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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운 박정희 [펌]

 

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운 박정희

친일문제로 여야간에 논란이 일고 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당연하고 감개무량한 일이다. 그러나 친일파 청산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당시 자료와 증언자들이 미비한데다 그나마 상당 부분이 일제에 의해 조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옥석을 가리는 문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례로 고 박정희 대통령이 과연 친일파인가 하는 문제다. 박 대통령은 일제시대 일본군 소위 계급장을 달고 만주땅에서 복무했다. 일제가 채용한 공직자가 모두 친일파라면 박 대통령도 친일파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일본 군복을 입었지만, 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왔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필자는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며 마지막 임정요인이었던 백강 조경환 선생을 자주 뵈었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을 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
이다. 그 백강 선생이 하루는 내게 박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이십니다” 하기에 보니 박정희였다. 박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하는데,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웠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 중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 또 한 예로 일제때 우리 민족이 많이 부른 노래 중 ‘학도가’가 있다. 표면적으로 학구열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조선인의 교화를 위해 만든 노래이다.

이 노래를 90년대 초 KBS에서 틀었다가 한 재일교포로부터 엄중한 항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친일파 청산은 시대적 요청이나, 옥석을 잘 가려 우를 범하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

이기청·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방송인

2004.07.23 (금) 17:00

★★★ 한편 조경한은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출생으로 본명은 종현(鍾鉉). 1927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대학을 수학했다. 단재 신채호선생에게 백강과 경한이란 호와 이름을 받았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의정원의원, 한독당 조직부장을 역임했으며 김일성의 배신학교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공화당시절 박정희의 천거로 승주지역 국회의원을 지냈다.


-- 박정희 친일왜곡 진실을 밝힌다--

먼저 현재 인터넷이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 10가지란 글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님 말고” “~~카더라”란 유언비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최근 많은 단체에서 박통에 대하여 친일파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한 상반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파의 정의 즉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입니다......

따라서 위 논쟁에 대해 크게 분류해보면

1. 적극적 친일행위자만 해당된다 : 을사오적등 대표적 친일파들로서 이부분에 대하여 이견이 없습니다. 2. 일제시대 공직에 있었던자도 포함된다. : 이부분에 대하여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3. 창씨개명한자도 포함된다 : 이것은 당시 독립운동가외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해당되는바, 창씨개명 자체로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친일파청산에 반대하는 분들의 대표적 주장)

위의 세가지 분류를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2번에 해당됨에 따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었던 사람들의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심판할수 있을까? 많은 네티즌으로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시절 좌파를 제외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고 본보기로 삼아 기리며 추모했다는 것은 두말 할수없는 사실입니다

친일이냐를 따지자면 지위 고하에 막론하고 자신들의 재물 영달을 목적으로 그 시대 일제를 등에 업고 능동적으로 같은민족을 수탈하고 탄압하는데 앞장섰느냐 아니냐? 따져야한다는 것이 지금 신세대 네티즌의 중론입니다

일제하 공무원도 친일이고 법조인도 친일 군인도 친일이고 사업가도 친일이면 대체 싫어도 일제가 점령한 이땅에서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사람들은 뭘 할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먼저 인터넷상에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10가지란 글을 검토 해 보겠습니다.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현재 전혀 없으며, 만약 있었다면 박정희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나 현재까지 “~~카더라.” 라는 글만 있을 뿐
입니다...
혈서론의 출처가 만주일보라고 하는 데. 만주일보는 1927년에서 1934년까지라고 입니다.
즉 1934년에 폐간되었으나 박통이 입학한 때는 1942년입니다.
만주일보가 보관되어 있는 서울대의 소장목록입니다.. 찾아보시길...
(http://147.46.181.112/lib_service/separate/paper_list.html#마)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③ 완전한 일본인
- 위의 글들은 주관성이 개입된 글들로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글들도 엄청 많습니다... (예들 들면 지난cbs 방송에서 박통의 제자들이 증언한 박통이 선생으로 있을 당시 민족교육 및 만주군시절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몰래 빼돌린 일화등...)또한 님을 싫어하는 분들은 님을 극히 나쁘게 평가할 것이며, 님의 친구는 님을 극단적으로 좋은 평가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맹인모상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사람의 평가는 오직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참조글:일제하에서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였다(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69nj&articleno=2650946)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했다.
- 이 주장 역시 허위 날조된 글입니다.
위의 글에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을 신나게 토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만주에 독립군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박통은 1944년 3월부터 1년 5개월간 만주군제8단(단장은 중국인 唐際榮)소속으로 근무지는 중국 열하(요즈음의 이름은 承德)지방 이였습니다. 이지역은 독립군이 활동하던 지역까지의 지금도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입니다.. 또한 박통이 만주군에 복무한 1944년 당시의 만주독립군투쟁 항일기록을 보면 독립군은 1931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내륙지방의 도시인 중경(중국표현으로 "충칭")으로 본부를 옮긴 뒤 거기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1944년 당시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습니다..

