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에 도전한 탈북자들
지난 20일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1980년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1980년 광주사태 때 신천복수여단 등에서 차출한 600명의 특수부대원들이 광주로 들어갔다. 이들은 각각 계엄군과 시위대로 침투해 들어가 평화적인 시위를 유혈사태로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 가운데 3분의2가 희생되었다”는 이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증언자들은 1980년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들의 동향, 김일성-김정일의 광주사태 관련 발언, 광주사태에서 사망한 특수부대원들에 대한 ‘공화국영웅’칭호 부여 등 정황증거를 제시하면서, “광주민주화항쟁은 분명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숭고한 행위였지만, 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당시 한국군 지휘부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이었다”고 역설했다.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나, 전두환-노태우 재판과정에서도 끝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다. 최초의 발포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발포명령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노태우를 감옥에 보내면서도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분명히 있는데, 처음 총을 쏜 사람,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는’ 기묘한 상황에 대한 답은 나오지 못했다.
광주사태 당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침투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증언은, 위의 수수께끼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당시, 광주사태와 같은 호기를 북한이 그냥 놓쳐 보내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그들의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대부분 정황 증거 내지 전문(傳聞)증거였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하기야 ‘결정적인 증거’는 자유통일이 되어 노동당 비밀문서고가 열리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만....
아울러 ‘지금 이 시기에, 그것도 탈북자들이 나서서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적절한 일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 광주’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성역(聖域)이 된 지 오래다. '망월동'은 국립묘지가 됐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현충일 행사보다 5-18행사를 더 끔찍이 챙기는 세상이다.
“얼마 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대안교과서를 만들면서 4-19를 ‘의거’로 표현했다고 4-19단체들이 몰려가 폭력을 휘둘렀는데, 이 사실이 널리 보도되면 광주사태 관련 단체들이 가만히 있겠나? 안 그래도 친북정권 아래서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탈북자들에게 더 어려움이 닥치지 않겠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때문에 우연히 그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그들의 증언을 듣는 동안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자리를 지켜보았던 서정갑 대령연합회장 겸 국민행동본부장은 “북한 군관동무들이 국군 장교들보다 낫다. 그동안 국군의 명예가 짓밟혀도 국군장교들은 아무 소리 못했는데.... 이건 국군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우리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증언에 나섰던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은 “광주민주화항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광주에서의 학살은 김일성-김정일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들도 ‘1980년 광주’라는 성역을 건드릴 경우의 후과(後果)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제기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탈북자-프리존의 용기, 조선-동아의 비겁
그러나, ‘1980년 광주’라는 성역을 건드린 탈북자들의 무모한(?) 용기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용기 있는 증언의 결과, 탈북자들에게 안 좋은 후과가 생기지나 않을까’하던 나의 우려는 기우(杞憂)에 그치고 말았다.
대한민국 언론들이 그들의 증언을 무게 있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 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튿날 조선-동아에는 그런 기자회견이 있었다는 기사조차 없었다.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아마 프리존뉴스가 이 기자회견을 가장 깊이 보도한 매체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1980년 광주’라는 성역에 감연히 도전했던 탈북자들의 ‘용기’와 우리나라 보수언론의 양대 기둥이라는 조선-동아의 ‘비겁’, 프리존뉴스라는 작은 인터넷 매체의 ‘용기’와 메이저 언론의 ‘비겁’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됐다.
이석연의 한탄과 박태준
그 ‘비겁’은 조선일보-동아일보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 싱크탱크를 만들어보려고 뛰어다녔던 이석연 변호사는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발을 빼는 가진 자들의 비겁에 절망했다”고 말한다.
<나와 절친한 사업가는 “내가 후원한 것을 비밀로 해 주게”라고 말했다. 어느 중견기업 회장은 며칠 전 “변호사님이 하시는 활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만, 회사 차원에서 후원하기는 좀...”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 마디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가 이끄는 단체에 지원하는 것은 후환이 두렵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시절 후원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고 그 사실을 활용(?)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다.(중략)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공격은 이미 치밀한 조직과 자금을 확보하고 공공재인 방송매체를 독점한 진영이 광범위한 기반 위에서 다양한 계층의 국민에게서 다양한 추동력을 얻으며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보수우파 및 자유주의 진영의 대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체제의 수혜자인 기득 보수층과 기업이 체제유지비용을 부담하기는커녕 체제의 허점을 이용해 명리를 취함으로써 체제 공격의 빌미를 주기까지 한다.
