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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오신 안상홍님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 봅시다





[마 28:18-20]『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구원의 첫 걸음인 침례를 베풀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들의 이름, 성령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구속 사업을 펼치셧으며, 각 시대마다 불러야 할 하나님의 이름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역사하셨으며 신약에는 예수란 이름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누구의 이름으로 구원이 이루어질까요?





1. 성부(聖父)의 이름

이름은 어떠한 존재를 다른 것과 구별 짓고 그존재의 가치를 드려내는 구실을 합니다.이처럼, 하나님의 이름 또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드려내고 그 위대한 권능을 알게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여화와의 이름을 처음부른때는 아담이 아들셋을 낳을무렵이며(창4장26절), 여호와의 이름이 구원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난것은 모세당시 출애급사건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출 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여호와’이심을 알리셨고 여러 가지 기적과 권능으로 당신의 존재와 전능하심을 주지시키셨습니다.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고 존중할 때 복을 받고 승리하며 그 이름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 속죄와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요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저주와 멸망을 당하였다는 것을 성서 여러 기록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란 이름으로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고 여호와란 이름 외에는 그 어떤 이름도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서 전체를 살펴보면 여호와란 이름 외에는 그 어떤 이름도 구원자로 등장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聖父)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부(聖父)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2. 성자(聖子)의 이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다 왕국의 멸망후 다시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속국이 되어 종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오셔서 구원해준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사 35:3-4).





[겔 34:1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람으로 이 땅에 등장하셨고 누구든지 예수라는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요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시겠다는 약속하시고 그약속애 따라 ‘예수’란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결국 ‘예수’란 이름은 여호와의 새로운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새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구원자의 이룸을 믿지않고 오히려 그이름을 훼방한 결과 그들은 구원은커녕 저주와 멸망을 받아 오랫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 게 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예수라는 이름만이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행 4: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신약성경에서는 구원자의 이름이 분명 예수라고 증거 되고 있으며 그 이름으로 구원받고 그 이름으로 많은 권능이 나타났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자가 여호와, 예수 두 분이이냐고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결코 구원자가 두분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증거 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 이름이십니다.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 하시고자 친히 육체를 입고 세상에 임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따라 목수 요셉의 집에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환경과 여건에 합당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고 그 이름이 예수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체로 임하실 때 가지고 오신 새 이름입니다.성자로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3.성령(聖靈)의 이름

성자시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해 이땅에 두번째 오실 것으로 예언되었습니다 (히 9:28).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실것을 예언하시고 새로운 이름인 예수로 오셨듯이,예수님께서도 이땅에 다시오실때 새로운 이름으로 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예수의 새 이름이 있다고 하면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시록은 예수님 부활 승천 하신 지 수십년이 지난후에 기록된 성경으로, 장차될일을 증거하고 있는 예언서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나의 새 이름’이라고증거하셨으니 예수님의 새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것입니다 .이는 2천 년 전 육체로 임하실 때 여호와의 새 이름으로 오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의 이러한 예언을 알지못하고 고정 관념에 빠져 예수의 새 이름을 외면한다면 과거 유대인들의 전철(前轍)을 되풀이하게 이 시대를 통해 이루시는 구속의 은혜를 입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부시대에는, 여호와를 의지 할 때 구원의 은혜 가운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자시대에는 여호와의 새로운 이름인 예수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새 이름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은 그 이름을 깨닫고 영접하여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자녀들에게 새 이름의 권능을 체험하도록 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聖靈)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입니다. 따라서 성령(聖靈)의 이름은 새 이름입니다.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따라 새이름인 성자 예수님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또한 성자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오신다 하였고 두번째 오시는 분을 성령이라 하였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여호와의 새이름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예수님의 새이름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으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수 있습니다.



화이터
2005-10-03 13:56:17
1542 번 읽음
  총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듀오 '05.10.3 2:19 PM 신고
    ...
    닉네임님께서 말하는건 이걸 말하는게 아닐듯 한데요. ↓댓글에댓글
  2. 2. 닉네임 '05.10.5 1:58 AM 신고
    화이터님 듀오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일례로 개신교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서적으로는 에드윈 H 팔마 의 "성령론" 같은 서적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안상홍님=성령님이다라는

    교의적해석에 대한 교리가 정리된 서적(성령론)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요..

    위와 같은 글은 어딘가 연결고리(성령=안상홍)가 상당히 미비하고, 개인적으론 수많은 의문만이 남을 뿐이네요.. ↓댓글에댓글
  3. 3. 듀오 '05.10.5 3:27 AM 신고
    아마..
    없는듯 합니다만..

