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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매를?" 친일파 수구들의 반격

 
“도둑이 매를?” 김창룡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고소
피소된 여인철 씨 “친일 부역 김창룡에게 어떤 명예가 있는지 설명하라”
입력 :2005-09-24김세옥 (okokida@dailyseop.com)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이자 김구 선생 암살 배후로 지목한 김창룡 씨의 유족이 지난달 3일 여인철 KAIST 감사(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청와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명예훼손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재 국립묘지 장군 묘역에 묻혀 있는 김창룡은 일본 헌병대에서 독립군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 친일파이자 김구 선생 암살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민족의 반역자”라며 “김창룡의 묘를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와 큰아들 김인 선생 묘소 옆에 나란히 두는 일 자체가 민족의 수치인만큼 하루 빨리 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인철 감사가 23일 오후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www.minjok.or.kr)에 게재한 원고지 32매 분량의 ‘친일잔재 청산에 몸을 던지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창룡 유족이 나와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해당 건을 보도한 언론사 등에 명예훼손 명목으로 1억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고 밝힌 뒤 “김창룡 유족의 이번 소송은 적반하장, 도둑이 매를 든 격”이라고 비판했다.

“친일청산만 제대로 됐다면 김창룡 유족이 감히 명예훼손 운운할 수 있었겠나”

여인철 감사는 김창룡의 유족들은 명예를 얘기하지만 김창룡에게 과연 명예라는 것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다.

여인철 감사는 “지난해 초 어느 날 김창룡 부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녀는 나의 남편(김창룡)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좋은 가문 출신의 나와 맺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여 감사는 “당시 김창룡의 부인은 (당신들이) 왜 자꾸 우리 남편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뒤,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고소하겠다고 말했다”고 당시의 대화내용을 떠올렸다.

여인철 감사는 “김창룡이 애국자라면 무엇으로 애국했는지 입증해야 하지 않겠냐”고 잘라 말한 뒤 “만약 김창룡이 애국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지금의 일을 그만둘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 감사는 김창룡 씨의 유족들이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의해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일 역시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 감사는 “우리의 목표는 친일부역자 김창룡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쫓아내는 것이었을 뿐, 유족과는 상관이 없다”며 “우리가 연좌제를 적용해 김창룡의 유족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은 이상 그들에게 고소당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여인철 감사는 이어 “설사 우리가 유족을 김창룡과 연관해 비난했다 하더라도 그 유족들은 부끄러운 줄 알고 조용히 지내야 옳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친일청산만 제대로 됐다면….”

여인철 감사는 현재와 같은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까닭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과거사 청산 과정을 꼽았다.

여 감사는 “해방 후 제대로 친일청산을 했다면 김창룡 유족들이 지금처럼 감히 머리를 내밀고 명예훼손 운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조상의 친일 대가로 받은 나라땅을 제 땅으로 착각하고 소송하는 친일파 유족과 해괴한 민법 논리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의 판단 역시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다.

여 감사는 “이렇게 뒤집힌 세상을 두고 바로 적반하장,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라고 한다”며 ”지난해 가을 대전 국립묘지에 김창룡과 함께 누워있던 친일 언론인 서춘의 유족들이 묘를 이장하며 ‘(서춘이) 국립묘지에 있는 것이 나라에 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친일파 유족들은 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인철 감사는 프랑스가 독일 나치 하에 있었던 1942~1944년 사이 1500여 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등의 부역활동을 했으면서도 파리 경찰국장, 장관까지 지냈던 모리스 파퐁이 지난해 10월 프랑스 대법원으로부터 10년형을 언도받은 사실을 상기했다.

여인철 감사는 “만약 우리나라에서 50년 전의 부역행위를 이유로, 그것도 90살 고령의 노인을 재판정에 세웠다면 아마 너무하다는 여론이 일었을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프랑스와 우리의 차이”라고 꼬집었다.

여 감사는 “모리스 파퐁 재판을 통해 프랑스는 프랑스를 배신한 프랑스인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줬고, 그로 인해 지금도 전세계를 향해 콧대를 높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듯 주상같은 원칙을 세워야 나중에 불행한 시절이 닥치더라도 제 나라를 배신하는 무리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여 감사는 “반면 우리의 경우 엄청나게 많은 부역자들과 그들의 추종세력들이 여전히 이 사회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이에 대한 역사적인 정리조차 방해하는 세력이 진을 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 감사는 “거기에 많은 국민이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역자를 예비하고 있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여 감사는 “우리는 35년 넘은 식민지 시절의 부역자를 단 한 명도 처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새나라의 지배세력으로 변신해 그 후예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행사하는 나라, 남의 나라 역사왜곡에 분노하면서 정작 제나라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선 경제가 어려우니 덮자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 감사는 “그러니 부역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는 상식적이며 소박한 주문을 전하는 활동가들이 부역자의 유족으로부터 고소당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도대체 민족적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나라에 아직도 나는 살고 있다”고 비애 섞인 말로 글을 닫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서방
2005-09-25 09:47:02
2023 번 읽음
  총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도마령 '05.9.25 3:25 PM 신고
    ㅇ.ㅇ
    나라를 팔고도 국립묘지에 묻히는 나라니 할말 없음 ↓댓글에댓글
  2. 2. 파란 '05.9.26 7:59 PM 신고
    진짜요? 우리 나라 언제 좋은 나라 되려나? ↓댓글에댓글
  3. 3. 김서방 '05.10.1 8:40 PM 신고
    민족연구소?
    민족연구소가 머하는데인줄 아나? 민족연구소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말도 안돼는 친일파로 만들어버리는 집단아니오?

    민족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름 나열해바바여..
    그사람들 죄다 까발려보게...

    거짓말도 백번 하면 진실 된다고 그런식으로 해대는게 공산주의입니다..

    수구꼴통이라니 말하는 싸가지라고는....
    그냥 수구면 수구 보스면 보수지...

    어디서 꼴통이라는 돼먹지 못한 발언을 하냐 이말이다..
    한심한 사람들이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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