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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 - 소설 한 권의 강력한 위력..

 
글쓴이의 입장: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아울러 기독교 안티도 아니다. 다만 한국기독교에 대해선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소설과 영화를 살펴본 후 또 한 번 느낀 점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옮겨볼까 한다.
 
 
댄브라운에 대한 개인적 생각:
 
댄 브라운 일단 그는 굉장히 난 사람이다... 시대적 천재작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탄다라고 해야 할까?
 
그의 소설 천사와 악마, 성혈과 성배, 다빈치 코드는 그 맥을 같이 한다.
과거 두개의 소설역시 재미있긴 하지만 다빈치 코드는 실로 재미있다.
그의 주특기는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 자극과 까뒤집기이다.
 
 
댄브라운의 고증자료를 까뒤집기:

이런 자극적인 책을 써 내려간 시대적으로 성공한 작가를 뒤집어보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다빈치코드를 파헤친다. 부터..다양한 다큐들도 보고..정말 그가 주장하는 것만이 진실일까?
같은 강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결론부터 내리자면 그의 다빈치 코드는 훌륭했지만..반카톨릭, 반중세적 메카니즘엔 성공했지만..그의 고고학적 증명 부분에선 상당부분이 빵점이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그림의 모순점들

일례로 다빈치코드에서 아주 잘 알려진 최후의 만찬 그림..
그 그림에 담긴 메시지는 너무도 유명하므로 자세한 설명은 빼겠다.
그런데 실지로 이러한 만찬상의 모양은 고고학적으론 거의 구라라는 것이다.


왜냐면 고대 근동의 유대인들의 식사문화는 네모난 식탁에 서로가 둘러서 반쯤 누운자세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ㄷ"자 모양의 식탁이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제자들의 자리 배치도는 순전히 다빈치의 상상에서 비롯한 창작물일 뿐 고고학적 근거 자료는 될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신앙관
 
이 부분에 대해서 밝혀진 것들은 많지 못하다. 아무튼 그가 당시대적으론 주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주류적 세계관을 지배하던 당시 카톨릭의 부패성 앞에서 자신만의 신앙관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의 신앙관의 문제점
 
문제는 무엇인가하면..그의 신앙관에 기인한 여러가지 근거들이 고고학적으로도 엉터리였지만. 당시 여러가지 신앙과 교파중 주로 "예수가 죽지 않았다. 프랑스로 망명했다" 같은 것들을 추종하던 비주류 세력의 신앙관과 유사하거나 이를 따른다는 것이다.(성혈과 성배 참조)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예수의 부활은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때문에 논외로 접어두고..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이것은 그리스도교도들에겐 신앙적 도전이겠으나, 학문적, 고고학적 부분에선 이 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사실이 아닌가?를 놓고 역사책을 다시 써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거짓된 역사에 속아 살아온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또는 예수의 시체를 수습해 갔다는 주장.
 
 1.예수에게 목을 축인 음료에 비밀이 있다는 설..
 
 
글로리아 모스(작가): 제자들은 예수의 시체를 훔쳐가고 싶었을 겁니다. 부활했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 였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시신이 사라진 데는 또 다른 수수께끼 같은 이유가 있을 법 합니다. 예수가 어쩌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 때까지도 살아 있다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는 얘기죠..
 
매우 모호하고, 재미있는 추론이지만..

 
이 이론은 학문적으론 부활론보다도 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십자가에서 달리기 전 입은 그런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이에 대하여 영국: 첼시식물원(Chelsea Physic Carde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에는 예수당시의 원시적 식물로 마취제로 쓰였던 식물이 있다.
바로 맨드레이크(Mandrake)라는 식물로, 이스라엘과 지중해에서만 자란다.
"그 뿌리엔 히아신(Hyacine)이라는 중요한 성분이 들어있어요.

오늘날에도 의학용으로 쓰이는 물질인데, 중추 신경계에 강력한 작용을 해서 마치 죽은 것처럼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해줍니다.

 
상당히 그럴싸하지 않은가??

