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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친일왜곡의 진상 및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

 

국내좌익세력들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끈임없는 왜곡중에 대표적으로 친일과 군사독재자 그리고 유신통치,지역감정유발이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친일왜곡에 대한 진상 그리고  군사쿠데타와 유신 독재주장 및 한일협정과 베트남파병에 대한 비판, 지역감정 선동,용공조작설,노동자 농민 탄압,영구통치설 등등에 대한 반박과 박대통령의 업적을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조명한  글들입니다.

--박정희 친일왜곡의 진상 및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

먼저 노사모 위시해서 국내 좌익세력들이 인터넷에 유포하는 박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다룬 글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님 말고” “~~카더라”란 유언비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들임을 먼저 밝힙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박대통령에 대하여 친일파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한 상반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파의 정의 즉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차기 대선에 따른 정략적 관점(박근혜대표의 아버지)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논쟁에 대해 크게 분류해보면

1. 적극적 친일행위자만 해당된다 : 을사오적등 대표적 친일파들로서 이부분에 대하여 좌익과 우익 이견이 없습니다.

2. 일제시대 공직에 있었던자도 포함된다. : 이부분에 대하여 논란이 끝이 없습니다..

3. 창씨개명한자도 포함된다 : 이것은 당시 독립운동가외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해당되는바, 창씨개명 자체로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게 좌,우의 공통적 입장

위의 세가지 분류를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2번에 해당됨에 따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었던 사람들의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심판할수 있을까요?
많은 국민으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시절 좌파를 제외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본보기로 삼아 기리며 추모했다는 것은 두말 할수없는 사실입니다

민생을 팽개친 노정권의 과거사타령에 반감을 가진 많은 국민들은
일제하 중국이나 만주로 탈출하여 항일독립투쟁이나 지하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군인 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공무원 및 그시대 언론도 친일이고 법조인도 친일 사업가나 예술가 학자도 친일이란 식이 아니냐? 대체 싫어도 일제가 점령한 이땅에서 태어나고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은 친일이란 소릴 안들으려면 뭘 할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전부 일제 식민지 지배에 큰건 작건 협력한 게 아니냐? (일제가  철도를 통해 수탈을 얼마나 많이 해갔습니까? 그럼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인가요?) 

그당시 반체제 지하활동을 빼고 식민지 지배 권력에 대한  대립과 반목으로 그어떤 사회생활을 조선땅에서 공식적으로 할수가 있을까? 

아예 시골에서 머슴 아니면 농사나 지어야 했겠는가?

친일이냐를 따지자면 지위 고하에 막론하고 자신들의 부의 축적 자기 일신의 영달과 출세를 목적으로 그 시대 일제의 힘을 등에 업고 능동적으로 같은 민족을 수탈하고 핍박 탄압하는데 앞장섰느냐 아니냐?를 객관적 증거에 근거해 따져야한다는 것이 반론으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독립투사의 모델들을 제시하고 "보라 박정희는 이렇게 살지 않고 만주군이 됐으니깐 '친일파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비난하는 당사자들이 그때 박정희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으면 모두 목숨을 당연히 내걸고 독립투사로 나서 일제와 싸웠을까?하는 의문을 낳을 뿐입니다.
진짜 나쁜 놈은 저렇게 훌륭한 삶을 산 위인을 두고 나보다 훌륭한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며 업적을 숨기고 악의적으로 모함하고 음해를 하는 세력들입니다.


박 대통령은 위인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모셨고 후세가 마땅히 본 받아야 된다며 사당을 짓고 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언제 그런 분들을 홀대하고 푸대접한 적이 있습니까?

또한 최고 권력자로서 자신의 과거경력을 미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김승곤(92) 전 광복회장은 “박영만은 청와대에서 돈을 받을 줄 알고 ‘광복군’을 썼는데, 내용을 훑어본 박 대통령은 ‘내가 어디 비밀광복군이냐. 누가 이 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며 화를 냈고, 결국 박영만은 돈 한푼 못 받고 거창하게 준비한 출판기념회도 치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세계일보-]

 

역사적으로 본다면 일제는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으며 군사적으론 공산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세력이기 때문에 좌익들과는 원래부터 철천지 원수가 아닐수 없습니다. 

