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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지하 공작단사건의 전모

 


먼저 동백림 사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대다수일 것 같아 검색에 의해 알아본 동백림 사건은 다음과 같다.


동베를린공작단사건 [東-工作團事件]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대규모의 반정부 간첩단사건.



-동백림(東伯林)사건이라고도 한다.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관련자 임석진(당시 34세, 철학박사)이 귀국하여 자수함으로써 밝혀졌다. 검찰의 공소장에 의하면 북한은 1957년부터 비교적 통행이 자유로운 동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대남공작 경험자인 박일영을 동독대사에 임명하였다. 또한 조선노동당 연락부 대(對)유럽공작총책인 이원찬을 상주시키고 막대한 공작금을 동원하여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에 재학 중인 유학생 및 각계각층의 장기체류자들에게 공작을 시작하였다.

이들 관련자들은 서신·문화·주민의 남북교류와 미군철수, 연립정부수립, 평화통일이 불가능할 때의 무력남침 등에 대비한 간첩교육을 받았다. 그 중 11명은 평양에 다녀온 후 해외유학생·광부·간호사 등의 명단을 입수하여 평화통일방안을 선전하고, 국내 민족주의비교연구회와의 연계 및 각계 요인들에 대한 포섭, 선거에서의 혁신인사 지지 등의 지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1967년 12월 3일 선거공판에서 관련자들에게 국가보안법·반공법·형법(간첩죄·외국환관리법 등을 적용하여 조영수·정규명에게는 사형, 정하룡·강빈구·윤이상·어준에게는 무기징역 등 피고인 34명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동백림사건의 전모를 밝힌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연 동백림 사건이 현정부의 발표처럼 확대되고 과정된 것이었을까?


 


옛 일을 밝혀 앞날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이 곧 문화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역사란 이러한 의미에서 진실되게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에 옛부터 우리 선현들은 사관(史觀)의 지조를 가장 숭배해왔다.
 
그러나 작금에 역사는 정권장악을 위한 세도가들에 의해 불편한 대상이 되어 왜곡과 조작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터에 최근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가 1967년에 발생했던 동백림 사건이 잘못되었다는 기자회견을 접한 필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39년 전 동백림 지하공작단사건의 현장, 동베르린을 찿는다. 
 
1967년 7월 5일 중앙정보부가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 지하 공작단 사건의 전모와 그 동안의 수사상황을 발표하자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발표에 따르면 공작단은 동백림을 포함, 서구라파 일대에서 암약해 오면서 국내에까지 국제적 공작망을 침투시키고 있던 대규모 공산주의 조직으로서 15명의 교수를 비롯하여 의사, 예술인, 언론인 ,공무원 등 서독에 유학한 지식인이 주동이 되어 1958년 9월부터 1967년 5월까지 동독주재 북괴 대사관을 왕래하면서 간첩활동을 해왔고 북괴로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10여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아 북괴가 주장하는 남북협상을 통한 평화적 통일방안의 선전과 사회주의 혁명(무력을 통한 적화통일) 분위기를 조성, 우리나라의 질서를 파괴하여 소위 그들이 말하는 결정적 시기에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을 내세워 선량한 우리 국민들을 선동, 무장 봉기를 꾀한다는 허무맹랑한 목적을 위해 암약해 오던 중 우리 정보망에 걸려 일망타진 된 것이다.

북괴는 휴전선을 넘거나 일본을 통해 합법적인 입국을 가장하거나 해안 루트를 통해서 간첩들을 남파시켜 왔는데 이 사건으로 우리가 예측한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고 구라파를 통한 합법적인 절차를 밟게 하여 침투시키기도 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에 관련되어 검거된 공작원들은 주로 서구라파 유학생들과 그 지역 여행자들로서 이들은 북괴공작원들에게 포섭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공작원들은 동백림을 포함한 동구권 공산 진영의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포섭했는가 하면, 유학생들에게는 경제적 약점을 이용, 생활비를 대주면서 접근하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감언이설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유학생들과 여행자들은 정신적 동요를 일으켰던 것이다. 

북괴에서 파견된 공작원들에게 포섭된 유학생 및 여행자들은 동독주재 복한 대사를 만났고, 노동당 연락부 구라파 총책을 만났으며, 기타의 공작원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우대를 받아가며 자본주의 체제보다 공산주의체제가 우수하다는 등의 사상교육을 받았고, 또 그들로부터 북한의 발전상을 듣는 등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 유학생과 여행자들은 완전히 공산주의자로 둔갑, 동백림과 평양을 왕래하며 적화통일을 위한 지령을 받고 암약하기에 이르렀고 이들 간첩들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라는 붉은 서클을 조직, 불온사상과 북한의 지령을 수행했고 미군철수와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등 북한의 주장을 선전했으며, 심지어 북괴 동조 사상을 은근히 국민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고 혈안이 되는가 하면, 한국의 기밀을 탐지하여 북괴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조직공작을 펴 대남 파괴공작을 일삼았던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된 인원은 194명에 이르며. 북한은 겉으로는 남북협상을 통한 평화통일을 주장하면서 안으로는 국토를 요새화 하는 등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는데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은 천진한 이들이 이처럼 일시에 그들의 주구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국민의 철저한 반공의식을 다시 한번 정립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이 사건을 계기로 대두되었다..
 
이 사건은 북한이 허위 선전과 .무장간첩 남파만을 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 목표를 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그들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려 한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우리 국민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이 사건 수사를 종결한 중앙정보부는 66명을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은 34명을 기소, 67년 12월 13일 선고 공판이 있었는데 조영수, 정규명 등 두명의 피고에게 사형, 윤이상 등 네명의 피고에게는 무기, 그 밖의 피고에게는 징역 15년에서 1년까지, 전 피고에게 실형이 선고되었고 윤이상 피고는 복역하던 중 형집행 정지처분이 내려져 출감했는데 그는 현재 서독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자료출처: 기자가 본 역사의 현장(광복에서 제5공화국까지) - 한국편집기자회 1982년 12월 31일 발행  총747Page중 462Page


[펌] 출처 : 아는 사람은 아는 곳



브랜단
2006-02-25 17:35:37
1279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 마왕 ▒ '06.2.27 11:43 PM 신고
    지금은 동백림 사건이 없을까 싶네요..
    앞으로 몇십년이 흐른후 그때 정권이 잘못을 해서
    지금 밝힌다.. 그땐 시대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그래서
    지금도 있겠죠..

    모든게 시간이 지나면 바뀌고있으니까요 .. 역사는 돼풀이
    돼야 하나 싶기고 하고.

    브랜단님은 무슨뜻을 가지고 올렸는지 궁금..
    내가 한말이 그뜻인가 싶기도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ㅎㅎ ↓댓글에댓글
  2. 2. 브랜단 '06.2.27 11:58 PM 신고
    비슷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간첩에게 세뇌당한 지식인들이 간첩활동을 하다가 걸렸으니

    사회가 뒤집어 졌을텐데

    지금 현 정부가 언론을 이용해 왜 저것을 저렇게 미화하고 여론몰이를 하는지..

    검은것은 검은것이지 검은 것을 희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대놓고 간첩질 해도 된다고 방임을 하는 것인지.

    전쟁이 가까워진것 같기도 하구요.

    하여간 나라 돌아가는게 예전같지가 않습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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