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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에 대한 펌글입니다.

 

[네이버 파아란홈이라는 블로그에서 퍼온 글이며, 원출처도 파아란홈입니다. ]

민중봉기, 그 권력이 공백된 자리

 

 

인간이 개발한 정치제체 가운데 가장 발전했고 가장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민주주의는 아테네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테네 인들은 기원전 5세기 경부터 민주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렸는데 그들은 도편제추방에 의한 요주의 인물 추방(민주주의에 대한 위험 인물)제와 해마다 국정을 지휘할 국정담당관을 선거하는 방식으로 직접 자유민주주의를 전통화 하였다 .

 

 아테네의 가장 황금기는 페리클레스의 황금기 라 불리는 BC 460 - 430 년 간이다. 이 시기에 페리클레스는 30년 연속 국정담당관에 선출되었으며 그는 아테네의 경제, 군사, 문예, 문화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능력에 따라 재산을 모으고 사회지도층에 오를 수 있는 인권면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발전을 뿌리내렸다. [1]

 

그러나, 페리클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당시의 민주주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겉모습은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는 한 사람이 지배한다." 겉모습은 민주정치였지만, 그 내부에선 페리클레스의 교묘한 통치술에 의한 일인의 독재체제로 30 년이나 갔다는 것이다.

 

그와는 다르게 또 그 시대로부터 2500년이나 후인 한국땅의 북한에서도 겉모습은 민주정치 구조이지만, 내부적으론 일인의 족벌식 공산독재체제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것은 페리클레스보다 한층 독점기간이 길어서 오십년을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번영으로 이끈 페리클레스와는 다르게 김정일독재는 국토와 사람을 죽음의 골짝으로 몰아넣고 있다.

 

광주 5.18 이 민주화 역정의 피흘림이었다는 식으로 헌법적 보장과 선언을 얻은 후로  공개적으로 그 민주화 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한 사건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열린당의 이원영 의원이 광주에의 공수부대 배치가 질서 유지 용이었다는 발언을 몽중에 했다가 된 서리를 맞으며 이 토론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걱정하는 우익들 안에서 서서히 점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단적인 의문점은 5.18 이 과연 민주화를 순수 목적으로 한 것인가 또는 계엄사의 발표대로 불순세력의 선동 및 유언비어 살포에 넘어간 순진한 광주시민의 우발적 봉기인 것인가 하는 그 진정한 성격에 관한 것과 5월18일부터 나돈 터무니없는 잔인함을 특성으로 한 유언비어는 어느 세력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퍼뜨려졌는가 하는 점이며, 이 유언비어의 성질과 정체성에 대하여는 한번도 분석이 나온 적이 없는 줄로 안다.  그리고 5.18 에서 유언비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때 유언비어는 어디서 출현했으며 어떤 목적이었으며 어떤 세력에 의한 것이었는가를 밝히는 것은 한반도 미래사를 위하여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우리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놀랍게도 계엄군이나 공수부대 측의 자료에서가 아니라 광주 민주화 측의 즉, 5.18은 민주화를 원한 민중봉기였다고 주장하는 자료 속에서 나오고 있다.

 

광주 시민봉기의 가장 큰 원인이 된 유언비어 살포에 관햬 논해 본다.

 

1. 유언비어는 왜 나왔는가?

 

광주일보 1996.9.12. 보도[3]에 따르면 윤상원 등은 유인물 제작에 5월18일밤부터 들어간 것으로 나온다.  그에 관해 전용호(당시 전남대 경제학과) 는  증언하기를 "투사회보는 5. 18의 상황이 정부(*** 계엄군)와 언론에 의해 폭도들 의 난동,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악선전에 휘말려든 폭동으로 왜곡되는 것을 보고 올바른 진상을 알리기 위해 출발했고 19일 ' 광주시민 민주 투쟁회보' 라는 이름의 호소문이 투사회보의 효시가 됐다"  "라면서, 마치 계엄사가 광주봉기를 폭도난동, 지역감정 원인이라 악선전을 발표한 때문에 유인물을 배포한 듯이 설명하고 있으나,

 

5.18에 대한 계엄사의 발표는 엄격한 보도통제 속에 감춰있다가 5월22일 처음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2] 반면 유상원등의 유인물은 5월18일 밤부터 제작에 들어갔다고 광주 민주화 자료가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계엄사의 악선전 때문에 유인물을 유포했다는 것은 일자로 보아 전혀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2. 터무니없으며 참혹한 유언비어는 누가 만들었는가 ?

