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신약성경이 아닌 구약성경으로 증거를 하였는데
구약성경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예수”라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셔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그 이름 자체가 없다고 할지라도 행하는 그일로 인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
이 말은 안상홍님의 이름이 성서에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성령님이 아니셔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과 동일한 주장이죠.
질문드립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의 행보가 예언되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떠한 일들을 할 것이며, 어떻게 죽고,,어떻게 부활하여 사망권세를 이길 것인지는 구약성서 귀절귀절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안상홍님의 이름이 마치 예수처럼 거론되지 않았다지만, 안상홍님의 행보가 성서에 예언되어 있습니까?
성령이 육신을 입고 그것도 대한민국에 태어나 식사하시다고 돌아가신다는 예언은 성서 어느 귀절에도 예언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서 전체에 나타나는 구속사의 사건과도 전혀 연결되지 않는 별개의 죽음이고 별개의 행보죠.
위의 실례(예수의 이름이 거론되지 못함=안상홍님의 이름이 거론되지 못함과의 동일시)는 안상홍님=성령님이다라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펼쳐가시는데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제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제가 성령이다라고 주장하면 그것이 성서적일까요?
요14:11은 예수를 가르키는 말씀입니다. 억지로 안상홍님으로 대입시켜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세요.
물론 방법은 있습니다. 새로운 성서를 하나 만드십시요.
--------------------------------------------------------------------------------그리고 안식일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변함없이 내려온 것이니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시면 현재 기독교에서 지키는 일요일마저 부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아예 현 날 체계마저 부인하고 마는 것이 되겠지요.
그렇게 부인해버린다면 안식일을 우리가 지키고 있다고 해서 하등 문제가 될 소지는 더더욱 없어지는 것이 되겠지요.
그리고 성경도 먼저는 문자를 본 연후에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지 문자가 없는데 어찌 무슨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문자주의”라는 말자체도 이미 모순이 되겠습니다.
--------------------------------------------------------------------------------화이터님은 스스로 논리적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시겠죠..하지만 괘변을 늘어놓고 계십니다.
이러한 글은 문자주의가 뭔지 전혀 모르시고 계신 것을 반증하는 글입니다.
문자를 본 연후에 의미를 알아가는 것과 문자주의를 연결해서 생각하신다는 것은
스스로 문자주의가 무엇이고, 역사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은 지난번 글 올렸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번 올린 글을 참고하십시요.
오늘날의 안식일과 창세의 안식일이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동일한 날짜인가?라는 화이터니의 주장은 유대력과,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달력들간의 시간차, 바벨론 포로시절의 바릴로니아 달력과의 시간차, 양력 이전의 그레고리력과 양력의 시간차를 계산해 보십시요.. 그 어느 학자도 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엄청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주일성수에 대한 오늘날의 개념은 상당수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는 것은 개신교의 진보주의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카톨릭에서도 조금씩 인정하고 있는 부분들 입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문자주의 목회자들은 안식이나 특정 날짜에 대해서 절대성을 부여하고 지금도 빡빡 우기고 있죠.
심지어 목회자=제사장직 / 교회=성전, 십일조,건축헌금등의 성서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근거를 성서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만..요즘같은 정보시대에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성서는 명확하게 목사라는 직분은 교사와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결코 제사장직과 유사한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실 신약의 초대교회 모습이라기 보다는 구약적인 모습과 카톨릭적인 모습등 여러가지 짬뽕이죠.
잠시 목사직에 대해서 언급을 드리면..
엡4:11에 언급된 직분의 세 종류..당시의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는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사역했던 것인 반면, 나머지 두 직분 곧 목사와 교사는 지역교회에 국한된 직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Wood, Foulkes). 이러한 직분들에서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죠.
1. 직분의 다양성입니다.(고전12:5), 교회는 한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고,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달란트=탤런트,재능)이나 은사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직분의 통일성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직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영적인 유기체이죠.
사도: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자들로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를 섬긴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바울 자신과 바나바(행14:14), 실라(살전2:6) 등을 의미하는 데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부활하신 주를 증거하였습니다.(행 14:4, 14 ; 고전15:5 ; 갈 1:19)
선지자: 하나님의 계시를 중재하며, 죄를 깨닫게 하고(고전 14:24) 교회를 훈계하기도 하였습니다.(행15:32). 이들은 극심한 박해와 직권 오용 그리고 정경의 등장으로 인해 후에 교회에서 사라졌죠.(행13:1 ; 고전 12:28, Foulkes, Lincoln)
지난 번 여담으로 말씀드린 "자신이 베드로 사도의 영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신비주의적인 말..곧 한마디로 지나가는 X가 웃는 소리를 하고 있는거죠. 예수가 말한 거짓선지자들 중 하나입니다. 정신상태가 약간 맛이 간 사람들입니다. --;
복음 전하는 자: 선교의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는는 자로 빌립(행8:4-7), 디모데(딤후 4:5), 에바브라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목사와 교사: 혹자는 두 직분 사이에 관사가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같은 직분이라고 주장합니다(Barth). 그러나 직분상 그 기능이 어느정도는 중복된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람으로 볼 수 없으며, 관사가 하나밖에 없는 것은 두 직분이 지역 교회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Lincoln).
