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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의 율법과 십계명

 


 ● 의문의 율법과 십계명


 십자가 후의 율법과 복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찰해온 대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문의 율법을 폐지한 반면, 도덕적인 율법(십계명)의 계속적인
유효성을 확증해 준다. 그 증거를 주목하라.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말씀하신 유일한
말씀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신 5:22).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인간의 잊기 쉬운 정신에 맡기지 않고, 당신의 손가락으로
두 돌판에 새기셔서 성막의 증거궤 안에 두어 보존하게 하셨다
(출 31:18; 신 10: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에 대한 그들의 관계와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상술하는 부가적인 율법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 부가적인 율법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스라엘의 민사 업무(민법)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다른 것들은 성소 봉사의 의식들(의식법)을 규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이 부가적인 율법들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셨으며,
모세는 그것들을 "율법책"에 기록하여 "언약 궤 곁"(신 31:25, 26)에 두되,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인 십계명의 경우처럼 언약궤 안에 두지는 않았다.
이 부가적인 율법들은 "모세의 율법책"(수 8:31; 느 8:1; 대하 25:4),
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왕하 23:25; 대하 23:18)으로 알려졌다.


1. 의문의 율법.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희생 제도의 예언적
상징을 성취시키셨다. 모형은 원형과 만났으며 의문의 율법은
종지부를 찍었다. 수세기 전에 다니엘은 메시야의 죽음이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단 9:27; 본서 4장 참조).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의 휘장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둘로 갈라졌으며(마 27:51), 그것은 성전 봉사의 영적 의미가
끝났음을 가리켰다.

비록 의문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지라도, 그것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 10:1)에
불과함으로서 많은 면에서 불충분하였다. 그것은 일시적인 목적을
위해 봉사하였으며 "개혁할 때"(히 9:10; 갈 3:19 참조)가 오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과되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 어린양으로서 운명하실 때까지이다.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셨을 때, 의문의 율법의 효력은 끝났다.
그분의 속죄의 희생은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제공하였다. 이 행위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골 2:14; 신 31:26 참조)셨다.
그 때, 어떤 경우든 죄를 없이하거나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는 세밀한
의식들을 행하는 일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히 10:4, 9:9, 14).
소제와 전제, 각종 절기 의식(유월절, 오순절 등), 월삭 또는 절기
안식일들에 관한 복잡한 요구 사항들과 더불어 의문의 율법에 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골 2:16; 히 9:10 참조).
그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골 2:17)에 불과하였다.

(골 2:14) -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어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 말씀은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폐지된 것은 제사 제도와 관련된 의식법을
말하는 것이지 십계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못박으신 "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의문은 헬라어로
dogma인데 고시된 일반 법규나 종교적인 제도나 규정으로 모두 법적인
책임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만든 의식적인 법규들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사용하였다(엡2:15). 그런데 "증서"라는 말은
성경을 통틀어 여기에 한 번밖에 사용되지 않은 특별한 용어로써
고대 문서 연구를 통해 그 참뜻을 밝힐 수 있다.
이 '증서'란 헬라어로는 cheirographon인데 손으로 쓴 것(handwriting)을
뜻하며, 실제로 쓰일 때는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고 직접 날인한
"빚 문서"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다.

그러므로 (골2:14)의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어 ...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의 참 뜻은 개정역 성경에 바로 번역되었듯이, "법적인
요구를 가지고 우리를 맞섰던 법적인(죄의) 채무증서를 끄집어 내사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폐기하셨다"라는 본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서 죄의 빚을 갚아 주셨기 때문에
"죄의 채무증서"가 폐기된 것이다.

  다시 한 번 알기 쉽게 여러 성경을 토대로 밝혀보면,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어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표준새번역) 골2:1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골로새서(공동번역)
2:14 또 하느님께서는 여러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리셨습니다.

골로새서(킹제임스)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1)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 "여러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라는 문장에 유의해야 한다. "의문에 쓴 증서"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계명이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에 십계명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기 위하여, 또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달갑지 않은 십계명을
주셨다는 식의 명백한 곡해가 된다.
이러한 자명한 오해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인만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하신 것처럼, 모든
율법의 본래 목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엡 2:15에도 언급된 것처럼 원수가 된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의문법을 풀이한 해석과 그에 덧붙여 만든 조항들, 그리고 그 결과 유대인
들이 지니게 된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르러 온 폐단을 에베소서 2장에서는 십자가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셔서 해결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2:15(개역한글)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에베소서2:15(현대인)
그들을 원수로 만들었던 계명의 율법을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적인 죽음으로
폐지하신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화목하게 하고

에베소서2:15(킹제임스)
원수된 것, 곧 법령 안에 속한 계명들의 율법까지도 그의 육신 안에서
폐기하셨으니 이는 그 둘을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으로 창조하사 화평케
하시고

여러 성경의 말씀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들이 들어 있는 빚문서", "여러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로 말씀에 표현된 "의문에 쓴 증서" 또는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에 하나님께서 직접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을 포함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천인공노할 명백한 곡해이다.


