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대통령께서 중남미를 순방중이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 게 있다. 대통령이 떠나시면서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에는 걱정거리가 딱 2개 있는데 하나는 태풍이고 하나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나가니 앞으로 열흘은 나라가 조용할 것이다. 그러니 태풍만 막아라”’
정말이지 너무 귀엽다. 지난해에 서울 종암동 재래시장을 찾아가서 소주 몇 잔 들이킨 그 귀여운 모습과 자꾸 매치가 되니까 웃음이 절로 날 수밖에..ㅋㅋㅋ
그리고 저런 고급스런 유머를, 그것도 의미심장한 말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런데. 동시에 느끼는 것은 대통령의 고독이다. 대통령이 편지로 시작해서 끊임없이 연정을 이야기하고, 선거구개편을 이야기하며, 100년전 나라를 말아먹었던 그 분열의 질곡을 걷어내고자 지역분열 이야기하는데, 딴청을 피우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을 향해 외로운 독백을 던지는 고독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나가 계시더라도 결코 조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금 연정을 떠들 생각이다.
2. 대통령의 의도? 'NO' 자연스러운 결과물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도대체 대통령의 목표는 무엇일까? 목적이 무엇일까?’라며 행간읽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그 행간을 읽어볼려고 한다. 허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오늘부터 쓰는 글의 내용은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화두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의 형태를 좌우하는 것은 국민이며, 국민의 판단에 따라 결과물은 천양지차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굳이 이것을 확실하게 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발언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는 보수-진보들 못지 않게, 뭔가 의도하고 대단한 전략을 내놓은 것처럼 대통령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이다.
3. 왜 하필 연정의 대상이 한나라당인가?
이 부분이 지지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대통령 지지자라도 금방 납득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여간 왜 한나라당인가? 먼저 상생(相生)을 보자. 이 단어의 개념에는 적대적 관계가 전제돼 있다. 즉 상생은 적이나 원수하고 하는 것이지, 동료나 아군하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적은? 한나라당이다. 그러니 상생의 대상은 당근 한나라당이다. 민주당과 민노당? 최소한 적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혹자는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 2가 필요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정의 상대가 한나라당 밖에 없다는 해석도 하는데, 이런 가설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 대통령은 개헌을 이야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대통령 스스로 개헌을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헌은 앞으로의 흐름에 달려있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전개될 성질이 아니다.
하여간 한나라당과의 연정은 ‘상생’이 키워드다. 그동안 국회에서 상생을 얼마나 많이 외쳤나? 그런 말만 상생이 아니라 진짜 상생을 하자는 게 대통령의 연정 발언이다. 이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나온 과거-현재-미래의 분열 극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4. 한나라당, 복잡한 내부 역학구도
먼저 한나라당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가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 정식으로 거부했다. 끝인가? 아니. 김동렬의 표현대로 이제 끝없는 대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총소리다.
연정이 도대체 한나라당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결론부터 말한다. 연정을 받으면 건전보수로 재탄생할 수 있지만, 연정을 끝내 거부하면 문닫는다.
먼저 한나라당의 역학구도를 이해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소장파니 당권파니 이런 구분보다는 영남파와 비영남파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
특히 수도권 출신 의원들의 고민은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수구이미지, 영남당 이미지, 늙수구레한 이미지에 있다. 수도권 의원들 입장에서는 저런 이미지를 자신들도 뒤집어써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도 정치인들이다. 정치인의 꿈은? 집권해서 장관도 하고, 그렇게 커리어 쌓아서 대권 후보로 성장도 하고 이런 거다. 그런데 지금의 한나라당에서는? 그 꿈이 없다. 정치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꿈과 야망이 좌절돼 있다. 지난번 총선 때 얼마나 고생했나? 죽다 살아 국회로 온 사람들이다.
반면 영남파들은? 야네들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텃밭이 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늙은이들이 많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은 영남파들을 가리켜서 ‘경로당에서 노후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 사람들은 굳이 집권해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 큰 꿈은 없고, 하던 짓이 정치라서 그냥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정치질하면서 노는 게 더 좋은 사람들이다. 노후생활 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을 위해 자기 자리를 안내놓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5. 연정을 계속 떠들면 한나라당은 분열된다
대통령이 앞으로 5일 후면 귀국한다. 귀국하면 대통령은 다시 나라를 시끄럽게 할 것이다. 대통령의 필생의 과업으로 설정된 이상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 그냥 외면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제의 이니셔티브는 누가 쥐는가? 설정한 사람이다. 의제를 설정한 사람이 누군가? 대통령이다. 그런데 연정을 거부한 박근혜는? 이니셔티브를 걷어찬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계속 이니셔티브를 쥐고 갈 수밖에 없다.