빨갱이들이 못 마땅할지라도 공산주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일제와 대립하고 투쟁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입장에선 진짜 독립운동가들이 아닙니다. 저런 인물들한테 독립투사라고 훈장을 준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대한민국의 이념으론 이해할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좌익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생산 수단 공공화 및 중앙 집중적 계획체제에 바탕을 두고 사용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체제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바로 성장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첫번째 형태이며. 공산주의는 여기서 더 발전된 더 높은 단계의 사회주의라 규정함.)

 

왜냐면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이어받는다"라고 명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는 절대 공산주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평화적 남북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반공의 정신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합니다.
(상해 임시 정부는 수립 당시부터 공산주의자 집단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이 목적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제일의 목적이 한반도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이념화 되어 민족이란 이름으로 포용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김구 선생님과 함께 상해 임시 정부는.. 공산주의자는 물론이고 그 활동을 돕는 자는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간주하고, 임정에서 축출하였으며,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 중에서 한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상해 임정에는 성재 이동휘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임정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입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군자금이 부족하여 활동 반경이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동휘는 이들에게 몰래 임정의 자금을 지원 하였습니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임정은 이동휘 국무총리를 해임 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당시에 군인이 된 표면적 형상에 집착하여 무조건 친일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우선 청년 박정희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면... 어린 박정희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바로 나폴레옹 전기였다고 합니다.

동기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소년 박정희는 여러 사람들이 쓴 나폴레옹 전기를 죄다 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삼국지'에 빠진 소년들이 처음에는 되풀이하여 읽다가 나중에는 저자를 바꾸어가면서 읽는 것처럼 말이죠. 청소년시절부터 군사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본다면 당시에 일선 소학교 교사로서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가며 어린 제자들에게 한글을 교육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소 일본에 대해 자꾸 반항적인 성향을 보이는 요주의 인물 박정희에 대한 일본인들의 집요한 괴롭힘과 억압이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교사시절 제자들의 증언 자료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3년간(1937-1940) 교사로 근무 ]

이영태씨의 증언입니다.

-"수업 시간에 우리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음악시간에는 황성옛터,심청의 노래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 주셨습니다. 평소 '전세계를 얻는다 할지라도 민족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우리는 남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기 위해서 앞으로 노력해야 한다.'라고 학생들의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와 말다툼 끝에 그가 ´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 던진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인 순사중에 오가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후에 박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긴칼)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순사가 박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는데 박선생님이 오가와순사를 크게 혼낸 적이 있었습니다."-

정순옥씨의 증언입니다.
-"어느 일요일,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새로 오신 선생님(박정희)의 하숙 집을 찾아갔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방을 살펴봤더니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데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영웅 나폴레옹이라고 하시며 나폴레옹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4월 어느날 소풍을 가게 되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선생님은 등산복 차림에 어깨엔 나팔을 메고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우리들이 장난을 치거나 줄이 흐트러지면 한 대씩 벌주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순간 박 선생님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참 만에 그 아이를 건져내어 인공호흡을 하여 살렸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동안 둑에서 발만 둥둥 구르고 계셨어요.
그리고 언젠가 박선생님과 일본인 교사 두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인선생 한분이 조선여성은 예의가 없다느니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양동이를 이고 다니느니하며 우리나라 여자의 흉을 보았습니다.
이에 박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 저 말을 잘 새겨 들어라.가난하고 무지하면 남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다.우리끼리 있을 때는 절대로 일본말을 쓰지 말고 조선말을 쓰자.´고 했을 때 우리는 철없이´조선말 쓰면 퇴학당하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반박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

주영배씨의 증언입니다.
-"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 과목을 가르치며 박선생님께서는 ´이글을 잘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박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가정실습때는 문경에서 12키로나 떨어진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습니다." -

전경숙씨의 증언입니다.
-"박선생님은 우리집으로 하숙집을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를 ´모친´이라고 불렀습니다. 식사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복장은 단정하였으며 출근은 빨랐습니다. 언제나 숙제를 내주시고 철저히 검사하여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월요일마다 공책을 점검하시고 글씨를 바르게 쓰도록 지도해 주시고 일기와 편지쓰기를 장려하셨습니다. 5학년 20명과 2학년 40명을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했습니다. 말은 간단명료하였으며 청소에 신경을 쓰고 유리창,천정의 거미줄,화장실 청소를 철저히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청소도구를 왼비하여 가지런히 정리정돈되도록 하였으며 책상의 줄이 비뚤어지고 환경이 지저분 한 것을 매우 싫어 하셨습니다.
위인전 같은 이야기를 자주해 주시고´너희들도 이와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을 소풍때 문경새재에 갔을 때는 제 1관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시고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은 선생님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시던 일, 발목을 삐어 걸음이 곤란한 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 오시던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전도인씨의 증언입니다.
-"하루는 박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습니다.
그때 일본인 청부업자 한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 와 "오이 ! 교장 계신가?"하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일본인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개 그런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국민으로 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돼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해도 무례하기 그지 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 사람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어서 나가봐 !"라고 내몰았습니다."-

