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은 여리고 약한 존재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똑같은 말과 행동에도 더욱 상처받기 쉽고, 남을 이해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이해 받고, 위로와 보살핌을 받고 싶어합니다. 의료와 의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글에 대해서 곱지 못한 리플이 되돌아오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실력 있는 의사,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 봉사정신이 투철한 의사.... 환자들은 여러 관점에서 이상적인 의사상을 말합니다. 몇 년전 저희 모교병원에서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종교재단이 주인인 병원이어서 당연히 친절하고 자상하고 봉사정신 투철한 의사가 1등을 차지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시작한 설문조사였습니다. 1등 먹은 의사상은 좀 썰렁하게도 ' 나를 낫게 해주는 의사'로 나왔습니다.
이 말은 확대 해석하면 '의사가 싸가지 없더라도 나를 잘 고쳐주면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병은 그 자리에서 낫는 단판승부로 끝나지 않습니다. 단순 감기라고 해도 상황은 진료실에서 나오고 난 후 반나절 정도는 지나야 속된 말로 '약발'이 나옵니다. 상황의 초기국면에서 의사의 싸가지 없음은 그래서 환자들에게 상처로 남게 됩니다. 잘 나으면 그래도 상처는 희미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환자가 받은 상처의 아픔은 더더욱 증폭되겠지요. 그래서 의사는 다른 직업인보다 '싸가지가 풍부해야' 합니다. 환자를 낫게 해주는 실력은 당연히 기본 무장으로 갖춰야 되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의사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강인함'이 될 것입니다. 건물주인이 월세문제로 스트레스를 트럭 단위로 쏟아붓고 가더라도, 자식놈이 사고 쳐서 경찰서에 불려가더라도, 어쩌다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내가 보는 환자들보다 내가 더욱 중증환자인 역설적인 경우에 처하더라도 의사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치료자로서 클라이언트를 마주해야 합니다. 돈의 유혹에 있어서도, 의료계에 피바람처럼 몰아치는 무한 경쟁 상황속에서도 의사는 마찬가지로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치료자로서 의학적 원칙을 견지해야 합니다. 환자들은 그런 의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세파에도 끄떡없이 진료실을 그렇게 지키려면 결국 의사는 강하고 '징헌 놈'이 되어야 합니다.
'강하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든지 대가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형식과 틀에 구애받지 않는 파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파격은 곧 그 대가의 손에 의해서 또 하나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돈에 강하지 못합니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돈으로부터 강하고 자유로와 지려면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초지일관하던가, 아니면 자기 그릇을 채울 만큼 돈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그릇'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겠지요.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의식으로 인한 박탈감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돈에 한없이 약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요?
의사와 의료에 대해 서운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 분들은 의사는 제대로 된 놈이어야 하고 또 강한 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욕먹어 당연하다는 입장이시고, 저같이 장황한 사설로 변명을 늘어놓는 의사의 입장은 쉽게 말해서 '오늘날 그러한 이상적인 의사의 존재, 최소한 일반적인 의사상이 어떠한 변수에도 흔들림 없는 강한 존재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의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저로서는 정말로 슬픈 현실이지만 시대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여리고 약한 존재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똑같은 말과 행동에도 더욱 상처받기 쉽고, 남을 이해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이해 받고, 위로와 보살핌을 받고 싶어합니다. 환자들은 그러기에 진료실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듯 보이는 의사라는 존재가 의료의 모든 영역에서 배타적인 기득권을 마음껏 누리는 존재라고 어렴풋이 여기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의사라는 존재는 의료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유아독존적인 존재가 절대로 아닙니다. 의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서 예속 당하고 있는 존재이며, 자신이 믿고 있던 의학적 원칙이 그러한 외적 요인에 의해서 가차없이 훼손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직업적 자아의 붕괴를 경험하고 엄청난 피해의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의사들의 집단정서입니다. 의사들의 저변에 그러한 집단정서가 흐르고 있다면 이미 의사는 '강하고 징헌 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리고 약한 환자들은 의사들에게 적절하고 정당한 보살핌을 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이렇게 피폐된 상황에서 보여지는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들의 모습은 결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를 짓밟고 올라서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상하고 친절한 의사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하는 의사들의 심정은 바로 이런 동기에서 비롯됩니다.