AD 1세기, 로마군대와 함께 여행을 했던 의사 디오스코리데스(Discorsi)가 쓴 책에서는 맨드레이크가 예수 시절에도 사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마취제는 맨드레이크 용액을 스펀지에 적셔서 만들었다. 스펀지는 말렸다가 약품으로 소독을 한 뒤에 다시 사용했다. 스펀지에 그 용액을 묻혀서 사람의 코에다 대고 흡입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약품이 어떻게 예수에게 주어졌을까?

고대의 기록에는 약을 용해하는데 식초가 사용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쩌면 맨드레이크 용액을 식초에 숨겨서 예수에게 제공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하는 실질적 사건 보고들도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도 친구 세 명이 십자가 처형을 당해 군주에게 탄원을 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고 한다. 십자가에서 내려보니 그 중 한명이 살아있었고,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어처구니없는 기록이다..-_-(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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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과학적 반론과 신앙인들의 입장 :
 
과학적 반론:
하지만 설사 마취제가 예수에게 제공되었다고 해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생각이 큰 오류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1.그것은 거듭되었던 태형 속에서의 엄청난 외상과 예수가 흘린 엄청난 체액의 손실을 무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2.또한 로마군이 십자가 처형에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레드릭 법의학 박사)

"로마군은 십자가 처형에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네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십자가 처형만 하는 사람들이었죠. 이들이 하는 일 중에는 반드시 창으로 찔러 보아 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관행을 확인해주고 있다. 한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오늘날 현대과학과 역사학,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이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며, 부활문제는 신앙의 문제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신앙인들의 입장
이 부분에 대해서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20:25
[개역]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27
[개역]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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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입장
 
역사가 요세푸스
 
"역사적 예수" (historical Jesus)를 연구의 주제로 삼으면서도 예수를 단순한 인간이나 도덕적인 모범을 인간 예수에 대해서, 예님의 신성이나 기적들은 믿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대부분 이성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에서도 그 맥락은 같이 한다.

그러나 이들의 입을 막는 놀라운 역사가가 있으니 그가 요세푸스다.

그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요세푸스는 AD 37년〔가이우스(Gaius)가 로마 황제로 취임하던 해 〕에 태어나서 2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유대 역사가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유대교 였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유대교도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메시야에 대한 생각은 거의 원수에 가깝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예수를 못 박게 한 자들도 유대인들이었다.)



역사가 요세푸스와 그의 말말말: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며, 대단한 사람인지 잠시 살펴보자. 왜냐면 고대의 역사를 다룰 때 한번쯤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역사이해는 수 많은 비판속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역사적 사료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세푸스는 자서전에서 자기 가문은 제사장 24반차 중에서도 으뜸가는 가문인데다가 어머니가 왕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제사장24반차의 의미가 어느정도인지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리하여 일찍이 율법에 통달할 수 있었으며 14살 때 벌써 랍비들이 그에게 조언을 듣고자 해서 찾아올 정도였다고 쓰고 있다.

16세부터는 유대의 3대 종파(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를 경험하고 광야에서 고행도 했다고 한다.

26-7세 경에는 로마를 방문하기도 했고 로마에서 돌아오자 반역의 움직임이 있어 이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29세 때 갈릴리 지역 책임자로 가서 폭도들을 진압하고 로마와 전투하다 요타파타에서 패전하여 로마군의 포로가 되었다.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이 황제가 될 것을 예언하였는데, 실제로 군인들에 의해 그가 황제로 옹립되자 포로 신분에서 자유민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유대전쟁사(7권), 유대고대사(20권), 자서전, 아피온 반박문(2권)을 남겼다.



그런 그가 예수에 대해서 한 말은 굉장히 유명하다.
 
"그 때에 인간이라고 굳이 불러야 한다면 현인이신 예수님이 사셨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운 일(surprising feats)을 행하시고 진리를 기쁘게 영접하는 자들의 선생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메시야이시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3일만에 살아나셨다"<고대. 18권. 3 : 3(63)>.
 