따라서 목사는 제사장직이니..선지자니..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를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자이며, 교사는 사도적 교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자인 것입니다. 유기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집사도 평신도도 목사 이상으로 귀중한 존재입니다만..어디 현실이 그런가요?
오늘날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런 것 가르치기 보다는 배에 개기름끼고 외제차타고 다니고 있죠. 오늘날의 교회는 철저한 계급화죠..거의가 하나같이 기형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 경매에 가담하는 기형아들에게서 뭘 배우겠습니까? 하나님이 뭐가 아쉽고 답답해서 그런 건물에 임재하십니까?
십일조에 대해선 글이 길어지므로 빼겠습니다. 잘 찾아보십시요..신약에서 헌금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요즘 검색엔진 굉장히 훌륭하죠..다양한 귀절이 나옵니다.무엇이 더 성서적인지는 금방 답이 나올 겁니다.
-------------------------------------------------------------------------------“문제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현현하는 존재는 성자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육체의 몸을 입고 온다는 귀절은 신,구약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께서 뒤에 가서 바로 부인해버리고 말았군요.
창18장에 여호와하나님께서 육신을 쓰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십니다.
--------------------------------------------------------------------------------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에 대하여 단수인 '내 주여(my lord)를 사용한 점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에 의거해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즉시로 깨달았다고 해석하기도 하죠.
그러나 이는 세 사람을 총칭하는 대표 단수입니다. 아울러 이 귀절에서 사용된 '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니아' 는 종교적 의미 뿐 아니라 남편(12절)이나 상전(24:12) 또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일반적인 의미도 함께 지닌 단어라는 점을 유의하십시요.
이것은 그 나그네가 성부 하나님인 것이 아니라, 국어로 가장 가깝게 이해를 돕기 위해 표현하자면 일종의 "당신"처럼 3인칭 극존칭의 표현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드려도 명확한 이해는 불분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세 사람을 총칭하는 대표 단수는 국어에 없기 때문입니다..아주 간략하게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울 뿐이죠.
히브리서 13장 2절에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해석은 원어를 잘못 해석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천사들은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실행과 명령권을 위임받은 아주 특별한 천사들입니다. 후절에선 아브라함이 그들 중 한 분을 가리켜 "여호와"라고 표현하죠. 앞절에서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하나님의 현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14절: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귀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21:1 권고하셨고(파카드 - 방문하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다시 방문하다로 해석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직접 다시 방문하셔야 말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서가 오류일까요?
권고하다는 특별한 인물에 대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혹은 호의의 행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50:24 ; 룻 1:6 ; 삼상 2:21) 또 다른 뜻을 알고나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죠..
이것은 문자적으로 다시 방문하신 것이 아니라 사라를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이 귀절은 뒷 부분의 "행하셨으므로(역사하심)로" 연결되구요.
또 하나..
창세기 18장 21절, 18장 33절, 19장 1절을 보십시요.
왜 19장 1절에선 두 천사만 등장할까요..?
왜 18장21절에선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보고 알려하노라라고
말씀하셨는데..19장 1절에선 왜 달랑 두 천사만 나타날까요..? 한 분은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요?
33절에 "즉시 가시니"는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그가 어디로 가셨다는 말씀일까요?
성서가 오류일까요?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글이 모순투성이고, 엉뚱한 해석이 나옵니다. 화이터님은 이 귀절을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이 귀절은 한글성서로는 논리적으로 엉성하기 그지없고, 사실상 수많은 모순점들이 존재하는 난해구절이 되어 버려죠. 이 부분은 갈대아역(Chaldee)을 참고하면 명확한 뜻이 나옵니다.
다시 18장 1절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한국어 번역) 이해하는 것은 엄청난 한계가 뒤따르죠.. 이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그 문화의 언어적 특수성을 이해하셔야만 그 대화와 표현기법, 문체를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장군이 아닌 왕의 친서를 위임받은 특수한 상황과 조건의 왕의
역사와 동등한 권위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왕의 명령과의 만남입니다. 이러한 권한 위임과 행사는 계시록에도 등장하죠.
