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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이라...성서에서 말하는 날의 의미..

 

I . 유월절 날짜

1 . 출애굽기 12장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12:5-11)

설명) 히브리어에서 사용된 단어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었다.

이곳에 “해질 때”로 번역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저녁”으로 번역되는 “에레브”(ברע)를 사용하지 않고 “사이”(between)를 뜻하는 “벤”(ןיבּ)과 정관사 “하”(ה)와 “저녁”을 뜻하는 “에레브”(ברע)의 쌍수(dual)인 “아르바임”(םיבּרע)1) 합성어인 “벤-하아르바임”(םיבּרעה ןיבּ)으로서 문자적으로는 “(두) 저녁들 사이”(between the (two) evenings)의 뜻이 있으며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2)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인 상번제에서 “저녁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사용되었다.3)

그런데 저녁제사 드리는 시간은 그들도 오후 3시임을 인정한다. 즉 “저녁”이라는 말이 일몰 후를 지칭하지 않음을 그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유월절양을 잡는 시간과 먹는 시간의 때는 구분하였다.

“해질때”(벤-하아르바임): 해가 지기 전인 오후 3시부터 일몰까지의 사이

“밤”(라엘라, הליל): 일몰 후인 밤을 지칭할 때에는 “저녁”이 아니라 “밤”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다른 곳에 “저녁”으로 번역되는 “에레브”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 신약성경의 헬라어도 일몰 전의 오후를 의미할 때에는 “옵시아스”(οψιας)를 사용하였고, 밤을 의미하는 단어는 “눜스”(νυξ)를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저물었을 때”로 번역된 대부분의 단어가 일몰 후가 아니라 일몰 전의 때를 의미하고 있다. 그들이 일몰설에 모순된다고 주장하는 성경절들은 원문을 제대로 구분하면 모두 모순없이 설명되는 것들이다.

유월절 양을 잡는 때인 정월 14일 “해질 때”는 일몰 후가 아니라 일몰 전의 시간이다. 요셉푸스도 당시에 오후 3시 경에 양을 드리는 것이 관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대사. 14권 4.3).

양을 잡는 시점은 14일이지만 무교병과 함께 고기를 먹는 시점은 일몰 후의 밤이 된 15일이 된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에서 “이것이”는 “이 날이”가 아니다. 여기서는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음식이나 전체적인 규례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히브리어 사전에도 이 “유월절”(ꖚ꘎꘵페사흐)이라는 단어가 “유월절”, “유월절 제사”, “유월절 희생”의 뜻이 있다고 한다. 히브리어 성경의 동일한 원문이 그렇게 번역되었다. 신약의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로 기록된 것도 원문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 아니고 “우리의 유월절”이라고만 되어있고 “양”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그 의미는 “유월절 양”이 옳다. 출애굽기 12장 11절에서 여호와의 유월절로 칭한 것은 “이 날은”이 아니고 “이것은”이라고 되어있다. 유월절 음식을 의미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규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을 잡는 시점은 무시한채 음식을 먹는 밤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는 없다.

유월절은 양의 희생으로 시작된다. 양의 희생이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민수기 33장 3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때가 “유월절 다음 날”이며, 정월 15일이라고 하였다.

“그들이 정월 십오일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였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민33:3)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12:37-42).

구약성경에는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날짜를 기념하도록 하였다. 출애굽 날짜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기념일임과 동시에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될 그리스도의 희생을 미리 예시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 날짜에 희생되지 않으면 성경대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유월절 희생의 성취가 되지만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사건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만찬을 제정하셨다. “날”을 통하여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식”을 통하여 기념토록 한 것이다.

언약의 표인 할례는 난지 8일만에 행하도록 하였으나 신약에서는 침례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그들도 유월절 고기는 할례받은 사람만이 먹을 수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할례인 침례(골2:11-12)를 받은 사람만이 성만찬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성만찬을 1월 14일에만 행한다면 침례도 난지 8일만에 받아야 할 것이다. 십자가 이후로 그리스도의 희생은 날짜가 아니라 성만찬 예식으로 기념한다. 정기적인 날짜를 기념하는 것은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이며 영원한 의의 표준인 십계명에 포함된 안식일 뿐이다. 경배를 받으실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심을 확인하는 표징으로 두신 날이다. 날 자체가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하신 분의 권위 때문에 그 날은 거룩한 날이다. “거룩”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구별”해 놓았다는 의미이다. 특정한 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룩이란 의미 자체가 구별이다. 참고로 초대교인들은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서로에게 권면하며,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2 . 사도행전 12장 4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행12:3-6).


