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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님의 6086번 글을 읽고

 

 듀오님에게,

 듀오님께서 현재의 교회의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꾸라지 몇마리가 온 방죽(연못)을 흙탕물호 만들듯이 일부 멱사들이 온 기독교계를 흙탕물로 만들고 있는것이 작금의 형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머리숙여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분명히 우리가 예수믿는 목적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은 얻는것이 진정한 복은 아닙니다.

 진정한 복이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32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솟ㅇ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편. 또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베드로전서 1장 9절

 위의 성경 구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정한 복은 예수믿고 구원받아 이 땅에서 예수님께 명령하신 삶을 살다가 죽어서 천국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그런데 일부 멱사들이 무당멱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기복신앙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또한 개혁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께서도기도할때 처음부터 주시옵소서로 시작하여 마칠때까지 주시옵소서라는 그러한 기복신안적인 기도는 하지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듀오님에게 유익하고 좋은 주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 사셔서 부자되세요”
기복신앙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

 

전종돈(mose16) [조회수 : 308]

 

 

샤머니즘이란 무엇일까? 샤만(shaman)이란 퉁구스 말로 ‘무당’이란 뜻이다. shaman은 원시적 종교의 한 형태 또는 단계로 엑스터시(忘我·脫我·恍惚)와 같은 이상심리 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교섭하여 이 과정 중에 점복(占卜)·예언·치병(治病)·체의(祭儀)·사령(死靈)의 인도 등을 행하는 주술·종교적 직능자인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 구조 밑바탕에는 알게 모르게 이 무속의 기본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재앙을 피하고 복을 얻으려는 이 단순한 욕구가 우리의 기본적인 본능일지 모른다. 더구나 이 무교적인 교의에 알게 모르게 유교적인 색채와 불교적인 사상이 혼합·가미되어 있다.

원래 굿이란 자신이 위급할 때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추수가 끝나는 10월 상달에 하늘에 제사를 드렸는데 지난 일 년 동안 하느님이 축복해준데 대해서 감사를 드리던 제사였다. 사실 숨겨진 이면의 의미에서 보자면, 보다 풍성한 축복을 주신데 대한 감사의 의미도 있지만 새로 오는 해의 풍부한 축복을 기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굿의 형태가 요즘은 점차 마을 공동체를 기원하던 도당굿이나 대동굿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재수굿으로 유행되니 재수굿이란 사실 기복제이다. 병이 나서 아프면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피해달라고 하는 것이며, 더 많은 물질과 재물의 복을 달라는 것이다.

무속신앙과 손 잡은 교회

그런데 우리의 이 종교문화가 이번에는 기독교와 결합하여 세계적으로 독특한 우리만의 무당 종교를 만들었다. 현실주의적 기복신앙이나 개인 위주의 즉흥적인 신앙·입신· 진동·투시 등 개인적인 신비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광신주의 현상, 질병에 걸리는 것을 귀신의 소행으로 간주하거나 병 고치는 것을 기독교의 주된 임무로 생각하는 것 등은 기독교에 침투된 무속신앙의 요소들이다.

사실 성령운동이 열광적으로 교회에 수용한 것도 우리의 독특한 무속신앙 때문인지도 모른다. 병을 고치고 복을 비는 재수굿을 보면 여기에는 노래와 춤이 있고 축제와 흥겨움이 있다. 마치 성령운동이 병 고침과 방언과 시끄럽게 손뼉 치는 찬송가와 자유롭게 아멘을 말하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모습이 이와 같은 모습이다.

사실 우리의 사회구조는 전통적으로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인 속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속성에 융화되어 창조주로서 권위와 율법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수용하는데 커다란 문제가 없었다. 목사들 또한 제사장의 위치를 절대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는 신앙의 중심이며 신앙의 규범이며 율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령운동이란 것이 하층집단의 무속신앙과 결합함으로써 유교적이며 양반적인 문화에서 풀려나 자유롭고 흥겹게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교적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을 양반의 자식이 아닌 상놈의 자식들이 값없이 자유롭게 받아 누리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회적 권위와 학식과 덕망에 의해서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학무식하고 천대를 받던 무리들이 성령의 힘으로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힘의 과시인 것이다.

한편으론 신선하고 활력이 새벽기도다, 산 기도다, 심방이다, 부흥회다 신앙의 열성주의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 교회의 양적 팽창이 그들 말대로 차고 넘쳐흘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가 기복신앙 때문에 위태롭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교회의 신앙 실태는 결코 영적인 기복신앙이 아니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물질적·육체적 복을 위해 비는 미성숙하고 천박한 신앙이란 것이다. 이들의 신앙이란 것이 자신의 건강·재물·출세 등만을 위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을 이끄는 목사들이 참다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기독교의 옷을 갈아입은 한국판 무당이라는 것이다.

이 불학무식하고 천박한 무당 목사들이 강단에 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복 받으라고 외치고, 부자 되라고 축원하는 일이다. 심지어 복 받지 못하고 부자 되지 못하면 신앙이 없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돈을 많이 벌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고 추켜세우지만,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하는 이가 없다. 기복신앙을 자제하고 좀더 남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교회가 온통 복 받으라고 외치고, 부자 되라고 축원하는 무당의 재수굿으로 전락했다.

무당 목사의 1순위는 언제나 교회를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끌어 모으고, 헌금을 강요하기 위해서 값싼 복을 팔며 부흥회란 명칭으로 굿판을 벌였다. 값싼 신앙으로 천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마치 무당이 공수를 주며 돈을 챙기듯 그들 또한 안수니 축복기도니 하며 물질의 복을 파는 것이다. 오늘날 종말과 휴거를 운운하며 마치 자신이 재림주인양 횡보하는 사이비 교주가 창궐하는 곳이 우리의 실정이다 보니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교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교회, 기로에 서다

사실 성령운동이 처음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초창기에는 뜨거운 감격이 지배하였다. 마치 살아 잇는 초대교회같이 그런 열정과 뜨거움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마치 초대교회가 가톨릭 옷을 입고 세속의 권세를 잡은 후  서서히 타락되어지듯 한국교회는 그 뜨거웠던 초창기의 열정을 이어가지 못하고 세속적인 권력에 아부하고 물신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은 후 무당의 옷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가 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수군대고 있다. 이미 한국교회엔 하나님대신 무당 목사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한국교회의 미래상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새로운 대각성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종말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무당목사의 우상화가 잠재워지지 않는 한 파멸은 기정사실이다. 한국교회가 사느냐 죽느냐는 기로에 도달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거듭나지 아니하고 변하지 못하고 각성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도래할 것은 너무 뻔한 사실이 아닌가?

 



2006-01-21 11:10:26
725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참솔 '06.1.21 11:47 AM 신고
    무속신앙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무속신앙 = 기복신앙으로 결론지으시는데, 무속신앙은 절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무속신앙에서는 나무를, 산을, 바위를, 동물을 공경하는 것이죠. 무속신앙이 기복신앙이 된 것은, '하나님에게 복을 기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과 같은 '신령에게 복을 기원하는 일부 무속인들'때문일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나무 한그루 베는 데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미신이라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억제력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수고보다 나무로 얻을수 있는 이익이 더 크지 않으면 나무를 베지 못했으니까 말이죠. 사냥꾼이나 심마니들의 여러가지 금기도 역시 필요이상의 동식물채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억지로 끼워맞추었다고 생각하셔도 어쩔수 없지만요. 실제로 서양문물이 들어와 무속신앙을 몰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자연은 잘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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