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무현이가 3년 동안 뭐했는데?"라는 질문 대한 답변이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 감격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대학시절 시가에서 최루탄 가스에 고생했던 것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중에, 세 자녀들이 장성했을 때, 떳떳한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나면, 세상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뭐 거대한 변화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원칙과 상식이 어느 정도 통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꿈이 깨어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몰상식과 뻔뻔스러움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탄핵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나는 대한민국 사회의 소위 기득권층이라는 것이 얼마나 거대하며 집요한 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누린 어떠한 혜택도 양보하기를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였다. 노무현 시대가 가져 온 변화 중의 하나는 그 기득권세력들로 하여금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게 한 것이었다. 이전에는 젊잖게 뒷짐 지고 있었는데, 자신의 밥그릇을 건드리니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노무현의 3년은 그들과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노무현의 업적 중의 가장 확실한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있다. 이것은 만약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었을 것인지 추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형근 국정원장, 김용갑 국방부 장관, 전여옥 청와대 대변인, 박근혜 통일부 장관 . . . .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이렇게만 평가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평가다.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이명박은 청계천이라도 하나 했지, 노대통령이 한 게 뭐가 있어? 하나 만 말해 봐"라고 말하면 답이 궁색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은 겨우 청계천이지만, 노대통령은 수도를 옮기고, 공공기관 수 백 개를 옮기고, 지역에 수 십 개의 혁신도시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들은 적어도 5-10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룬 것이 아니라 이루어 질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실, 노무현 지지자들도 노무현의 업적이 무엇인가라고 말하면, 한마디로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의 업적이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노무현 지지자와 노대통령 사이에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노대통령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지자들조차 노무현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지자들의 주 관심은 개혁이었다. 하지만, 그 개혁의 대부분은 대통령이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작은 개혁 (국정권이나 검찰)은 대통령이 하였지만, 나머지 굵직한 개혁들은 국회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그 일을 해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대통령도 국회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통령의 주관심은 개혁이 아니라 혁신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난 직후 가장 많이 에너지를 쏟은 분야가 이 분야이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는 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누구도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줄기차게 3년을 밀어부쳤다. 어떻게 보면,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공무원들도 통과 의례정도로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혁신이 공직 사회에서, 적어도 중앙직에 있어서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특히 전자 문서 결재 방식인 이지원은 혁신의 가장 큰 업적이다.
개혁과 혁신, 어떻게 보면 거의 동의어처럼 보인다. 뭐가 다를까? 개혁은 과거와 현재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혁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혁은 과거나 현재의 방식이 틀렸기 때문에 고치자는 것이고, 혁신은 과거와 현재가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그대로 두면 도태되니까 미리 대비하자는 사고방식이다. 누가 참여 정부를 과거사 정부라고 비난하지만, 참여 정부는 본질적으로 철저하게 미래지향적인 정부이다.
노대통령이 혁신에 대해서 거의 올인한 가장 큰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 과거와 현재에 대한 분석, 그리고 청사진을 이루기 위한 확실한 대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아무도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있고,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고, 했다고 알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일이 될 지 안 될지 모를 상황에서 혁신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혁신 분야야 말로 노무현 대통령만의 업적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실, 주가 상승이나, 수출증가나, 환율안정이나 기타 등등은 대통령만의 업적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수 있지 않은가?
누가 한나라당에게 10-20년 뒤의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중구난방일 것이다. 제대로 고민과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일인당 소득 2만불이 넘는 선진 한국 정도?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동북아 시대의 평화와 번영." 혁신은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편이다. 그리고 이 혁신의 결과 수도이전, 지방분권, 혁신 도시 건설, 정치의 투명화, 정부의 효율화 등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바로,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몇 개의 물줄기는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북아 시대의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거대한 물줄기는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혁신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2년 뒤, 대선에서 어느 누구도 "행복도시 건설을 중단하겠습니다", "공공이전을 철회하겠습니다" "개성공단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수도 이전에 맹렬히 반대했던 이명박이 행복도시 건설에 무슨 말을 할 지, 개성공단의 발전 청사진에 대해서 박근혜가 어떤 발언을 할 지 무척 궁금하다.
즉, 다음 대선에서는 단 2개의 선택만 남아 있다. 노무현시대가 만든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동참하여 대권을 차지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거역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것이다. 이 흐름이 시작된 지는 이제 경우 3년. 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흐름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2년 뒤에는 보다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이 어찌 노무현 시대가 만든 위대한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 시대의 큰 흐름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업적을 보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것이다.
후기: 이 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역사적으로 증명해 주겠다. 노무현과 맞짱 뜨려다가 인생 망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점만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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