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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장군은 민주화의 영웅이다

 
최상천 “김재규 의사가 대한민국을 구했다”

또 한번의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24일은 민주화운동 진영, 수구진영 모두 외면하고 있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알몸 박정희'의 저자 최상천 선생은 '김재규 의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김재규 의사가 대한민국을 구했다'고까지 평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터뷰 전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승호(이하 지) - 오늘(5월 24일)이 김재규 장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25주년이 되는 날 아닙니까?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최상천(이하 최) - 맞습니다. 오늘이 김재규 의사가 처형을 당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인데 그를 기리는 곳은 단 한 단체뿐입니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박정희를 살려낸 것이 민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민중이 ‘박정희 향수’에 취해서 다음 대선에 수구세력이 집권한다면 아주 심각한 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은 이미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 현재는 죽은 박정희를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이럴 때 김재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박정희의 죽음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쏘았지만, 박정희는 민중의 가슴 속에서 영웅으로 부활했습니다. 박정희가 누구입니까? 최고의 친일파에다, 헌정을 파괴한 쿠데타 주도자이고, 유신체제라는 역사상 최악의 일인지배체제를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드뭅니다. 한국인의 상식이죠. 말년에는 100명 넘는 예쁜 여성을 불러다가 성폭행을 일삼았던 인물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쳐부수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인륜까지 져버린 인물이 대한민국의 민중적 영웅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가치관이 땅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뒤집혀지지 않았습니까?
국가의 정체성을 쳐부수고 국민주권을 탈취하고 나라사람을 괴롭힌 최악의 인물을 최고 영웅으로 숭배한다는 게 어째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남이나 북이나 집단 피학증에 빠진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이없어도 냉정해야 합니다. 흥분해서 덤벙대기에는 사태가 너무 심각합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큰 위력 발휘하는 박정희
지 - 그런데도 박정희는 영웅시되는 반면 김재규는 어디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 - 그걸 분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박정희는 민주공화국 파괴의 주범에다 인륜 파괴범으로 입에 올리기도 꺼리는 인물이 되어 있을 겁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러시아의 스탈린처럼요.
반면에 김재규는 민주화의 영웅으로 인정받았겠죠.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가 되어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80% 정도는 박정희를 대한민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의 호칭도 ‘박통’입니다. 20% 이상의 한국인은 박정희를 5000년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평가합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개 박정희가 1등을 하고, 세종대왕이 2등을 차지합니다. 최악의 민주공화국 파괴자가 한글 창제를 통해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한 세종대왕을 능가한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박정희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박정희가 5000년 역사에서 최초로 가난을 물리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독재자 숭배는 남이나 북이나 비슷한데, 남에서는 18년 권력을 잡은 박정희를 보고 5000년 가난을 극복시켜준 ‘근대화 혁명가’로 숭배합니다. 북에서는 36년 정권을 잡은 김일성을 5000년 이래 처음으로 사대주의를 청산한 ‘민족의 태양’이라고 떠받듭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역사와 한국인은 뭐가 될까요? 가난에 찌든 거지에다 ‘대국 섬기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노예집단이죠. 이런 한심한 역사를 가진 종족이 5000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죠.
이런 최하등 종족 앞에 오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박정희, 김일성 같은 영웅이 나타나서 가난과 사대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새 역사를 창조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대단한 영웅사관 아닙니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지독한 민족자학이 숨어 있고요. 남과 북의 독재자 숭배는 종교의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근대화 혁명가’니 ‘민족의 태양’이니 하는 게 얼토당토않은 ‘이바구’거든요. 그런데도 대중은 박정희를 신격화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언론에서는 김재규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를 않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몰매만 맞을 테니까 아예 외면해버리는 거죠.