 

이에 관해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전두환이 정권찬탈을 위해 일부러 위기연출용으로 광주시민을 선동하려는 음모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광주 민주화 기록자료로써 보면 터무니없는 허구이며 나아가 전두환에게 광주학살 책임을 지우기 위한 거짓에 불과하다.

 

그 증거로는 첫째, 5월18일 밤에 제작에 들어갔고 19일 뿌려졌다는 윤상원 (광주 5.18 주동자)의 제작 유인물 내용이 말해준다. 거기에는 5월18일 이미 다량의 군에 의한 민간인과 학생들이 피바다를 이루며 죽어갔다고 설명되어 있으나 19일까지도 민간인의 사살은 없을 때였다. 그럼에도 "광주시민 민주 투쟁회보"라는 제목을 달은 그 첫유인물의 내용은 이렇게 되어있다고 광주일보와 민주화 측은 자랑스레 보도하였다.[3]

 

"광주 애국시민 여러분. 이것이 웬말입니까. 웬 날벼락이란 말입니 까. 죄없는 학생들을 총칼로 찔러죽이고 몽둥이로 두들겨 트럭에 실어 가며, 부녀자를 백주에 발가벗겨 총칼로 찌르는 놈들이 도대체 누구 란 말입니까. "

 

즉, 이 유인물에 의하면, 5월18일부터 공수부대에 의한 광주학생 "찔러죽이기"와 부녀자 "발가벗기고 찔러죽이기"가 5월18일 첫날부터 이미 시행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광주 민주화 일정 자료에도 유인물류의 제작이 5월18일 오후6시부터 " 김태종,전용호,김선출 등 광주 문화운동팀 무등영아원에서 유인물 제작 시작."으로 들어갔다고 나오므로  [6]  그들의 유인물이 진실하다면, 광주에서 희생자들 다수가 18일 아침 전남대 일대에서 이미 발생해 있었어야 말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5월18일은 공수부대에 의한 구타행위가 있었을 뿐, "찔러죽이기" 같은 적극적 살상행위는 아직 없던 때였다. 그렇다면 광주 유인물 제작자들은 앞날을 투시하는 예언의 능력이 있어서 그런 수일 후에 벌어질 살상을 미리 내다보고 유인물에 올렸다는 말인가? 그렇더라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살상행위를 과거형으로 내지 현재형으로 기술하여 시민들에게 돌리는 것은 정직한 행위인가 ? 공수부대에 의한 폭력행위를 다소 과장하였다 치더라도 이토록 같은 동족이 착검한 총으로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을 발가벗기고 칼로 찔러죽이고 있다는 섬짓한 선동구호를 접하고 태평무사하게 집에 머물러 있을 시민이 과연 있을까 ?

 

그러므로 그런 터무니없도록 잔혹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측은 누구였는가 는 질문에 대해 답변은 이미 나왔다. 그것은 아직 학살(?)이라는 잔인행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퍼뜨린 세력이 있으며 그것은 윤상원 등의 유인물 제작자들 --- 문안작성조: 윤상원, 전용호 [3] )과 그것을 퍼뜨리는데 일조한 학생 집단이었던 것이다.

3. 유언비어가 없었어도 광주시민은 봉기했을까 ?

 

헤리티지 보고문[7]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태도로 말한다. 과장되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광주시민들의 감정을 격발시켰다고. 즉, 광주5.18에 사상자가 많아진 원인은 명백하다. 그것은 공수부대의 시위진압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터무니없도록 날조하여 학살이 이미 벌어지고 경상도군이 전라도인의 씨를 말려죽이러 온 것처럼 재야운동권 세력이 유포한 유언비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런 유언비어만 없었어도 광주시민들은 불행한 기억없이  지금까지 타 대한민국 시민들처럼 생명 및 발전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광주시민의 그것은 어느 지역에서든 자기 자녀가 무장한 군에 의해 대량으로 죽어간다는 유언비어를 접했을 때 보일 태도와 똑같았던 것이다.

 

4.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를 초기부터 뿌린 자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

 

그것은 민중봉기 였다. 그 의도는 첫 배포된 19일자 동 유인물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가 하나로 단결, 유신잔당과 全斗煥 일파를 영원히 추방할때까지 싸웁시다. 최후의 일각까지 단결하여 싸웁시다. 그러기 위해 5월 20일 낮 12시부터 계속해 광주 금남로에 총집결합시 다"

 

이 유인물이 광주시민에게 요구하는 것, 목표한 것은 분명하다. 모이라는 것이며 싸우라는 것이다.  누구를 대항해 ?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대항해 일제히 싸우라는 궐기 격문이었던 것이다.