하여튼 대통령은 당분간 연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게 선거구개편이든 뭐든 정치개혁 화두를 계속 던지며 정치권을 괴롭힐 것이다.
여기서 한나라당의 괴로움이 있다. 앞서 얘기한대로 한나라당 내 영남파들은 선거구제에 관한 한 기득권자들이다. 반면 비영남파들은 그런 기득권이 없다. 진짜 자기 실력으로 당선된 사람들이다. 홍준표가 오세훈한테 일갈했듯이 막대기 꽂으면 당선되는 강남도 영남으로 분류해야 한다.
하여간 이들 사이의 분열은 필연이다. 대통령이 의도한 것처럼 쓰는 사람도 있던데, 이건 대통령 졸라 빨아주는 거 같지만 실상 대통령을 죽이는 짓거리다. 탄핵도 대통령이 유도했다는 공상소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왜 분열하는가?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끊임없이 화두로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 위에서 말했듯이 한나라당 내 비영남파, 그 가운데서도 수도권의 젊은 의원들은 하나라당 내 지역주의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왜 조용하냐구? 잔머리들이 있으니까. 아직 여론을 보면 차기 대선에서는 승리할 것 같으니까.
근데 대통령이 끊임없이 지역구도 해체를 화두로 시끄럽게 하게 되면 차기 대선은 현재의 구도로 치를 수 없게 된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분열은 수면위로 떠오른다. 한나라당 내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 간의 분열 말이다.(이건 우리당도 마찬가지다. 따로 설명)
이런 구도는 현재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간의 권력투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이명박과 손학규는 계산이 틀린다. 이명박은 TK출신이다. 손학규는? 위의 분류로 볼 때 비기득권자이다. 이미 손학규는 얼마 전 대전에 내려가 강연을 통해 지역주의 극복을 입 밖으로 꺼냈다.
또한 고진화도 꿈이 있고, 원희룡도 꿈이 있다. 남경필, 홍준표도 꿈이 있다. 이들의 꿈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노대통령이다.
6. 한나라당, 죽거나 살거나
자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을 피해갈 수 없다. 죽거나 살거나다. 누가 죽고, 누가 사나? 지역주의 기득권을 버리는 자와 그 기득권에 기대지 않을려는 자는 살고, 지역주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는 죽는다.
한나라당이 온전하게 사는 길은 하나다. 대통령이 귀국 이후에도 조용히, 그리고 앞으로도 조용히 지낼 경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능성 0%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건 외통수다”라고.
외통수다. 돌을 던지던지, 판을 엎어버리던지 해야 한다. 돌을 던지는 것은 연정을 받는 것이고, 판을 엎는 것은 연정을 거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싸움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 계산서를 보자.
돌을 던지면 : 지역주의 기득권은 포기해야 하겠지만 내각을 책임지며 국정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수구꼴통, 영남당, 늙은이당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시킬 수 있으며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리모델링해서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한축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판을 엎어버리면 : 대통령과 한판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한나라당은 절대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 왜?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과 이를 통한 분열극복, 그리고 이를 통한 통합의 시대 개막이라는 지도자로서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비젼과 명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판을 엎는 자체가 지역주의 기득권 사수투쟁이다. 명분이 없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죽는 길 밖에는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정과 선거구개편 발언은 대통령이 말씀하신대로 한나라당에게 외통수다. 절대 피해갈 수 없는.
7. 1편을 마무리하며
어차피 인생은 죽거나 살거나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인생이 의미가 없다. 하여간 한나라당도 죽거나 살거나의 길을 가고 있다. 인생 참 허무하게 살고 있다. 계산기 열심히 두들겨 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던진 외통수. 잘 받아야 한다.
2편은 열린우리당이다. 어줍잖게 또 시리즈를 쓰게 된다. 독자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스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