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이해찬 의원이 곰탕집을 차렸는데 망했어요. 옆 곰탕집은 부가가치세를 다 떼먹는데 이 의원은 포함시키니까 가격이 올라 경쟁이 안 된 거예요. 낚시를 가면 떡밥을 못 뿌리게 돼있는데 저쪽에서는 수도 없이 뿌립니다. 이쪽에서 어떻게 안 뿌리겠어요. 10분의1을 양비론으로 얘기하는데 10분의1로 줄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했는지 국민들은 모릅니다.”
불법 대선자금 ‘10분의1’로 홍역을 치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한 말이다. 서운함과 억울함, 수치심에 노 대통령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는 게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의 저자 이진 전 청와대 행정관의 기억이다.
또 지난 1992년 ‘주간조선’의 오보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언론의 불공정성을 뼈저리게 경험한 노 대통령은 수시로 “오보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항하고 적극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밝히라”고 지시한다. 특히 ‘조선일보’ ‘동아일보’와의 대립각은 ‘신념의 문제’로 해석된다.
“대통령 되기 전부터 검찰통제 불가능 생각”
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사업자가 회사자금 320억원을 유용하고 회계장부를 분식한데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윤창렬 굿모닝시티 대표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였다. 초반 영수 처리된 2억원을 선거자금으로 썼다고 주장해온 정 대표의 고백은 이후 점점 커졌고 ‘대선자금 200억’까지 거론됐다.
이때까지 노 대통령은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수석보좌관회의 도중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정확한 금액은 잘 모른다”며 “책임 없다는 소리를 할 수도 없고…”라고 답답함을 드러낸 정도. 다음날 문희상 비서실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권 모두 국민과 역사 앞에서 고해하는 형식으로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게 옳다”며 노 대통령의 의중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예전 같으면 청와대와 검찰이 사전조율을 통해 여당 대표를 ‘보호’할 상황이었지만 청와대는 일절 검찰조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정 대표는 배신감을 느꼈다. 저자는 당시 노 대통령의 입장을 두 가지로 꼽았다. △정치개혁을 위해 대선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는 것과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문 실장과 이해성 홍보수석과의 대화에서 “그 사람들(민주당)의 사고에서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가 보다”며 “검찰이 수사하는데 대통령이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으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검찰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대선자금 공개과정에서‘특유의 도덕적 결벽성’표출
6일이 지난 2003년 7월 21일 노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대선자금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히기로 하고, 홍보수석실과 회견문을 작성했다. 담당인 문재인 민정수석도 회견 당일 아침에야 보고를 받았을 정도였다. 문 수석은 불쾌했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사안에서 소위 ‘물 먹을 꼴’이 됐기 때문이다.
수석보좌관회의 직전 이 수석을 만난 문 수석은 “대통령께서 오늘 정치자금 관련 기자회견을 하신다는데 저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의도를 눈치 챈 이 수석이 즉답을 피하자 그는 “그럼 저는 오늘 참석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차갑게 물었다. 이 수석은 “그래도 배석해야 한다”며 “혹시라도 질문 중에 법률적 해석이 나갈 수 있다”고 만류했다.
이호철 민정비서관이 대기실에 들어오며 대화는 중단됐지만 문 수석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전에 알았다면 만류했을 문 수석은 사건의 진행과정을 법률가적 입장에서 관망하며 검찰수사의 진행에 따른 대응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정무적 시각에서 바라본 노 대통령은 정대철의 ‘공개압력’에 특유의 도덕적 결벽증을 보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각 당의 대선후보가 대선에 쓰인 정치자금과 활동자금을 모두 공개해야 하며 나아가 대선 잔여금이 얼마이며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밝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자는 “정대철파문은 권력이 더 이상 검찰에 압력을 가할 수 없는 시대에 와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한 번도 누구도 손을 대본 적이 없는 대선자금의 실체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불법자금 액수를 1/10로만 줄여도 진보”
“불법자금 정치가 반복되지 않도록 불법자금의 액수를 현재의 10분의1로 줄일 수만 있어도 국민을 위해서 진보하는 것입니다. 수사를 경제문제와 연결 짓는 것은 합리적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대통령이 명령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공정한 수사 말씀을 하시는데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노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감히 단언컨대 제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습니다.” 2003년 12월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4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나온 발언이다. 김원기 열린우리당 공동의장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저자는 “전체 대화의 흐름 속에서 10분의1 발언은 특정한 수치라기보다는 터무니없는 공세에 대한 돌발적 반응으로 여겨졌다”고 말했지만 회동이 끝난 뒤 그 발언은 야당과 언론에 의해 ‘10분의1이 넘느냐, 안 넘느냐’에 관심이 쏠리며 확대됐다. 참여정부의 도덕성에도 상처가 가해졌으며 일부 참모들은 자신들과 조율 없이 나온 노 대통령의 발언에 원망했다.
이에 답답해진 노 대통령은 “권투선수가 시합에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기는 법은 없다”며 “나와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한 대 맞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또 “10분의1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은 불공정수사라는 공세를 계속 퍼부었을 것”이라며 “나는 머리로 날아오는 돌을 손으로 막아 손을 다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군사독재 타협한 언론의 사회의제 주도 도저히 용납 안 돼”
참여정부가 지향하는 ‘창조적 파괴’는 언론과의 관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고 이는 사실상 노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대표사례다. 당연히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저자는 “예전 같으면 청와대 출입기자는 언론사의 꽃이자 권력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주요 언론매체 중심의 출입기자제를 폐지하고 등록만 하면 어떤 언론사라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들을 수 있도록 한 제도는 미국 백악관의 브리핑시스템을 모델로 한 것이다. 상주기자실은 없어지고 더 많은 기자들이 수용될 수 있도록 브리핑룸이 확대됐다. 저자는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던 언론사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로 기득권의 상실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비서관실 출입불허에 기자들은 심기가 불편했지만 노 대통령은 언론의 불공정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언론과 화해하라”는 일부 참모의 조언에 그는 “강자끼리 타협하면 부정부패, 특권층의 카르텔이 형성된다”며 “그 사회에서 약자는 짓밟히고 살 수밖에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불공정한 보도에 의해 발생하는 개인의 피해를 사회문제로 여긴 까닭이다.
사석에서는 더 강한 발언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정당성을 갖추지 않은 일부 언론이 한 사회의 진로를 주도하는 상황은 극복돼야 한다”고 말하고, “일제 때 타협하고 군사독재 때 타협하고, 그렇게 야합을 거듭해왔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의제를 좌지우지하고 진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며 이를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꼽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