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뒤죽박죽이다. 이념적으로 너무나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 정당 안에서 동거하고, 혹은 동질적인 사람들이 반대당으로 갈려 죽자살자 싸운다. 이런 후진적인 뒤범벅 정치지형에서 모든 합리적인, 혹은 건설적인, 혹은 미래지향적인 논의는 자취를 감춘다.
오로지 적이냐 아군이냐의 피아구분만 존재하는 아수라장인 것이다.
그 피아구분을 가르는 표지 중에 ‘박정희’라는 상징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박정희로 상징되는 우리의 과거에 대한 합리적 성찰은 봉쇄된다. 오로지 친박이냐, 반박이냐의 투쟁만 있을 뿐이다.
친박진영의 행태는 정말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박정희가 좋단다. 고맙단다. 왜? 경제발전을 해줬으니까. 비록 그가 독재를 하고, 친일을 하고, 고문을 하고, 뇌물을 받아쳐먹고,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나라를 속속들이 썩게 했어도 좋단다.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었으니까.
이 대목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런데 그들은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한나라당이야말로 반박정희당 아닌가? 박근혜야말로 반박정희적 정치인 아닌가? 만약 그들이 박정희의 고문치사, 뇌물, 부정부패, 반란, 매국행위 등을 숭배한다면 지금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그런 건 잘못 됐단다. 오로지 기적에 가까운 성공을 가져다 준 경제정책이 좋을 뿐이란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이지?
박정희는 죄인이다. 그런데 그는 위대한 경제성장을 일군 지도자다.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미워해도, 역사는 바로 봐야 한다. 인간 박정희, 그 추악한 죄의 인생과 그가 실행한 경제정책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인간 박정희의 죄를 승계했을 뿐이지, 그의 경제정책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정희 경제정책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한 시장통제다. 그런데 한나라당하고 강력한 국가권력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한나라당이 십수년째 외치는 슬로건은 ‘자율’, ‘자유’다. 자율이니, 자유니 하는 것들은 박정희완 상극에 있는 단어들이다.
박정희의 큰 정부 작은 시장 경제정책을 추앙한다며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외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뒤죽박죽. 혼란점철. 문답무용. 이것이 이념적으로 잡탕이 돼 일체의 생산적 효율성을 상실한 한국 정치지형의 앙상한 몰골이다.
죄인 박정희의 반인륜적 범죄는 거부하되, 그 경제정책의 의미만은 승계하자는 사람들이 지지할 만한 정당상에 현재 가장 가까운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현실 정치권에서 민주노동당이 가장 자유시장주의에 비타협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또 개혁진보쪽으로 가면 박정희 말도 못 꺼낸다.
예전에 진보적 지식인들과 대화하던 중 내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자마자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그럼 당신은 박정희가 좋다는 거냐?”라는 반문이 나왔다.
어떤 이성적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박정희가 좋으냐, 싫으냐, 적이냐, 아군이냐, 흑색이냐, 흰색이냐, 나쁜 놈이냐, 착한 놈이냐의 원초적 대립만 존재하는 것이다. 뒤따라 나온 얘기는 “아니 총칼로 강요하는데 어떤 놈이 열심히 일 안 하겠냐, 그렇게 한 경제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냐”였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분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경제가 발전된다는 식의 조선시대 유학자 수준의 말씀들을 하고 있었다. 박정희 문제가 걸리면 이성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어둡다. 싫다. 악이다. 우린 반대로 가야 한다.”
이것이 개혁진보진영에게 있어서 일종의 공리처럼 존재한다. 그런데 박정희의 반대편엔 무엇이 있을까? 일단 민주주의가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 그리고 시장주의다. 다시 말해 박정희를 견제했던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박정희 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다.
박정희는 악이고, 박정희 반대는 선이라는, 혹은 박정희는 선이고 박정희 반대는 악이라는 기계적 등식이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동안 우린 조금씩 조금씩 미국식 사회체제로 움직였다. 이것이 민주화 세력이 현실정치권의 신주류로 등장한 90년대 이후의 역사다.
프랑스쪽 인사들과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국, 프랑스 교육제도를 논의하는 심포지움을 연 적이 있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당연히 우리나라 과거의 각종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프랑스 대사관에서 나온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린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매우 경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기적적인 성취를 이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쪽 패널들이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나 역력했다. 독재에 대한 비판에만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그 성공적인 결과를 외국인이 언급하자 말문이 막힌 것이다. 물론 그 순간에 “그건 박정희가 총칼로 사람들을 억눌러 다들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에요.”라는 조선 선비같은 답변을 한 사람은 없었다. 이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라 망신이었을 테니까.
친박 진영이나, 반박 진영이나 박정희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는 금기다. 난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동안 박정희를 비난해왔다. 개혁진보진영의 사상검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박정희를 진정으로 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미래로 도약할 수 없다. 친박 반박의 문제가 아니다. 친일 매국노, 반란 수괴, 인륜 파괴자 박정희의 죄상과는 별개로 도대체 무엇이 한국에게 그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주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혹시 우린 무조건 박정희 반대로만 가면서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다줬던 그 모든 미덕까지 너무나 성급히 폐기처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한민국의 기조를 튼 것은 신한국당 김영삼 정권이다. 그러다 IMF를 맞았다. 그 이후 미국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과거와 다른 기조로 갈 것을 요구했다. 우리에게 글로벌 스탠다드와 주주자본주의의 유토피아를 제시/강요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선진국이 될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것도 모자라 강요했을까? 혹시 우리가 사기당한 것은 아닐까?
민주화 정권 십년이 훨씬 넘었다. 그 결과는 기록적인 주가상승과 참담한 양극화다. 미국처럼 돼가는 것이다. 백지상태에서, 전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대한민국호의 기조를 다시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울지아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