 

5. 5.18 유언비어가 노린 목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여태까지 아무 데서도 터무니없고 잔인하기까지한 유언비어, 광주시민을 격분하여 거리로 나서게 한 유언비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부터 유포했는지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인지 밝힌 바가 없다. 그 유언비어가 광주를 학살의 도시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은 전후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인정되는 사실이므로 이를 우리는 밝히어본다. 저들은 섬득하기까지한 유언비어 확산을 통해 무엇을 노렸던가 ?

 

첫째는 유인물에 명시된 대로, 유신잔당과 전두환 일파를 완전히 한국정치가에서 쫓아내는 것이며 이 유신잔당은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대한민국 발전과 체제를 이어온 체제수호 집단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광주시민들이 일제히 봉기하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봉기하여 싸우라는 것이었다. 누구를 대항해서 ? 그것은 대한민국 공권력을 대항해서 싸우라는 요구이며 선동이었다.

 

세째로 그들은 봉기를 광주에서만 아니라 외곽으로 확산시켜려 시도하였다. 그들은 시위 초기이던 21일 이미 경찰서와 교도소를 습격하고 막대한 무기를 탈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광주를 늦게라도 봉쇄키로 한 계엄군의 결정이 옳았음을 헤리티지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무기반납과 타협이 시민군 지휘부에 의해 금지된 후, 공화국(대한민국 공화국)을 전복하자는 함성도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7] 계엄군이 단호한 태도로 막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군사독재는 1980년에 막을 내리고 국가는 전국적 민중봉기에 의해 종내 김정일 지원세력인 김대중이란 인사가 정권을 잡았거나 또는 소련에서처럼 공산혁명이 성공하였을 것이다.

 

6. 국가 공권력이 공백이 되었을 때 들어오는 것

 

대한민국 공권력이 축출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 대한민국이  어떤 지경이 되는 것인가 ? 그것은 공권력의 공백현상이며, 권력이란 공백현상으론 절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빈 자리에 새로운 권력이 들어섬을 의미하며 그 새로운 권력은 재야세력이 추구한 연방제세력 즉 친북한, 친공산 세력인 것이며 나아가 북한 김일성 왕조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민중봉기와 무장봉기 였던 것이다. [4] 그러기에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불문율이던 경찰서를 습격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처벌한 교도소를 숱한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24시간 내 습격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관하여, 박노해가 윤상원을 기리기 위해 쓴 글 및 윤상원에 대한 전기적 기록은 많은 숨겨진 그림을 우리에게 밝혀준다. 박노해에 의하면, 윤상원은 유신정권에서 친공세력으로 분류된 민청학련 소속이었으며 들불야학의 주모자였으며 광주 5.18이 있기 전 수개월 전부터 민중봉기와 무장봉기를 준비하던 혁명투사 였다는 것이다. [4] 

 

뿐 아니라 동 유인물의 제작이 실제 이루어진 곳 역시 과거 광주 재야세력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던 "녹두서점"이었다고 광주일보가 보도한다. [3]  그리고 유신체제에서 재야세력이 친북세력과 직결되어 있던 것은 대한민국에는 알려진 비밀이다.

 

유언비어를 유포한 자들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왜 터무니없는 잔혹하고 괴기하기까지 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였으며 퍼뜨렸는가 란 질문에 해답은 그리하여, 광주 민주화가 광고한 그들의 자료에 의해 직접 입증되었다.  그것은 공산혁명을 위장한 민중봉기였으며 무장봉기였던 것이다. 광주시민들은 단지 그들 유언비어 유포세력에 교묘하게 조작된 꼭두각시였으며 저들의 공산혁명을 향한 제단에 바쳐진 희생제물이 <민주화> 란 미명으로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남한에서의 공산혁명을 <민중봉기>라는 이름으로 <계급투쟁> 이란 미명으로 지하 잠입하며 줄곧 대남적화전략의 제 일 순위로 획책하던 북한에게는 그들 광주의 5.18 이 절호의 찬스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 당시 계엄군이 "도살부대"라는 악명의 낙인믈 무릅쓰고라도 광주 봉기를 진압하지 못하였더라면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전라도 외곽과 전국 지역으로 친북운동권 학생조직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을 것이며 광주의 유언비어는 동시적으로 기실 전국에 퍼져있어 전국의 민심 또한 흉흉하였던 상황으로 볼 때, 계엄군이 갖던 광주 민중봉기에 대한 염려 -- 광주 민중봉기가 대한민국 체제를 허물 것이라는 -- 는 허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7. 북한과 친북세력에 의해 효과적 반미 선동 이슈가 된 5.18 "학살"

 

광주 5.18을 대한민국 정통보수세력이 미국과 합작하여 벌인 양민학살로 변조한 북한은 그 때부터 양민학살의 배후조종자, 방관자 미국을 축출하라는  반미 운동 및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학생층을 대상으로 하여 효과적으로 선동하여 왔다.