설명) “무교절일”을 “한글킹제임스”와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무교절 기간”으로 번역하였다. 무교절은 유월절 양을 잡음으로 시작되므로 유월절을 포함하여 일컫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상홍증인회에서는 유월절은 14일 뿐이며 “무교절일”은 7일간에 포함된 것으로 주장한다. 그들은 베드로가 잡힌 때를 14일 해가 진 후인 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밤에 유월절을 지킨 후에 해가 뜬 후에 끌어내려고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분하여 일컫기도 하였으나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하여 일컫기도 하였다. 유대백과사전에도 유대인들은 무교절의 절기 안식일을 “유월절 안식일”이라고 하였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눅22:1).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눅22:7).

베드로가 잡힌 때는 유월절 기간(=무교절 기간)이었고, 백성 앞에 끌어내려고 한 때는 “유월절 기간”의 후를 의미하였다. 또, 유월절을 14일만이라고 치더라도 “유월절 후”라는 표현은 아무런 모순이 없다.


II . 부활한 시점

1 . 마태복음 28장 1절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마28:1-7)


설명) 그들은 일출설을 주장하기 위해서 “첫날이 되려는” 문구에 유의하여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고 해석하고서는 부활의 시점을 말할 때에는 일출 후라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무덤을 보려고 왔던 때는 해가 뜨기 전이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였다.

 

그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집을 떠날 때에는 해가 뜨기 전이었고, 무덤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해가 떳을 때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이미 예수님이 부활한 후였기 때문에 해가 뜬 후에 부활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2 . 마가복음 16장 2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막16:1-7)


설명) 그들은 이곳을 근거로 예수님이 “매우 일찍이 해돋은 때”에 부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부활한 후였지 부활한 시점이 아니다. 더구나 “안식일이 지나매”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아침에 무덤으로 가지고 갔다면 향품을 사다 두었던 때는 언제인가?

그들의 주장대로 일출설로 본다면 해뜬 후에 사다 두었다는 말이 된다. 집에서 출발한 때가 해뜨기 전이라는 그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것이다.

일몰설로 날을 구분할 때에만 정확하게 해석이 된다. 어떤 여인은 금요일 해가 지기 전에 향품을 사다 두었고, 어떤 여인은 안식일이 끝난 후인 토요일 해가 진 후에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일요일 새벽 일찍이 무덤을 향하여 갔다. 또는 안식일 해가 지기 전에 사다 두었다가 토요일 해가 진 후에 추가로 구입했다가 일요일 새벽에 일찍 무덤에 간 것이다.


3 . 누가복음 24장 2절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눅23:55-24:7)


설명) 그들은 예수님의 장례식이 밤새도록 진행되었고, 장례를 마쳤을 때는 토요일 해가 뜨려는 시점이라고 주장하였다(눅23:56 “거의 되었더라”의 원어 참조). 그런데 이곳의 본문은 여인들이 장례 마친 것을 보고나서 돌아가 향품을 예비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첫날 새벽에 무덤에 가서 보니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였다.


4 . 요한복음 20장 1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20:1-17)


설명)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을 때에는 아직 어두울 때였다. 그런데 그가 갔을 때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고 없었다. 마리아는 천사도 만나지 못하고 빈 무덤만 확인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러 갔다. 알리러 간 사이에 다른 여인들이 도착하였고, 천사들이 그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고 그 여인들은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무서워 도망치듯 무덤을 떠났다.

그 여인들이 간 사이에 베드로와 요한과 마리아가 다시 무덤에 도착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세마포가 개켜져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떠났다. 두 제자가 떠나자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 시체를 훔쳐간 줄 알고 무덤 속을 구푸리고 보면서 울었다. 그 때 뒤에서 예수님이 불렀고, 너무 기뻐서 붙잡으려고 할 때에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 에수님은 아버지께 올라가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하늘로 가셨고,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전하러 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20:17)

예수님은 하늘에 다녀오신 후에 먼저 도망치듯 떠나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여인들은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8-9)

즉, 맨 처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을 때, 아직 어두울 때에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였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함께 무덤에 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 방식을 보면 전혀 모순이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기록한 것을 보면 닭이 2번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막14:30,72)도 있고, 단순히 닭이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마26:34,75, 눅22:34,61, 요13:38)도 있다. 두 번 울기 전에 3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이 정확한 것이었고, 다른 기록에서는 몇번이라는 개념은 생략하였던 것이다.

마태는 여인들이 무덤에 간 것을 기록한 것이지 “함께” 간 것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즉, 막달라 마리아도 무덤에 갔고 다른 마리아도 간 것을 기록한 것이다.

마가복음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장 먼저 보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

마리아가 첫 번 째 무덤에 갔을 때인 어두울 때에 이미 예수님은 부활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해가 뜨기 전에 부활한 것이 분명한 이상 그들의 일출설은 완전히 허구임이 증명되었다. 죽으시고 장사된지 3일만에 부활했다는 성경의 분명한 말씀이 일출설로 보면 아무리 봐주어도 3일이 되지 못한다.