- 반 박정희의 대표적인 지식인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의 기회주의자 청년 박정희란 글을 보면...

........ 생략 ............. 사범학교에선 꼴찌, 군관학교에선 1등

박정희에 대한 미화가 시작되고 급기야 기념관 건립 움직임까지 일자, 민족민주운동 진영에서는 박정희의 친일경력을 비판했다. 독립군 장준하와 친일파 ‘황군’ 장교 박정희, 그들 각각의 비극적 죽음처럼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보여주는 대목은 없을 것이다. 박정희의 친일이 문제되는 것은 해방 전의 그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해방 전 박정희의 친일경력이란 만주군군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경력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결성할 때나 각 정치단체에서 내건 악질 친일파의 처단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경미’한 것이다. 박정희가 관동군 정보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도, 당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군부대나 공산유격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 ]......생략......

-결국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나 참여하였다는 것은 허위 날조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 이것 역시 허위 날조된 글로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의 명단(出典 : 중국측 조사자료-"特設部隊", 1960, 66 - 84쪽.)은 아래와 같습니다.

박정희의 이름이 어디에 없습니다.

간도특설대(총79명) - 姜在浩 李元衡 朴鳳祚 金燦奎(金白一) 金錫範 金洪俊 宋錫夏 石希峯 崔南根 崔在恒 신현준 최경만 윤춘근 문이정 趙某(豊田) 김용기 태용범 백선엽 윤수현 이재기 김묵 豊田義雄 吳文剛 李淸甲 申奉均 海原明哲 白川** 金松壯明 伊原久 鶴原** 朴東春 李鶴汶 崔忠義 朴鳳朝許樹屛 金大植 方得官 洪淸波 金龍虎 金致斑 具東旭 朴春植 方太旭 孫炳日 劉仁煥 尹秀鉉 李德振 李龍昊 李東俊 李龍星 李準龍 李逢春 太溶範 崔在範崔炳革 李龍 金忠南 車虎聲 金忠九 柳益祚 朴春範 朴春權 曺昌大 洪性台 李東郁 廉鳳生 吳南洙 金萬玉 金鍾洙 李東和 朴蒼岩 朴泰元 李白日 金龍周 申然植李龍星 任忠植,, 馬東嶽, 桂炳輅, 全南奎

- 2004. 06.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만주군의 친일파 내용중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의 명단에도 박정희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MBC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부분은 좌익입장에서 보면 사실일수도 있으며 기회주의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우익의 입장에서 왜 공산주의를 배신한 것이 기회주의가 되어야 하는지?그러면 공산주의자로서 그냥 남아 있어야 했다는 뜻인지?
솔직히 공산주의 배신한 것 잘한 것 아닌가요?비난을 위한 비난일뿐입니다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 김대중대통령 시절 박통을 친일파로 몰고가기 위하여 박통의 창씨개명인 다카키마사오를 들고 나왔으나, 김대중대통령의 창씨개명명이 도요다다이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되었는데 ....아직도 써먹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또한 오카모토미노루의 창씨개명은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창씨개명자체로는 친일파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이글 역시 ② ③번과 같습니다...첨언하자면 우리나라의 많은 창군 멤버들도 일본군에서의 군 경력이 다분히 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간과해선 안될 것은 6.25때 다름아닌 그들이 북괴 공산당의 침략에 맞서 싸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켜낸 공이 있다는 것입니다(북한도 만찬가지 입니다 고위층 장성중에 특히 공군의 태반이 일본군장교출신입니다김일성한테 꺼림칙하면 친일파라 숙청하고 아니면 말고 그게 북한이 자랑하는 친일파숙청임)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1