이렇듯 그는 유대인이면서도(실상 메시야사상에선 원수에 가까울수 있으면서도) 예수의 신성, 초자연적 능력, 부활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18권. 5 :2(116)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원수가 원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도무지 설명이 쉽게 되질 않는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입장
 

성경 자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요세푸스의 글도 의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예수가 승천하신 해의 불과 몇 년 후에 태어나서 사도시대와 속사도 시대를 살았던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그가 쓴 저서들의 대부분은 신약성경과 같은 세대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그의 저서들은 신약과 같은 고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고증하는 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참고:  요세푸스 - 역자 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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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과 외경,위경

우리가 성서라는 것을 볼 때 혹 기독교인들에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정경과 외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마리아와 예수의 삐리리설은..정경이 아닌 외경 혹은 위경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럼 정경과 외경은 무엇이냐? 자세한 설명은 할 필요가 없고..(직접 찾아보라), 솔직히 자세하게 알진 못한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외경과 위경이란 것은 굉장히 보다 더 판타지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것은 상당히 뒤죽박죽이기도 하다.


 
외경과 위경에 대한 접근방법(역사적,문학적 이해)

성서를 바라볼 때 다른 부분은 뺄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신앙을 다루는 부분이므로 독자적인 것이며, 공론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공감대 형성이 용이한 당시적 이해와 기법  - 고대근동지역의 역사적, 문학에 대한 이해이다.

오늘날 우리가 A라는 책을 볼 때 그 서적은 현대적 코드에 적합할 때 최고의 인기서가 되듯이 고대근동의 서적 역시 당시대의 코드가 존재했다.

 
그 코드는 대부분 현대적(이성적)코드와는 달리 상당부분 신화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중요한 것은 외경,위경들이 정경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신화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특정 종교인들이 볼 때 신성모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당시대의 문학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잊어서 안 된다.. 신학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다룬다.

 
즉 오늘날은 오늘날의 코드가 존재하듯 고대 근동엔 고대근동의 코드가 존재했는데 그 코드는 오늘날의 시각으론 도무지 말이 안 되고, 각 성서 간에도 때론 상이한 내용들이 존재하지만, (ex>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메시야 탄생간의 차이점들) 당시대의 코드로 이해하면 성서간의 상이한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고,(저자의 개성과 신앙관)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적인 부분들은 당시대로선 매우 대중적이고, 아울러 오늘날의 이성적 접근처럼 대중적이고, 상식적이며,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즉 고대의 모든 문서들을 오늘날의 시각과, 이성만으로 접근하면 그 출발부터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유명한 고대문서나 성서들은 메소포타미아 근동 주변에서 수많은 아류작(외경)들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은 보다 심각하게 신화적인 면들이 많았지만, 더욱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정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외경들로 투영된 것이 그 동기라 하겠다.
 
댄브라운은 왜 주로 외경,위경을 선택했나..

댄 브라운이 선택한 외경,위경 역시 소설적 영감을 위해서,  당시 상대적으로 덜 인기였던 정경보다는 당시 최고의 인기와 호기심을 자극했던 예수와 마라이아의 사랑이야기 같은 외경,위경 등을 위주로 근거로 써져 내려갔다는데 종교인들에겐 매우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라 하겠다.

 
물론 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들에겐 그의 소설이 외경만을 근거로 써 내려가도 그 긴박감이 넘침은 고마운 것이지만, 종교인들의 입장에선 심각한 훼손과 신성모독일 것이다.

 
한 편으론, 당시 인기 있던 외경과 위경만을 선택하고, 역사적 근거도 없는 최후의 만찬상의 비밀 등을 기용한 댄 브라운은 사실 천재작가이면서도, 독자의 주머니를 잘도 털어낸 얄미운 재간꾼인 것이다.

개인적으론 다빈치코드의 최후의 만찬 같은 의혹, 프리메이슨 등의 음모론 등은 이러한 외경과 위경에 기인하는 당시 반카톨릭적인 다빈치의 성향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반카톨릭적인 세력은 실제했었다.

 
즉 다빈치는 신앙적 돌파구이며 강한 욕구를 그림으로 표출한 것이지..고고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 그랬을까? 간단하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도교(카톨릭)의 죄악 때문이다.