민주화세력도 김재규를 완전히 무시한다
지 - 민주화운동권이나 민주정부도 김재규를 외면하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최 - 어떻게 보면 더 심하죠. 독립과 민주화, 국가주권이나 국민주권 같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열사, 의사라고 부르는데, 김재규는 열사, 의사는 물론이고 그 흔한 ‘민주인사’에도 끼워주지 않습니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 연대회의에서 펴낸 2005년도 ‘열사수첩’을 보니까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61년 사망)에서부터 농민운동가 권종대(2004년 사망)까지 331명을 올렸는데, 거기에도 김재규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김재규만큼 많이 바친 사람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유신체제나 군사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핵심 독재자를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재규만이 핵심을 제거하고 유신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대신 자기의 모든 것을 민주재단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이 성공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등등 권력을 잡았고 출세도 했습니다. 이들 중에서 박정희를 제대로 비판하는 사람 봤습니까? “독재는 나빴지만 경제개발에는 공로가 있다.”고 하나마나한 공과타령만 읊지 않습니까. 안 건드리는 건지 못 건드리는 건지, 아무튼 박정희는 성역이고 김재규는 금기가 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사정은 민주화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는 있어도 김재규에 대한 평가나 복권 문제는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중에서는 그래도 김영삼이 나은 편입니다. 5.16을 쿠데타라고 명확하게 규정한 건 김영삼이거든요. 김대중은 동진정책을 한다면서 박정희 기념관 지원까지 약속했잖아요. 이런 사람 눈에 김재규가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김재규 얘기 안 하기는 노무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고도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오직 한 곳에서만 김재규를 잊지 않고 기리는데요, 10.26 이후에 ‘김재규의 진실’을 알게 된 변호사와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든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라는 단체입니다.
안중근, 김구의 역사적 공로가 무엇일까?
지 - 그럼 김재규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 - 김재규는 이렇게 무시되어도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역사적 공로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를 평가할 때, 정치, 경제, 교육, 외교 등등 분야별로 점수를 매겨서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듯한 방법이지만 점수로 매기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빼앗은 돈의 액수를 가지고 강도한테 점수를 매기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강도는 재판을 해서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정당성이 없거나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한 인물에 대해서는 우선 정체성 평가부터 해야 합니다. 민족 독립과 민주공화국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걸 먼저 평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약간 문제를 일으킨 정도는 괜찮지만, 독립운동을 무찌르는 역할을 했거나 민주공화국을 쳐부수는 역할을 했다면 그건 안 되죠.
민족의 독립과 민주공화국의 실현은 3.1운동 이후 한국민족의 역사적 합의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이걸 깨부순 사람을 점수로 매겨가지고 정치 몇 점, 외교 몇 점, 경제 몇 점 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강도 점수 매기기하고 같은 거죠.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에 대한 1차적 평가 기준은 당연히 민주공화국에 대한 공과라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민주공화국의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둘째 민주공화국의 건설과 발전에 얼마나 공로가 있는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이걸 평가해봅시다. 나는 다섯 사람을 평가해보고 싶은데요. 안중근, 김구, 박정희, 김대중 그리고 김재규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앞의 네 사람은 많이 존경받거나 높이 평가되는 분들이고, 이들과 김재규를 비교해보자는 겁니다. 누가 민주공화국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지 한번 따져봅시다.
우선 안중근을 생각해봅시다. 안중근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기 7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안중근의 공로는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 사건은 일본의 침략을 세계에 알리고,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닙니다.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보면 안중근의 독립정신과 저항정신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역사적 공로는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냉정하게 보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김구의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을 평가해 봅시다. 우선 김구의 독립운동 공로는 거의 일본 요인에 대한 테러였습니다. 이게 사실은 문제인데요. 그러다보니까 연합국이나 중국으로부터도 정부로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김구의 독립운동 정신과 기상은 아주 드높았지만 이룬 것은 별로 없습니다. 고집스레 임시정부를 지킨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국해서도 그렇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분할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은 의지나 감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정한 정치지도자라면 현실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김구가 한 일은 통일국가 수립에 역행했습니다. 그런 핵심이 반탁운동 아닙니까?
분단의 1차 책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입니다. 특히 38선을 제안한 미국한테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김구의 반탁운동입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좌우가 함께 참여하는 임시조선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연합국이 최장 5년 동안 후견을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우익이 임시조선민주주의정부 수립 약속은 외면하고 문제를 ‘신탁통치’로 몰아가버렸어요. 마치 한국이 다시 식민지로 되돌아가는 듯이 난리를 피운 겁니다.
냉정하게 보면 미국과 소련이 동의하는 <임시조선민주주의정부 수립>이 통일국가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김구는 반탁운동이라는 명분을 걸고 <임시조선민주주의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데 최고사령관 역할을 한 겁니다.
그 결과 통일정부 수립은 물 건너가고 한국민족은 극단적인 분열과 대결로 치달았습니다. 김구는 분단에도 아주 큰 책임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덧붙여서 얘기하자면 분단의 3차 책임은 분단국가를 추구한 이승만과 김일성이 져야 합니다.