 

평택으로 돌아가자. 평택은 서울기지를 내놓으라는 반미집단의 강요에 못 이기어 서울기지를 내놓게 된 주한미군의 새 이전지역이었다.  헌데 저들은 그 곳에까지 쫓아가 농민들을 부추겨 축출시위에 나서도록 하고 있으며 뿐 아니라 광주에 비견할 만큼의 죽창과 쇠파이프 류로 중무장을 하였으며 우리의 아들딸이며 대한민국 수호의무를 지는 공권력을 무차별하게 짓밟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민노당은 평택 시위를 적반하장 격으로 "군이 국민을 짓밟아 죽이고 있다. 평택은 피바다" 라고 표현한다.

 

평택은 피바다 라고 한 민노당의 유언비어나 시위진압이 벌어지지도 않았던 5월18일 작성한 유인물에 든 금남로 피바다 라는 유언비어나 무엇이 다른가 ? 그들이 목표하는 바는 똑같으니 대한민국 공권력의 영원한 철수 인 것이다. 아울러 대한민국 공권력에 편들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영원한 철수다.  

 

우익에서 연방제 사변을 경계하자는 촉구가 나온지 오래이지만, 솔직히 북한공산집단이 남한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는 연방제통일이 아니라 연방제사변을 통해 조성하는 혁명세력의 기반조성이며 그럼으로써 적절한 때가 왔을 때 남한정부를 뒤엎고 민중봉기, 무장봉기를 일으켜 칼맑스와 레닌이 추구한 공산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완수에  있는 것이다.

 

인민에게 국가권력이 있음을 빙자하여 민중봉기를 획책하는 세력들의 선동에 가리워 국민들은 민중봉기 가 궁극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는 비극이며 우리는 공산혁명세력이 추구하는 민중봉기 란 것의 실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로 돌아가자.  페리클레스는 외형은 민주정치였으나 내실은 일인에 의한 독재를 30년간 유지한 출중한 인물이다. 그의 영도하에 아테네는 과거에 없던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가 실권한 후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로 급격하게 전락,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은 불필요한 악인가? 이런 질문에서 민중봉기 획책자들은 국가 공권력을 저들(권력집단)의 정권유지를 위한 비호세력 쯤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수호할 가치있는 국체로 헌법이 보장하는 정통성있는 한반도상 유일국가로 확신하는 애국국민들에게 공권력은 국가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룰이며 규칙이다. 광주 시민군은 그것을 뒤엎으려했다.  그 점에서 그들은 대한민국 수호세력과 공권력을 독재권력으로 규정지은 후 자신들의 독재를 행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반역적, 반헌법적이다.  그리고 이는 비록 그 후 합헌법적으로 변질되었지만, 그들이 당시 국가공권력을 민중봉기로 전복하려 했다는 것은 불변한 역사적 기록이다.

 

8. 민중봉기는 절대 민주적인가? 또는 더 큰 독재권력의 서막인가?

 

민중봉기는 철저히 민주주의적인가 ? 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민중봉기가 철저히 민주주의적이라면, 소련의 민중봉기는 그 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했어야 한다. 또 중국의 모택동에 의해 신설된 일제 점령 후의 중국 해방구들은 그 후로 자유민주체제로서 세계의 모범사례로 발전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민들에게 권력이 있다는 속삭임은 일견 훌륭한 논리 같아보일 지라도, 인민 개개인이 행사할 권력이란 실제론 전무하다는 점에서 민중봉기 란 냉철히 보아 민중세력으로 위장한 훨씬 강력한 독재권력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지금 가장 막강한 권력은 북한의 공산독재자 김정일의 권력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의 공권력 발달사는 이 김정일의 독재권력 발달사와 비례하여 발전해왔다. 대한민국의 검,경, 군이란 공권력은 실제로 북한의 대남공산침략이란 각종 전술에 맞서는 형태로 발전하며 강력해져오던 즉 김정일 독재권력을 막기 위한, 막을 수 있던 가장 큰 대칭 권력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권력이 광주 5.18 을 기점으로 소위 "학살권력"이란 누명을 쓴 이래로 점진적으로 약체화의 길을 걸어왔으며 급기야 평택에서 소소한 반미집단에 의해 몰매를 맞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토록 약체화한 공권력이 무슨 수단으로 김정일이란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사탄적 독재권력을 위기의 날에 감당하고 맞대항해 이길 수 있을 것이냐 ?