솔직히 금서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은 외경도 본다. 그리곤 말한다..왜 외경을 금서화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당연히 그 시대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그렇다. 카톨릭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오히려 금서로 묶어둠으로써 역사적 증명가치가 희박한 문학 자료들이 당시대의 종교의 타락성과 맞물려 더욱 극렬하게 표출된 것이다.

좀 더 엄밀히 따져 보면 그의 소설은 허구(소설적 요소)와 사실(fact)을 겸비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허구와 당시의 좀 더 인기있던 대중적 코드(사실상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환타지인)들을 재치 있게 믹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매우 광신적인 면들을 보이는 일부 종교인들은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일 정도면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그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yes24같은 인터넷 서점에 가 보면 번역판 외경들도 팔고 있다. 읽어보고 있는 중인데, 무척 판타스틱 하지만...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재미는 주지 않을 것이다. 정경을 일단 읽어보고, 당시대의 이단과 사이비와 오늘날의 이단과 사이비들의 유사성을 이해한 후 외경이나 위경을 접한다면 보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대엔 이런 것들을 꽤나 좋아했었나 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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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의 성공요인과 한국 기독교가 깨달아야 할 점들..
 

처음에도 말했지만, 그의 소설은 고고학적 증거자료들이 미흡하다. 아니 고고학적 증거자료부분에선 거의 빵점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들은 말하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고는..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두고 싶어서..마음에 두기 싫어해서라고 말이다...그래..이러한 소설을 믿고 싶고(비록 역사적 허구라할지라도) 이에 반하는 것 -  그 종교를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독자의 선택이며,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이 소설이 인기를 끄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하는 인기요인은 바로 이 시대가 중세카톨릭의 타락상처럼 그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타락상(사립학교법 개정안 반대관련 7대종파의 회동,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헌금과 십일조에 대한 명확한 가치정립도 거의 없이 수십 년간 이어온 기복신앙, 무당신앙, 정치에 아부하던 박 정권, 전두환시절의 망령들과 그 후손들의 대물림, 일간지 지면을 채우는 목사들의 간통사건 등)에 대해서는 일제시대부터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그 부패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정작 교리와는 매우 이율배반적으로 기독교의 거의 모든 수장(?)들은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겐 불신지옥을 외쳐대니..

 
이러한 종교의 이중성에 대한 서민들의 반사작용과 맞물려서 지적호기심, 스릴러적 요소가 접목된 역사적 소설이.. 전 세계 수천만권이 팔리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시대마다 종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패할 때마다, 21세기에도...아니 100세기에도.. 흔히 비판이나, 안티라는 제2, 제3의 다빈치를 꿈꾸는 자들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비 신앙인이라면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즉 그가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를 발견해야 할 것이고,

기독교인이라면 그들이 믿고 따르는 신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며,

특히나, 대형교회 목사들은 매해 12월마다 방송국에 얼굴 드밀고 몇 천만 원 기부했다는 것에 어깨 들썩거리는 일을 연례행사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그 신의 참 뜻을 올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나아가며…….
고아와 과부, 버려진 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정치의 부패와 종교의 부패를 꼬집는 세례요한과도 같은 신앙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오늘날 한국기독교 ,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다빈치코드를 한 번 쯤은 꼭 봐야할 것이다. 봐도 못 깨닫겠지만...
 
ps: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는 일제시대 기독교의 신사참배와 관련한 장로교,침례교,감리교등 거의 전 부분에 걸친 부패상과 명단, 모 종파 대학의 친일인사 동상 파문, 친일인사들의 정치권 인사와 그의 후손들의 현위치와 관련한 (성도들이 보면 충격으로 쓰러질 정도로 추하고, 더러운)역사추리들을 추천하는 바이다. 
 
세상엔 비밀은 없다.


2006-01-05 23:04:15
867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브랜단 '06.1.6 7:03 PM 신고
    이야..이거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신듯.
    본인이 직접 쓰셨어요?
    상당히 많이 생각하셨네요.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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