지 - 김구 선생이 뒤늦게나마 분단국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는 등등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최선을 다 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최 - 뒤늦게라도 깨달은 것은 다행이지만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것은 기차 떠나고 역으로 달려가기죠. 그리고 왜 하필 북으로 달려갑니까? 엉뚱한 역으로 달려간 겁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남쪽에서 이승만에 대항해서 분단국가 저지운동을 펼쳐야 하는 겁니다.
아주 냉정하게 말해서 김구의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은 이룬 게 별로 없습니다. 김구 개인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특히 어려운 시대의 지도자는 순정과 의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바람직한 역사’를 창출하기 위한 선구자적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지 - 아주 가혹한 평가인데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김구를 존경하는 이유는 뭡니까?
최 - 김구가 보여준 불퇴전의 의지를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 하나 정서도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마지막 순간을 통일을 위해 바친 김구한테로 쏠리는 것이 아닐까요? 실패한 지도자, 비련의 주인공에 대한 민중적 일체감도 작용하는 것 같고요. 이 얘기는 이 정도로 하죠.
지 - 아주 엄중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박정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박정희 식 인간형이 넘친다
최 - 지금 박정희 보고 독재자가 아니라거나, 친일 안 했다거나, 쿠데타 안 했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박정희 숭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숭배자들도 박정희의 유일한 공로는 경제개발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무슨 짓을 하든 경제개발만 하면 존경한다는 얘기거든요. 까놓고 말해서 돈이 최고다 이런 얘기입니다.
지 - 박정희가 경제개발에 큰 공로가 있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 - 그럴까요? 경제개발을 최고 권력 한 사람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 옳을까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할 때, 다시 말해서 초기산업화에는 박정희의 의지만 중요한 게 아니고 자본, 노동, 시장이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산업화의 공로는 자본을 많이 빌려주고 시장을 열어준 미국의 공로가 아주 큽니다. 기술을 많이 빌려준 일본도 공이 있고, 저임금 하에서도 질 높은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한 노동자도, 노동자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희생한 농업인들도 공이 있습니다.
초기 산업화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일으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노동력의 수준과 노동시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한국인의 능력과 헌신은 추종불허였죠.
사상초유의 세계 기능대회 9연패 실력에다,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주당 100시간 이상 노동했습니다. 이런 능력에다 이런 시간을 일하고도 고도경제성장 못했다면 말이 아니죠.
또 한 가지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런 희생을 감수하며 형편없는 가계소득을 견뎌내고 지탱해준 어머니의 공은 누구보다도 큽니다. 그래서 저는 ‘한강의 기적’이 노동자들의 기적적인 장시간 노동과 어머니의 거룩한 희생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경제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재벌과 권력에게 돌아가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대다수 한국인이 힘을 합쳐서 이룬 ‘한강의 기적’을 권력과 재벌이 독점해버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빼앗긴 민중들이 오히려 박정희를 ‘경제개발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현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지 - 그렇더라도 박정희의 독재체제가 산업화에 공헌을 한 것도 사실 아닙니까?
최 - 획기적 경제성장을 이룬 독재자나 독재세력은 예상외로 많습니다. 그런 인물을 꼽으라면 히틀러, 스탈린, 수하르토, 50~60년대 김일성, 등소평 등등입니다.
히틀러는 유럽의 3류 국가 독일을 영국에 버금가는 제3제국으로 만들었고, 스탈린은 소련을 낙후한 농업국가에서 미국과 맞먹는 공업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불과 10여년 만에 이룬 업적입니다. 수하르토도 연 평균 10% 이상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김일성도 50~60년대에는 ‘대동강의 기적’이라고 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등소평과 중국공산당이 이룬 경제성장은 규모면에서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경제성장을 이유로 독재자를 영웅화하는 나라는 한반도의 남과 북뿐입니다. 독재자를 ‘근대화혁명가’니 ‘민족의 태양’이니 하면서 영웅화하고 신격화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대다수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적으로 신민(神民)을 못 벗어났다는 얘기거든요. 신의 종이죠. 나는 이 대목이 가장 서글픕니다.
지 - 누구의 공로든, 박정희가 처음으로 경제개발에 시동을 걸었고, 산업화,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것마저 부정하면 안 되죠.
