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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와 박정희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죽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아니, 오늘날까지도 칠레의 목을 죄어왔던 지긋지긋한 '원죄'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피노체트가 없다고 마냥 기뻐할 노릇은 아니다. 칠레가 피노체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적어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왜? 그에 대한 단죄가 어물쩍 넘어갔고, 장례식에는 군부를 비롯한 5천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었으며, 피노체트는 지금도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치가’(?)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 총리 대처는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레이건이 살아있었다면, 그도 달기똥을 떨구었을 것이다. 저명한 학자이시자 시카고학파의 거두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만은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극단적 사유화)코자 하는 피노체트에 열광해서 친절하게 ‘자문’까지 해주시었단다.

※※※

그런 그는 '공인된' 독재자였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공식적으로 살해되거나 실종된 ‘빨갱이’들은 3,197명에 달했고, 약 100만 명은 국외로 추방, 고문과 투옥은 15만 명에 이른다. 피노체트의 가공할 ‘인권’(미국이 상당히 좋아하는 말이다) 유린 상황은 충분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물론 실종자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1982년 아카데미상과 칸 영화제를 수상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실종(Missing)'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주인공 잭 레먼은 쿠데타가 일어난 칠레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매던 중, 미국 정부의 쿠데타 개입 사실과, 아들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가 쿠데타군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밝혀낸다.

레먼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하여 사건에 관련된 미국 행정부를 고소하지만 법원은 (물론) 이를 기각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넓은 경기장에 군대들의 총칼에 살해된 시체들이 여기저기 즐비하게 널려있는 장면이다)

※※※

피노체트의 잔혹사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970년 (혁명이 아닌) 선거에 의해 남미에서는 '드물게' 수립된 민주 정부가 불과 3년 만에 쿠데타로 전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살바도르 아옌데 민주정부의 개혁, 살인적인 빈부격차, 대미 경제종속과 자원수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즉, ‘바나나 공화국’를 벗어나 보고자하는 총체적인 개혁의 실험은 채 그 결실이 맺어지기 전에 좌절되었다. 그것도 불과 18일전에 자신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장군에 의해..

이미 1973. 9.10일 밤 칠레 해군과 미국의 전함들은 공동작전을 위해 칠레의 발파라이소에 집결해 있었다. 미국 의회는 1970년의 선거가 있기 전, ‘아옌데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CIA의) 작전’을 승인했고, 이에 따라 "아옌데의 승리는 ‘종교와 가족생활의 종말’을 의미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파탄’이 올 것"이라는 공공연한 협박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옌데가 승리하지, CIA는 아예 공식 평가서를 작성 “아옌데 정권은 세계의 무력균형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심리적으로 미국에 대한 확연한 후퇴와 공산주의에 대한 명백한 진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아옌데 정권을 축출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노체트는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궁을 포위하고 포격을 가한다. 그곳은 19세기 칠레의 '독립선언서'가 소장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장소였다. 아예데는, 아직 점령당하지 않은 유일한 국영방송 마가야네스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 마지막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칠레 만세!..."

아옌데는 경호원들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다 사살되었고, 그렇게 절망의 땅 남미에서 칠레라는 민주주의 꽃은 꺾어버렸다. 피노체트의 장기 철권통치 아래, 기득권들과 미국은 ‘그래도 경제는 살아났지 않느냐’고 강변했지만 실상 살아난 것은 칠레의 대미종속과 극심한 빈부격차였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FTA, 그리고 할인마트점을 점령한 칠레산 와인, 과일 등등으로 최근에야 칠레와 ‘친숙’하게 되었지만, 칠레 정확히는 피노체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이쯤해서 떠오르는 이름은 박정희다. 피노체트는 박정희를 ‘흠모’하여 박정희의 선례에 따라 민주정을 뒤엎었는데, 박정희가 1979년 비명에 가자, 피노체트가 비통해하며 ‘식음’을 전폐한 일화는 유명하다.

