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살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료 하나를 보았다. 어찌어찌 아는 사람이 당시 야당인 신민당 지구당 사무직으로 근무했는데 지구당에 있던 자료를 그가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복사하여 빼내온 것이었다. 복사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그걸 다시 복사하여 내 것으로 소장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 처20촌
자료는 김재규 심문자료로 전체자료 중 지극히 일부분이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당사자가 한나라당의 거물이라 소송을 걸까봐 내용을 밝히진 못한다. 월간조선이나 신동아 등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밝힌 내용이지만 나는 언론권력이라는 방패막이 없어서 밝히지 못한다.
정치범이 체포당하면 체포자들은 정치범들의 머리 속에 든 내용을 모조리 끄집어낸다. 김재규 정도면 몇 천 페이지는 되었을 테니 내가 본 수십 페이지짜리 자료는 지극히 일부분인 셈이다. 내가 만약 정치범으로 체포당하여 나의 뇌속을 수색당하면 몇 페이지짜리 자료가 나올까? 여러분들의 뇌가 수색을 당한다면 몇 페이지나 나올까?
그 자료를 보고 느낀 것은 여러 가지였다. 첫째는 자료 자체였다. 독재자를 살해한 사람을 심문한 대화체 자료를 원본채로 보는 기분은 흥분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둘째는 자료의 내용이었다. 지금 보면 어느 유력인사의 비리내용이지만 당시는 언론이 엄청나게 통제 당하던 시절이라 신문 혹은 유비통신을 통해서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셋째는 야당의 능력이었다. 군사독재가 가혹하기 짝이 없던 시절 중앙당도 아니고 촌구석 지구당에서 그런 자료를 입수하다니... 당시에도 그랬지만 아직도 놀랍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의 군시절로 돌려보자. 상병을 달고 전출을 가기 전 일병까지 군생활 절반을 보낸 부대는 OOO왕국으로 불렸다.
같은 중대에 아이 하나를 낳고 28세에 군대를 온 고참이 있었다. 그의 부인이 아이를 업고 가끔씩 면회를 와도 외박은커녕 외출도 내보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이 피엑스 한 귀퉁이에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그렇게 처연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이 정도니 다른 병사들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부대가 산골짝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도시 시내에 있었다. 휴가나 제대 후 이런 사실을 말하면 주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같은 중대 고참은 생선뼈를 식탁에 뱉었다고 군기교육대를 갔고 다른 중대 병사는 부대 내 밤나무의 밤을 따먹었다고 군기교육대를 갔다. 또 다른 중대의 병사는 부대 내 연못에서 키우던 오리의 알을 주워 삶아먹었다고 군기교육대를 갔다.
소원수리를 받았는데 어느 병사가 깍두기 양이 작으니 좀 많이 주세요라고 적었다. 무기명으로 소원수리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병사를 찾아냈다. 그 병사는 식당에서 한 달간 사역을 했다.
그런 사건 이후 부대원들은 소원수리 시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연병장에 앉아 소원수리를 적었는데 고참들은 맨 뒤에 앉아서 후임들을 감시했다. 볼펜 뒷꼭지라도 누르는 후임은 소원수리 행사가 끝난 후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했다.
부대원들은 대대장을 이렇게 욕했다. "전쟁 나면 뒤통수에 총 맞아 뒈질 놈" 나는 늘상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며 살았다.
내가 상병을 달고 전출을 가던 날 대대 정문을 나서자마자 죽도록 뛰었다. 혹시라도 다시 부를까봐. 전출 가는 나를 부러워하던 후임과 고참들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뉴스를 보니 한나라당 충남도당이 '딴나라당' 시험문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충남 예산의 해당 고교를 방문하여 진상조사를 한단다. 살이 부르르 떨린다.
군사독재 시절 야당에게도 일정량의 권력이 주어졌다. 집권당의 권력에 비해 초라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엄청난 권력이었다. 현재의 야당인 한나라당이 가진 권력은 그 시절에 비해 엄청나다.
'딴나라당' 시험문제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고 통쾌한 사건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다. 정치적 중립을 엄정하게 지켜야할 교사가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시험문제를 낸 건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잡고 진상조사단까지 꾸리는 게 맞을까? 한나라당 대변인이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로 끝내는 게 맞지 않을까? 대통령 사진을 저격수 표적지로까지 패러디하는 2006년 한국 아닌가?
한나라당이 현재 야당임에도 이 정도면 그들이 집권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들은 또 다시 동물농장의 가엾은 동물들이 되는 게 아닐까? 잘못한 건 없지만 증오로 가득한 저들의 복수심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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