최 - 그럴까요? 지 선생은 경제개발의 원조가 박정희라고 생각하세요? 한번 따져 볼까요? 산업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인프라 구축인데요, 과연 누구 공이 제일 클까요?
박정희가 아닙니다. 일본은 한반도에다 철도 5000km를 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 만든 고속도로는 1200km쯤밖에 안 됩니다. 중요 항만도 거의 일제시대에 개발되었습니다. 철로와 고속도로가 어느 게 더 건설하기 어려운지는 묻지 맙시다. 이렇게 본다면 박정희가 이룬 산업화는 많아야 일본제국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깁니다.
지 - 그렇다면 일본 우익이 “일본제국이 한국의 산업화 기반을 닦아줬다”는 말은 맞는 겁니까? 어떤 사람들은 일본은 수탈을 위해서 철도를 놓고, 박정희는 건설을 위해서 고속도로를 놨기 때문에 본질이 다르다고 얘기하던데 그런 얘기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최 - 박정희를 옹호하는 논리가 맞다면 일본 우익 얘기도 맞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개발을 수탈이라고만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계산을 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 한국에서 수탈을 해간 것보다 일본이 한국에 투입한 예산과 자본이 훨씬 많을 겁니다. 사실 조선에서 빼앗아갈 것도 별로 없었어요. 이렇게 본다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플러스가 되었으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박정희의 산업화는 일본제국의 복사판이었습니다. 재벌에 모든 국가자원을 집중하고, 노동자들이 꼼짝 못하게 공권력이 막아주고, 농산물 값을 낮춰서 농업인들이 농촌을 떠나서 산업전사(!)가 되도록 만들어주고, 아무튼 경제성장정책이라는 것이 모든 재원을 재벌에게 몰아주는 방식이었거든요. 이게 일본제국하고 똑 같았어요. 똑같은 일을 해도 일본이 하면 수탈이고 박정희가 하면 건설인가요?
박정희의 ‘재벌 몰아주기’는 겉모양은 일본제국하고 비슷했지만 속은 더 나빴습니다. 군국주의가 나빠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일본 정치인들은 비교적 깨끗한 편입니다. 사무라이 후예가 돈맛을 알면 곤란하니까요.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재벌한테 정치자금 받는 걸 제도화해버렸어요.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차관 도입할 때 5% 리베이트를 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가 청빈했다고 얘기하는데요, 박정희가 이런 국가차원의 구조적 부패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박정희 옹호자들은 박정희 말만 나오면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경제제일주의라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면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개발이 최고라고 하는 시각으로 보면 독립운동한 사람은 일본제국의 경제개발을 방해한 반역자가 되는 겁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건 천추의 한이 됩니다. 독립 안 하고 그대로 있었으면 소득 3만 달러는 거뜬했을 텐데 말입니다. 민주화운동한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역시 경제발전을 방해한 반민족 행위자가 됩니다.
이런 눈으로 베트남전쟁을 보면 어떨까요? 한국 청년이 5000 명이나 죽고, 귀신 잡는 한국군인들이 베트남사람 5만 명을 죽인 더러운 전쟁이든 말든 돈이 되었던 건 확실합니다. 경제성장에 도움도 되었고요. 돈이 최고라는 가치관, 경제성장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베트남전쟁은 ‘더러운 전쟁’이 아니라 한국에 기회를 만들어준 ‘아름다운 전쟁’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돈밖에 모르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박정희 식 사고방식이고, 박정희 형 인간상입니다.
지 - 최 선생님이 보기에 박정희는 민주공화국 파괴범일 뿐이고, 경제적 공로도 뻥튀김 된 것이다. 그런 얘기가 되는 겁니까?
최 - 그 정도가 아닙니다. 박정희는 민주공화국만 파괴한 것이 아니고 인륜과 사회규범까지 파괴해버렸습니다.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해 일왕에게 충성혈서를 쓰고, 안전한 귀국을 위해 광복군으로 끼어들어서 독립군 행세를 하고, 남노당 간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살아남기 위해 자진해서 동지의 명단을 넘겨주고, 4.19의 혼란을 틈타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정이양을 약속하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대통령에 출마하고, 멋대로 삼선개헌을 하고, 김일성과 손잡고 7.4 공동성명을 발표해놓고는 통일 분위기를 틈타서 유신체제를 만들고... 자기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는 가족도 친구도 윤리도 다 팽개쳤습니다.
