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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월남 패망의 교훈(1)"한국戰, 월남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자유월남 패망의 교훈(1)"한국戰, 월남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written by. 김철

4월 30일은 자유월남이 패망하여 공산화(共産化)된지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은 역사상 최초의 해외파병을 통해 미국 등 우방국과 함께 월남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다. 1964년 11월 부터 1973년 3월까지 장장 8년 6개월 동안 50,000명 규모의 군단급 부대를 월남땅에 주둔시켰다. 육군, 해군, 해병대 등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여 5천여명의 인명 손실을 보았다. 미국은 육,해,공,해병대 등 총 55만명을 투입하여 하루 1억불 이상의 전비(戰費)를 쏟아 부우며 12년간 월남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연인원 260만명이 참전하여 50,000명의 희생자를 낸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여기에 자유월남은 미국과 한국 외에도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우방국의 지원을 받으며 110만명의 군대로 공산월남과 맞서 싸웠다. 공산월남의 군대는 30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적으로 압도적 우세였음에도 자유월남은 패망하고 말았다. 무엇이 월남을 패망케 하였는가...



코나스는 자유월남 패망 29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자유월남 패망의 교훈>을 4회에 걸처 게재한다.(편집자 註)

 


자유월남 패망의 교훈(1) - 한국戰, 월남戰의 같은 점과 다른 점

 

▲ 1972,6, tran bang,사이공 외곽 26마일 지점의 트란 방이란 마을
한국과 월남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지리적으로는 아세아 대륙 즉 중국대륙에 붙어 있는 소수민족 국가이며, 문화적으로도 유교의 전통을 이어 받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국가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국가는 강대국에 둘러 쌓여 지난 수천년간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아 곤욕을 치른 민족으로 끝내는 주권을 상실하고 외국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2차 세계대전 후 해방된 국가라는 점이다.

우리가 3국시대 이후 900여회의 외침을 받아 온 역사는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월남도 고대 부터 중국의 지배하에서 노예생활로 일관해 오다가 1428년에야 비로소 독립을 얻기는 하였으나 중국의 내정간섭에 시달리다가 1884년 6월 끝내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 60년간의 식민지 국가로 살아왔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5년간의 수난을 겪었다.

 

그런데 우리와 더욱 기구한 공통의 운명은 식민지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동족간에 전쟁까지 치루어야 했다는 점이다.

 

6.25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은 성격적으로 3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국과 자유월남 공히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유세계가 연합하여 싸운 이념전쟁이라는 점이 첫번째 공통점이다.


두번째는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이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민족에게 안겨진 전쟁이라는 점이다.


세번째는 동족간의 전쟁터에 외세가 개입되어 국제전쟁을 치루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에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이, 월남전에서는 미국,한국을 비롯한 8개 우방국이 각각 북한과 중국, 공산월남과 소련 등 공산권과 싸운 것이다.

 

비록 전장(戰場)은 한반도와 인도지나반도에 국한되었다 하더라도 참전국수나 전쟁기간으로 본다면 마치 세계대전을 치른 양상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결과로 나타난 韓, 越 양 전쟁의 상이점은 첫째 전쟁기간의 차이다. 한국전쟁은 3년 1개월로 세계5대전쟁 가운데 가장 짧은 기간에 치루어 졌으나 월남전쟁은 미국이 참전해서 자유월남이 패망할 때 까지 12년이나 진행되었다.

전쟁비용면에서도 한국전에서는 한국측 2억 4천만불과 미국측 200억불인데 비해 월남전에서는 미국측만 하루에 1억불 정도를 소비하여 총 3,500억불 이상의 전비를 사용한 것이다. 2차대전시 미국이 사용한 전비 3,000억불 보다 많은 액수이다.

 

또한 전쟁에 투입한 병력 수도 한국전에서는 미군 30만명, 유엔군 4만여명, 한국군 59만명 등 총 100만명 미만이였으나 월남전에서는 월남군만도 110만명, 미군 55만명, 한국군 5만명, 기타 우방군 23,000여명 등 무려 170여만명이 투입되었다.

 

둘째로 상이한 점은 전쟁의 형태가 달랐다는 점이다. 즉 한국전쟁은 전방과 후방이 명확히 구분된 정규전 형태였는데 비해 월남전은 전선이 따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전.후방도 없는 비정규전이였다는 점이다. 이러다보니 월남전은 적군과 우군의 구별도 분명치 않은 게릴라전 형태였다.

 

셋째는 전쟁에 임하는 국민들의 태도이다. 우리는 온 국민이 총력전을 펼쳤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20만명의 학도병이 군번도 없이 자진하여 참전하였고, 재일동포 학생도, 나이 많은 사람도 최전선에서 또는 후방에서 병사로, 노무자로 국군을 도왔던 것이다. 그러나 월남은 전혀 달랐다. 군인만이 전투를 했을 뿐 국민들은 전쟁을 외면했다. 오히려 적군의 위협에 굴복하여 유리한 은신처를 제공하면서 자신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1967년 월남정부는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부분동원령법을 제정하여 18세 이상의 학생들을 징집하고자 했으나 학생들은 징집령에 반대하며 매일 같이 반정부 데모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였다. 여기에 불교 승려들까지 반정부시위를 하면서 자신들을 도우려는 미군과 우방군에게 '양키 고 홈' '따이한 고 홈'을 외쳐댔던 것이다.

이러한 양 국민의 차이가 '생존과 패망'이라는 전쟁결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다.

 

자유월남의 패망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 한국 월남전 파병
전쟁은 결코 군인만의 몫이 아님을 월남전은 가르치고 있다. 총력전을 펼쳐도 승리를 낙관할 수없는 전쟁 속에서  월남 국민들은 오히려 공산당의 전략 전술에 속아 적과의 싸움은 외면한채 연일 반정부 시위로 사회혼란을 야기시키고 국력을 소진한 것이다. 질수밖에 없는 싸움을 한 것이다.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자유의 소중함을 모른채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과 희생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를 잃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은 월남의 국민들이 불쌍할 뿐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공산주의와의 타협과 평화협상에는 항시 함정이 있다는 경계심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6.25직전 북한이 여러가지 대남 평화공세를 감행하여 남한의 정부와 국민의 대공 경각심을 이완시켰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월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산 월남은 힘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과 자유월남 정부에 줄기차게 평화공세를 취해 왔다. 1973년 1월 미국, 월남, 월맹 3국간에  맺어진 파리 평화협정이 그 결과물이다. 이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자유우방국 군대 모두가 월남에서 철수하게 된다. 남은 것은 자유월남과 공산월맹 뿐이였다. 수적인 전력상으로는 자유월남이 압도적이였지만 외국 군대가 빠져나간 2년 후 자유월남은 공산화되고 만다.

 

결국 공산당의 전술에 쉽게 넘어가고  국민의 안보의지가 박약했던 자유월남의 패망은 예견된 수순이였다.

 

혹자는 '어쨋든 월남은 국토와 민족이 통일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공산주의 통일이든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든 상관 없다는 통일지상주의적 논리다.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없는 세상을 바란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통일은 보다 행복한 삶이 보장될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안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무책임한 친북.반미 시위, 보안법철폐, 미군 철수 주장이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주장들을 북한이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내부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konas)




김서방
2006-12-27 08: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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