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환단고기열풍
네티즌 의견 총 2624건중 환단고기 관련 의견 752건, 전체의 30% 환단고기가 어떤 책 이기에 네티즌들은
이렇게 열광 하는가?
이 열풍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특히 이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한 관심이 아주 뜨거운데요...
이 환단고기야 말로 우리 상고사의 비밀을 풀수있는 책 이라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반듯이 밝혀 달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스페셜에서는 이 환단고기가 어떤 책인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전해졌는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환단고기에 대한 취재를 하자마자 아주 놀라운 일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팩스를 받은 것 입니다.
그 동안 역사스페셜의 도움을 주었던 한 전문가에게로 부터 온 팩스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뜻밖에도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스페셜이서 환단고기를 방송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놀랐습니다 환단고기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룰 경우 그 여파도 엄청날뿐 아니라 과연 어느 사학자가 이 문제의 총대를 맬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를 프로그램으로 이미 만들겠다고 선언한 역사스페셜팀에 그 프로그램을 포기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역사스페셜에서 이 환단고기를 방영하는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그것을 만류하
는 그런 내용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팩스는 이번 취재에 어려움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서 이번 취재를 거부하는 정도는 예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아주 완강한 것 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한 쪽에서는 열광적으로 방송되기를 바라고 또 한쪽에서는 아주 심각하게 방송을 만류하는 그런 책
도대체 이 환단고기가 어떤 책 이기에 이런 열광과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는 것일까요?
환단고기는 4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 있는 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인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역사가 담겨있다.
그런데 이 책속엔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일만년이라고 살아나고 있다.
단군조선이 있기 이전에 5천년의 역사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배달국)이라고 불리우는 배달국이 있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후..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이은 고구려...대진국(발해)이라고 하는 발해..
그리고 고려의 역사로 펼쳐진다.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하다.
1만년전 탄생한 최초의 국가 환국 환국은 3301년동안 일곱명의 환인이 통치했다 한다.
그후 신시(배달국)은 18명의 환웅이 1565년 동안 다스렸다고 한다.
환국과 신시(배달국)이 5천년 정도 이어진후 마침내 단군조선이 탄생하는데 47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한다.
- 윤명철 박사 동국대 사학과 -
이 책은 우리가 알고있는 사료와는 달리 우리민족의 위대성 그 다음 우리민족의 영토 이러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실 여부와는 관련없이 우리민족의 위대성을 원하는 사람들 또는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자극 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상당히 중요한 그런 책 이었었죠.
환단고기의 담겨있는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엔 이런 기록이 있다.
파메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 동쪽 땅이다. 그 땅의 넓이가 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에 이른다.
파메류산은 지금 시베리아중앙고원에 해당하고 천해는 바이칼호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1만년전에 탄생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선다.
당시 환국은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자랑하는 나라였고,
이 땅에선 12개의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 나라들 중엔 수밀이국이란 나라가 있다.
일부에선 이 수밀이국을 고대 수메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민족이 우리민족이었다는 것이다.
광활한 영토뿐만아니라 환단고기엔 눈부신 영웅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영웅은 치우천황 신라시대의 이 도깨비기와 (신라시대 귀면와)는 치우천황의 얼굴이라고 전해진다.
배달국의 14대 환웅의 이 치우천황은 5천년전에 이미 철재무기를 사용했던 인물로 전쟁의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우지 환웅이 있었는데 머리는 구리로 두르고 이마를 쇠로 가린 모습이었으며 쇠로 무기를 만들어 내니 온 천하가 두려워 했고 그를 치우천황이라 불렀다.
중국의 헌원황제가 치우천황과 수십번을 싸웠지만 단 한번도 승리 한적이 없었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이런 치우와 싸웠던 중국의 역사도 우리민족으로 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 태백일사(신시본기)중..-
5대 다의발 환웅의 막내 아들은 태호 복희라고 한다. 태호복희는 상황5제중 첫번째 인물로 우사라는 관직에 있다가진으로 갔다.
태호복희는 중국시조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가 바로 환웅의 아들 이라면 중국의 역사도 우리의 민족에서 시작 된 것이 된다.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하늘의 백성인 우리민족이 광활한 대륙의 무대로 찬란한 문명을 꽃 피우며 활약했던 얘기가 담겨있다.
어떻습니까..이 환단고기엔 기존에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만년전으로 거슬러 가는 역사 아시아대륙을 넘나드는 광활한 영토 전설적인 영웅의 이야기까지 이 환단고기에담겨져 있는 우리의 상고사는 참으로 눈부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아주 놀라운 일들이 또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살펴보면...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문자인데 이 책에서는 이 문자를 가림토 문자라고 합니다.
