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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거짓말했던 박정희

 

한평생 거짓말했던 박정희

 

  (▲ 박정희가 "본인은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는 민정불참 선서식을 하는 장면 )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끝없는 거짓말을 해왔다.

박정희 집권 18년을 살펴보면 61년 5.16 군사쿠테타, 69년 삼선개헌,72년 유신개헌을 통해서 권력을 잡고,장기집권,영구집권을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박정희는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 놓으며 속여왔다. 구체적으로 박정희가 어떻게 거짓말을 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민정 이양 공약과 대통령 불출마 선언.

 

박정희의 군부세력은 61년 5.16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6가지의 '혁명공약'을 발표한다. 그중 한가지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는 '민정이양' 공약이다. 민간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기고 군은 본연의 자리로 복귀하겠다는 공약이다.

 

또한 박정희는 63년 2월 27일 시민회관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치를 민간인에게 넘기고 자신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서식을 했고, 이 장면은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당시 상황을 김준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는(박정희) 몇 번이고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을 꺼내 닦기도 했다.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박정희 의장의 언동은 진실하게 보였으며 어느 한구석에서 거짓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주연배우의 역을 완벽하고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보여주고 싶었던 사상 최대의 정치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공약과 선언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63년 대선에 박정희는 출마했고, 결국 그의 눈물은 철저한 국민 기만극에 불과했으며,또한 이것은 박정희 거짓말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삼선 개헌 절대 없다. 이승만처럼 되지 않겠다. 

 

67년 치러진 총선은 철저한 부정선거였다. 온갖 정치공작과 관권,금권 선거가 자행되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나중에 박정희에게 토사구팽을 당하고 결국 살해되었던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다. 67년 총선에서 이처럼 철저한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던 이유는 공화당이 국회 2/3 의석을 확보해 박정희를 위한 삼선개헌을 하자는데 그 숨은 목적이 있었다.

 

박정희의 임기는 71년으로 끝나며 원래 더 이상 대통령을 할 수 없었는데, 헌법 개정을 통해서 박정희를 또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 개헌선인 국회 2/3 의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67년 박정희는 목포에서 출마한 신민당의 김대중을 낙선시키기 위해서 목포에 내려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여러가지 지역공약과 함께 당시 목포에서 출마한 공화당 후보 김병삼의 지원 연설에까지 나섰다.

 

다음은 67년 5월 26일 중앙일보 기사다.

 

지방시찰을 통해 공화당 의원 후보 등을 간접 지원해 온 박 대통령은 26일 목포에서 첫 유세를 벌임으로써 선거전의 제1선에 나섰다. 정부각료들은 이와 더불어 목포에서 이례적인 각료간담회를 열었을 뿐 아니라 정일권 총리의 남·서해안 시찰 및 그 밖의 각료들의 빈번한 연고지 순시 등으로 공화당 후보 집중지원의 인상 짙은 「행정활동」을 활발히 시작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은 26일『헌법을 개정하여 3선을 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상오 9시 30분부터 약 25분간 목포 역전에서 공화당 후보인 김병삼씨의 지원유세에 처음으로 나선 박정희 공화당 총재는 약 2만명에 이르는 청중에게 야당이 주장하는 개헌설에 대해 이와 같은 그의 소신을 밝히고 『대통령으로 나를 뽑아 준 이상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공화당의원을 많이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박정희 총재는 특히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여당을 뽑아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김병삼씨가 장관직에 있으면서 출마를 꺼렸으나 내가 가장 신임하는 박력있는 일꾼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출마를 권유했던 것』,『김병삼씨를 뽑아주면 그와 협조하여 이 고장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박정희는 당시 이렇게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 했고, 또한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삼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박정희는 기자회견에서 삼선개헌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고『정치인은 진퇴를 분명히 해야한다』면서『나를 제2의 이 박사로 만들 셈이냐』고 단호히 발언했다. 장기집권을 시도하다가 국민들에 의해서 쫓겨난 이승만(박사)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이런 발언과 약속은 모두 거짓이었다. 5.16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내세웠던 "민정이양" 공약과 "대통령 불출마"  선언에 이어서 또다시 공수표가 되버렸다. 69년 공화당은 박정희의 삼선개헌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번이 확실한 마지막, 영구집권론은 인신공격

 

권력의 화신 박정희의 거짓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71년 김대중과 맞붙었던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나라 국가예산은 5242억원이었는데, 박정희는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규모의 600억-700억의 돈을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6백억 김종필 증언,7백억 강창성 증언,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의 책 <정치공작사령부 남산의 부장들> 에서)

 

이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선거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이 되자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이라며 또다시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71년 4월 26일 중앙일보 보도를 보자.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가 될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번 국민이 나를 신임해준다면 보다 대국적인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여당에 대해서는 정권을 계승할 유능한 후계 인물을 육성하는데 힘쓰고 야당에 대해서는 정권인수 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온갖 협력과 지원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중략)

박정희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25일 『나를 한번만 더 뽑아달라고 하는 것이 이 기회가 마지막임을 확실히 말해둔다』고 말함으로써 4선 출마를 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박 후보는 이날 하오 2시 서울 장충공원에서 열린 마지막 대도시 유세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부정부패를 뿌리뽑은 후 정부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박 후보는 『요즘 야당 사람들은 나를 이번에 또 대통령으로 뽑으면 총통제를 실시하여 죽을때까지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 인신 공격하는데 이 자리서 분명히 말하거니와 내가 한번만 더 뽑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 기회가 마지막임을 확실히 해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박 후보는 24일의 부산 유세에서 『재작년 국민투표 때 내가 벌인 방대한 사업을 매듭짓기 위해 한번만 더 나가도 되겠느냐고 물어,여러분들이 두 번·세 번이 아니고 한번 만이라면 좋다고 하여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처음으로 4선 출마를 하지 않을 뜻을 밝혔었다.

 

국민들에게 이처럼 "이번이 마지막"임을 여러차례 강조한 박정희는 72년 10월 유신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단체를 통한 대통령 간접 선거 방식으로 바꾸어 종신 집권을 시도한다.

 

72년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를 제8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전체 대의원 2359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박정희는 2357표를 얻었다. 2표는 무효표, 그야말로 100%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71년 대선때 김대중이 예상한 그대로 박정희 영구집권의 1인 총통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후 수많은 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엄령과 9번의 긴급조치등의 폭압 통치로 마지막 순간까지 대통령 자리에 집착하다 결국 79년 10월 김재규의 총탄으로 박정희 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박근혜는 이런 박정희를 '사심없는 지도자' 라고 높이 평가하지만 '사심없는 지도자'이기는 커녕,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국민들을 끊임없이 속여왔던 '사심으로 꽉찬 지도자' 며 '독선에 빠진 독재자'라는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2007-01-11 17:56:51
606 번 읽음
  총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김서방 '07.1.12 11:57 AM 신고
    거짓말 또 없으삼?
    저걸 거짓말이라고 포장하는 수준도 대단하군여..
    김대중 노무현 거짓말 시리즈를 아예 여기다 다 나열핼라해도 가치가 없어여..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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