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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친일 사진전

 

 

 

 

 

당시 박정희졸업앨범속의 박정희.

 

대일본제국 만주육군군관학교의 박정희생도.

독립군은 이렇게 무참히 소탕.도륙되었다.중인 일본군.


박정희는 하늘에서 별따기보다 어려운 
조선인으로서 군관이요, 소대.지휘관이었다.
일본군이 짐승 쯤으로 여긴 식민노예 조센징에게
누가 지휘권과 무기를 함부로 주겠는가?

독립군을 향해 박격포를 발사하는 일본군

 

 

칼과 총을 겨누며 숲을 수색하는 일본군.
쫒기던 독립군이 이 음습한 갈대숲에서 걸리면
어찌 되었겠는가?

 

즉결 사형중인 일본군.
아! 독립투사여

 

행진중인 일본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에서 박정희는
이렇게 행진했다

 

경도시민에게 답례하는 일본군.
언제나 대검을 장착한 저 무시무시한
착검소총!

독립군을 소탕하러 가는 일본군.
"독립운동하지마!
3족을 다 죽인다!"

 

총.칼을 높이 치켜들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일본군.
박정희는 "우리천황페하 천천세 만만세!"
하며 목놓아 외치는가?

1942년 3월23일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는
박정희. 수석졸업했다."
수석
"이다!
이것이
문제
다.
도대체 얼마나 충성과 천황공부를 죽도록 했기에...
누구는 죽도록 조국독립을 위해 마지막 피까지
다 흘리고누구는 죽도록 출세를 위해 원수의 편에 섯는가?
그래서 대표로 나와 천황폐하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내용이 담긴 졸업사를 낭독한다

완전 천황의 맹충성견 일본군 그대로!

 

사범학교는 하위권,천황 충성공부는 만주군관학교 수석,
그리고 일본육사 3등...어떻게 설명해야하나?독립투사 섬멸은 몇등?

증거가 다행히 남아있다.
만주국 정부공보.

박정희가 배속된 독립군토벌사상 악명높았던
'제8군보병부대'의 주 전투 위치.

열하의 '반벽산' 부근에서 주로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저 땅에 그 얼마나 많은 조선의 젊은
독립투사들이 박정희를 포함한 일본군의
총.칼에 쓰러져 이름도 없이 영광도 없이
묻히었는가?

오!원통하도다!독립투사들이여!
이름도 없이 저 차디찬 땅에서 원혼이 되어
떠도누나!
누구는 친일하여 지금까지 영광의
이름이 되고...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전투에 나간
증거를 보이는 증인.

자료의 내력을 설명하는 증인.하나하나 조사해서 쓴 귀중한 증거.

만주국 통치와 내막-만주국 관원의 공술.당시만해도 만주는 우리땅이었다.

1957년 류뷴필공이 제공한 자료.

1944년 4월 1일부터 12월 1일까지 박정희는
만주
'제6관구 혼성 제7여단'에 배속 되었다.

"보병 제8단은 열하성 청룡현 서남부 반벽산
지역에서 독립군을 토벌하고 있었다"
라고
명백히 기록 돼 있다.
당시 단장은 '양숭무'였다

보병 제8단은 열하성 청룡현 서남부 반벽산| |지역에서 독립군을 토벌하고 있었다"   

부대개편이 있었다."보병제8단은 계속해서 열하성에서 독립군
토벌을 계속했다"
라고 명백히 기록 돼 있다.
단장은 '당체영'이었다.

 

왕지엔중-박정희와 동기생.

 

박정희는 어떻게 생활했는가?
:"일본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천황의 가미가재병들과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일본군과 전혀 다르지 않게 생활했어."

 

박

정

박정희는 43년에 독립군 토벌을 시작하여
45년 해방까지 거기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며
있었다.
수많은 전투와 독립군 사살이 있었다.
무기와 군수.숫자에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열악했던 불쌍한 우리의 독립.광복군!

누구는 우리를 적에 앞장서 죽이고
누구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는가?



2006-12-30 0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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