'흑묘백묘'론으로 그저 친절하고 자상해서 환자들에게 '기쁨주고 사랑주는 SBS' 같은 모습이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출발이 치료자로서의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업자의식'의 발로라면, 과연 그 의사가 진정으로 '강하고 징헌' 치료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거지요. 경쟁사회 게임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의사가 돈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친절하고 자상했던 의사가 갑자기 견적 바가지를 씌우는 나쁜 놈으로 말갈아 타는 일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저의 이야기는 절대로 일반론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차피 절대적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사람들의 의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일반 서비스업에서 보여주는 외적인 요인으로 치우친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환자들 자신을 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그릇된 선택기준때문에 시장에서 도태되는 원칙론적 의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도덕적 해이를 합리화시키는 근거가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의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환자들은 진료실을 지배하는 의사들만을 바라보지만 그렇게 질시 어린 시선으로 비쳐지는 의사 역시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손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저를 지배하는 손들 중 하나의 예를 소개할까 합니다.
9월부터 742개 품목의 약들이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포지티브 리스트 도입의 전초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일입니다. 구구절절 여러 가지 논리가 나오지만 결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돈'입니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재정 역시 언제나 거덜나는 분위기니까요. 탤런트 임모씨께서 모델로 나와서 '병원 밥값은 내가 쏜다.'고 호언장담 하지만 병원 밥 보험으로 드시는 환자들은 더더욱 병원을 싫어하게 되고, 병원은 병원대로 견적 못 맞춰서 죽을 맛이고, 보험재정은 재정대로 악화일로의 상태가 됩니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과 의사들의 감정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는 게 있으면 가져가는 것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약을 가져가겠다는 것이지요.
9월에서 보험에 빠지는 약들 중 브랜드 파워가 있는 약을 소개하자면 '액티피드', '코푸시럽', '지미코'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제가 감기 환자들에게 즐겨 쓰는 약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기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진료 받고 처방전 들고 약국에 가시면 환자 본인이 내는 돈은 4500원이 기본입니다. 진료비 3000원 조제비 + 약값 1500원입니다. 여기에는 기본요금 개념이 포함됩니다. 병원에서는 진찰료 + 검사료 + 주사료등등 해서 총진료비가 15000원 미만이면 무조건 3000원, 15000원 부터는 30%를 환자가 부담합니다. 감기정도라면 기본요금을 넘지 않으므로 3000원만 내는 것입니다.
약국에서는 기본요금이 10000원입니다. 약값 + 조제료 + 의약품 관리료등등인데 10000원 미만이면 1500원이고 10000원부터는 역시 30%를 내게 됩니다. 약값을 빼고 2일 조제를 하면 평일 주간 3700원 정도가 약국에서 받는 조제에 대한 금액입니다. 그러면 기본료를 방어하는(환자가 1500만 부담하게 하는) 약값의 상한선은 6300원이 됩니다. 그래서 의사는 왠만하면 6300원을 넘기지 않는 처방을 하려고 머리를 씁니다. 여기서 문제는 약들이 모두 보험인정이 되는 약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액티피드'의 보험가는 한 알에 29원입니다. 무지 싸고 좋은 약입니다.(단 졸음이 심한 것이 단점이지요.) 하루 한알씩 세 번 처방에 이틀이면 174원이 나옵니다. 6300원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요. 하지만 액티피드가 보험에서 제외되면 환자의 감기약 값은 1500원 + 174원 = 1674원이 됩니다.
더 이상의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742개 품목의 약(대부분 저가의 약으로 개원가에서 만만하게 많이 쓰는 약들입니다.)이 보험에서 제외된다면 환자가 부담하는 약값은 이렇게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예상하는 변화는 두 가지입니다.
