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계2:17절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터인데
그 돌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사람이 없느니라.
하셨으니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새이름으로 오신 분이 바로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만 간주를 하거나
성령은 하나님의 은사로서만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성령에대해서 오순절 성령으로 오시는 것으로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일부 성령을 주셔서 성취시킨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의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초림의 경우를 통해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여호와하나님께서 여호와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실때
어떻게 오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에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신으로 역사를 하셨습니다.
출35:31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위에 강림하시리니...
여호와의 신은 성령이시다.(눅4:16,사61:1절 비교)
신약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있습니다.
고전12:4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가지나 직임은 같고또 역사는 여러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지식의 말씀을 ,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일은 같은 한 성령으로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의신 곧 성령으로 능력을 주시고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능력의 성령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다고 예언하셨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누가 오시는지 살펴보면...
시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예언성취를 보면
마21:9...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주의이름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요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계2:17절에 예수님의 새이름으로 오신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이다.
히9:28절에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예수님이 되시고
그내용이 첫번째가 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그리스도가 되시고
두번째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시대 예수님의 새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영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새이름의 안상홍님을 반드시 깨달을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님께서 스스로 성령이라고 해도 ‘감추었던 만나’를 제시하지 못하므로
거짓성령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날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째날을 말하는 것이니 역세를 가지고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 일곱째날이 역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본인은 아직까지 잘 모르겠군요.
님께서 한번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
위임행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창18 장을 읽어보면 님께서 잘못 적용한 내용이 금방 밝혀지게 됩니다.
뒤에가서는 그들중에 ‘여호와’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약속받다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모습이 육체인가 아닌가를 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모습으로 얼마든지 오실 수가 있으며 육체를 가지고 가시기도 하고 이땅에 두고 가실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모습을 쓰고 오셨지만
물위를 걸어다니시기도 하셨다는 것이지요
[눅17장25절의 먼저 고난을 받음은 예수의 십자가 형벌을 의미합니다.
눅17장22절에서 25절은 예수 재림시의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귀절은 예수께서 부활의 영광(십자가 달리신 이후 사흘만에 부활하심)에 이르기 전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이는 성경의 내용을 아예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7장25절의 “그”는 누가복음21장 8절에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며
때가 가까웠다 하겠으나 ...
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는 같은 내용에 대해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끝의 징조로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니
주의 임하심이니 “십자가의 형벌”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