이른바 진보좌파 성향의 인사가 주도하는 시민단체나 조직에는 많은 기업의 보험용 기부가 문전성시라고 한다. 하기야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 권력과 시민사회에 굴복해 시장경제의 본질 침해여부가 쟁점이 된 헌법소원을 취하하고 8천억원을 헌납하며 잘 봐 달라고 하는 마당에 다른 기업들의 권력눈치보기를 탓할 수 만은 없다.>(이석연,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에서)
문득 박태준 전 포철회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련해 준 아현동 집을 팔아 그 돈을 참여연대를 만들고 이끌었던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대한민국의 예비역 육군소장, 포철회장, 민정당 대표, 민자당 최고위원, 국무총리를 역임한 그가 박대통령이 사 준 집을 판 돈을 시민단체의 외피를 쓰고 우리 체제를 지속적으로 공격해 왔고, 이제는 좌파정권에 의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박원순에게 바치다니...
우리 사회 보수의 비겁과 안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면, 지나친 얘기일까?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 중의 기득권자'인 JP의 비겁은 또 어떤가?
1997년 DJP야합으로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2002년에는 이회창 보기 싫다고 노무현의 당선을 방조했던 그는, 얼마 전 골프를 치고 난 후 어떤 식당에 갔다가 아래층에 김대중 일행이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소리 높여 김대중 욕을 했다고 한다.
그걸 자랑이라고 하나?
그럴 거면 아예 김대중과 야합하지 말든지, 총리 시절 직언이나 제대로 하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시청 앞 국민대회에라도 열심히 나올 것이지, 팔자 좋게 추종자들 데리고 골프나 치러다니면서 애국자연 하기는....
“내년 대선에 지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
요즘 들어 “내년 대선에서 또 좌익정권이 들어서면, 이민가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평소 저술이나 언론기고, 강연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학자, 사재를 털어가며 우익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했던 젊은 사업가, 우익운동을 했던 젊은이가 그런 소리를 한다.
그럴 때면, “당신은 외국에 친구들이 있고, 능력이 있고, 돈이 있어서 나갈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럴 수 없는 대다수 국민들을 어쩌란 말이요? 당신 애국심이 그거 밖에 안 되는 거였소? 싸우다가 안 되면 도망치겠다는 생각으로 무슨 싸움을 한다는 말이요?”라고 쏘아 주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다.
그들의 인간됨을 알고, 애국심을 안다고 생각해 왔기에,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더욱 마음이 무겁다. 그들의 얘기가 2007년 대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소리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요즘 “나라를 위해 뭔가 발언하고 행동하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있으면, 은근히 말린다.
“행동을 하시되, 이름 드러내고 앞장서지 마시고 뒤에서 조용히 일하십시오, 우익운동이 지금은 재야운동이지만, 만일 내년 대선에 지면 그 후에는 지하운동이 될 것입니다. 그때에 대비해서 뒤에서 은밀한 저항을 준비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대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아마 그들은 메이저 언론에 등장해 고담준론을 펼치고, 단체를 만들어 그럴듯한 명함이라도 파고 싶었던 모양이다.
침묵하는 보수, 비겁한 보수, 호텔 레스토랑이나 골프장에서 큰 소리 치는 보수,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한 보수, 애국운동을 정치적 디딤돌 정도로 생각하는 보수, 싸우다 안 되면 도망가겠다는 보수-이런 보수로는 나라를 못 지킨다. 나라를 못 살린다.
남들이 안 보는 뒤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보수,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던지겠다는 보수, 싸우다 안 되면 지하로 들어가서 도시게릴라가 되고 빨치산이 되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보수-그런 보수만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도 자신은 못한다. 다만 '비겁한 보수'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자신을 단련하며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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