    머 자신들만의 교리라는 애기 이겠죠..

    그리고 무조건 성경만 보라는건 어딘가가 안맞죠.. 더군다나. 그건 기독교나나 개신교쪽에서 많이 하는 소리입니다.. 성경이외의 증거를 하시는게 나을듯 합니다.. 그리고

    성경도 개혁판보다는.. 공동번역판으로 확실히 매듭 짓는게 좋을듯 하고요.. 확실히 공동번역판엔 하느님이라는 글보다는 야훼라는 신이름이 나온다고 하죠.. 하느님이라는건 우리나라의 민속신의 이름입니다.. 어디 같다가 붙일것이 없어서 붙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화이터 '05.10.5 5:02 PM 신고
      그렇다면 하나님만의 교리라는 것인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하나님말씀외에
      다른 사람의 말을 증거로 삼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말씀외에 다른 증거를 제시하시란 분께서
      개역판이니 공동번역판이니 하시면서 증거하면 그 증거는 믿어지시겠어요


      하느님이라고 표현된 것이 바로 공동번역인데 그 하느님은 우리나라의 민속신이라고 하신 분께서 "공동번역"으로 확실히 매듭을 짓는게 좋을듯 하다는 것은 빈정거리시기에 알맞는다는 뜻인가요!!
  4. 4. 도마령 '05.10.5 4:31 AM 신고
    ^^
    화이터님의 대답이 눈에 보이는데요 .성경을 안믿으면 무얼 믿나 신의 말씀이라는데 ~~ ㅋㅋ 신의완전무결성이 성경의 완전무결성이오 성경의 완전무결성이 그걸 말하는자의 완전무결성이 되는 희한한 논리 ↓댓글에댓글
    • ㄴ 1. 화이터 '05.10.5 5:04 PM 신고
      님의 논리를
      본인의 논리라고 하시면 그것도 모양새가 좀 이상하지요

      님은 하나님께서 쓰신책은 그렇게 불신하시면서
      인간들이 쓴책은 신빙성이 가기는 합니까!!

      하나님께서 쓰신 책은 무척이나 불신하면서
      인간들이 쓴 책은 굉장히 믿어지는 참으로 희한한 논리
    • ㄴ 2. 도마령 '05.10.5 6:08 PM 신고
      ^^
      방금위에 듀오님께 리플하며 화이터님이 적으신내용과 제 리플내용과 상충하나요? ㅋㅋ 좀 어렵나요? 전 모든책을 긍정하며 또한 불신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인간이쓴책을 믿는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오나요?
  5. 5. 닉네임 '05.10.7 5:26 PM 신고
    하나님만의 교리라는 말의 모순점..
    하나님의 교회에서 안상홍님=성령님이다라는 주장이 만일 정녕 하나님의 교리라고 한다면 여기서 아주 커다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교파들은 안상홍님을 성령님이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풀이하면 둘 중 하나가 반드시 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화이터님의 주장을 풀이해 보면 이미 모든 개신교가 틀렸고,
    (안상홍님을 성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교회만이 바르게 해석했다는 이중성의 모순속에 빠져 계신 겁니다.

    이것은 성경자체의 절대화가 아니라, 성경을 풀이한 상관주의적 해석
    (안상홍님=성령이다)의 절대화라고 합니다.

    이것은 또한 성서가 인정하는 인간의 유한성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시면서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교회의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한다면 이건 앞뒤가 맞질 않는거죠.

    물론 자신의 교파를 옹호하는 차원에서 더 성서적이다라고 주장할 순 있습니다. 다만 이도 검증이 필요하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네요..잘 생각해 보세요..화이터님께서 성서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하시는지...아니면 성서해석에 대한 하나님의 교회적 해석입장에 절대성을 부여하시는지... 후자일 겁니다.

    그런 교리의 절대화는 설득력이 매우 희박합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댓글에댓글
  6. 6. 화이터 '05.10.7 9:05 PM 신고
    그래서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유추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만을 말하는 것이지
    다른 교단이 틀렸다라든가 우리만 옳다라든가 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뱀이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되는데
    모든 실과를 다 따먹지말라더냐 하였던 것처럼
    선악과가 모든 실과이지는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초림당시에도 예수님을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았다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인정해주던 인정해주지 않던간에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그리스도가 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니여야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말씀을 절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반 개신교들이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있지만 실상은 성경에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라는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7. 7. 닉네임 '05.10.8 2:15 AM 신고
    화이터님은 착각속에 빠져 계십니다.
    성서 어디에도 안상홍님이 성령이다라는 귀절은 없습니다.
    그건 성서 자체가 아니라 성서를 바라보는 해석이죠.

