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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살아남은 재림 청년

 


●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살아남은 재림교회 청년 ●


수즈키 시게하루 목사는 2차 대전 당시 2,500명의 청년이 생명을 던진
가미가제 특공대의 일원이었는데 그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가를 그의
제자인 김수호 목사로부터 들었고, 2004년 9월 28일과 10월 3일에 수즈키
시게하루 목사님을 직접 뵐 기회가 있어 목사님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이 글을 수정하여 올립니다.


수즈키 시게하루는 18세였던 1944년에 징집을 당해 가미가제 특공대원
으로 선발되었다.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에게 있어서 출격은 곧 죽음을 의미
했다. 안식일교인이었던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그리스도인 가정교육을 받
은 수즈키는 죽기 전에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항상 출격명령을 대기하고 있는 가미가제 특공대원들
사이에서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밤 동료 대원들이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출격하여
인생을 마감할 지 모르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군화를 벗어놓았다. 수즈키는
그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찾았다. 그들의 군화를 닦아주기로 한 것이었다.
동료들은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군화를 보고 의아해 했다.
스즈끼는 하루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밤마다 대원들의 군화를
닦으며 전우들의 안녕과 잠시 후에는 아들을 잃게 되는 그들의 부모님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드렸다. 매일 밤마다 그가 닦는 군화의 숫자는 점점 줄어
들었는데 한 번 출격한 동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가 출격명령을 받기 전에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끝난 지
2년째 되던 해에 침례를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문서전도를 하며 학교를
마쳤다. 그가 성경을 가르친 첫 번째 구도자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25년이 지났다. 2차 대전 참전자들을 조사하는 일이 마침내
모두 마감 되어 시효가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살아남은 특공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수즈키는 디귿자로
된 좌석의 맨 끝에 앉아있었다. 전쟁 당시에 출격명단을 작성했던 고바야시
대위는 한 사람씩 악수를 하며 부하들을 죽음의 장소로 내몰았던 일을 사과
했다. 마침내 수즈키 앞에 섰을 때 머리를 숙여 조용히 수즈키에게 말했다.


"어느 날 밤 화장실을 갔다오다가 자네가 전우들의 군화를 닦고 있는 것을
보았네. 이런 젊은이가 죽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출격자 명단을 작성
하면서 자네의 이름을 항상 뒤로 미루었었네."


수즈키는 전쟁 당시 부대원 5,000명 가운데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여자를
상대로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군인이었다. 마침내 그의 이야기가
알려져 1997년 하시모토 수상이 그를 불러들여 표창장을 수여하고 금시계와
은잔을 부상으로 주었다. 표창장은 아직도 보관하고, 은잔은 "자네는 술을
안마시니 이런 것이 필요하겠나"라고 말하는 친구가 가져갔고, 금시계는 제자들
가운데 부모님을 잘 섬기는 제자가 있어 그에게 주었다. 수즈키 목사님은 PMM
(Pioneer Missionary Movement) 개척선교사들을 위해 세 번이나 차량을 기증
하기도 하셨다.


스즈끼 시게하루 명예목사님은 청년시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에 소속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형편 이였으나, 너무나도 성실하고
진실한 청년을 죽게 하기가 아깝다고 생각한 상관에 의해 2500명 이상이 죽은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살아남아 후에 재림교회 목사가 되었다.


10세 때부터 동급생 중 일본에 노동자 자녀로 온 한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등(당시 한국인들이 이지매(왕따) 당하는 시절) 어려서부터 한국인을 좋아하셨다
고 합니다. 그 후에도 많은 재림교인들을 통하여 한국인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깊이 받으셨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김치를 드시며 김치를 드시면 피부가 한국 사람처럼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일 축구경기가 벌어져도 한국이 이겼으면
하고 내심 응원할 정도라고 하시네요.


은퇴 후 집을 팔아서 11년간 15회나 필리핀을 방문하여 필리핀교회를 도와
선교활동을 벌이시며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PMM운동이 시작된
다음부터는 여러 나라에서 선교하는 한국인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시고 지속적
인 후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손수 도시락을 싸다 주시기도 하시
고, 쌀이며 각종 부식을 여러 번 공급해 주셨고 직접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시는
강연도 해 주셨습니다.


오늘(2003년 12월 29일)은 오셔서 방문 때 신을 구두를 일본에서 선교활동 중
인 선교사 5명에게 선물하고 싶으시다며 1인당 1만엔(약 1,000달러)을 주셨습니
다. 일본인들은 방문자의 구두가 형편없으면 그 사람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본다
고 하시면서..


이상 스즈끼 목사님을 대표로 소개 드렸습니다. 개척선교를 통하여 한국과 일
본 성도님들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목사님 건강하세요.



2005-12-13 10:28:59
1531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도마령 '05.12.13 11:21 AM 신고
    ...
    좋은일 ?인가 ↓댓글에댓글
  2. 2. 똑똑한 바보 '05.12.13 4:00 PM 신고
    수즈키 시게하루 목사님. 정말 구원받은 자로서 그 받은 구원을 널리 전하시기 바랍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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