이런 철면피 인간의 길을 철저하게 살았던 인간이 박정희입니다. 그러고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런 독재자가 5000년 이래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지 -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니까 전두환의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전방의 병력을 빼와야 하는데, 전방의 상황이 걱정 돼서 병력을 움직이지 못하는 점을 전두환이 역이용한 것으로 되어 있던데요. 말로만 조국과 민족을 위했지, 자기 이익을 위해서 국가안보를 볼모로 삼은 행동 아니었습니까? 그것 역시 박정희 형 인간상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최 - 맞습니다. 그러니까 공적인 것을 사유화해버리는 그런 행동, 당연히 나라사람에 대해, 학생에 대한, 소비자에 대해 져야 할 의무를 자기의 권력으로 만들어버리는 인간형입니다. 민주화 이후 훨씬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이런 인간형은 한국에 널려 있습니다. 정치인이 전형입니다. 국회는 주권자에 대한 의무를 지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정치자금 받고, 권세를 부리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검찰, 경찰 같은 정보수사기관은 그 횡포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죠.
아직도 그렇습니다. 교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윤리거든요. 그런데 한국의 많은 교사들은 학생 위에 군림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기관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권력기관이기를 거부하고 교사윤리를 지키려고 하는 교사가 절대로 30%가 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적인 것을 사유화해버리고, 의무를 권력화하는 한국적 인간이 너무나 많이 양산되어서, 한국 사회는 공공성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거리의 간판만 보면 금방 알아요. 그런 예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얘기를 다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박정희 식 인간형을 청산하지 않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도 진정한 인간적 신뢰도 생겨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언제나 나의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국민의 정부’였나 ‘기득권의 정부’였나?
지 - 김대중의 역사적 공로는 어떻습니까?
최 -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지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당연히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김대중은 가끔 민주화의 대의를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종속시켰습니다.
광주항쟁을 통해 호남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으면서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망월동 묘지에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호남사람들이 ‘우리의 지도자’라며 봐줘서 그렇지 사람의 도리가 아니죠.
정권을 잡고 난 뒤에 김대중 정부가 국가민주화와 남북평화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6.15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의 적대적 대결관계를 평화와 상호협력관계로 바꿔놓은 것은 중대한 역사적 기여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시대의 돈의 흐름을 보면 누구를 위한 민주화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IMF 위기라고는 하지만, 공적자금 150조를 거의 다 재벌과 금융기관에 퍼부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시민을 위해 쓴 것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서민을 위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한 일은 중학무상교육과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든 것 정도인데, 이것 가지고 시민을 위해 일했다고 하면 코미디죠.
경제적 평등이라는 면에서는 김대중은 거꾸로 갔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소비를 촉진시킨다면서 카드를 마구 발급해줘서 결국 중산층이하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거의 400만 명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가계부채가 4000만 원에 육박하고, 이런 민중의 경제적 파탄이 김대중 정권 시절에 시작된 겁니다. 이렇게 볼 것 같으면 김대중은 민주화, 남북평화에 크게 기여했으나, 그 혜택을 입은 층은 나라사람의 10%를 넘지 못했다는 겁니다. 반 이상의 나라사람은 경제적으로는 피해를 봤다는 겁니다.
김재규의 ‘초미니 민주혁명’
지 - 마지막으로 김재규 얘기를 해 주시죠.
최 - 김재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유신의 핵심을 제거했습니다. 그래서 유신체제 타도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권은 이런 사실을 너무나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가정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요, 예를 들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이지 않고, 민중의 힘으로 박정희 정권을 타도했다면 ‘박정희 향수’는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민주화도 훨씬 잘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런 ‘라면 역사’가 3류 소설을 낳습니다. 라면, 라면을 들먹이면서 역사를 가정해서 한편의 소설을 쓰는 거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일본이 조금만 늦게 항복했더라면, 박근혜가 남자였더라면, 유시민의 무게가 5킬로만 더 나갔더라면 등등 정말로 역사를 얘기할 수준이 되려면 이런 유치한 얘기는 넘어서야죠.
박정희 정권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정권이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은 본질이 김일성 정권하고 거의 같아요. 둘 다 진짜 천황체제거든요. 좀처럼 안 무너집니다. 김일성체제처럼 박정희체제도 민중의 힘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천황제도가 미국 원자폭탄 가지고도 안 무너지는 것 보세요.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합시다.
