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론에 대한 답변 드립니다.
제기하신 반론에 대한 답변에 앞서 혹여 제가 올린 글로
인하여 마음 상하신 게 있다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님도 그렇
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섬기려는 바람
으로 글을 올렸는데 님도 저도 부족한 인간이다 보니 서로 토론
중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님
도 그러실테지만 제 본심은 님처럼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려고 애
쓰는 분들을 교파를 초월하여 꼭 같은 형제자매로 믿고 있습니다.
이 점 알아주시고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전하기 위한 순전한 목적과 말씀을 사모하는 마
음으로 함께 말씀 나눌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부족한 제 소견으로는 말씀을 읽고 연구하실 때 안식일은
다른 9가지 계명과 동일한 십계명 중의 하나인 만큼 안식일을
다른 계명과 구별하여 생각지 마시길 바라며, 말씀을 대하실 때
십계명 특히 안식일만 따로 구분하셔서 더 이상 지킬 필요 없다
라는 의식을 갖고 읽으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저해요인이
될 수 있으니 그런 편견은 지양하시고 오로지 말씀만의 의미를
음미하시려고 노력한다면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오로지 말씀에 기초하여 함께 연구해 보십시다.
1. 창조의 안식일, 유대인의 안식일, 신명기, 에스겔서의 안식일
성경에서 안식일은 서로 다른게 아니라 언제나 한가지입니다.
창조때의 안식일과 십계명(출 20장)의 안식일이 서로 다른게 아니
며, 신명기와 에스겔외 다른 모든 구약과 신약의 안식일이 다른게
아니라 안식일은 언제나 안식일입니다. 어차피 출애굽기부터 구약
에 나오는 안식일은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지킨 안식일이니 동일합니다. 다만 창조시의
안식일과 유대인의 안식일이 어떻게 같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유대
인에게 준 안식일의 내용을 보면 이것이 창조시의 안식일과 같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Ye shall keep the sabbath therefore; for it is holy unto you:
every one that defileth it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for
whosoever doeth any work therein, that soul shall be cut off
from among his people. Six days may work be done; but in the
seventh is the sabbath of rest, holy to the LORD: whosoever
doeth any work in the sabbath day, he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영어성경 말씀도 덧붙여 보았습니다만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제칠일 안식일을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출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너희를 창조한 창조주이니 나에게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문구는 마지막때를 위한 기별인 요한 계시록에서도 반복됩니다.
계 14:6-7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
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
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이 말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을 믿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가 아닌 다른 신들과 종교를
섬기고 있습니까? 이러한 때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당연한 요구요 그분께 창조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이미 알려 주셨습니다. 출20: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 하나님의 안식일과 다른 절기(안식일)들과의 차이점
왜 다른 절기나 제사제도는 지키지 않는지 물으셨습니다. 님도
아시는대로 구약의 절기와 제사제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부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상징하던 양과, 소는
실체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께서 더이상 이 땅의 성소 제도는 의미가 없음
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 27:50-51)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들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를 들면 유월절
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 양처럼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오순절은 성령 강림으로 성취
되었습니다.
문제는 안식일이 이런 절기들과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는 이렇게 분명히 구별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에 절기들에 대한 규례가 나옵니다.
유월절 1월 14일
무교절 1월 15-21일, 15일과 21일은 성회로 모임
요제절 1월 16일
오순절(칠칠절) ? 요제절부터 50일 후에
나팔절 :- 7월 1일
대속죄일 : 7월 10일
장막절(초실절) : 7월 15-22일 15일과 22일은 성회로 모임
레 23:37절은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38절에 (레 23: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여호와
의 안식일 외에 안식일처럼 구별하여 지키는 때가 있으니 곧
위에 설명한 각 절기 날짜들인 것입니다. 이 날들은 안식일과
같이 성회로 모이는 날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단히 절기 안식일로 부릅니다. 쉽게 설명하면 제칠일 안식일
은 언제나 공휴일인 일요일과 같은 것이고 크리스마스나 개천절
이 비록 평일에 걸리더라도 공휴일로 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안식일로 구별된 매 칠일마다 오는 안식일과
절기때마다 찾아오는 절기 성일과는 분명히 구별된 것이었습니다.