    아울러 일요일의 예배와 안식일의 예배에 대해서도 지난 번 코멘트
    달아드렸습니다.

    창세의 안식일, 모세시대의 안식일. 바벨론 포로시대등..
    그 안식일이 오늘날의 안식일과 동일한 날짜라고 생각하신다면 역사공부를 좀 더 해 보십시요.. 그건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의 한계입니다.

    오늘날의 안식일은 그 날이 아니랍니다. ↓댓글에댓글
  8. 8. 닉네임 '05.10.8 2:49 AM 신고
    아울러 구약을 살펴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함께 역사하셨습니다..물론 시대적 특징은 존재하며 누구나 인정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심오한 말씀처럼..

    구약 여러 귀절에서도 이미 성령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귀절들은 상당히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어떤 존재인지는 구약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현현하는 존재는 성자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온다는 귀절은 신,구약 어디에도 없습니다.

    --------------------------------------------------------------
    성자시대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해 이땅에 두번째 오실 것으로 예언되었습니다 (히 9:28).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땅에 오실것을 예언하시고 새로운 이름인 예수로 오셨듯이,예수님께서도 이땅에 다시오실때 새로운 이름으로 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히브리서의 말씀은 예수의 재림 곧 계시록과 연결된 마지막 심판 때 입니다. 4대복음과 베드로서에도 나오죠. 예수의 재림은 곧 마지막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자예수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해서, 성령이 또 다른 이름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온다는 예언이나 귀절은 성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울러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하군요..

    하나님은 물론 삼위일체이지만 성서를 잘못 이해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이시지만 하나님은 각 위마다 역사하심의 방식이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성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위와 격이 존재하고 그 역사방식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삼위일체의 위와 격에 대해선 위에서 말씀드린 성령론을 참고하십시요.


    위와 같은 해석(성령이 예수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그것도 대한민국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식사하시다가 돌아가신다는) 성서적 예언이나 귀절은 전 세계 어느 성서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와 같은 해석은 성서 그 자체가 아니라 신뢰도가 매우 낮은 추론적 해석일 뿐입니다.

    성서를 볼 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추론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화이터님은 자신의 신념이 자꾸 성서 그 자체라고 주장하시지만, 위의 말씀처럼 님의 생각은 성서 그자체가 아닌 당위성을 부여한 해석입니다.

    과거 14만 4천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모 교단에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해석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군요.. ↓댓글에댓글
  9. 9. 닉네임 '05.10.8 3:05 AM 신고
    아울러 윗글에서도 모순이 보입니다...
    -------------------------------------------------------------------
    초림당시에도 예수님을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았다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인정해주던 인정해주지 않던간에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그리스도가 되고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니여야하는것이 아닙니다.

    --------------------------------------------------------------------

    이 말은 곧 안상홍님이 개신교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성령님이다라는 주장을 하시면서 유대교의 예를 드셨습니다.

    개신교와 유대교의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예가 적절하다면 화이터님 스스로 모순에 빠지신 것입니다.

    "개신교=예수를 인정하지 않던 유대교처럼 안상홍님을 인정하지 않음"
    이라는 대입과 주장은 결론을 내리지 않으셨을 뿐이지..
    다음과 같은 추론은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진리가 A이고, 그가 곧 안상홍님이라면..개신교 = 안상홍님을 인정하지 않음(유대교처럼) = 개신교( Not A)가 되는 것이죠.

    1+1=? / 1+1=2 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바보가 아닌이상 없습니다.

    이와 같은 말들은 꼭 결론을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를 유추할 수 없을 정도의 난해한 내용들이 아닙니다.