10.26은 극소수 사람들이 유신체제 타도를 위해 그 핵심인 박정희를 제거하기 위한 거사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10.26을 ‘초니미 민주혁명’이라고 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열기 위한 민주혁명의 역할은 다 했지만, 최소한의 희생으로 핵만 제거한 ‘핵 제거 혁명’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더 좁혀서 말하면 김재규가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유신의 핵심인 박정희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으킨 ‘1인 민주혁명’이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지 - 초미니 민주혁명이든 1인 민주혁명이든, 박정희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유민주주의로 가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혁명이 실패한 겁니까?
최 - 그런 얘기를 하실 줄 알았어요. 자유민주주의는 둘째 문제이고 김재규가 박정희체제를 무너뜨린 건 사실 아닙니까? 그것만도 엄청난 성공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것을 김재규의 탓으로 돌리면 곤란하죠. 김재규의 혁명은 아주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재규가 성공하면 쿠데타가 되고 실패하면 혁명이 됩니다.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면 민주공화국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걸로 성공이죠.
그러나 김재규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건 쿠데타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게 김재규의 민주혁명을 이해하는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김재규는 자기가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장이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자기 목숨과 유신체제를 맞바꾼 것입니다. 김재규는 이런 생각을 일관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신군부에 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도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단합해서 싸워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대통령 꿈에만 도취했으니 말이 아니었죠. 김재규의 역사적 공로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협력한 허물은 있지만, 유신체제를 타도한 민주혁명은 한국 역사상 최대의 민주화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재규가 진짜 영웅이다
지 - 대부분 너무 과장된 평가라고 할 것 같은데요. 박정희를 죽인 사실에 그렇게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최 - 그렇겠죠. 그러나 그런 견해는 박정희가 어떤 인물인지, 유신체제가 본질이 뭔지 잘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유신체제와 유일체제가 진짜 천황체제거든요. 일본의 천황체제보다 훨씬 더 신국체제에 가까운 농도 99%의 천황체제입니다.
일본 전 총리가 일본을 신국이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거든요. 신국이라는 게 뭡니까? 신이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 국가를 만들어놓고 사람을 통치하는 도구로 쓰는 체제 아닙니까? 일본의 천황체제가 바로 전형적인 신국체제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왕은 신 같은 존재, 절대적 존재로서 국가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천황은 갈아치우거나, 제재하거나, 벌을 주거나 할 수 없는 국가 위의 존재입니다.
지 - 조선시대의 왕하고는 다릅니까?
최 - 조선의 왕은 절대 국가 위의 존재가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조선의 왕은 유교이념을 벗어나면 곧바로 비판을 받고, 제재를 받고, 심하면 왕위까지 빼앗깁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당했잖아요. 조선은 유교 국가이기 때문에 유교와 국가가 왕 위에 있습니다. 이건 공산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인도 공산주의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는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고, 당서기는 국가 아래 있는 당의 대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일본식 천황체제, 신국체제는 말이 신국체제, 천황체제지 사실은 천황을 국가 위에 올려놓고, 일본 극우세력들이 갖고 논 체제거든요. 왕이라는 게 폼만 잡았지 실권이 별로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일본제국을 철저하게 배운 박정희와 김일성은 진짜 천황체제를 구축합니다. 그러니까 박정희와 김일성이 국가 위에 올라타고, 국가를 국민을 통치하는 사적수단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국가를 사유화해버린 겁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국가의 지도이념이라고 헌법에다 못을 박아놨어요. 개인의 사상이 국가 위에 있는 겁니다. 반면에 박정희는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하고, 판사임면권을 통해서 사법부도 완전히 장악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일성이 이념적 차원에서 천황체제를 구축했다면, 박정희는 실질적인 천황체제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절대권자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버립니다. 북한도 그랬고, 남한도 그랬습니다. 청와대에서 반상회까지, 대한민국이 천황의 동원시스템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삐져나와서 체제에 저항하는 게 가능할까요? 목숨 걸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삐딱하면 사돈의 팔촌까지 족치는 나라에서 자기 하나 목숨 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패가망신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일단 이런 천황체제가 만들어지고 나면 간이 배밖에 나오고, 신체포기는 물론이고 가족포기까지 각오한 사람이 아니면 천황체제에 반항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반항하면 곧바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건 유신시대의 상식이요, 문화요, 무의식이었습니다. 지승호씨는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시죠?