모든 절기와 제사제도는 그리스도를 표상했기에 십자가 후에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제칠일 안식일, 즉 여호와의 안식일은
십자가로 없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의가 있으시다면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어떻게 성취되었고 폐하여졌는지를
반드시 성경에 기초하여 근거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안식일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마치
(창 2:1-3)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룬 다음에 주어진 것처럼,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죗된 이 세상에 예수님의 재림의 심판으로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다 이룰 때, 죄없는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창조주
되시고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삼위 하나님을 경배하는
안식일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로 없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3. 유대인의 안식일?
유대인에게 십계명과 안식일이 주어졌다고 십계명과 안식일은
우리와 상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 유대인에게 주어졌는가?
그것은 노아 홍수의 멸망 후 하나님의 전도 전략이 그 당시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축복하여 빛을 전함으로
전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던 것이었으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니까요. 이젠 십자가 후로, 우리 한국사람
같은 이방인들도 구원의 기별을 듣고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십계명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주어졌으니 우리는 안해도 된다면 십일금제도는
어떻습니까? 그 누구도 십일금제도가 신약에 와서 폐해졌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다른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십자가로, 믿음으로 율법이
완성되었으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도 된다고 하지 않습
니다. 우상숭배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 공경 안해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살인해도, 도적질 해도, 간음해도, 거짓
증언 해도, 이웃의 물건을 탐내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9개의 조항은 신약에서도 지켜야 되는데 유독
안식일은 안지켜도 된다는 논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 않습
니까?
그렇다면 유대인이 생기기 전에 아브라함이 계명을 지켰다는데
이 계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창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
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
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십계명이란 하나님 백성들 사이에
언제나 알려진 바인데 다만 그것이 출애굽기 20장에 와서야
성경에 기록되었을 뿐입니다. 십계명으로 부르든 계명으로 부르
든 율법으로 부르든 간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계명과 인간과의
관계의 사랑에 대한 계명은 언제나 동일하였습니다.
4. 요일 4장 5장의 사랑 계명
윗 글의 연장선인데요, 님께서는 십계명은 십자가로 효력이
끝난 옛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 외에
십계명은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요일2:7절 에서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라고 한 다음에 다시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라고 말합
니다. 여기서 새 계명이란 없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계명은 동일한 계명인데 그것을 잘못 해석
하고 이해, 적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해석 적용하는 것이지요.
마치 마 5-7장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시 적용해주셨지요.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동일한 계명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문자
그대로만 지켰던 바리세인들은 진짜 살인만 안하면 된다고 이해
하고 적용했죠.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미워하고 살인하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 조차도 살인하지 말지니라 라는 계명의
의미를 범하는 것이라는 그 당시에 비하면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계명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미 모세를 통해 구약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님의 말
대로라면 이 새 계명도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통해 주어진 것이
지 효력을 잃어버린 옛법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사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십계명을 두가지로
함축시킨 것이지 다른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
합니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로 말씀하십니다.
다른 신 있게 말고, 우상숭배 말고,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지
말고, 창조를 기념하는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구요(출 20:3-11)
그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먼저 너를 낳으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말라, 거짓
증거 말라, 탐하지 말라 라고 말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구체적인 표현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롬13:9 절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설명해 줍니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다섯번째 계명부터 10번째 계명은 네이웃 사랑이라는 말속에 다
포함된다구요. 같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1-4번째
계명도 하나님 사랑이라는 계명 가운데 다 포함된다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새 계명은 사실 옛날 모세시대 때부터 주어졌던
같은 계명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십계명을 간단히
두 가지 분류로 요약한 동일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5. 로마서의 율법과 믿음
님의 말씀처럼 한 구절만 똑 집어내어 보면 안되죠. 큰 문맥
상에서 봐야 합니다. 먼저 로마서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유대주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 1장에서는 인삿말이 끝난 후에 왜 이방인들이 심판을 받는
지를 설명합니다. 롬 2장에서는 이제 왜 유대인들이 실패했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실패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었습니다. 3장 전반부에서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3: 10) 라고 합니다.
사실 원래는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의로운 것인데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지 못하자 그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제는 그 의(율법 지키는 것)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것입니다.
(롬 3:21-22)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면서 계속 이제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3:28)고 말합니다.