즉 아브라함은 이후 서서히 그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17, 22절) 아직은 그들을 단순한 나그네로 알고(3절) 일반적 차원에서 그 문화의 존칭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
이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해서 알려드리죠..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의 목소리를 들으셨으며, 그의 친절한 대접과 후한 봉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이신 하나님께서(요4:24)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나타나셔서 말하고, 듣고, 먹는 육체적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 에덴에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스스럼없이 나타나셔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으나 인간 범죄이후 모습을 나타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구속사에 필요한 특벽 계시를 전달하실 때 만큼은 여러 형상으로 인간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신의 현현(Theophany)이라 합니다. 이 현현은 대개 지진, 뇌우, 폭풍 같은 자연 현상을 통해서나(15;17; 출3:2; 욥38:1; 시 78:14절), 그룹들 사이에서(시 80:1;99:1), 아니면 천사를 통해서 실현 되었죠.(단 8:13; 슥1:17).
특히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백성을 돌보고 계심을 알리셨습니다.(26:2;32:24).
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은 구약에서 삼위 중 제 2위인 '여호와의 사자'(16:13;출 23:20-23)로 등장하며,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으로 현현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현현의 최고조라고도 표현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로 인해 희미해진 영성을 가진 인간에게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시고 교제하시며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은총을 배푸셨습니다.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세 나그네의 현현이 육신을 입은 존재인지..특별한 대언과 사명을 그대로 전달하는 특별한 완전체의 모습(천사)인지..그 실존이 누구인지..원어성서의 귀절 전체를 보시고 위에서 나열한 성구들에서 등장하는 귀절들과 비교해 보십시요.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신지 좀 더 자세하게 아시게 되실 겁니다. 해석은 곧 동격이 됩니다만..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분명히 다른것을 잘못 이해하면 더 큰 잘못된 해석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에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이터님의 주장처럼 아브라함이 본체 여호와를 부지중에 대접하였다면(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히브리서 13장 2절은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여호와와 천사 둘을 대접하였다라고 나와야 앞 뒤가 맞게 되는 것입니다.
--------------------------------------------------------------------------------
눅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마지막 심판 때에 오셔서 다시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 버린바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되므로 맞지 않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
눅17:25의 먼저 고난을 받음은 예수의 십자가 형벌을 의미합니다.
눅17:22에서 25절은 예수 재림시의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귀절은 예수께서 부활의 영광(십자가 달리신 이후 사흘만에 부활하심)에 이르기 전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고난과 배척을 받기 전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제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죠.
예수께서는 종종 자신의 고난과 영광을 연결시켜 말씀하셨습니다.(9:22,44절), 또한 이는 예수가 고난과 배척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로서 또다시 도래하리라고 하는 사실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 말씀은 종말에 앞서 있게 될 믿는 자들의 수난을 예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여기서 이 세대에게~~란 (리벨트(Liefeld)에 의하면 이 세대란 말은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으로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9:41), 악한 세대(11:29)라고 부른 동시대의 유대인들을 1차적으로 가리킴니다.
한 편 이 세대가 예수 처형의 세대만을 나타내는 연대기적 표현이 아니고 예수를 거부, 배척하는 모든 세대들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난하죠.
"마지막 심판 때에 오셔서 다시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 버린바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되므로 맞지 않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화이터님이 성서를 이상하게 이해하신 것입니다.
--------------------------------------------------------------------------------
다른 부분에 대해선(삼위일체론에 대한 제 글을 "다른 내용도 첨가 될 수 있다는 전제"로의 이해하셨다는 것은, 화이터님께선 사실상 삼위일체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시거나,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선 코멘트를 달 시간도 없네요..
"계속해서 초림당시의 유대인의 역할을 하고 계시고 있군요"
라는 말은 곧 제가 안상홍님을 부정함=초대교회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부인함=초림 예수와 동격인 안상홍님을 핍박(유대인의 역할)하고 있다는 심각한 논리적 비약을 하시고 계십니다.
초림 예수 당시 유대인들의 역할은 예수의 핍박이었습니다. 핍박이란 원어를 풀이해 드릴까요? 그 핍박이 안상홍님에게 적용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초림당시 유대인들처럼 안상홍님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안상홍님이 성령이다라는 성서적 증거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것입니다.
이건 방어적 기질의 모순적 답변일 뿐 논리성이 전혀 없습니다.
건강하십시요.
비씨파크 주식회사, 대표이사 : 박병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박병철
사업자등록번호 : 114-86-19888 |
본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73길, 42, 1307호
전자우편 : master@bcpark.net |
(전화전 이용문의 게시판 필수)
전화: 02-534-982구(09:00~18:00) |
팩스: 02-535-155구 |
긴급: 010-9774-988삼
ㆍ저작권안내 : 비씨파크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에 보호를 받습니다. 단, 회원들이 작성한 게시물의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비씨파크에 게재된 게시물은 비씨파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게시, 판매, 대여 또는 상업적 이용시 손해배상의 책임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ㆍ쇼핑몰안내 : 비씨파크는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상품 주문, 배송 및 환불의 의무와 책임은 각 판매 업체에 있습니다.
Copyright ⓒ 2000-2026 BCPARK Inc.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