 

나아가 그 공권력이 이제는 김정일과 형님, 아우 하는 친한 사이이기를 갈망하는 친북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하게 된 사태가 바로 윤상원 등이 확산시킨 광주 유언비어로부터 비롯된 것 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 일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

 

공권력이 반역세력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공권력이 반역의 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미 친북정권 하에서 조사받던 피의자 신분의 공인들이 9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권력은 백주대낮에 반미친북세력에게 몰매와 집단폭력을 당하고 짓밟혀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보통 있을 수 있는 현상이겠는가?

 

광주의 몇 마디 유언비어가 당시는 이백명 미만의 광주인을 죽였지만, 자라고 자라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을 죽일 만큼 큰 칼이 되어 버렸음을 본다. 나아가 광주시민협의회가 자진 무기반납을 결정하였을 때 이를 총기위협으로 거부한 박남선 등은 무기를 그렇게 고수함으로써, 및 광주시민의 무장봉기를 밀고 나감으로써 종국 어떤 세상을 맞기를 원하였는가에 대한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5.18 이 어떻게 민주화 인가 ? 5.18 세력은 거국적 민중봉기 후, 어떤 이상향을 건설하려 하였던가 ? 군사행동을 지휘했다는 박남선의 글에는 그가 무기를 버리기와 투항을 금지한 후 그럼으로써 (계엄군 및 국가 공권력에 끝까지 맞섬으로써) 무엇을 종내 이루려 했는지 언급이 드러나지 않는다. 괴이하지 않은가? 총을 잡은 자가 총을 잡은 후에 무엇을 성취코자 하는지 밝히지 않았다니 ?!

 

하지만, 그들의 꿈이 어떤 목적이었는지를 박노해가 쓴 5.18의 주동세력[8]이던 윤상원 찬양문[4]이 말하여준다.  그들은 민중봉기를 통한 계급혁명을 성사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미완의 프롤레타리아 전사였다. 그리고 이는 나의 말이 아니라 박노해라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자의 증언이다.   

 

*** [8] 광주일보 1996.9.12. 기사중:

[ 光州민중항쟁 '全南大 3총사', 朴寬賢. 尹한봉. 尹祥源. 이중 5. 18민 중항쟁기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 尹祥源(당시 30세)이다. 5. 18 현장을 끝까지 지킨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중봉기는 항용 훨씬 더 강한 독재권력의 앞잡이로 쓰였던 역사적 실례들을 볼 때, 박정희 서거 이후 찾아온 국가적 재난위기 앞에서 내려진 합헌적 계엄령을 무시한 채, 국가 공권력인 군이 시민을 무참히 짓밟고 찌르며 학살하는 중 이라고 퍼뜨린 재야운동세력들의 유언비어는 폭동적 민중봉기를 결과했다는 점에서 명백히 대한민국에 재난적이다.

 

그 유언비어가 확대시킨 5.18 은 민중봉기라는 미명으로 자행된 또 하나의 무장독재권력이었으니, 그들에게는 시민협의회의 광주를 위한 타협안 및 무기반환론이 먹힐 여지가 없었으며 그리하여 소위 과잉(?)진압과 학살(?)행위가 군에 의해 시작되었다. [5] 겉모습은 민중봉기였으나 내부 구심점은 독재적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엄연한 국가공권력 해체와 전복을 노림으로써 더 큰 독재권력의  출현을 기도했다는 의구심마저 광주 민주화 자체 기록들이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며칠간의 독재권력일 지라도 그 극소수 무장세력의 독재집단은 투항하려던 시민군들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강요함으로써 무기반납과 자진해산의 길을 차단하여,  살릴 수 있던 광주시민의 목숨을 종내 사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권력 해체와 전복을 기도한 무리를 결사적으로 진압할 수 뿐이 없었던 80년의 계엄군은 종내 학살정권이란 누명을 두고 두고 얻게된 것이다.

