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은 있을까? (영혼은 불멸할까?) ◆
과연 지옥은 존재할까? 진실부터 밝히자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지옥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사랑의 품성을 갖고계신 하나님께서 지옥 따위를
만들어 죽지도 못하는 죄인들을 끄지지 않는 유황불로
날이면 날마다 볶고 지지고 튀기며 영원히 영원히
고통스럽게 하실 수 있을까? 그런 지옥이 있다면
하나님은 학대를 즐기는 흉악한 괴물일 뿐 우리가
믿고 섬기고 따를 가치가 전혀 없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사랑의 품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과연 지옥을 만들어
무수한 죄인들을 죽지도 못하게 '지옥'이란 곳에 가두어
하고한날 펄펄 끓는 물로 삶고 유황불로 지지면서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한 편에서 온화한 음성과 손길로
구원받은 자녀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 수
있을까? 그건 하나님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사람을
가학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괴물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괴물일 뿐이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구원 받은 한 영혼이
하늘나라에 들어갔다고 하자. 불행하게도 말씀을 깨닫고
믿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형제와 자매 부모님과 자녀 그리
고 절친한 친구들이 꺼지지도 않는 지옥불 속에서 죽고 싶
어도 죽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과연
천국에 있는 그 영혼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자매 자식까지
유황불에 날마다 구워지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과연 천국
에 속한 참다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지옥이 없다
는 것은 성경 말씀으로도 너무나 확연하지만 초보족인 상식
만으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성경을 통하여 말씀으로 살펴보자.
아래 글을 차분히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제1차 토론 주제는 종말, 즉 죽음에 관한
문제였다. (요8:44-47)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
니...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
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셨는데 마귀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고 처음부터
거짓말 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8:4)"고 하였
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롬6:23)"고 했다. 만일 범죄한
영혼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지옥이 있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계20:15)
에는 불못을 "둘째 사망"이라고 해서 영원한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시37:10)에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고 하였다. 성경의 정통
적인 견해는 사실상 범죄한 영혼이 죽으리라는 것이다.
(계21:1)에선 "지구가 불로 사라진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존재"할 것을 언급하였다.
사람이 일생동안 죄만 짓고 살았다 하더라도 불과 70-80년
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 평생의 죄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당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에 비추어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최근 영국 국교인 "성공회"
는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징벌의 불구덩이로
묘사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지옥은 다만
신이 함께하지 않는 총체적 부정과 무의 상태"라고 수정하였다.
특히 성공회는 가학적으로 표현된 전통적 지옥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상흔을 남겼으며 "하나님을
학대를 즐기는 괴물"로 만들었다고 비판하였다.(동아일보
96.1.13)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비추어 볼 때 지옥이란 존
재할 수도 없는 것이며 다만 범죄한 영혼은 죽을 뿐이다.
하나님은 애초에 "지옥"이란 걸 만드시지도 않으신 것을 알아
야만 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통하여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자.
*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
많은 사람들이 이 비유를 갖고 마치 지옥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칼빈"이 카톨릭의 중세 신앙을
뿌리치고 개신교 신앙으로 돌아선 지 불과 2년만인 25세때
(1534) 최초로 쓴 글 "혼수론" 때문이다. 현대 칼빈주의 신앙
을 대표하는 훼케마씨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가 사람이 죽는 때로부터 부활할 때까지의 중간
기간 동안 몸을 떠난 영혼이 의식을 가진 채 실제로 겪는
'중간상태'라고 주장하여 이 기간 동안 의인의 영혼은 낙원에
서 예비적인 행복을 누리고, 악인의 영혼은 음부의 불 속에서
예비적인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순전히
칼빈만의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칼빈은 "혼수론"에서 죽음에서 부활까지 사람의 영혼은
잠과같은 무의식 상태에 들어간다고 가르친 당시의 열심있는
개혁자들이었던 "재세례파"들을 공박하기 위하여 입에 담기에
도 부끄러운 민망스러운 거친 표현과 미성숙한 논리로 그들을
공박하였다. 이 논문에서 칼빈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로 영혼이 몸을
떠나 자유롭게 된 상태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그룻된 주장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근거를 확연히 규명해 보자.