피노체트의 박정희 따라하기는 ‘유신헌법’의 벤치마킹에서 절정에 달한다. 박정희는 4.19혁명정부를 뒤엎으면서 민정 이양을 공약했다(유신헌법이 약 10년 후 만들어진다). 피노체트도 민정이양하겠다고 말했으나, 역시 10년 후 장기집권을 위한 ‘신헌법’을 만들어낸다. 물론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을 ‘혼란’과 ‘무능’이라는 핑계로 군대를 통원하여 뒤엎은 것 또한 똑같다.

수구들은 흔히들, 후진국에서 개혁을 표방하는 민주정은 ‘빨갱이’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곧잘 ‘혼란’과 ‘무능’이라는 딱지를 붙인다(오늘날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을 보라). 이를 핑계로 독재자들이 출몰하는 데, 박정희와 피노체트는 그 전형이다. 1960년 한국의 민주정과 1970년 칠레의 민주정은 그 ‘실험’기간이 많게는 3년, 적게는 불과 1년이다. 이 기간은 실험의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이다. (물론 참여정부 5년도 무쟈게 짧다)

수구세력들은 이른바 기득권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무기는 개혁정부들의 ‘무능’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 예전 같으면 총칼을 들이밀면 되었고, 요즘 같으면 조중동류 찌라시들로 나타난다. 국민의 정부와 특히 참여정부는 수구언론에 의해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혼란스런 정권’으로 매도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돌며 레퍼토리는 반복된다.

수구들은 참여정부를 ‘나라 말아먹을 아마추어’로 매도하면서, '아름다운 호시절', 박정희, 심지어 전두환까지 불러내고 있다. 그 기수 조갑제류 또는 박근혜, 이명박은 그렇다 치고, 심지어 고건까지 죽은 박정희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묻지마 지지층에 대한 표를 의식해서인가, 아니면 진짜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것인가?

※※※

칠레와 스페인(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피노체트에 당했다)은 ‘정부’ 차원에서 피노체트의 망명국인 영국에 신병인도를 요청한 바 있다. 피노체트의 지지층이 뭐라 시끄럽게 떠들건, 피노체트는 수천 명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독재자’일 뿐 아니라 아옌데 민주정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총칼로 무너뜨린 ‘죄인'이라는 것이 '공식' 천명, 확인된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우리나라 교과서에 어떻게 씌어져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박정희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독재자’로 불리기는커녕, ‘영명한 지도자’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5.16’이 다시 ‘혁명’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유력 대선 후보자들은 한결같이 박정희를 ‘추모’하거나 내지는 ‘묵인’하고 있다.

물론 피노체트도 당분간 칠레를 움직일 것이다. 말만 많았지 실질적인 단죄에 이르지 못한 칠레의 운명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군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칠레의 경우는, 대처와 프리드만이 뭐라 건. 피노체트는 이미 ‘역사적으로는’ 깨끗이 정리되었다(다만 단죄만 되지 않았다).

※※※

문제는 우리나라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수구들이 완강한 저항으로 우리는 박정희의 독재와 유신에 대한 단죄는커녕 '역사적 평가'마저 흐지부지다. 아니 갈수록 박정희교 신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 그 독재자의 딸과 그 밑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이 대권을 노리고 있다. 오명의 역사를 덮고 심지어 미화하면서 거꾸로 가려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칠레보다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직도 ‘성공한 쿠데타’와 ‘성공한 독재자’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인가? 역사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는 자, 그는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지금 그런 사람들이 대선후보랍시고 판을 치고 있다.


ⓒ 초모룽마



2006-12-19 18:24:04
1406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김서방 '06.12.22 7:55 AM 신고
    피노체트는..
    칠레에서 국민들의 옹호를 받고 있습니다..수많은 학살을 햇다고 하셨는데여..
    솔직히 말해봅시다..박정희대통령이 무슨 학살을 했습니까? 비교하실것을 비교해야지여
    모택동.스탈린.김일성 피노체트.이광요 박정희 ..같은 독재자로 묶는것도 무리거니와
    그이유로 학살한 부류와 같이 몰아가는 파렴치한 오도는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여?
    독재와 권위는 다른겁니다....지금 정답은 박정희를 치는 인간은 다 빨갱이입니다..
    역사평가는 나중에 해도 돼여..분명한건 쇄놰됏던 아니됐던간에 무조건 빨갱이 입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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