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형에 처해졌는가?
십자가형(crucifixion)
사형수를 십자가나 때로는 나무에 못박거나 결박함으로써 처형하던 행위를 말한다. 신약에서 '십자가형'이라는 명사는 나오지 않으나 이 말에 상응하는 '십자가에 못박다'(stauroo)라는 동사는 빈번히 나온다.
1. 일반적인 십자가형: 이 처형방식은 참여한 대중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게 하고, 서서히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게 하는 잔인한 것이다.
(1) 대중들의 모욕: 사형수는 부분적으로는 다른 우범자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서 자신의 십자가나 그 일부를 메고 공로를 따라 처형 장소(흔히 처형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졌다)까지 가야만 했다. 거기서 그를 발가벗긴다. 그는 십자가에 결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으며 행인들의 조소와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2) 고통: 십자가형은 신체의 중요 부분에 손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사형수는 똑바로 세운 기둥에 대못을 박아 만든 십자가에 양손이나 양쪽 옆구리 그리고 양쪽 발이나 뒷꿈치를 못박힘으로써 십자가에 달렸다. 그리고 양쪽 어깨나 몸퉁이 밧줄로 십자가에 묶였다. 이와 같이 그는 움직일 수 없도록 묶였기 때문에 더위나 추위 또는 해충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었다. 죽음은 피로, 근육의 경련, 기아 및 갈증으로 인하여 서서히(흔히 여러 날 후에) 왔다. 때때로 사형수에게 고통을 잊게하기 위해 약물이 주어지기도 하였다(마 27:34, 막 15:23).
십자가형은 본래 페니키아와 페르시아에서 시행되던 것이었으며 로마인들은 그들로부터 십자가형을 배워왔다. 로마는 노예들과 외국인들에게만 이 처형법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었으며 반면에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바울은 십자가형을 당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드물기는 하지만 로마시민들이 십자가형을 당하였을 때-시칠리의 베레스와 스페인의 갈라에 의한 경우에서처럼-로마인들은 대단히 분개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강도.폭동 및 반란을 선동한 자들의 죄를 처벌하는데 십자가형이 사용되었다. 특히 반란선동죄의 경우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 외국의 세력에 예속되어 있음을 대중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갈릴리에서 십자가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직에 대한 준열한 비유로 사용되었다(마16:24, 막 10:21, 눅 9:23).
2. 예수의 십자가형: 사복음서에는 모두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형을 당하실 것을 아셨다는 것과(마 20:19, 26:2) 몇몇 그를 따르는 자들도 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셨다는 것은(마 23:34)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예수의 십자가형은 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요 19장에 상술되어 있으며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예. 행 2:36, 4:10, 고전 2:8, 고후 13:4, 갈 3:1, 계11:8) 여러번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에는 현대인이 관심을 갖는 육체적인 면에 대해서는 상술되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는 진술(행 5:30, 10:39)은 비록 나무란 말이 대체로 십자가의 형태를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아마도 비유적으로 사용된 것인 듯하다. 처형의 장소도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간선도로들 중의 한 도로옆이었다는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수는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그에게 제공된 마실 것을 거절하였다.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은 또는 적어도 이들 중의 하나는 예수를 조롱하는데 가담하였다(마 27:44, 막 15:32, 눅 23:39). 이러한 행위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통치자들 편을 들음으로써 어떤 호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망적인 기대에서 나온 것 같다. 예수가 유죄판결을 받은 죄목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지가 예수의 십자가 위에 쓰여졌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의 십자가 위에 이와 같은 어떤 표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 다음 날은 유대인의 성일이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서는 로마당국자들이 저녁에 사형수들을 십자가에서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도망갈 수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다리를 꺾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형집행자들이 예수에게 왔을 때 그들은 예수가 이미 죽어있음을 발견하였다.이것은 예수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죽었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창으로 찔렀다는 것은 예수가 죽은 후에 행해졌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흔히 제시되고 있는 예수가 심장파열로 죽었다는 주장은 요 19:34의 '피와 물'의 설명에 근거한 것인데 이것은 의학적으로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물'은 생리학적 목적이 아니라 신학적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아마도 예수의 죽음은 채찍질에 의해 촉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로마인의 채찍질은 매우 심하여 종종 채찍에 맞아 죽는 죄수들도 있었다. 예수와 같이 선동죄로 피소된 자에게 채찍질은 무자비했을 것이다.
공관복음서는 예수가 죽었을 때 초자연적인 어둠이 뒤덮혔고, 성전휘장이 둘로 찢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마태는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졌으며 시체가 일어나 예루살렘 주위를 걸어다녔다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요한은 이 어떤 것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3. 상징으로서의 십자가: 예수는 십자가형을 당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악평을 듣게 되었다. 십자가형은 예수를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3, 참조. 신 21:23)는 고대의 저주 아래 놓이게 하였다. 이것은 그후 새로운 신앙으로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구약이나 유대의 전승에서는 아무데서도 유대인들에게 메시야가 이같이 다루어질 것이라는 사상을 가르쳐 준비시킨 곳은 없다. 많은 유대인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주장이 충격적인 신성모독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형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며 기독교인 자신과 주님과의 결합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낡은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의미했다(롬 6:6,갈 2:20, 5:24). 다시 말해서 변화된 사람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불의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되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