칼빈의 주장이나 훼케마씨의 주장이 참말이라면 아래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성경 말씀과 지극히 기초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 신.구약시대에 죽은 모든 의인의 영혼들이 죽는 즉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면 기원전 거의 2천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 이전의 영혼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의인이 죽으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간다는 어떤 암시라도 성경에 있는가?
* 의인의 영혼이 머문다는 아브라함의 품과 악인의 영혼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 당한다는 음부가 아주 가까와 비유에서
처럼 마주보면서 대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구원받지 못한 부모, 처나 남편, 자식, 형제나 친구, 이웃이
불 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그 참상을 눈으로 보면서
몇 백년. 또는 몇 천년을 지나는 아브라함 품안의 의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낙원은
없어야 하며 있다 하더라도 생지옥일 뿐이다.
* 죽은 의인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관할 아래 있고 고통
받는 악인들도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자비를 탄원
해야 한단 말인가? 비유에서처럼 죽은 의인의 영혼이 고통
당하는 악인의 영혼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성경
어느 부분에 이러한 기상천외한 가르침이 있는가?
* 칼빈이나 훼케마씨는 비유에 나타나는 아브라함, 부자,
거지 나사로가 모두 죽은 뒤 몸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들이
라고 했는데 성경 분문에는 그들이 영혼이라는 표현은 전혀
없고 오히려 품, 눈, 손가락, 혀 등 육신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지 않았는가?
* 성경에는 아브라함도 다른 노독들과 함께 약속된 영생
과 본향은 받지 못한 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었고 하나님
께서는 그들을 위해 세상 끝날 하늘에 있을 곳을 예비하신다
고 했는데(히11:8,13-16.39,40), 어떻게 아브라함만이 마지막
날 있을 부활도 거치지 않고 육신도 없는 영혼의 형체로 성경
에 유래가 없는 이상한 낙원에 홀연히 나타났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가정은 성경은 물론 초보적인 상식에서도 벗어나는
주장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 비유에서 부자가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음부'
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hades로 히브리어의 sheol과 같은 것인
데 그곳은 의인이건 악인이건 사람이 죽으면 모두 가게 되는
"무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데스 곧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불꽃 가운데서 테워진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고
기록된 바가 없다. 죽어서 무덤에 있는 사람들을 등장시킨
풍자적인 비유이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한 것 뿐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이솝의 우화처럼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쓴 경우가 있다. 즉 여러 나
무가 사람같이 말하는 것으로 쓴 경우가 그것이다. (삿9:8-15,
왕하:14:9) 그것이 비유인지는 문맥을 보면 알 수 있고 상식
으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기록된 누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여러 비유 설교
가운데 한 부분임은 다음의 요약에서도 일목요연해 진다.
(눅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비유로 이르시되"
(눅15:4-7) "잃은 양의 비유"
(눅15:11-32) "잃어버린 아들(탕자)의 비유"
(눅16:1-13) "불의하나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눅16:19-31)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누가복은 15장은 잃어버린 자를 주제로 한 비유들, 16장은
현세의 재물과 내세의 운명을 주제로 한 비유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누가 보아도 비유임에 틀림없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굳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고집한 칼빈의 판단은
어리둥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칼빈은 그의 다른 저서인
공관복음서 주석에서 "영혼이 무슨 입이나 혀나 눈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하여 "이것은 윤리적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정반대되는 말을 하여 또 다시 어리둥절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출처는 예수님 당시 민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이집트의 민속 설화였음이 금세기에 들어서 밝혀
졌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으로 옮긴 이야기인데 시-오시리스라는 사람이 사후의 지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이집트의
민속설화가 유대판으로 변형되어 바르마잔이라는 한 부자
세리와 한 가난한 서기관이 죽어 장사되었는데 이 서기관의
친구가 꿈 가운데서 이 두 사람의 내세의 형편을 보았다는
것이다. 마치 부정축재로 거부가 된 부자들과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빗대어 고발하는 오늘날의 풍자문학이나
사회만평으로 '부자와 나사로'역시 예수님의 풍자적인 비유
인 것이다.