 

유언비어는 대체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 ? 무엇을 노렸는가 ?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 전복의 대상인가 ? 광주 시민들 스스로 그들의 명예를 위해 이 일을 밝혀야 할 것이다. 광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사천오백만의 국민 그 운명을 위해.

 

2006.5.17. 파아란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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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글:

[1] 로마인 이야기 1권 - 시오노 나나미

[2] 조선일보 5월22일자 종이신문

[3] //altair.chonnam.ac.kr/~cnu518/data/news/juje/e2/kwangju_960912.htm

[4] //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reading&nnew=2&y_number=246

[5] //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006.html

[6] //www.vitgoul.co.kr/story/518/text/22.htm

[7] //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2147&logId=1105422

  

[광주사태로 인해 휘말린 일반인들에겐 정말 죄송스런 말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한두번 나오는것도 아니고 비공식적으로도 많이 돌아다니는걸보면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닌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편향된 시각으로 이떤 것을 바라볼때 어느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까지도 가늠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2007-01-15 15:00:19
1003 번 읽음
  총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김서방 '07.1.15 3:05 PM 신고
    진실은..
    이것보다 상세한 진실은 이미 다아시는분은 알고있을겁니다..
    전두환은 광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지여..역사가 말해줄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무엇이 진실인지는 역사가 말해줄것입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김서방 '07.1.15 3:06 PM 신고
      그런데 파아란의 한은경씨는 좀 곤란하네여..ㅎㅎㅎ
    • ㄴ 2. 아리만 '07.1.15 3:13 PM 신고
      뭐 저도 수없이 들어는 봐왔고 언론의 기사들도 봐왔지만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거나 제가 납득할 수 없으면 믿지 않는 편이라서요..
    • ㄴ 3. 김서방 '07.1.15 5:33 PM 신고
      명확한 증거는 이미 있는걸로 아는데여..ㅎ
    • ㄴ 4. 아리만 '07.1.15 7:45 PM 신고
      제가 알기론 명확한 증거는 없고 간접적 증거들만 있을뿐이라고 알고 있어서요.
      근데 궁금한건 정치인들이 광주 5.18 국립묘지가서 맨날 참배하고 오는데 그런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왜 밝히지 않고 이대로 그냥 묻는걸까요? 그게 궁금하네요. 김서방님 말씀대로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요.
    • ㄴ 5. 김서방 '07.1.16 8:52 AM 신고
      ^^ 어떻게 해야 명확한 증거라고 해야 하나여? 증거를 증거로 인정하려는 근거는
      무엇인가여?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인정안한다고 명확한 증거가 아니라는 기준은
      어디서오는것일까여? 단지 정치인들이 참배하는데 안밝히고 이대로라고 믿는건가여?
      기다려 보세여..차세대정권에서는 반드시 밝혀질것입니다..단 .지금의 정권의 연장선상이
      아니라면 말이지여..^^
    • ㄴ 6. 아리만 '07.1.16 6:04 PM 신고
      글쎄요....truth is out there가 정답이 아닐까요?
  2. 2. 참잘했어요 '07.1.17 6:16 PM 신고
    쓸데 없는 말덜 주절대지 말고
    독일과 일본사람덜이 각기 몰래 찍어서 목숨 걸고 국외로 가져간 비디오를 한번이라도 보시오. 그럼 우익님덜도 돌 들고 연희동 빛나리집에 가고 싶어질 것이요. 그 나이 되도록 그 비디오도 안봤으면 인생이 참으로 한심한 거라오. 초고액연봉의 귀족 조갑제의 요설 백마디보다 그 비디오 한편이 훨씬 더 진실을 잘 말해준다오. ↓댓글에댓글
    • ㄴ 1. 김서방 '07.1.17 9:24 PM 신고
      철없는 참잘햇어야..쯔쯔..
    • ㄴ 2. 아리만 '07.1.18 2:23 AM 신고
      참잘했어요님 저 아세요? 누구신데 한심하다는둥 지껄이세요? 어이가 없군요. 님 앞가림이나 잘하세요 남쓴글에 한심하다는둥 하는 수준낮은 리플다시지 마시구요
      제가 왜 참잘했어요님 리플에다가 글 안쓰는지 알아요? 말하는거보면 나이는 드실대로 드신거같은데 쓰는 말들과 개념들이 초딩같아서에요. 나이드시고 키보드워리어짓하시면 뭐가 좋길래 그러시는진 모르겠지만 토론장에서 주절댄다느니 한심하다는둥 그따위말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개념은 부재중이 아니시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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