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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1기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한 이진 전 행정관이 쓴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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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을 읽고 있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이 책의 저자 이진씨가 밝힌대로 노무현 정부는 거의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다보니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게 거창하게 말한다면 시대정신인거고) '참여정부, 그 절반의 비망록'이라는 제목답게 그때 그때 일어났던 주요 정치적 상황에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어서 재미 있게 읽어 나가고 있다.
흔히 우리는 기록의 중요성이라는 얘기를 자주 하지만, 우리처럼 기록을 해두지 않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워낙 많은 상황들이 벌어지다보니 지나간 일보다 앞의 일을 챙기는 것이 더 급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기록을 해두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진씨를 '공정하게 기술할 것'(그 양반의 성격으로 보아 비판적인 부분까지도)을 전제로 채용한 후 자신의 주요 사안에 대한 생각을 그때 그때 기록으로 담아둘 것을 제안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해야 할 무렵 노 대통령은 미 대사를 불러 마치 증인 심문하듯이 94년도의 한반도 전쟁 위기상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94년 당시 미국이 대북 공격 태세를 어느 수위까지 올렸으며, 남한 정부와 어디까지 상의를 했는지가 주된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가 가장 위험에 처해있던 상황에 대한 청와대 내의 대응책이나 후속 정권을 위해 필요한 매뉴얼 같은 것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는 이런 중대한 사안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든, 관계 당사자이든 그 당시의 상황이 꼼꼼하게 기록된 문건을 남겨두고, 그것을 두고 학술 토론을 비롯한 각종 사회적인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고 본다.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 최소한 대한민국 안보 차원에서라도 정부안에서라도 이런 정도의 꼼꼼한 입장 정리와 앞으로의 대응책 정도는 정리해뒀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2002년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맞았지만, 이런 사소한(어쩌면 우리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엄청난) 일에서도 아직 노무현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인터넷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인터넷의 이 수많은 논쟁들은 휘발될 뿐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후 그 문제가 해결되어졌다고 믿고 싶어한다. 각종 수많은 논쟁에서 사람들은 나도 한마디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끼는 듯 하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시민 의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대체로 '가볍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분들이 어느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무조건 말을 해대던가?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요즘 노무현 지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우리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는 중재하러 갔던 노동현장에서 계란 세례를 받은 노무현 의원이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런 장면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계란 한번 맞았다고 길길이 날뛰던 그 수많은 귀하신 분들 사이에서 그렇게 약자에 대한 관용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말을 아낄 때는 아낄 줄 알고,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런 모습으로 남아 계시고, 앞으로도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지지율이 낮더라도 우리는 행복한 지지자인 셈이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되서 나아진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 조금은 동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노무현이 아니었다면'을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다. 정말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자본의 광풍에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견제를 했을 것인가? 난 대통령이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것이라고 본다. 지금 대통령이 삼성 회장에 비해 유일하게 더 가지고 있는 큰 권력이라는 것은 아젠다 세팅 능력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욕을 하든, 어쩌든 대통령이 얘기를 하면 기사화되고, 방송에도 나가니까.
그리고 노 대통령은 일정한 시점에서 지나친 흐름을 보이는 지지자들에게조차 따끔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유시민 의원은 언젠가 '우리는 앙시앙레즘의 자식입니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것은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이 시절의 습성이 남아 있을 수 있음을 반성하자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면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행태와 습성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개혁을 참칭하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 새삼 노무현 정신이 뭔지 다시 한번 새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지승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