대통령이 국가이익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 및 협조를 받은 것이 친일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지금 일본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합니까? 또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외교적 수사법으로 한 발언이 친일파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요? 외교석상에 욕을 하면 그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일까요? 역대 대통령 치고 이러한 외교적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는 대통령이 없습니다.반미면 어떻냐?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가서 미국이 없었다면 나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달러중 무상으로 3억 달러, 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결합니다..
(한일회담 당시 일본의 국고는 14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위 조건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즉 80억달러 주겠다는데 박통이 이렇게 받았겠습니까?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 주는 쪽이 일본인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승전국의 위치가 아니였습니다
(배상금이라는 것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주는 겁니다. 일본은 협상하는 동안 시종일관 배상금이라는 이름보다는 경제협력금, 독립축하금이라는 이름으로 수교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미국한텐 패전국이지 어부지리로 독립 얻은 한국에겐 패전국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일협정 성사 배경에는 미국의 압력이 주효했다는 지적입니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통합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서둘렀다는 것이죠
그들은 우리나라한테 일본에서 자꾸만 시비를 거는 독도를 포기하라고까지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다 대노할 정도로 미국의 조속한 한일수교협정체결 압력이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박통은 독도를 끝까지 배타적 경제수역 (EEZ)로 지켰습니다 단지 국제분쟁화 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술책에 직접적이고 감정적 대응을 자제한 정책기조를 선택했고요 이는 설득력있는 정책입니다.dj정권 노정권까지 비숫한 기조를 이어오고 있지요

정작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은 한일신어업협정을 맺은 DJ정권 그것을 계속 연장해준 노정권입니다 60년대 그당시 냉전시대의 강대국의 논리가 없었다면 과연 일본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한테 돈을 주면서까지 수교를 할려고 했을까요? 수교 안해도 일본제품은 우리한테 얼마든지 내다 팔수 있습니다 덧붙여...박정권이 개인청구권을 팔아 먹었다는 것은 잘못알려진 사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청구권을 팔아먹은 것은 장면정부입니다 개인청구권이란 개인이 일본정부간에 재판을 통해 배상받는 것인데 실제로 배상받은 사례는 거의 잘 없죠

일본이 주장했던 것은, 서류로 증빙할 수 있을 경우에만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전쟁 문제도 있고, 모든 부분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정부는 그런 개인 보상도 포함해서 국가가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이라든가 하는, 국가와 개인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태도를 견제했던 것입니다, 결코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로부터 피해를 본 조선국민 개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피해보상 하겠다는 것을 국가가 가로챈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할 경제개발 종자돈을 베팅할수 찬스를 놓쳐야한다니....?
그당시 아사자 동사자 전염병자 비일비재하는 국가에서 할수 있는 최선책였을까요?

회담이 성사된 후 박정희 정권은 민족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비난과 반발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종자돈을받아 투명하게 충실히 모범적으로 사용하여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지금보면 긍정적 평가가 국민적인 대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금액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수십억달라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라니..? 논리적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 위 사항은 정책결정사항이며 이러한 정책결정사항으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한다면?

현대적 개념의 국토는 땅 하늘,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땅 독도는 현재 신한일어업협정에 의거해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독도가 국제법상 일본에게도 영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노무현대통령은 DJ정권의 해수부장관출신입니다.)당시에 이뤄어 졌습니다. 그럼 김대중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일본대중문화를 완전 개방하고 신어업협정 연장하신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친일파로 치자면 누가 진짜 친일분자인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청구권자금 때문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당시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요?

