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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사들만 봐라. 목사란 이런 것이다.

 
치매노인·장애인 위해 땔감 구하다 참변
예수 사랑 실천하다 떠난 고 김성곤 목사…부인, "당신 대신 이 사명 감당하렵니다"

 

 

 

 

   
▲ 故 김성곤 목사가 운영했던 전남 여수 더불어 사는 집에는 현재 36명의 노인과 장애인들이 살고 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여수의 한 복지시설에서 치매노인과 중증장애인 30여 명을 돌봐오던 40대 목회자가 시설 내 가족들의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 땔감을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남 여수 '더불어 사는 집'의 고 김성곤 목사(당시 43세). 김 목사는 한창 사역에 몰두할 나이에 두 자녀와 부인 문영희 사모(44), 그리고 36명의 더불어 사는 집 가족을 남기고 소천 했다.

치매노인․중증장애인 돌보던 40대 목사…땔감 구하러 나갔다 목재에 깔려 숨져

사연은 이러하다. 지난 2005년 11월 30일 여수시 화장동 야산의 공사현장에서 폐목재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은 김 목사는 지체할 겨를도 없이 집을 나섰다. 갈수록 늘어가는 식구들과 그에 비례해 늘어가는 운영비를 걱정하던 김 목사는 우선 월 400만 원 가까이 소요되던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화목보일러를 시설했다. 나무만 있다면 난방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겨울을 나기위해 김 목사는 그동안 사방팔방으로 나무를 모아왔고 '더불어 사는 집' 뒷마당은 김 목사가 주워온 땔감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날도 김 목사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선 것. 그러나 차를 몰고 ‘더불어 사는 집’을 나선 김 목사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공사현장에서 나무 모으기에 여념이 없던 김 목사는 갑자기 무너져 내려오는 목재더미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야산에 쌓여있던 목재를 중장비가 밀고 지나가면서 목재가 아래로 무너졌고 김 목사가 이를 피하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김 목사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김 목사는 여수 성심병원에서 7년 동안 원목으로 있으면서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돌봐왔다. 그러다 길거리에 내몰릴 처지의 5명의 노인들 두고 볼 수 없어 지난 2001년, 살던 전세방을 정리하고 연탄공장을 개조해 지금의 '더불어 사는 집'을 세웠다. 그 후 지금까지 김 목사는 자신도 돌보지 않고 하나 둘 늘어가는 식구들을 위해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김목사를 대신해 더불어 사는 집을 꾸려나가고 있는 문영희 사모. ⓒ뉴스앤조이 변하삼
"때론 아이들의 불평도 들어야 했어요. 아빠의 우선순위에 가족은 늘 노인들과 장애인들 다음이었다는 것이 어린 아이들은 서운했던가 봐요" 부인 문영희 사모의 말이다. 지금은 김 목사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두 딸은 자신은 10년을 넘긴 허름한 양복을 입고 가족보다 노인들에게 더 헌신했던 아빠에게서 아직 못 받은 사랑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노인과 장애인을 부인․자녀 보다 우선순위에 뒀던 김 목사

그러나 문 사모는 "목사님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김 목사의 사고를 안타까워했고 문 사모를 위로해 줬다. 심지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던 폭설이 내리던 와중에도 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죽을 만들어 찾아와 김 목사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문 사모를 위로했다. 생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김 목사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음을 문 사모는 알게 됐다. 그래서 김 목사는 행복한 사람이란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무의식적으로 김 목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고 마는 문 사모. 그 어느 때 보다도 김 목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다. '더불어 사는 집'을 신고시설로 전환하기위해 일부 정부보조로 건축이 시작된 신축건물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데다 그동안 김 목사가 해오던 일들이 고스란히 문 사모의 몫이 됐기 때문.

고인 대신 땔감 구하러 다니는 문 사모…여전한 빚, 고된 육체 그래도 희망은 있다

   
▲ 김목사는 결국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더불어 사는 집 식구들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 꿈을 문사모가 이어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견디지 못할 순간이 매번 찾아오지만 목사님이 다 이루지 못한 일 멈추지 않을 겁니다" 문 사모는 이제 '더불어 사는 집' 원장역할을 맡게 됐다. 여전히 땔감을 구하러 다니고 쪽잠을 자며 보일러에 장작을 넣는다. 건축자재가 쌓여있는 신축건물을 완공해야 하고 36명의 식구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김 목사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기에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아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지금은 문 사모를 돕기 위해 시댁과 친정에서 나서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더불어 사는 집'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준공검사가 코앞에 닥쳤고 남겨진 빚은 여전하다. 그러나 몇 달 째 함께 기거하며 일을 거들어 주는 친척들과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문 사모에게 절망은 없다. 생전에 호스피스 병원을 세워 임종을 앞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겠다던 김 목사의 꿈은 이제 문 사모의 것이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김 목사의 휴대전화에 전화 걸지 모르겠다는 문 사모는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더불어 사는 집'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즐거워 할 노인들과 장애인 식구들의 모습을 늘 상상한다"며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고 있었다.



2006-01-22 21: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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