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우리를 버렸다"는 주제로 시작된 토론회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알려져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6개의 대표적인 탈북자 박대 사례가 발표됐다.
먼저 최욱일 씨는 총영사관측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담당 직원과 통화하자 오히려 "내 번호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번호를 알게 된 경위를 질문 받는 어이없는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국군포로 가족 9명의 경우.
2006년 10월11일에는 국군포로 가족 9명이 탈북 후 중국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 직원이 주선한 민박집에 머물던 중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외교부는 ‘중국 공안의 일제 검문검색에서 체포됐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검문이나 검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사례인 국군포로 한만택(73)씨는 2005년 12월27일 탈북 했다가 하루 만인 28일 중국 공안(公安)에 체포된 뒤 강제북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의 조카 정구(55·직장인)씨는 청와대를 찾아 한국 정부의 대처방식에 항의하며 삼촌에게 수여된 화랑무공훈장을 반납했다.
그는 송환촉구 탄원서를 함께 제출하면서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했다. 정구 씨에 따르면 정부는 “모르겠다. 확인중이다”,“설마 국군 포로인데, 강제로 북한으로 보내겠느냐?”는 속편한 소리만 했다고 한다.
네 번째 사례는 대사관녀 사건으로 유명한 국군포로 장무환 씨.
2006년 11월 국군포로 장무환씨가 1998년 주중(駐中)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도와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가 끊겨버린 동영상이 재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이른바 “대사관녀” 사건 때문에 외교부는 공식 사과를 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이밖에 최영훈씨는 2003년 1월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항에서 탈북자들의 탈출을 돕다 체포돼 중국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해 11월 3년11개월 만에 석방된 뒤 귀국했다.
한국 정부는 수감돼 있는 최씨를 단 한 번도 면회 오거나 확인하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의 면담요청을 만류하는 등 자국민 포기의 극단적 사례를 연출했다.
마지막 사례로 소개된 1998년 탈북한 최초의 납북어부 이재근씨.
이씨가 중국 칭다오(靑島)영사관에 구원을 요청했을 때, 한국 외교관은 ‘당신 세금 낸 적 있어요? 왜 국가에 부담을 주려고 그래요?’라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위에 나온 총 6개의 사례로 진행된 토론회는 정부와 대사관 관계자들의 비상식적 행위와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