-1993년 김영삼대통령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으며,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즉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출처 : http://news.sidaesori.co.kr/bbs.html?Table=ins_bbs97&mode=view&uid=12&page=1&vnum=12




브랜단
2007-01-29 10:50:41
1012 번 읽음
  총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브랜단 '07.1.29 10:55 AM 신고
    현재 정부 차원에서 박정희 같은 한 민족의 영웅을 죽이고 있는 목적은 딱 한가지 입니다.
    바로 민족정신 말살이지요.
    이 민족정신은 한 나라의 주체권을 말살하는데 원동력이 됩니다.
    민족정신을 말살하게 되면 남는것은
    한미FTA에 의한 외세 자본 침투로 인한 국가 분열이지요.

    그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네티즌 또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네티즌 실명제를 한다한들...

    얼마전에 유니가 유서없이 자살을 했습니다.
    제가 볼땐 타살이지만..
    어쨋든 좋습니다.
    실명제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보았을때 유니 같은 가수가 무엇때문에 자살했는지는
    유서가 없기 때문에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자살동기도 문제이고..
    유니 문제로 인해 실명제가 실시 된다면
    이것은 분명 정부 차원에서 타살을 지시한 것일 수도
    있음을 여러분들은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댓글에댓글
  2. 2. 행복한 바보 곰 '07.1.31 1:27 AM 신고
    별 거지 같은 글 다보겠네 ^^
    민족 정신의 말살이라...
    이글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어데 신동아나 월간 조선에서 지어낸 소설아닌가요??
    출처를 정확히 해 주시셔서 그 글이 정말 믿을 만한(하긴 브랜단님의 지금까지의 글 내용을 보면 월간 조선이나 신동아가 믿을 만하겠지만)곳이라면 인정? 해 보죠 ㅋㅋ
    하지만 그렇게 정부가 싫다면 이 나라를 좀 떠나 있는건 어떤지 그러다 정부에 의해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개죽음밖에 안 되잖아요.
    그래서 떠나서 그 잘난 박정희 찬양하면서 사세요. ↓댓글에댓글
    • 1. 브랜단 '07.2.1 6:24 PM 신고
      우선, 거지같은 글은 반사 드리겠습니다.
      출처는 밑에 있습니다.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2. 김서방 '07.2.1 8:58 PM 신고
      별거지 같은 바보곰 양반 다보겠네..
      브랜단님 말처럼 좀 제대로 출처 밑에 읽어보라고..별거지같은 바보곰 노빠아닌가?
  3. 3. lamune '07.2.1 2:56 AM 신고
    개인적인 판단 기준 민족의 영웅은 좀... 공감하기 힘드네요..
    다른 모든걸 떠나서... (다른 모든 내용과 마찬가지로 극비리로 독립군을 도왔다는 내용도 신빙성이 없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가장 확실한 사실.. 일본군 장교 였고... 인권을 탄압하고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잘한게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한 사실이 덮어 지는것은 아니죠.. 잘 한게 있다면 잘한거고 , 잘못한게 있다면 잘못 한거고요... ↓댓글에댓글
    • 1. 브랜단 '07.2.1 6:24 PM 신고
      대한민국 최고의 대통령이였다는 점도 바뀌지 않는 점이죠.
    • 2. 김서방 '07.2.1 8:55 PM 신고
      인권을 탄압하고 죄없다는 사람 죽인 증거를 내놓으시오..독립군을 도왔다는 내용이 님에게만 신빙성이 없다고 우겨대는거지 .저위에 기사에 잘써있자나여..일본군 장교여서 머 어쨋단거여?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이 열우다 거 머시기.글고 김머시기 아빠.
      이거보시오..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은 박정희라오..반박할거 있슴 자료를 들이대며 하시오..
      이빨로만 선동 구라 하지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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