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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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7:13절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이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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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터님께서는 예전 글에 초림예수가 구름타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죠.
화이터님은 변화산사건과 물위를 걸은 사건을 예로 드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이 사건과 부활체가 동일한 것이냐고요..
그러자 화이터님께서는 다니엘서 7:13-14절의 예를 드셨습니다.
이젠 다니엘서가 초림의 예언으로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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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7:13-14절은 예수의 재림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초림부터 지금까지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도래, 하나님 나라의 임재라고 표현합니다. 또 다른 표현이 있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군요..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완성은 신약에선 요한 계시록입니다.
이 구절이 왜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본 절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죠. 14절이 이를 입증합니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 구절은 계시록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13절과 동떨어진 구절이 아니라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구절입니다.
즉 모든 백성이 하나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현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금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종교가 있는 줄 아십니까? 스페인의 국교가 뭔 줄 아시죠? 세계의 종교분포정도는 파악하고 있으시겠죠? 비종교인은 어떻게 하죠?
이것은 너무도 명확한 전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이상임에도 현실은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하나님 나라의 완성) 이전 종말론을 배워보시면 아시겠지만 기독인들이 격어야 할 범세계적이고 역사적인 환난과 죽임들이 무수하게 많이 있습니다.(그 주된 이유는 유일신사상이기도 합니다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종교의 타락이기도 합니다..)
희한하죠? 신약에 보면 무수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누가복음 9: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이밖에도 굉장히 많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00여개 이상의 구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임하였느니라“라는 구절을 완성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단7:13-14를 초림예수의 관점에서, 즉 이미 역사적으로 성취된 귀절로 이해하고 그 관점에서 성서를 보죠..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죽음도 있고, 병도 있고, 아픔도 있습니다. 지진도 나고 나라와 나라가 전쟁도 합니다. 유일신을 섬겨야하는데 종교는 엄청나게 다양하죠.. 더더욱 단7:14절처럼 모든 백성이 그분을 섬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7:13-14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해하셨다면 완벽한 오류에 빠지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대해서는 하나님나라로만 검색을 해 보십시오. 무수하게 많은 서적이 나옵니다.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도래했고,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이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 잘 나와 있으니까요..
핵심적 힌트를 드리자면 누가복음 9:2절의 앞부분 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연결지어 재림 예수가 구름타고 오실 것이므로 초림 예수도 구름타고 왔다라고 표현하거나, 이러한 표현이 무방하다는 해석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두루 뭉실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전 글에서 화이터님은 안상홍님이 성령이시고, 재림 예수라고 하셨죠. 그 재림의 사건과 다니엘서 7:14절의 하나님 나라가 초림예수의 사건으로 이해하셨다면 위에서 설명 드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 주실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제가 안상홍님이 재림예수임이 비성서적이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근거는 앞서 올린 양태론을 참고하십시오. (5762 부활한 예수가 다시 죽을 수 있다?? 양태론의 실체)
양태론이 진리라면(삼위일체론이 어렵다할지라도 이를 잘못해석하면, 즉 성부가 성자가 될 수 있고, 성자가 성령으로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라는 구절은 거짓이 되므로 오류가 됩니다.
아울러 삼위일체의 교통하심, 예수가 성부께 기도하심, 성부가 그 기도를 받으심 등과도 정면으로 대치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애매모호해 집니다.
자세한 것은 양태론을 참고하십시요.
다니엘7:13-14의 이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취된 사건, 성취될 사건, 나타난 사건, 또 앞으로 되어질 현상과 사건들은 명백하게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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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서를 근거로 제시할 때는 성서에 없는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이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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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9번 글의 화이터님과 제가 주고받은 말의 순서를 다시 돌이켜 보십시오.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댓글에는 글이 올라온 시간도 나온답니다.
순서
1.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2. 화이터님께서 답변하셨죠. 그 답변에 분명히 재림하실 때 구름타고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제가 다시 답했죠. 예수가 재림했다니요..그러면서 여러 가지 천년왕국설을 그 예로 들었고 화이터님은 짬뽕 답변을 하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4. 이에 화이터님께서 학설들을 비판하시면서 "그리고 초림예수님께서도 구름타고 오셨지요" 라고 답변하셨습니다.
5. 제가 답변했죠. 그 학자들은 단순한 학자들이 아닌 신자라고..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그나저나 예수가 초림시 구름타고 왔다구요?? -0-;;"
6.화이터님께서 말씀하셨죠.