A . 십자가 달리신 날

I . 최후의 만찬, 정월 14일인가 15일인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드신 날이 14일 해가 진 후인 밤(일몰설로 15일이 됨)인지,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14일인지의 논쟁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만찬을 드시고 성만찬을 제정한 날이 정월 14일 해가 진 후인 밤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날 그 시간에 맞추어서 성만찬을 행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만 성만찬의 효력이 있으며 그것을 벗어나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요한복음을 보면 오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오후 3시에 운명하신 그 날은 유월절인 14일인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공관복음을 보면 14일 해가 진 후에 성만찬을 거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두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요한은 혼자이고, 마태와 마가와 누가, 3사람이 기록한 것을 옳다고 하면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맞추기 위해서 사실이 아닌 것을 기록하였다고 하였다. 그 예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과 발에 부은 것을 제시히면서 분명히 한 곳은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마26:7).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본인은 그들에게 “머리에도 붓고 발에도 부었다면 모순된 기록이냐?”고 반문하였다. 요한복음은 틀렸다는 주장은 그들의 목사와 토론하면서 직접 확인한 것이다. 몇번이나 다짐을 받았으며 증인도 있다. 성경을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한번만 기록된 것은 모두 믿지 못할 것이 될 것이다. 참고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3년 반이 되는 것도 요한복음 없이 공관복음만으로는 알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요한복음을 본 후에 공관복음을 살펴보기로 한다.


1 . 요한복음에 기록된 날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요13:26-29)

설명)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신 말씀을 제자들은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고 하는것으로도 생각하였다. 아직 유월절 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18:28)

예수님은 만찬을 드신 후에 넘겨지셨다. 밤이 지나고 새벽에 유대인들은 아직 “유월절 잔치”4)를 먹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안상홍증인회 사람들은 유월절을 먹는 시간의 자정을 지나면 효력이 없다고 하였는 바 이들이 아직 유월절을 먹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의 만찬은 13일 해가진 후인 밤(일몰설로 보면 이미 14일이 되었음)에 있었던 것이다. 일몰설로 볼 때는 정월 14일 밤에 만찬을 드셨고, 같은 날 낮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5)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요18:38-40)

빌라도가 유월절에 한 사람을 풀어주는 규례를 통하여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썼던 이 아침은 유월절이 지난 때가 아니라 유월절이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19:14)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은 때를 말하는 시간이다. “유월절의 예비일”이란 양을 14일까지 예비하는 날로서 14일은 예비일이 됨과 동시에 양이 희생되는 날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유월절 주간 중에 있는 예비일(금요일)이라고도 한다. 유월절의 범위를 무교절을 포함한 8일간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러나 안상홍증인회 사람들은 유월절은 한 날뿐이므로 이것마저도 거부한다. 그들의 주장은 어느 것으로 보나 성경을 조화시킬 수 없다.

제6시는 유대인의 시간으로 환산하면6) 정오가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3시(현대시간 09:00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막15:25), 제9시(현대시간 15:00시)에 운명하셨다(마27:45-46).

 

그런데 요한은 재판받는 시각을 6시라고 하였다. 현대시간으로 환산하여 정오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된다. 혹자는 요한이 로마식으로 기록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요한복음의 다른 곳도 모두 유대식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명분이 약하다. 이곳에 사용된 “제 육시”란 낮이 12시(간)이기 때문에 12시를 낮으로 표현한 것처럼 “오전”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다.7) 즉, 재판석에 앉은 때가 오전임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낮을 의미하면서 “열두 시”라고 표현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요11:9)

어떤 학자들은 제육시였다는 것을 제육시로 향하고 있었다고 고쳐서 이해한다. 그렇게 보면 오전이라는 뜻과 동일한 표현이 된다.


2 . 마태복음에 기록된 날짜

설명) 공관복음에 기록된 날짜는 얼핏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 날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과 일치되게 해석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①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실 것을 말씀하심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마26:1-2).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실 것을 말씀하셨다. 자신의 죽음이 실수로 된 것이 아니라 대속제물로 예정된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② 종교 지도자들은 그 날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마26:3-5).

예수님은 유월절 그 날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은 그 날이 아니라 다른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③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미리 그것을 증거하셨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26:6-13).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유월절 엿새 전(요12:1-8)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가룟 유다가 선동하여(요12:4 참조) 다른 제자들도 마리아를 비방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변호하셨고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④ 그 일이 있은 후로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고 기회를 찾았다.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마26:14-16).

⑤ 무교절의 첫날에 넘겨주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마26:17).