황광실씨의 증언입니다.
-"박선생님이 우리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선어를 가르치셨습니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습니다.
박선생님이 일제 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합니다.
학생 한사람을 복도에 세워 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로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 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박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별명은 호랑이 선생님이었으나 자주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졸업때 앨범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

 

가까운 거리에서 박대통령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김종신씨의 말에 의하면 박대통령이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군관학교로 간 이유에 대해서 묻자 간단하게 "왜놈들 하도 심하게 굴어 긴 칼 차고싶어서 갔지."라고 답했습니다.

 

애초에 일황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과는 상관없이  청소년시절부터 가졌던 나폴레옹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군사학에 대한 공부욕구와 말단 교사로서 현장에서 당하는 일본인들의 지긋지긋한 괴롭힘과 위협이 문경에서 계속 교사직을 갖고 일하기가  힘들어서 무상 대학급 교육기관인 만주군관학교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는 교사로서 의무복무를 마치고 만주군관학교 2기로 입학한다. 그는 이곳에서도 식민지 민족으로써 민족주의 신념을 키워 나갔다. 만주군관학교 역시 사범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차별이 심해서 박정희의 민족감정은 부추겨질 수 밖에 없었다. 만주군관학교시절1기생 이기건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박정희에게 '자네는 왜 여기 왔는가'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는 "왜놈 보기 싫어 왔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정희는 "일제는 곧 망합니다. 우리는 독립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섭준에 의하면, 박정희는 특히 2.26사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배울 것은 군사학뿐이다. 우리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독립은 "혼자 사는 것이다. 남의 간섭 안 받고 우리 스스로 사는 것이다"고 했다고 한다.--발췌: 권장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지난번 민족문제연구소가 자행한 친일파인사명단발표는 어느 직책 직위 이상이면 무조건 반민족 친일파란 논리인데(군인은 소위 이상 경찰은 경사 이상 관료는 고등문관 이상으로 대상을 제한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선친들을 뺀 친일파명단발표을 위한 것이며 박정희 대통령(소위)을 정치적 목적으로 넣기 위한 술책이라 보여지기 때문에 우리국민들로부터 많은 멸시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독립군 색출 만주특무경찰,독립운동가들 검거해 고문한 헌병 오장,식민지 착취 상징 식산은행의 금융조합 서기,황국신민 의식화 및 수탈의 선봉 훈도야말로 식민지 지배의 최일선에서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노무현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고발
일제 패망과 함께 김일성은 소련군을 등에 업고 소련군 대위로 평양에 입성하여 38이북을 장악하였다. 곧바로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은 숱은 인명을 앗아 갔으며 골 깊은 민족 간의 갈등을 유발하였다. 전후 김일성은 중공군의 참전 댓 가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절반을 중국에게 헌납하였다. 노무현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김일성, 김정일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으며 얼빠진 인간들은 보란 듯이 혁명열사 능을 참배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6.25동란 당시 북한의 부수상을 역임한 1급 전범
이다. 좌파들은 박정희대통령의 현존하는 기념물을 없애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 민족의 원흉 홍명희의 생가를 복원하려는 천인공노할 음모까지 꾸미고 있다.

