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들은 적어도 자신이 소속된 집단으로부터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대부분 지지를 받거나 적어도 비난받는 일은 드뭅니다.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지라도 서로 간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도 적어도 타집단에 대해서는 변호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 ASH
그런가하면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집단에 소속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경우에도 정치적 관점이 아닌 인간적인 면을 공격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인간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예외적인 사람이 두 명 보입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로부터 받는 공격이 타집단으로부터 받는 비난보다 더 큰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그들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분은 제가 생각해도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어마어마하게 보입니다. 과학이라는 분야를 생각해보면 그 분야의 아주 조그만 한 분야에 대해서 미미한 부분만 알고 있는 저보다도 더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분이 걸어오셨던 분야에서는 지식이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러운 측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도 생각해보면 그들이 걸어왔던 분야에서의 지식이 결코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도 부럽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같은 편들로부터 그렇게 비난을 받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수년 전에 강준만 교수가 썼던 마키아벨리즘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서 대충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목적과 수단에 관한 내용입니다. 선한 목적과 악한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에서의 선한 방법과 선하지 못한 방법에 관한 고찰입니다. 즉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옳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두 번째)과 비록 옳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실패할지라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옳지 못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세 번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한 가지 경우의 수는 우리가 소속되지 않은 집단의 몫이겠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부류이고 노무현 대통령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부류로 보입니다. 유시민 장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조금 헷갈립니다. 제 눈에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여튼 그러다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은 털면 먼지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구요.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다른 빅딜을 해서라도 이루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빅딜 대상이 보안법보다 더 중요하다면 차라리 보안법폐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한 결정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분이 생각하기로 다른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순위를 뒤로 미루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여길 따름입니다. 대통령은 저 같은 범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저와 판단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분이 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분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속으로는 조금 섭섭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 번째 스타일을 추구하는 분이기에 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조광조가 떠오릅니다. 조선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아까운 사람 중의 한 명이 조광조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조광조로 인해서 조선민중이 얼마나 혜택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국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습니다. 조광조가 추진하려했던 백성들을 위한 국가정책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고 지속되었는지, 그래서 백성들의 삶이 어느 정도 좋아졌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조금만 고개를 숙였다면, 그래서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절한 경우보다는 좀 더 많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조광조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청사에 기리 남을 명예를 얻었지만, 자신의 이상은 잃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광조는 진정한 자존심은 지키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굉장히 많은 개혁을 이루었고, 이 사회의 시스템도 많이 바꾸었습니다. 조광조에 비할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이 아닌 정치가로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한 마키아벨리스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만 있다면 털어서 먼지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비난은 자신이 다 감수하면서 결국 목적을 이루는 스타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죠.
'터니까 먼지가 나더라'라는 측면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 반대자들에게 주는 위로의 한 측면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즉 그렇게 위대하게 보이는 분도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똑 같다는 것입니다. 존경할 수도 있고 부러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열등감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은 타인에게 열등감을 유발하는 존재들입니다.
이거 이성적으로는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심사숙고를 해도 그들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그런 그들이 싫은 이유는 바로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지 않은 길을 가지 않는 그들. 그러면서도 그것을 손해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그들. 반대파들이야 원래 뻔뻔한 인간들이니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집단에 속한 인간들, 즉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부류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정말 성질나는 부분입니다. 심한 열등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정치적인 측면이 아닌 인간적인 면을 공격하는 수박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같은 길을 가면서 능력 면에서의 부러움이 아닌 인간적인 면에서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존재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은 사실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떳떳이 밝힐 수도 없기에 그냥 그들이 더 밉습니다. 타인에게 열등감을 유발하는 존재들에 대한 분노감은 대책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들을 미워하는 자신들이 더 미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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