금도 같은 종교내에서 마저도 서로 자신이 옳다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성서 그 자체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자신 뿐입니다. 인간은 최대한 가까워 질 순 있어도 하나님께서 대역사를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죠.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지만..인간이 다다를 수 없느 절대주의의 실상입니다.

    우린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의 관념의 우상(성서 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성서적 이해와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을 부셔버리고, 우리의 한계성을 인식하며, 겸손히 머리를 조아려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선배들이 저질렀던 수많은 과오를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발전이란 없죠. 그것이 제가 상관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이유입니다. 그 속에서만이 우리가 지금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과오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올린 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댓글에댓글
  13. 13. 화이터 '05.9.10 8:28 AM 신고
    인간의 불완전성에 절대성을 부여하면 안된다.
    성서 자체의 그 절대주의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니 별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 논점은 절대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절대성을 이해하는 인간이야 불완전성이지만 그 불완전성이 완전한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록된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의 절대성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인간자체의 이해도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성의 이해인 것이지요
    예를 들면 사도들만 천국에 간것이 아니고 수많은 제자들이 간것은
    사도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성경말씀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는다고 입술로는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행위로 부인하는 것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3자를 통해서 보았을때 입술로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성경의 기록된 말씀으로 보았을때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들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을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경을 기준으로 볼때는 제아무리 그어떤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지라도 일요일예배나 십자가 숭배나 크리스마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위로 부인하는 자들이 쓴 글들을 통해서 보니까 각자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성경을 판단하므로 여러가지 서로다른 내용이 나왔고 그래서 님과 같이 사람이 이해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신뢰할수가 없다는 말이 나온것이겠지요

    그리고 한가지 모순된 점은 절대성을 이해하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절대성을 누가 부여했다는 것인지요??

    위에서 설명했듯이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믿음을 지켜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지만 여호와하나님시대에는 육신적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였고 예수님 시대에는 영을 살리시는 말씀이였다는 것입니다.


    성서를 칼뱅이 정립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사도바울이 쓴 편지서나 그밖에 구약의 선지자들이 쓴 모든 내용들이 그전에는 없다가 칼뱅에게 결재를 받아서 기록했다는 것입니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보시니 빈틈없이 기록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되어있고 또한
    성령의 은사도 각양각색으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각가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기록하여서 모든 내용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책들이 그렇듯이 성서외에 다른 책에 대해서 조차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할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목사일수가 없고 모두가 교사일수 없으며 모두가 성도일수는 없듯이 말입니다.

    이세상이 모든 이론이 전부 대한민국에서 나오지는 않았지요
    그러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외국에서 나온 이론이 태반이겠지요
    그런데 그 이론들이 번역되어서 나오죠
    고등학생들이 그 이론을 원어로 된 교과서를 보지는 않겠지요
    그렇다고 선생님들이 원어를 가지고 가르치지도 않겠지요
    그러면 고등학생들은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고 또한 그것이 틀리다고
    말할수도 없겠지요
    물론 교과서와 성서는 또다른 문제겠지만 말입니다.
    언어조차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까요!


    하늘천상의 모습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말할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래서 보석같다라고 한것이니 모순된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잣대로 보았기에 나온 여러가지 불합리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잣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식으로 보았고 자기관점에서 보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변개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전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지금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것에 이론을 더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더하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마라고 당부합니다.

    더하거나 빼지마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본다면
    예를들면" 일요일예배"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들의 이론에 의해서 더해진 것 뿐입니다.

    십자가를 세우라는 말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후에도 없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더하거나 제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여러가지 이데올로기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보면 그런 이데올로기가 발생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수가 있는 것이며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지 마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자기들만의 이론으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하고 자기들의 이론이 옳다라고 합리화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요 ↓댓글에댓글
  14. 14. 닉네임 '05.9.10 9:31 AM 신고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이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수가 있는 것이며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지 마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자기들만의 이론으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역하고 자기들의 이론이 옳다라고 합리화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요.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교회가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2.안식일의 기원은 어디입니까? 혹 아래 smileman님의 말씀을 보면 되는건가요?
    3.죄송하지만 어느 교단 어느 교회를 다니시는지요?

    오늘은 주말이라 바쁘군요..

    시간되실 때 질문에 답변주시면 저 역시 시간될 때 들어와서 화이터님께서 올려주신 글 보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댓글에댓글
  15. 15. 화이터 '05.9.10 11:26 AM 신고
    답변입니다.
    1.교회는 안식일(토요일)을 지켜야 합니다.
    2.안식일의 기원은 스마일맨의 말씀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3.하나님의교회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에댓글
  16. 16. 닉네임 '05.9.10 12:49 PM 신고
    답변 감사합니다.
    잠시 시간나서 또 들어와서 질문 추가로 남기고 갑니다.

    1. 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http://www.watv.org/) 가 공식사이트 맞습니까?