(2) 의문 : 헬라어 원문에는 "도그마타"로 되어 있는데, "규례", "포고령",
"법령", "법규" 등을 의미합니다. 눅 2:1에는 이 단어가 "천하로 다 호적
하라"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을, 행 17:7에는 일반적인 가이사의 영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행 16:4에는 예루살렘 총회의 규례를 묘사하고
있다. 골 2:14절에서는 "도그마타"는 십자가로 끝난 유대인의 율법체계의
다양한 법률과 포고령을 가리킨다.


(3) 쓴 증서 : 헬라어 원문에는 "케이로그라폰"으로 되어 있는데, 신약에서
이곳에 단 한번 나온다. 이것이 첫째, 채무와 관련된 것으로 둘째,
유대인들이 해석한 모세율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후자가
다음 문맥에 더 조화롭게 해석된다.


이것은 엡 2:15에 사용된 단어들과 유사하고, 두 편지서가 갖고 있는 평행성
으로 비추어 볼 때, "의문에 쓴 증서"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과 동일하다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엡 2:15의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규례들로
이루어진(즉 규례로 표현된) 계명의 율법"[직역한 것이며, '속한' 이라는 단어는
첨가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유대인들이 의문법을 풀이한 해석과 덧붙여
만든 조항들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체의 반영일 뿐인
그림자를 더 이상 취급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구주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골 2:17)
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해석대로, 의문의 율법은 그들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장벽이
되었다. 그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밝게 비추어야 할 그들의
사명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였으며, "십자가로... 한 몸"이 된 믿는 자들의 새로운 한 가족을
이루기 위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헐었다(엡 2:14-16).


2. 십계명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문의 율법의 효력을 종식시킨 반면에, 십계명의
권위를 확립시켰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사실이 율법의 폐지를 뜻하거나 우리에게 율법의 원칙들을 범할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율법의 영속성에 관한 성경의 많은 증거들은
그 같은 견해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참고로,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칼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권세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건하고 거룩한 생애를 위한 영원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처럼 불변해야 한다."


바울은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과 순종 간의 관계를 묘사하였다. 믿는 자들에게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호소하면서, 그는 그들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촉구하였다. 이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3, 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죄에 더욱더 깊이 사로잡힌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이 율법 아래 있는 한 그는 죄의 지배 아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나 죄의 세력,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정죄로부터 놓여날 뿐만 아니라(롬 8:1)
그것을 정복할 힘을 얻게 된다(롬 6:4). 그리하여 죄는 더 이상 그들 위에
군림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고 첨언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분은 의를 얻는 방편으로서의 율법의 끝이 되심을 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는
죄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분의 입혀주시는 의를 통해서 의인이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다는 사실이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롬 6:1)할 허가증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은혜는 순종과,
죄에 대한 승리를 가능케 하는 능력을 공급해 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롬 8:1, 4)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을 확대시켰으며 그것의 보편적인 권위를 드높였다.
만일 십계명이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분께서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율법은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부과하는
형벌을 치르기 위하여 죽음이 요구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 요구를 충족시키셨으며 당신의 놀라운 희생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이 가능하게 하셨다.

율법에 대한 순종.

사람은 자신의 선행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열매이다. 그분의 놀라운 은혜, 특별히 십자가에서 나타난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죄의 형벌과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비록
그들이 죄인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제공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은 회개한 죄인으로 하여금
반응하도록 일깨우는데, 그것은 그처럼 풍부하게 주어진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사랑으로 하는 순종 가운데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과 순종의 축복들을 이해하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도록 크게
고무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스도께서는 십계명으로 된 율법에 최고의 존경을 나타내셨다. "스스로
있는" 위대하신 분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도덕적인 율법을
시내산으로부터 친히 선포하셨다(요 8:58; 출 3:14; 본서 4장 참조). 세상에서
그분께서 행하실 사명의 일부는 "그 교훈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사 42:21)는 것이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적용하고 있는 시편의
말씀은 율법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히 10:5, 7).

그분의 복음은 십계명의 유효성을 굳게 세우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장엄함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며
그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실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와 거룩함을 옹호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서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사랑에서 우러나는 순종의
생애를 사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분께서는 영생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을 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대답하셨다. 그분은
또한 이 원칙을 범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23)고 하셨다. 율법을 범하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폐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친히 율법을 온전케 하셨다. 그분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마 5:18)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숭고한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크게 강조하셨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마 22:37, 38)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듯이
이기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않도록 경고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설명하기 위하여 "새 계명"
(요 13:34)을 주셨다. 이 새 계명은 율법을 대신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이전에 세상에서 결코 목격되어진 바가 없는 그와 같은
비이기적인 사랑이 진정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은 의미에서 그분의 계명은 새 계명으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고 촉구하였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하늘 아버지의 율법을 어떻게 크게 하셨는지 그에
대한 증거를 하나 더 갖게 된다."

순종은 그같은 사랑을 드러낸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요일 2:3)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드릴 수
있다. 그분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5)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며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고 바울이 기록한 바를 경험해야 한다. 이 같은 상태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새 언약의 약속을 성취시킬 수 있으시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2007-01-23 08: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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