"예수님도 초림시 구름타고 오셨는데요~~
하나님의 능력을 잘 모르시나보네요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쓰고 오셔서 육신을 두고 가실수도 있고
가지고 가실수도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부활체의 몸 이전에도 물위를 걸으시기도 하셨거든요"
그러면서 화이터님께서는 제가 나열한 학자들과 예수를 부인한 유대인들을 비유하셨고, 그들이 예수를 부인한 유대인과도 유사한 것처럼 설명하셨습니다.
7. 그리고 제가
"그러나 예수가 물 위를 걸은 사건, 변화산 사건의 예를 들어
예수가 구름타고 오셨다고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그건 재림 때의 모습이거든요. 어느 누구도 초림예수가 구름타고 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서에 없는 말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두고 가신 예를 성서에서 알려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화이터님께서 제시한 예수를 부인한 유대인들과 학자들의 비유가 적절치 못했음을 설명 드렸죠.
8. 화이터님은 다니엘서 7:13절의 예를 드시면서 그것을 초림 예수로 연결지으셨습니다.
아울러 화이터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죠.
"육신을 두고 가신 예는 없어서 어쩌죠.
성경에 예언이 그렇게만 되었더라도 그렇게 되었을 것인데요."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마지막으로 윗 글에 남긴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마지막으로 화이터님께..(번호:5766) )
그 핵심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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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을 두고 가신 예는 없어서 어쩌죠.
성경에 예언이 그렇게만 되었더라도 그렇게 되었을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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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하여..제가..
성서를 근거로 제시할 때는 성서에 없는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성서를 말할 때 왜 성서에 없는 얘기는 하지 말라는지 성서에 잘 나와 있죠.. 성서를 말할 때 성서에 없는 얘기를 하면 어떻게 되는 줄도 잘 아시겠네요..의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론 인위적으로 덧붙인 해석임을 증명하는 것(성경으로 봐야한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며)이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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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에 대한 해석차이는 위와 이전 글에서 설명드렸으므로 생략하고..)
위의 논제..
"그러므로 님께서 본인에게 성경에 없는 말을 "유도"하여 어떻게 해서든 "비난"해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를 다루어보죠..
"제가 성경에 없는 말을 유도하여 어떻게 해서든 비난해 보려고 했다 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시나요?"
우선 주고받은 대화의 말의 순서를 보십시요. 제가 질문하고 화이터님이 답하셨습니다. 앞뒤가 맞는 말씀을 하십시요. 이런 걸 가리켜 일반인들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표현한다죠..?
제가 유도했습니까? 유도는커녕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을 화이터님 스스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스스럼없이 하셨습니다. 제가 유도한 것이 아니라 화이터님 스스로 하셨다는 것은 대화의 내용들을 돌이켜보면 너무도 명백하죠. 그리고 이 부분을 제가 성서로 지적하자 말을 바꾸셨습니다.
유도라니요..제가 무슨 독심술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아울러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셨으면 합니다. 대안 없는 비판을 비난이라고 하며, 비난은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근거가 없는 예를 들어서 꾸미거나 책잡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제가 화이터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예를 들어 지적한 적 있습니까? 저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글을 보면 화이터님은 비난이란 표현을 자주 쓰시더군요..잘 분별해서 표현하십시오..
더더욱 전 대화의 끝에 많은 부분 나름대로 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1. 열정만큼이나 공부하십시오. 2. 견문을 넓히십시오. 3. 신앙인이 성서를 말할 땐 성서에 없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4.논리적으로 말씀하십시오. 등등이었습니다. 특별히 3번의 경우는 그 이유가 성서에 나와 있기 때문이었죠.
제가 화이터님을 비난할 목적이었다면 훈계하지도... 화이터님이 잘못 이해한 구절들을 풀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비난입니다.
제가 비난할 목적이었다면 욕 한 마디하고 아예 상종을 안 하지 뭐가 답답하다고 이리 토론을 벌일까요..
성서에 나온 판단하지 말라가 이 단어에 가까운 뜻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판단은 여러 가지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일례로
고전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복음 15: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로마서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기타 등등..신약에 등장하는 60여개 이상의 판단이라는 단어 뜻이 그 문맥과 원어적으로 상당히 다양합니다. 번역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분별, 비난, 비판 등 다양하게 번역해야만 합니다.
비판이란 뜻도 성서에 많이 등장하죠. 이 역시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 구절은 도무지 기독교인은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비판하다는 크리노(정죄하다, 심판하다, 고소하다)라는 의미로 뒤 구절 헤아리는(메트레오)과 짝은 이루는 일종의 격언구로서 자를 재다, 측량하다, 평가하다의 의미로 심판을 의미합니다.