    2. 그곳에 보면 안식일, 유월절, 수건문제, 영혼문제가 서술되어 있던데
    그 부분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추가내용은 없나요?

    3. 안식일이 주일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성경적이라는 주장인가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건가요?

    4. 하나님의 교회가 기존 교회들과 차별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5. 하나님의 교회에도 목사와 십일조제도가 있습니까?

    6. 세례식이 있습니까? 세례식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믿는 성령은 누구입니까? 안상홍님입니까?


    우선 기본적인 베이스가 다름을 인정하고, 출발해서 가급적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입장으로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월요일 밤쯤에 답변 올려드리겠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되건간에 건강한 토론이 되면 좋겠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댓글에댓글
  17. 17. 화이터 '05.9.10 12:58 PM 신고
    답변드립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잠시 시간나서 또 들어와서 질문 추가로 남기고 갑니다.

    1. 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http://www.watv.org/) 가 공식사이트 맞습니까? 맞습니다.

    2. 그곳에 보면 안식일, 유월절, 수건문제, 영혼문제가 서술되어 있던데
    그 부분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추가내용은 없나요?
    추가적인 내용은 있지만 개략적인 내용만으로 충분히 이해가 될것입니다.


    3. 안식일이 주일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성경적이라는 주장인가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건가요?
    더 성경적이라는 것은 주일도 성경적이라는것인데 성경에는 주일개념이 없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법을 어기는 것이 되므로
    예수님께서는 불법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신다고 했으니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기 힘들겠죠


    4. 하나님의 교회가 기존 교회들과 차별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싸이트에서 보셨듯이
    기본적으로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며
    여성도들은 머리수건을 쓰고
    유월절등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사순절 등등은 지키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의 교회에도 목사와 십일조제도가 있습니까? 네





    6. 세례식이 있습니까? 세례식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믿는 성령은 누구입니까? 안상홍님입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오신 안상홍님을 믿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베이스가 다름을 인정하고, 출발해서 가급적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입장으로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월요일 밤쯤에 답변 올려드리겠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되건간에 건강한 토론이 되면 좋겠군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댓글에댓글
  18. 18. 닉네임 '05.9.13 12:38 AM 신고
    아무래도 답변을 정리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말씀드리면 현재 지켜지는 안식일은 정말 성서적 안식일인지 ..현재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이 상징적 안식일인지..모세가 지킨 바로 그날인지...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유대력과 양력, 그레고리력등으로 네이버검색을 해 보시기만해도 관련해서 약 10여개 이상의 훌륭한 자료들이 나옵니다. 안식일이 성서적이냐? 주일이 성서적이냐?에 대한 견해들도 굉장히 다양한데..그 댓글들 모두를 비교해 보십시요. 아울러 기독정보탐정등에서 신약에 표기된 안식일이나...함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 날들이 각기 어떤 날들인지 확인해 보십시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엄청난 시간차가 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문자주의적으로 추적해가도 태초의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의 안식일과 모세시대의 안식일, 포로시대의 안식일, 예수님당시의 안식일등..각 시대마다 지켜지던 안식일이 동일한 날짜가 아니었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해서 이집트문명의 태양력(포로시대), 바빌로니아시대도 확인해 보실 필요가 있구요. 현재 사용되는 양력은 콘스탄티누스대제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레고리력이라고 따로 있습니다...

    현재의 날짜를 유대력으로 추적하는 프로그램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으로 압니다만..17세기 이전은 그 정확도가 불확실합니다.

    결국 안식일이건 주일이건 성서의 절대주의에 대하여 완벽하게 재현해 낸 날짜는 없습니다. 어느것이 보다 가깝게 해석한 결과물이지..절대성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태초의 하나님의 안식일..모세시대에 광야에서 역사하신 안식일과 다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결국 상징주의적 안식일과 주일에 대해서 구원과 연결할 의미과 과연 존재하는지는 수많은 검증이 필요합니다.

    지금 개신교에서는 주일성수라는 것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상징적 의미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문자주의 근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안식일,유월절,십일조 못지않게 구약에는 매우 다양한 율법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상세하게 그 실례를 검증해서 결과값을 보여드리며, 설명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요.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아울러 안상홍님=성령이다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떠한 견해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단이라고 한다면 화이터님은 그것은 개신교도들의 입장이라고 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가 곧 진정한 정통이라면 반대로 기존의 개신교가 이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해석은 양쪽 다 이데올로기가 되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되시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어보셔서 양쪽 모두 어느쪽이 더 의미있는 말인지..냉철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안상홍님=성령님이다라는 교의적해석에 대한 교리가 정리된 서적이나 글이 있다면 답글로 남겨주시면 저 역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댓글에댓글
  19. 19. 닉네임 '05.9.13 12:42 AM 신고
    아울러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전세계에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실질적 구원의 핵심인 예수의 십자가상과 성막의 찢어짐과의 관계성이 더 의미있는 것인지..지금도 선민의식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구약적 제례의식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더 성서적인 것인지 심도있게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답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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