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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기독교의 견해를 알고싶습니다.

 
대충 지금 현 시점의 인간들에겐 지구온난화로인한 기상이변이

인류생존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

성경에는 자연을 어떻게 어떻게 해라 했는지 알고 싶내요.

찾아 보려니 어디 나와있는지라도 알려주세요.

대충 어디어디 있으라 해서 생겻다는 정도만 알고있습니다.창세기.ㅡ;

2005-10-18 08:17:10
1452 번 읽음
  총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남성부 '05.10.18 10:04 AM 신고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구약에 인간 외에 것은 신은 뺴고 다 인간 맘대로 해도된다는 식으로 적혀있습니다.지금의 환경오염의 원인은 서구의 종교가 만든것이지요. 물론 그것때문에 산업화도 되었습니다만. ↓댓글에댓글
  2. 2. 닉네임 '05.10.18 1:44 PM 신고
    그렇지는 않구요..
    언제나 주장하는 것이지만..그것은 성서의 해석의 몰이해이긴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귀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환경에 대해서 성서가 어떻게 하라라고 말한 것을 시대적으로 분명하게 잘못 해석했던 예가 산업혁명이죠.

    생육과 번성이라는 말은 열매맺다라는 뜻과 번성이라라는 의미는 많다라는 의미보다 크고, 강한 상태.건강이라는 상태적의미가 강합니다.(스10:13)(강한(대하 11:21)도 동일한 원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뒷 구절에 나오는 충만이라는 말은 인구폭발로 또 잘못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은 1:22의 복을 주어(바라크) 연결되는 구절로(다른 단어들도 동일하게 연결해야만 함) 이것은 축복의 신적 기원 및 풍부함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 귀절은 또한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번성이란 단어와도 연결되는 단어로 꿈틀거리다, 풍부하다등의 열매적 결실과 생명의 약동을 의미합니다.

    전 생명는 모두 그 생명의 법칙(대표적인 것이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약육강식-이것을 또 한 때는 자본주의, 신자본주의에서 잘못 적용해서 강자가 약가를 정복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로 오해한 적도 있는데요..물론 이것은 진화론이 말하는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인간사회라는 이성을 지닌 존재에 대한 과도한 적용으로 빚은 역사적 과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자본주의의 많은 부분이 필요에 따라서는 이것을 적용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죠. )속에서 약동하고, 번성할 권리가 있는 것이죠. 이 영역에 인간의 오만이 끼어들어 자연계를 파괴하고, 필요이상으로 포획하고, 망가뜨림은 신의 뜻이 아닙니다.

    만일 모든 세계, 모든 나라가 이 뜻을 보다 명확하게 구별하고 그 뜻을 성취해 나갔다면 지금같이 잘못 해석하고 출발한 결과(첫 단추를 잘못 꾐)같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고 생각하네요. 지금은 어떤 식으로 해도 그 결과가 처음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봅니다.

    성서의 자연에 대한 정복과 다스림 또한 그 귀절을 연관지어서 잘 이해했어야 함에도 당시의 기계화 바람 - 물론 이것은 르네상스에서부터 이어져 온 신과 인간에 대한 관점이 둘로 나뉘어 졌고..(물론 그 원인은 그동안 카톨릭이 인간이 자연계시를 통해서도 신의 존재에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고,(물론 전인적타락으로 완성을 이룰 순 없다하더라도) 더 다다를 수 있음에도 자연계시의 영역을 특별계시의 영역과는 많은 부분 다른 해석을 하였고, 가치의 정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취급한 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현대로 올수록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이해한 것은 종교 역시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급기야 대표적인 무신론이나, 허무주의, 염세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의 대살육이나 1,2차 세계대전..핵무기사용등도 자연에 대한 정복의 의미를 마음대로, 혹은 파괴할 수도 있다로 이해하는데 일조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무분별한 개발이나, 화학무기도 마찬가지구요.이라크 침공이 신 정의를 실현한다는 부시정권의 망언도 상당히 아동틱한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몰이해는 지금 이순간에도 종교는 물론이고 전인류가 자행하고 있죠.

    산업혁명의 자연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도 종교 역시 제대로 된 해석을 내리지 못하거나, 상당부분에선 보조적 역할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흔히 정복이라고 말할 때 이것을 전쟁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영어 완전정복..이런 말을 할 때 영어를 파괴한다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복이란 단어(카바쉬)는 파괴나 마음대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구의 광대한 자원 개발과 유용한 이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에 창세기 9장과 연결되는 귀절입니다.