지 - 그렇다면 천황체제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겠네요?
최 - 그렇습니다. 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절대자를 죽이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부의 힘으로, 내부의 힘으로, 권총으로, 원자폭탄으로, 어느 것이든지 좋습니다. 죽이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천황체제의 종식은 정말로 중요한 역사발전입니다. 천황체제가 있는 한 민주광화국은 영원히 실현할 수 없고 따라서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짝퉁일 뿐입니다. 그런데 남쪽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기 때문에 유신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신군부 아이들이 설치는 등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민주화에 성공했고 IMF 위기도 성공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지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천황체제 청산과 IMF 위기 탈출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최 - 사실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독재정권이 이룬 경제성장, 경제개발은 예외 없이 다 망했습니다. 히틀러의 독일이 그랬고, 군국주의 일본이 그랬고, 김일성의 조선이 그랬고, 인도네시아, 러시아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살아난 사회는 정치도 경제도 성공을 합니다. 전후 독일, 일본과 민주화 이후 한국을 그런 예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남과 북의 역사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은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면서 그야말로 순조롭게 발전한 반면에 북은 김일성 체제가 굳어지면서 김정일로 권력이 세습됐습니다. 이런 권력세습은 왕위 세습 정도가 아닙니다. ‘신위 세습’이었습니다. 신의 자리가 대물림된 겁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굶주리는 천국입니다.
남북의 이런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김재규가 얼마나 큰 역사적 공을 세웠는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에 관한 한 김재규보다 역사적 공로가 큰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신체제 그 자체인 박정희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단 한 걸음도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쏴버렸고, 그는 대한민국 민주재단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고 민주주의를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황 없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북의 인민은 아직도 ‘김씨조선’에 살고 있습니다.



2007-01-11 18:02:23
791 번 읽음
  총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행복한 바보 곰 '07.1.12 1:55 AM 신고
    안중근과 김구선생에 대한 인식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지식은 아주 해박하시네요. ^^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동질적인게 많구요.
    하지만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에 대한 생각은 저는 다릅니다.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이 살았던 시절의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게 보시면 안 되죠. 그리고 옛날 김일성이 일으킨 보천보 사건만 해도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요인 암살과 일본 총리 사건이 그냥 일시의 사건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정말 희망이라고는 없는 시대에 주는 그런 사건과 승전보는 분명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김재규에 대한 예기는 정말 처음 듣는것 같네요. 그리고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박정희라는 괴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구요.
    누군가 그러죠. 역사는 이긴 자들의 것이라고.
    우리의 역사는 친일파와 그들의 후손 그리고 한나라당이 이겼기에 그들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 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네요. ㅜ..ㅜ;; ↓댓글에댓글
    • ㄴ 1. 김서방 '07.1.12 11:53 AM 신고
      너 김일성 추종자냐? 보천보 전투? 경찰 몇죽인게 전투여? 에라이..
      아그야 천천히 좀 보자고..보천보 전투같은거는 검색해봐라 여그에도 장황하게 올린게 있다..
  2. 2. 아리만 '07.1.12 9:29 AM 신고
    우선 말씀드릴게..
    일본의 천황사상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네요. 글쓴이는 마치 일본의 천황과 독재국가의 독재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천황은 메이지유신 이후 거의 세력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뒤로 막부세력에 의한 일본지배가 실제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천황도 막부의 결정에의해 계승되었습니다. 물론 최초로 천황의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한(귀족층의 지지로부터) 천황은 고다이고천황 이후부터였죠. 따라서 위에서 말씀하시는 천황사상과 독재자를 동일선상에서 보시는건 무리가 있습니다. 하긴 애초부터 전제왕권 봉건사상인 천황사상과 독재체제의 독재자를 비교하는 자체가 상당히 무리가 있죠.
    또, 윗글에서 약간 나옵니다만 물론 박정희의 잔재가 남아있는건 사실이지만 그걸 이용하려는 한나라당이나 비난함으로서 상대적 이득을 얻으려는 열린우리당이나 제가보기엔 거기서 거깁니다. 즉 둘다 자기는 능력도 없으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사적 이익을 누리려는 무능한 집단임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죠. ↓댓글에댓글
  3. 3. 김서방 '07.1.12 11:55 AM 신고
    김재규의사?
    이게 당신의 진심이었군? 얼빵한 진짜 큰일날 뇌빠들..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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