* 20세기 양심이 거부한 영혼불멸과 영원지옥 신앙 *
20세기가 밝아오자 더욱 밝혀진 성경 진리의 빛 가운데
조건적인 불멸을 옹호하는 지성과 양심의 소리가 드높았다.
성공회의 선교 책임자인 Aitken을 시작으로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인 켄터베리 대주교인 Temple은 영혼불멸이 플라톤의
이교사상임을 지적하고 부활 때에 부여되는 불멸을 강조
하는 한편 연옥과 지옥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루터'는 1520년 11월 29일에 발표한 그의 41개조
신조에서 "영혼이 불멸이라는 신조는 터무니 없는 다른
견해들과 함께 로마 교회의 교령집 쓰레기 더미에서나
발견되어지는 것"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놓고 볼 때 '지옥'
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지옥'이란 말세에 한
순간에 불로 사라질 이 땅인 것이다. 따라서 악인의 영혼
은 다만 죽을 뿐이요 의인의 영혼은 불멸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신 하나님이 '지옥'따위를 만드시어 영원한
형벌로 죄인들을 고통 당하게 하시겠는가? 그렇게 하신
다면 결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학대를 즐기는 흉
측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일 뿐인 것이다.
* 이단이 된 정통, 정통이 된 이단 *
플라톤의 사상에 한 껏 물든 어거스틴에 의하여 확인
된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지옥, 연옥의 신앙은 13세기
스콜라 철학자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중세
카톨릭 교회의 확고한 교리로 집대성 되었다. 그리고 50년
후 단테는 '신곡'을 써서 이러한 영혼 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을 민속신앙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과정
을 거쳐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한낱 이교의 철학
사상에 불과했던 영혼불멸의 신앙이 그리스도교 안에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자, 종교 개혁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의 제8회기와 관련하여 1513년 12월 19일
"교황 레오 10세"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를 반포
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거룩한 공회의 동의로써 영혼은 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의 종규에 따라 지성적인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며 이와
같은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
이때부터 이교적이고 비성서적인 영혼불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 된 것이며 가혹한 책벌의 되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조건적인
불멸 신앙을 고수하는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사람들
은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해 있는 지를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명백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인간의 종말에 대한 두 가지 신앙 *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불멸의 속성이 주어진 바가
없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이 보장되었음
을 성경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죄의 삯은 사망"임을 경험
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을 받는 조건으로(요3:16,36, 11:25) 예수님 재림시에
(요일5:11, 고전15:51-53) 비로소 썩지 아니할 생명을
부여 받을 것임을(롬2:7, 딤후1:10) 약속 받았다.
반대로 끝까지 복음을 거절하고 불순종을 고집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있을 심판을 거쳐 재림 후 천년 뒤에
있을 둘째 부활로 주어진 육신의 몸으로 그 결과가 불의
심판에 사루어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된다는 사실
(계20:12-15, 말4:1,2, 사37:9-11, 롬6:23)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영혼 불멸이나 지옥설
은 '루터'의 말처럼 '로마교회의 교령집 쓰레기 더미
에서나 발견되어지는' 이교 사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영혼이 불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 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임은 누가 보아도 자명한 것이
다. 낡은 이교의 사상을 언제까지 고집하여 사랑이신
예수님을 "학대를 즐기는 미치광이 괴물"로 만들 것인
가? 이 글을 읽는 사람마다 깨닫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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