1. 환자는 감기정도의 병으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 보험으로 진료 받아봤자 혜택이 별로 없으니 그냥 약국에서 종합감기약 사 먹습니다. 정부가 노리는 효과입니다. 약국에서 약 사먹는 행위는 보험과는 무관하므로 보험재정에 영향이 없습니다. 환자도 같은 가격이면 원스톱 서비스가 되는 약국을 선호하게 됩니다. 결국 '가벼운 질환은 병원에 가지 말고 약국 가서 약을 먹어봐라.'가 정부가 국민들에게 말하고 싶은 진심이라는 거지요. 의사인 저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질환'을 판가름하는 주체가 의사의 영역에서 국민 개개인의 의학적 지식과 약사의 판단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소신 있게 추진한 의약분업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물론 무조건 상태와 무관하게 아프면 의사가 봐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하지만 '돈의 문제'가 개입되어서 의료소비 패턴의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번 조치와 상관없이 병원을 계속 이용할 것이니 말입니다.
2. 의사는 먹고 살기 위해 고가처방으로 바꾼다.
- 하루 아침에 감기환자를 다 접수 당하고 의사들이 그저 허허 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시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액티피드'를 다시 예로 들자면 이 약은 두 가지 성분의 복합제입니다.(콧물을 마르게 하는 항히스타민제와 코막힘을 뚫어주는 비충혈 완화제) 이번에 보험에서 짤린 약들이 대부분 복합제입니다. 제약회사들이 복합제를 만든 이유는 궁합이 잘 맞는 약을 하나로 만들어서 복용 편의성을 도모하고, 상대적 비용 절감을 위함인데 이게 보험에서 짤렸으니 의사들은 복합제 성분을 단일제제로 나누어서 처방을 하는 자구책을 강구합니다. 액티피드 성분을 나누어 처방하면 분명 29원보다는 더 나옵니다. 그래도 환자 부담은 차이가 없습니다. 약값이 싸서 기본요금을 안 넘으니까요. 돈이 더나가는 쪽은 보험공단입니다. 결국 푼 돈 아끼겠다고 보험약 줄여 보았자 재정 절감 효과는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언론과 정부의 반응은 뻔합니다.
'의사들이 여전히 약을 비싸게 처방한다.'
싼약은 보험에서 싸그리 잘라버리고서 말입니다.
'의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의사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수많은 의대생이 병아리 의사가 되면서 강의실과 임상실습에서 배우지 못했던 처절한 현실과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부딪히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병아리 의사의 직업적 자아는 붕괴되고 '잘못한 것은 결코 내가 아니다'라는 피해의식을 쌓아가면서 환자를 보게 됩니다. '강하고 징헌' 위대한 치료자로서의 꿈은 젊은 시절의 망상이 되고 의사는 사회가 언제나 기대하는(?) 그런 저급한 동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니들이 고쳐야지 왜 사회타령이냐구요?
이미 의사는 의료정책 수립에 있어서 주체가 아닌지 오래 되었습니다. 의사는 이미 통제와 견제와 감시와 비판의 대상일 뿐 의사가 의료정책에 있어서 어떤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밥그릇 타령이요, 썩은 기득권 수호의 잔재주로 폄하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불이익과 손해를 당해도 의사는 '싸우면 안되는 동물'이라고 자리매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꼴에 전문직이라고 잔머리 굴리면 돈이 되는 일거리가 적지 않습니다. 정부도 의료보험 재정만 안 건드리면 세금 걷을 궁리만 하지 별로 터치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방임과 직업적 자아가 붕괴된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일치하여 대한민국의 비보험 의료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블루오션으로 각광을 받습니다. 뭐도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유사 의료업자들도 덩달아서 한몫 끼어 듭니다. 우리나라에 외과의사와 흉부외과 의사들이 아직도 병원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입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의료라는 유기적 시스템의 주인은 다름 아닌 환자인 국민입니다. 그렇다면 CEO는 누가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CEO가 합리적인 정책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어떤 의사결정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 의료의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 의사들은 과연 어떤 위치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변수에도 흔들림 없이 의학적 원칙에 충실한 '강하고 징헌' 치료자로서의 의사.
의료 시스템의 구성성분으로서 수요와 공급, 정치적, 정책적, 경제적 고려에 따라서 행동의 통제를 받으며 자본주의적 원칙에 충실한 의료기술자로서의 의사.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의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대한민국 의사의 정체성을 후자로 결정지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의사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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