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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미디어포커스] "인혁당 사건" 언론은 뭐했나

 

http://news.kbs.co.kr/article/mediafocus/200701/20070128/1291302.html

<앵커 멘트>

이번 주 우리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한 장면을 떠올려야했습니다. 선고 후 18시간 만에 8명을 사형에 처한 ‘인혁당’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법원의 인혁당 사건 재심 판결을 계기로 언론은 당시 사형집행을 사법 살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살인행위를 지켜본 우리 언론은 당시에 도대체 무얼 했을까요?

박찬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공산혁명을 기도하는 ‘인민혁명당 재건위’가 시위주동 세력인 ‘민청학련’의 배후에 있다.”

지난 74년 4월 중앙정보부의 이 발표 이후 1년 만인 75년 4월 8일,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선고 후 18시간 만에 이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인혁당 재심 사건을 심리해온 법원은 지난 23일, 인혁당 사건은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며, 32년 만에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각 방송과 신문들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전하며, 당시 사형선고와 집행은 유신시절 정권의 시녀였던 사법부에 의해 저질러진 ‘사법 살인’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론은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사법부를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할까?

재심사건 선고공판일.

언론의 느닷없는 관심이 유가족 등 관련자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인터뷰>문정현 (신부/인혁당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 "이 분위기도 참 낯설기만 합니다. 그동안 언론들, 완전히 저희를 외면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언론들이 거기에 대한 한마디 반성도 없습니다. 참 원망스럽습니다."

언론에 대한 이들의 원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32년 전 사형선고와 집행 때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당시 방송은 물론 신문들도 도예종, 서도원 씨 등 인혁당 관련 8명의 사형 선고 소식을 1면 톱 등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선고 후 18시간 만에 집행된 세계 사법 역사상 초유의 만행에 대해 언론들은 단순 사실보도로 일관했습니다.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판결문을 그대로 실은 신문들은 있었지만, 과연 시급을 다퉈서 사형을 집행했어야만 했는지, 의문을 제기한 곳은 없었습니다.

<인터뷰>이영교 씨: "신문사에 다녀갔다고..손톱만큼 기사를 내달라 그래도 아무도 우리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적화통일’을 유언으로 남겼다는 사형집행관의 말을 인용해, 사형집행이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나마 동아일보가 4단 만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사형집행을 풍자했을 뿐입니다.

외국 정부의 유감 표명 등을 1단으로 다루긴 했지만, 가족이나 재야단체의 목소리는 외면했습니다.

<인터뷰>이유정 (천주교인권위원회 변호사): "유족분들이 당시 고문이나 가혹행위 알리기 위한 노력들을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태도로 보도해 주었다면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통 겪는 이런 일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진실을 알리기는커녕 중앙정보부의 사건 발표 때부터 권력의 말만 충실하게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은 긴급조치가 없더라도 극형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습니다.

당시 한 신문의 사설은 언론이 얼마나 비굴해 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신문 1975년 4월10일>

" 대법원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심혈을 기울여 심리하고 선고한 것이므로 더 이상 불복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서슬 퍼렇던 유신시절, 언론은 사법부 못지않게 권력에 굴종했습니다.

이번 인혁당 사건의 무죄판결은 우리 언론의 자세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당시 정국의 상황이 혼란스러웠다는 변명만으로는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재심판결 이후 쏟아져 나온 사설 중에서 언론이 자성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한국일보만 야만적 '사법살인'이 저질러지기까지 한 마디도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언론도 부끄러운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을 뿐,조선일보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또 다른 재심 요구들이 무분별하게 잇따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본질에서 빗겨난 말로 사설을 맺었습니다.

동아일보 역시 재판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야 한다며, 오늘의 사법부도 과거의 사법부와는 역방향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았는지 자문하라는 엉뚱한 정치성 훈계를 늘어놓았습니다.

<인터뷰>이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 “법적 안정성이라든지 아니면 법원이 오히려 정치 물들지 않았는지 자성해보란 식으로 법원 판결 자체를 좀 흠집내려는 그런 시도라고 보이구요. ”

방송들 또한 이번 무죄선고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도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최소한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김평호 (단국대 교수): “과거에 이런이런 변명 댈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러면 언론 기본 충실한 역할 다하고 있느냐, 언론이 권력기관 역할 자임하고 있는 부분 없는지 반성이 절실하다고 얘기할수 있는거죠”

인혁당 사건 무죄 선고!

사법부는 자기부정을 통해 뒤늦게나마 사법정의를 다시 세우는 길을 택했지만, 언론이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해 보입니다.

사법 살인을 지켜보면서도 단 한마디 진실도 전하지 못했던 우리 언론, 3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혁당 사건에서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사회] 박찬형 기자

http://news.kbs.co.kr/article/mediafocus/200701/20070128/1291302.html 




2007-01-29 14: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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