    결국 화이터님의 비유는 성서적이지도 않고, 전혀 적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10. 10. 도마령 '05.10.8 9:15 AM 신고
    화이터님은 이해 못할듯 한데요
    전에도 연역법 귀납법와 삼단논법 설명했는데 못알아들으시던데요^^ ↓댓글에댓글
  11. 11. command '05.10.9 3:24 PM 신고
    무교인 저의 입장에서는 ..
    기독교나 하나님의 교회나 모두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모두 서로 존중해주어야 할 단체라고 저는 생각 됩니다
    어느 하나가 이단 이고 그런건 제가 보기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종교를 서로 침목과 봉사를 위한 단체라고 봅니다..
    전 기독교나 하나님의 교회나 침목과 화합 그리고 봉사를 하는 멋진
    단체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댓글에댓글
  12. 12. 당근 '05.10.10 11:02 PM 신고
    사람이 하는일은 크던작던 이단이 있다고 생각함...
    그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볼때 진짜 하나님의 마음으로 볼 수 있나요?
    난 아니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것이고,
    완벽해지려는 과정이지 완벽이면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거라는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절대라는건 종교인입장에서 절대이지 절대는 없다라는게 틀린말인가요?
    내 논리라면 있을수도 있는건가..
    이 것이 모순인가....
    교회에서 이단을 써서 나도 함 써봅니다.
    교회안 믿으면 이단이라..... ↓댓글에댓글
  13. 13. 닉네임 '05.10.17 6:55 AM 신고
    정통과 이단에 대한 왜곡된 이해..
    정통과 이단에 대한 왜곡된 이해..
    이 부분은 제가 올려드린 양태론을 참고하시면 중간쯤에 나옵니다.

    정통과 이단을 사람들이 이해할 때 정통=옳은 것. 진리, 절대성 / 이단=틀린것, 비진리, 비절대성 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정확한 뜻은 그것은 아닙니다.

    정통이란 수 없이 많은 세월동안 끊임없이 연구해 내 명확한 내용들이라는 의미와 연결되는 단어이고, 이단이란 단어는 이 정통이란 단어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거나, 결국엔 끝이 다른 주장을 하는 곳을 말합니다. 즉 정통이란 단어는 역사적으로 선존했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신학자들도 정통이란 의미에 절대성을 부여하진 않습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것을 잘못 이해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단들을 자신들이 직접 화형에 처하기도 했죠.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리라 라고 말하면서도 심판을 자신들이 했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목사님들도 정통이 곧 진리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물론 이단은 정통이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상대주의와는 다릅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정통=불변의 진리/ 이단=회개할 수 없는(돌이킬 수 없는) 사단의 자식들이라는 의미와 해석은 성서에 등장하는 많은 성구들의 시대적 의미와 표현기법을 잘 이해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혹 돌이키시리라 같은 예가 있죠. 유신론을 명제라고 가정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 하나님이란 존재는 그렇게 속좁은(모 교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분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그 하나님은 그 교단이 주장하고 생각해 온 것들의 대변인이 아니라, 전우주적 주체이실테니까요.. 당근님 말씀처럼 보다 가까워질 순 있다하더라도, 감히 측량가능할까요? 한 순간 실수하면 완전히 오류의 결론이 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입니다. 이것은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정통과 이단을 알아야 하고, 신학을 알아야하는가? 되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보다 더 성서적인지 자신들을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중요한 것이죠. ↓댓글에댓글
  14. 14. 닉네임 '05.10.17 7:03 AM 신고
    위에서 말씀 드린 상대주의란..
    A도 옳을 수 있고, B도 옳을 수 있다라는 다원주의적인 절대성의 인정이 상대주의임을 유의하십시요. 상대적이란 말과 상대주의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말을 길게 장황하게 하였지만, 상당부분 당근님께서 아주 옳은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그것은 A도 옳고 B도 옳고가 아닌 A의 입장(하나님)을 B(인간)이 완벽하겐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조금씩 돌아보고, 깨달으며,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저는 시대적 상관주의로 인간의 학문체계중 그나마 가장 신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한성과 전인적 타락(이성마저도)이 이를 증거하죠.

    물론 거울을 보는 것처럼 완벽하게 그 절대진리를 깨닫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완성..곧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댓글에댓글
  15. 15. 닉네임 '05.10.17 7:08 AM 신고
    몇가지 빼먹었군요..
    정통이란 수 없이 많은 세월동안 끊임없이 연구해 내 명확한 내용들이라는 의미와 연결되는 단어이고, 이단이란 단어는 이 정통이란 단어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거나, 결국엔 끝이 다른 주장을 하는 곳을 말합니다. 즉 정통이란 단어는 역사적으로 선존했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명확하다라는 의미는 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확실하다의 의미도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일례로 성서엔 분명하게 존재하는 삼위일체. 그러나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한계가 따르는)이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신학 역시 다른 학문처럼 완성된 절대적 학문이 아닌. 지금도 발전하는 학문이라는 증거입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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