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시비를 따집니다만 그 시비 가르기가 어려운 것은 세상사가 흑백이 분명한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파이를 공평히 가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성적으로 공평히 가른다는 것은 영원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잣대로 가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공평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 격암
그러나 세상사 기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우리는 커다란 사회적 약속을 하고 어떤 것은 성문화해서 투표로 권위를 부여합니다. 그 같은 것이 전통적 도덕이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념이나 헌법 같은 상위법들입니다.
문제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커다란 합의에 동의한다고 해도 각각의 세부 사안으로 가면 워낙 구멍이 많거나 우길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변화는 대개 저절로 쉽게 일어나서 싸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사회개혁과제란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들이 서로 다르게 세상을 보고, 서로 다른 만큼 눈감고 귀 막고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개혁이나 사회적 발전에는 강력한 사회적 반성이 따라야 합니다. 강력한 사회적 반성이란 많은 사람이 '쪽팔려서' 말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창피한 게 아니라 '쪽팔린' 이유는 사는 일이 우아하게 나의 치부를 변명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고 그야말로 저질의 쪽팔린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 한번 감고 생각 한번 고쳐먹으면 사는 게 편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전혀 착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시민적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사람이 살다가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슬쩍 넘길 수도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창피한 인생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고 삽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신세를 지면 은혜를 입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이용하면 그건 착취를 하는 것입니다. 은혜만으로 살면 좋겠으나 착취란 단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경쟁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더 위로 더 위로를 생각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취를 관행이라며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며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정당화하고 행하고 있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많이 삽니다. 그래서 경쟁이 심한 곳은 피합니다만 뜻한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파이를 이성적인 합리론자들이 자르는 게 아니라 쪽팔린 인생들이 자를 때 파이는 남아돕니다. 그걸 잘 잘랐느니 뭐니 하는 소리도 안나오고 그게 합리적이라든가 하는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틀렸다는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껏 가끔 눈물이 나올 뿐이지요.
이 사회에서 가장 '쪽팔린' 인생들이 아예 더 길길이 날뛰는 꼴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보다 덜하지만 여전히 쪽팔린 인생들이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웅인척해서 뭐하나, 인생이 그렇지 뭐하며 우기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코앞입니다. 새해에도 운동 많이 하고 머리단련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고 가족에게도 빚지지 말아야 하고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빚 그만 져야겠습니다.
개혁이란 더 많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작업인지 모릅니다. 어떤 행동이 가장 다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기게 할까요? 진성당원제를 강조하며 당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행하지도 않고 원칙도 없는 공천에 자기 사람 심기만 잔뜩 하고 평일에 전당대회 해서 직장 가진 진짜 생활인 당원들은 오지 못하게 만드는 일을 하면 사람들이 개혁에 동참할까요? 그들을 보며 부끄럽다고 여길까요? 연말연시에 사진이나 찍으려고 언론 불러서 가식적으로 잠깐 행동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진심을 느낄까요?
민주화 시대에 투쟁하고 감옥가고 고문당한 그들을 보며 많은 사람은 부끄러워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이 그 시대 개혁의 밑거름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지금도 물어야 합니다. 누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까.
5%가 지지하는 대통령이지만 노무현이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저는 한나라당측 인사를 보며 부끄러워한 적은 외국에서 밖에 없습니다. 외국사람에게 부끄럽더군요. 저런 사람들이 한국사람이고 한국의 명망 있는 정치가라는 사실이.
새해는 정치문제로 시끄러운 해이고 정치가 많은 주목을 받을 해입니다. 두 번째 의미로 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좀 덜 미디어에 나오기 바랍니다. 첫 번째 의미로 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나와도 좋습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한국에는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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