우리가 가진 성경은 원래 장절의 구분이 없었다(부록의 사진참조).

초기 사본에는 단어의 구분(띄어쓰기)도 없이 붙여서 기록되었다. 성경이 각 장으로 구분된 것은 AD 1228년 스데반 랭톤(Stephen Langton)에 의해서였다. 그 후 성경은 다시 각 절로 나누어졌는데, 구약성경은 1448년에 나단(R. Nathan)에 의해, 그리고 신약성경은 1551년에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에 의해 각 절로 구분되어졌다. 장과 절로 구분된 최초의 성경은 1560년에 제네바에서 출판된 제네바 성경이었다.8)

마태복음은 “무교절의 첫날에”을 17절에 포함시켰으나 16절에 포함시키면 “무교절의 첫날에”가 유월절 만찬을 드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이 넘겨지신 날이 된다. 그렇게 되면 16절은 다음과 같이 된다.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았고 무교절의 첫날에 (넘겨주었다)”(마26:16).

즉,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던 유다는 마침내 무교절의 첫날에 예수님을 넘겨주었던 것이다. 헬라어나 히브리어 성경 본문은 반복된 말이 나올 때에는 생략되는 것이 많다. 이곳의 “넘겨주었다”가 생략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로 하였기 때문이다. 헬라어로는 더욱 그 가능성이 많다. “넘겨 주었다”는 한 단어가 된다. 헬라어는 16절 끝의 단어가 “넘겨 줄”로 번역된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준비하도록 하셨고 제자들이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17절은 “제자들이...”로 새로이 시작하는 단락으로 처리된다.


3 . 마가복음에 기록된 날짜

설명) 마태복음과 동일한 형태이다.

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명절(유월절과 무교절)에는 피하고자 하였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막14:1-2).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은 유월절이 아니라 다른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②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그것을 증거하셨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14:3-9).

유월절 엿새 전(요12:1-8)에 일어난 이 사건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③ 그 일이 있은 후로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고 기회를 찾았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막14:10-11).

④ 무교절의 첫날에 기회가 왔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막14:12).

이곳도 마태복음과 동일한 형태이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잡는 날에”를 12절에 포함시켰으나 11절에 포함시키면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잡는 날에” 넘겨준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10-11절은 다음과 같이 된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았고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잡는 날에 (넘겨주었다)(막14:10-11).

마태복음과 너무나 같은 형태이다.


4 . 누가복음에 기록된 날짜

설명)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동일한 형태이다.

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명절이므로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난처하였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22:1-2).

②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가 있었는데 유다였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눅22:3-5).

유다의 제의는 지도자들의 계획에 안성마춤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다는 무리가 없을 때에 몰래 넘겨주려고 하였다.

③ 유다는 기회를 찾았다.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눅22:6-7).

유다가 넘겨줄 기회를 찾았는데 그 기회가 왔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에서 “이른지라”는 기교를 부린 번역이며 원문으로는 단순히 “이르렀다”(왔다)이다. 유다가 생각하는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④ 다시 문장이 구분되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예비케 하셨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눅22:8).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유월절 양을 먹는 것보다 하루 앞당겨서 만찬을 드신 것이다.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5:7)으로 희생이 되시므로 그 희생이 있기 전에 드신 것이다. 날짜로는 일몰설에 따라서 유월절 날짜인 14일에 드신 것이다. 오늘날 시간으로는 13일의 해가 진 후인 밤이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눅22:14-16).

예수님은 “유월절”을 자신의 희생으로 말씀하셨고, 그 희생의 결과로 하늘에서 구원받은 자들과 함게 만찬을 하실 것이다(사25:6-9). 하늘에서 유월절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시작된 구원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그분은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사53:11)이다.

 

유월절의 성취는 십자가 희생이며, 그 희생을 기념하는 것은 성만찬이다. 능력은 십자가의 피에 있는 것이며 만찬의 예식이나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식은 십자가의 희생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다.

 

안식일만이 창조 때부터 있었다(창2:1-3, 히4:3-4). 아담 이래로 아브라함이나 요셉까지 한결같이 유월절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갈바리를 믿음으로 바라보았으며 그들의 대속제물인 그리스도를 믿었다.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상징하는 출애굽 때에 십자가를 예표하는 유월절 예식을 명하셨다. 이 예식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을 믿는 믿음을 갖게하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5:7)으로 희생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유월절은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였고, 십자가 희생은 실체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성만찬 예식을 세우신 것이다. “날”이 아니라 “예식”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이다(고전11:26).

 

하나님의 창조는 날을 통해서 기념토록 하셨고, 십자가 희생은 예식을 통해서 기념토록 하셨다.

 



2005-10-11 11: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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