여운형은 일제 말(1943년) 수차에 걸쳐 일제의 학병지원을 독려한 당시의 신문기사가 발견되었다. 또한 일제에 전향서를 제출하고 황국식민서사를 한 명백한 친일파이자 남한 내 공산주의의 거두였다. 이런 여운형에게 노무현 정부는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2005년 3월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김지태는 일제시대에 가장 악명 높은 수탈기관인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불하받은 2만평의 땅을 바탕으로 기업을 일으킨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이다. 동양척식회사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일본의 주구노릇에 충실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 말에는 군수공장을 운영하여 일제에 협력하였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부일장학회의 부일이라는 뜻은 일본을 부강하게 하자는 설도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김지태가 만든 부일장학금을 받았고 변호사 시절에는 당시 100억 원이 넘는 김지태의 상속세 관련 변호를 맡아 승소.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이후 노무현은 조세전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사명단에서 친일파의 거두 김지태를 왜 제외시켰는지 궁금하다. 또 민족문제연구소의 논리대로라면 민족의 재산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긁어모은 친일파의 더러운 돈으로 공부하고 친일파를 변호하여 재산을 축적한 노무현대통령도 마땅히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열우당 의원 부친들의 일제시대 행적- 1. 김근태 의장의 부친은 일제시대에 훈도였다.(당시 훈도는 군수 월급과 맞먹었으며 권한도 대단하였다) 2. 김희선의원의 부친 김일련(가나이 에이이치)은 만주경찰 특무로 독립군을 수도 없이 색출하여 잔인하게 처형하였다. 3. 이미경의원의 부친 이봉권은 일본군의 핵심 사찰요원인 황군 헌병오장으로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 4. 신기남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시게미쓰 구니오)도 헌병 오장으로 군림하며 독립군 색출과 잔인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다. 5. 정동영 전 의장의 부친은 착취와 수탈의 최 일선 기관인 조선식산은행 산하 금융조합서기로 5년간 근무하였으며 6.25동란 당시의 행적도 불분명하다. 6. 유시민장관의 백부는 면장이었고 부친은 훈도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열우당의원들과 좌파들은 사실적 자료와 명백한 친일근거에도 불구하고 친일인사명단에서 모두 제외되었다.

북한의 8월9일자 로동신문에서는 남조선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진호라는 사람이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극구 찬양했다는 내용을 인용 보도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북좌파라는 사실적 표현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하여 지난 3월3일 애국인사 8인을 민형사상으로 고소하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대한민국의 공안당국은 민족문제연구소 김진호라는 사람의 실체를 밝히고 이적행위에 대하여 당장 수사를 착수해야 될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북한 로동신문의 기사에 대하여 왜 한마디 반박도 못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가 없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묻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북좌파가 아니라면 북한의 로동신문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되는 것이 아니던가?

지난 2000년 11월5일에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동당, 서총련, 인터넷대자보, 홍익대 민주동문회가 주동이 되어 문래공원 내 박정희대통령 흉상을 끌어내린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은 박정희대통령이 청산과 극복의 대상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 했고 이날의 광란을 주도한 곽태영은 2005년 4월19일 4.19묘지에서 박근혜대표의 화환을 짓밟은 장본인이다. 곽태영은 일제시대 자신의 창씨개명 사실을 아직까지도 숨기며 민족주의자 행세를 하는 파렴치한 위선자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만길, 이영희, 강정구 등 친북인사들의 소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친북좌파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이라는 억측으로 코메디를 연출하고 있다.

눈만 뜨면 역사청산과 민족공조를 부르짖는 노무현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김일성, 여운형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해서는 궁색한 변명으로 면죄부를 주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공교롭게도 노무현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북한정권이 부르짖는 역사청산과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은 거의 일치한다. 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이란 말인가?

우리는 노무현 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박정희 죽이기에 골몰하는지 그 깊은 속내를 알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대통령은 통치기간동안 북한의 김일성의 적화야욕을 제압하고 감언이설에 능한 친북좌파들의 망상을 보기 좋게 깨부쉈으며 북한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막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셨다. 지금 북한의 김정일과 친북좌파들이 대한민국을 장악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박정희대통령과 미국이다. 그들에게 박정희대통령과 미국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북한 김정일의 논리를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는 전위대에 불과할 뿐이다.-



김서방
2006-12-18 00:28:56
607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김서방 '06.12.18 10:44 PM 신고
    이글도 짜증?
    이글도 짜증나는 글인가여? 데이스토리님.참잘햇어여님..이글도 짜증나시는건가염?
    놀아줘~ ㅎㅎ ↓댓글에댓글
    • ㄴ 1. ▒ 마왕 ▒ '06.12.18 11:40 PM 신고
      그때 안죽고 살거나 외국으로 안나갔으면 다 친일파죠 ..ㅎㅎㅎ
      36 년동안 살았으면 그만큼 일제쌀 먹고 살았다고 주장할것 같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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