그런데 님과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말하고 있는 의도가 율법으로 의롭게 안되고 믿음으로
되니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3:31절에 다음의 말로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리고 님께서도 아시는 대로 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믿었을 때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고 믿음으로 말미
암는 의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말씀이죠. 원래는 율법을 지켜야 진정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의인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의를 준비하셨
으니 예수님을 믿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다.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진 못한다.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해서 율법
을 효력이 다한 것처럼 폐지하거나 안지켜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 라는 뜻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믿고 있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글이 극단으로 치우쳐 자칫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말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오해될 것을 우려하여 계속해서 율법의 중요성도 또한 언급하고
있습니다.
(롬 6:1-2)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성경에서 죄란 무엇입니까?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
이라. 불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말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진정한 의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고 감사하는 우리는 더이상
죄가운데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해선 안 된다. 하나님
의 율법을 범해서는 안 된다 라는 뜻인 거죠.
한가지 예로, 간음하다 잡힌 요한복음 8장의 여인의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하시고
손가락으로 땅바닦에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도망가게 한
내용들을 적으십니다. 그런 후에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여자는 간음하지 말라고 한 7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용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후에 너는 나로
말미암아 새 계명 가운데 있으니 효력을 다한 옛법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말씀
하시길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섬기고, 우상숭배 안하고,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지 않고 창조와 구원의 기념인 안식일일
다 거룩히 지키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고, 거짓증거 하지 않고,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마 5-7장
에 더 깊은 해석과 적용을 한, 마음으로라도 그렇게 안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있다면요! 정말 행복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문안잠궜다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밤이 으슥한 곳을
혼자 다닌다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건을 살때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해 집니다. 교도소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십계명을 효력이 다한 옛법이라니요!
로마서에서 말하는 율법도 요한 일서의 계명과 같은 십계명
입니다. 먼저 7장 7절에 율법이 탐심하지 말라 하셨기에 탐심
하는 자신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즉 십계명의 10번째 계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리고 먼저 부분에 언급한 롬 13:9절은 5,6,7,10번째 계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그러니, 로마서나 요일서의 율법과 계명은 십계명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6. 신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지키라는 말은 지키지 않고 있을 때 쓰는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할때 안식일을 못지
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몇 번 안식일을 우상숭배와 병행해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선지자나 지도자들을
통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느 13:15-19)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7]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
*(렘 17:21-27) 『[2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23]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
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예수님도 지켰고, 제자들도 지켰고 사도 바울도 지켰습니다.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 13:42)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
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행 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 13: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행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마24:20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마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이 말씀을
하신 때로부터 무려 40년이 더 흐른 AD 70년에 이루어 졌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왜 예수님
께서 그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40년 후의 안식일에 도망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그의
제자들이 계속해서 지킬 안식일이기 때문이었죠.
1세기와 2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유대교는 원래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로부터
‘합법적인 종교’로 특별 예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지키고 구약성경도 보고 회당에서 예배도 드리도록 허락을 받았죠.
그런데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 하고 우상숭배를 강요하자 거기에
대한 유대인 1차, 2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한 때 로마의 한
군단이 전멸하는 수모를 받은 로마는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그 이후로 유대인은 로마인들의 증오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동일시 되어 미움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두 무리 다, 안식일을 지키고 성경을 보기 때문
이었죠. 그래서 2세기부터 안식일이 아닌 부활을 기념하는
일요일을 지키자는 변증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하여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궂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또 언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안식일이야 원래 지키고 있으니
지키라고 거듭 말하지 않은 것이지만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일요일을 지키고 있지 않았으니 신약 성경에서 지키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이야 말로 구약에도 신약에도 지키라는 말이
없는 사람이 만든 계명인 것입니다.
신약에 지키라고 해야지만 지켜야 한다면 처음에 언급한
십일조 제도는 무효입니까? 신약 성경에 어디 십일조를 내라고
명령한 곳이 있습니까?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구약에 이미 충분히
학개서를 비롯해 십일조 문제를 다뤘고 이미 알고 있기에 궂이
다시 언급 안한 것입니다. 논리를 아무렇게나 적용하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7.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예배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말에 대하여.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은 어떠한 문맥에는 맞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형식이 하나님의
거룩한 번경할 수 없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는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을(마 5:18) 하나님의 계명과 관계가 된다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말이 될 것입니다.