건전한 비판은 하나님의 공의적 관점에 입각해야 하며, 긍휼과 관대, 사랑과 관심 애정에이 없는 비판은 자신의 완고함(자신만이 옳다는 - 자신이 측량하는 자와 같다 라는 생각)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가라는 것이죠.(요7:24; 갈1:8,9 ; 빌3:2)
이 용어는 법정용어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진 않았으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속에서 구별되게 살아가는...즉 하나님 나라(Kindom of God)에서의 생활의 규칙과 방법들(눅6:27-38절)을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눅6: 27-38)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8절의 헤아림(안티메트레데사타이) 역시 “측량하다” 라는 단어 (메트리오)의 합성어로서 다시 측정을 받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역시 법정 용어죠. 한 마디로 고발하지 말라는 겁니다. 결국엔 또 승소 패소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또 다시 고발당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종교의 명예회복은 커녕 사회적으로 웃음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크므로 유의하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비판보다는 좀 더 그 무게가 강한 단어죠. 세상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왜 바람직하지 못하고, 비성경적인지 힌트가 되셨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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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이 말은 합당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건전한 판단력을 가지는 것을 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성도는 참과 거짓 그리고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강력히 요청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치~~에 해당되는 헬라어 (크리네테) 역시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과 유사합니다만 조금 더 강하고,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당한 의견이나 건전한 판단력이 아니라 습관적인 비판 성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구든지 (합당한 생각을 가진 자이던지, 그렇지 않은 자이던지 상관하지 않고 무관하게) 상대를 찾아서, 그를 비판하고 잘못을 찾아내어 정죄하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격적으로 늘 남 욕을 잘 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되겠죠. 아울러 법대로 해`~~ 이거죠..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종교인들도 이렇게 자신의 신앙과 현실을 분리해서 이렇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사람들 아직도 많습니다.(기독교인들이라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화이터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제가 성경에 없는 말을 유도해서 어떻게 해서든 비난해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여기 (크리네테)적인 사람에 해당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더더욱 "그러므로"라는 부사는 그렇게 쉽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먼저 쓴 글이 논리적일 때 "그러므로"라는 연결어를 통해서, 뒤의 글(주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더욱 힘을 얻게 하려고 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앞글이 논리적이지도 않고, 입증하지 못하면서 “그러므로”를 사용하면 뒤 주장은 더욱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다양합니다. 다양한 정도가 아니라 한글개역만으론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지면과 시간상 뺍니다..공부 많이 해 보세요..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우시게 되실 테니까요..
저 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며, 적절하지도 않은 비유이지만 최소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 드리자면,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판단(비난)하지 않았으나, 책망하였습니다. 비난은 비성서적이나 건전한 비판은 성서적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자세죠.. 사람들의 지적이 비난이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런 분과는 대화가 되질 않습니다.
더더욱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설득력이 약하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비난한다면 무시하시고,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비판한다면 자신의 신념을 변증하십시오. 그것이 토론입니다.
잘 나가다가 근거도 없이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으로 몰아버리면 매우 곤란할 뿐만 아니라, 대화 자체가 안 됩니다.
아울러 예전에 말씀드린 "교회가 법적으로 명예훼손이나 고발, 누구를 후두래 패는 것(법조문 기초사실 참고)" 이 왜 비성서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인지는 화이터님께서도 성서를 많이 읽으실 테니, 신약에서 더 많은 해답을 직접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나옵니다. 작게나마 힌트하나는 위에서 드렸습니다.
사도바울의 단호한 대처란 이단에 대한 대처였습니다. 성서에 그가 이단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가르쳤는지도 역시 잘 나와 있죠. 문제는 행동방식이 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화이터님께서 사도바울을 예로 드신 그 적용이 성서적인 것인지..단호함이라는 표현 역시 어떨 때 사용해야 하는 것이며..무엇이 적합한 표현인지...성서에서 잘 찾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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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기독교인들만 오시는 곳이 아닙니다. 비기독교인 들께서 보실 때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종교의 차원을 떠나서 화이터님의 열심은 이해가 갑니다만. 결과적으로 욕을 더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안상홍님이 하나님이다” 라는 말을 더욱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화이터님의 글의 일관성이 없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해서 잔소리 합니다. 그것이 핍박이거나, 당연히 받아야할 고난이라던지 성서를 통한 유사한 해석을 유추해서 적용시킬까봐 지래 잔소리 하는 거니 이해하십시요.
전도를 어떻게 해야 지혜로운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이 섬긴다는 분을 덜 욕먹이는 것이며, 무엇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인지..초대교회 전도자들은 어떤 이들을 어떤 식으로 뽑았고, 어떻게 교육 받았는지..성서를 많이 읽으셨다니 그 열정만큼이나 잘 연구하시고, 분별하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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