    그 귀절과 뒤에서 이어지는 다스리다라는 귀절을 이해하면 즉 신은 인간에게 자연을 많이 이해가고, 완전을 향해 나아가며. 잘 유지하고(다스리다) 보전하며 후대에 물려주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환경을 보존하며, 자연속에 감추어진 청정에너지를 자연에 피해가 돌아가지 않고, 결국 인간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악순환(일례, 농약이라던지..오존층 파괴등..)의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지금보다 더 연구하고, 무엇이 더 인간과 대자연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바람직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그런 의미에서의 개발) 다스림의 관점에서 청지기적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죠.


    성서가 다루는 예수의 재림 전 온 지구에 대 이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의 입장인가? 인간의 입장인가?로 놓고 볼 때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계시록은 상당부분 신의 입장에 대한 인간이해적 서술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결과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등등..)

    문제는 누구의 입장만이 올다고 말하기도 곤란하고,(역시 본질세계에 대해서는 입증테제자체가 어려운 것이므로)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로 돌리는 것도 아니며,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우며, 가장 원래의 상태에 가까운 것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신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인간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요즘은 개발이라는 단어가 갈아 엎어버리면 다 개발이 되는 희안한 세상이기도 합니다만..쩝 ↓댓글에댓글
    • ㄴ 1. 박목사 '05.11.20 6:12 PM 신고
      내가 하고 싶던 말을...
      다 해버리셨네요.
      박 목사
  3. 3. jtiger '05.10.19 8:46 PM 신고
    답변 감사합니다.. 이제 로마의 국교가 된게 궁금한데 그걸 알아봐야 겠군요.. 정치적 힘을 얻고자 국교로 했다고?? 하는 다큐?같은걸 봤는데 대충 정황이 그러하던데 자세히 알아봐야 겟내요 ↓댓글에댓글
  4. 4. 닉네임 '05.10.19 9:27 PM 신고
    jtiger..님께..
    제가 또 리플을 달면 보는 분에 따라서는 꼭 코멘트를 달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용기내어 역사학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사실 신학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학문은 관점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역사학에도 대표적으로, 인문주의적 관점과 친특정종교적관점, 반특정종교적관점들이 공존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원래 인문사회학이란 것이 좀 그러한 특성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을 극단적으로 나눌 때 , 민족주의적, 사대주의적, 사회주의적(이 표현이 맞던가? --ㅋ)등으로 나누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역사학에도 분명히 역사학자들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죠.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 요즘은 영상시대이다보니 그러한 다큐들도 많이 제작됩니다.

    대표적으로 인문주의적 관점과 반기독교적 관점에서 로마의 국교가 된 과정에 대해선 엇비슷하면서도 해석에 따라서는 좀 더 반기독교적 관점은 실랄하게 비판하고 결론은..뭐 대충 짐작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다루실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날의 다큐멘터리를 보시고 100% 있는 그대로 그것만이 사실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보다는. 전통적인 역사학자들(물론 그들중엔 반기독교적인 관점의 역사학자들도 꽤 많습니다.)에 유명한 분들의 서술서부터 보고 현대적 해석을 다시 보시는 것이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되네요..


    왜냐면 과거에는 이러한 생각을 했는데..현재는 현재의 관점에서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하는구나..같은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특정종교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신앙인이면서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종교학이라는 분야가 역사학이라는 분야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A라는 종교자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실 역사 속 많은 종교인들이 자행해 온 것들입니다만..이로 인해 특정 관점의 역사해석을 절대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순간 또 다른 역사해석에 도전받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말씀드렸습니다만..전 인간의 이성과 학문.신앙의 관점과 해석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점점 역사가 진보하듯 우리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는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입을 것입니다.

    결국 언젠가는 과거보다 더..현재 보다 더 발전한 우리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희망하는 사람이죠..그래서 무식한 제가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건강하십시요.. ↓댓글에댓글
  5. 5. jtiger '05.10.19 10:00 PM 신고
    감사합니다..
    네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온거 같았는데 찾아서 봐야 겠내요.. 부디 찾아야 할텐데 말이지요.ㅡ;; 대충 다큐가 많은분을 찾았습니다. 다보고 돌아오겠습니다.ㅎㅎ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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