안식일은 형식이 아니라 계명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다른
9개의 변경되지 않을 계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기록하신 10계명 중의 하나이며 하나님 사랑의 계명
부분과 내 이웃 사랑의 부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위치에
있는 중요한, 우리가 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지 이유를
적어 놓은 아주아주 참으로 중요한 계명임을 기억하십시오.
물론 예배 형식, 순서, 찬미 등등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이
있다면, 요구하신 것이 있다면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자의 정신이 아니
겠습니까?
하나님은 예배의 “시간”에 대해 말하고 계십니다. 7일
요일 제도는 그 기원이 성서제도임은 분명하구요 그 달력도
없던 사람들에게 제 칠일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출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하신지, 만약 장소까지 요구하셨다면
우리가 상당히 힘들겁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시내산에 와서
지켜라 하셨으면 지금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 있는 각처에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레 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
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우리의 결혼 기념일을 지키란 말 없고, 생일 지키라는 말도
없고, 크리스마스 지키라는 말도 없고, 추수 감사절 지키라는
말도 성경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
히 지키라는 말씀은 분명히 있으며, 일요일을 지키는 개신교
성도들이 읽는 성경 표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8.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는 말에 대하여.
전통이라는 말의 정의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통
또는 인습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약속, 애티켓
이라고 할까요? 중요한 것은 전통이라고 할때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거죠. 막 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전통을 유전이라는 단어로 사용하십니다.
(막 7:6-9)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
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성경에
있지도 않은 여러 조항들을 만들어 지키고 지키도록 강요하였
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은
너무나 힘들고 짜증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킬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였기에 예배는 즐겁지 않았으며,
그것들을 다 지키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바리새인들을 우러러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바리세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유전,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는
구나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성경에 수 백번도 더 나오는데 안식일 계명이 유대인
의 전통이라니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구별하시고
인간을 위한 특별한 축복을 약속하신 거룩한 계명입니다.
물론 님께서 말씀하신 전통이 이런 것이 아니라 한 민족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같은 것임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안식일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
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손가락으로 쓰시어 요구하신 하나님의 계명임을
기억하십시오.
또 십일조 예가 나오네요. 예수님께서 목수일을 하셨다니
수입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 분이 십일조를 낸 것은 그저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한 것이니 우리가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일
까요?
유대인의 전통을 따랐다 할 때에는 예를 들어,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거나, 눅 2장41-42절에 있는 것처럼 모든 유대인
소년들처럼 열두살때 성년식을 마치고 절기에 참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단순히 유대인의 전통을 따랐다고 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어가 전통어라서 원래는 히브리어를 말해야 하는데
아람어로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는요, 아람어는 이미 기원 6세기
부터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로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에서 다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에스라서도 아람어로
쓰였구요 다니엘서의 몇부분도 아람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다
기원 3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고대 근동지방의 언어로 사용
되었습니다. 아람어로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가 기록되었습
니다. 아람어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해서 말씀하신것
보다는 그냥 그 당시 말이었습니다. 마치 부시 대통령이 영어로
말한다고 영어쓰는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게 아니란 말씀이죠.
그 당시 이미 히브리어는 소멸된 언어였고 바리새인들의 유전적
율법을 기록한 책만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전통인 것과
전통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겠고 상식인 것과 상식이
아닌 것도 구별 할 수 있어야 님도 저도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재림교회는 안식일을 비롯한 십계명과 물에 잠기는 침례 등
오직 아버지의 말씀대로 믿고 따르고 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는 교회이지만 구원은 오로지 믿음과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
는 진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여러차례 강조하였지만
믿음과 행위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
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
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아래의 성경말씀을 통하여 행함을 강조
하는 것은 본래 믿음과 행함은 떨어질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하
나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
만 아니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
니라
요한일서 3장 18절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
함으로 하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표현해야만 합니다.
가족간에도 연인간에도 사랑은 표현할 때 진정한 사랑일 수 있
는 것이 아닙니까. 널 사랑해, 정말 보고싶어 말만하면서 한 번
찾아오지도 않는 연인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것을 어찌 참다
운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은 아버지의 게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이미 본문에
도 수없이 강조하였습니다만 신약에서 말하는 계명 또한 구약의
십계명과 동일한 것입니다. 노파심에 다시 언급하자면,
요한은“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 후 곧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5,6)고
말합니다.
말씀을 차근차근 읽으셨다면 더 이상의 오해는 없을 줄 믿습
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값없이 주시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헝제자매님들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