한글과 아주 비슷한 이 가림토 문자는 이미 4천년전에 만들어 졌다고 이 환단고기에는 기록이 돼 있습니다.
또 이 가림토 문자를 쓰기 전에는 태고문자인 녹도 문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녹도문자의 구체적인 형태는 이 환단고기에 적혀있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 실려있는 이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문자를 만든 최초의 민족이 됩니다.
더 크게는 최초로 문명국가를 세운 민족이자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이 문명을 전파한 하늘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참 지금의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그런 내용이죠...그러나 한 편 으로는 정말 믿고 싶은 그런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마음은 이 환단고기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최근에 환단고기에 대한 마음은 뜨거워 지고 있고 그 열기 또한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있습니다.
이른바 화단고기의 열풍의 현주소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pc 통신 한국사동호회 난에 그어느때 보다도 상고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대 관심은 환단고기다.
한국사 동호회중엔 역사가 가장 오래 돼고 회원수가 가장 많은 하이텔의 한국사동호회 한달에 한번씩 있는 정기모임에선 환단고기와 관련된 상고사에 대해 토론 하는 일이 많다.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교재를 준비하고 강사에서부터 회원들까지 열띄게 토론에 참여한다.
최근 이렇게 우리상고사에 대해 관심을 갇는 모임이 부쩍 늘어났다. 대학마다 상고사 동아리가 생기고 있고
이런 모임에선 환단고기에 대한 화제가 늘 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열광하는가
- 회원중 인터뷰 -
우리나라 역사가 조금더 크게 보고 그리고 큰 역사가 자랑 스럽고..
고조선의 역사라는 부분이 여태까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매꿔주는데 ...
환단고기가 주는 기존의 역사책에 비해 많이 발달돼어 있어 기존의 호기심으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동호회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으로 환단고기의 내용을 연구하는 모임들도 나타나고 있다.
한배달의 역사 천문학회도 그 중의 하나다. 이모임엔 대학 교수를을 비롯해 각 분야의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곳에선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 현상에 대해 그 시대 역사를 새롭게 밝혀내려 하고 있다.
- 박희준 한배달역사천문학회 -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의 천문학에 굉장히 밝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 기록은 오히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보다도 환단고기에 더 많이 기록 돼어 있어요.
그 중요한것이 감성이라는 직책이 나옵니다, 환단고기에 보며는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는 아주 독특한 관직이죠.
이와 같이, 이미 우리의 고구려시대의 일자라던가 이런 천문적 관측이 있기전에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하늘에 주목 하였죠.
그런 기록들이 환단고기 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상고사와 고대사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환단고기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등장하였다.
이 책의 대중적인 인기는 서점에서 확인 할수 있다.
환단고기를 번역한 책만해도 열 종류가 넘고 지금까지 100만권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교보문고측에 따르면 1일 판매부수는 열부이상 판매되고 있습니다. 비소설에서 10부이상 꾸준히 판매되고있는 거는스테디셀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뿐만 아니라 몇년전부터 상고사 고대사 관련 서적이 활발하게 출판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책중에선 3국이 대륙에 있었다, 고려도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환단고기의 뿌리를 두고있으며 환단고기의 주장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환단고기 열풍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 돼었습니다. 이 환단고기가 일반인들에알려지기 시작한것이 1980년대 초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만큼이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공개 돼기까지 아주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환단고기는 4권의 책을 묶어서 한권의 단행본으로 만든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성기와 단군세기 그리고 북부여기 태백일사 그중에 삼성기는 상,하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다섯권의 저자는 각각 다르고 또 이 저자들이 살았던 시대도 다릅니다.
이 삼성기의 상,하권을 쓴 안학로와 원동중은 신라시대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의 저자인 이암과 범장은 고려시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맥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기록이 돼 있습니다.
이 저자들 중에서 이암과 범장 그리고 이맥 처럼 다른 사료에서 그 행적이 확인 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그 책을 썻는지는 다른 사료에서는 발견돼지 않고있습니다.
이러한 저자들이 썻다는 책들은 남아있지않고, 1911년에 4권을 책을 묶어서 한 권으로 만든 이 환단고기란 단행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4권의 책을 묶은 인물에 대해서 이책의 서문에 해당돼는 범례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신시개천 5808년 계연수가 묘향산 단굴암에서 쓰다, 범례에 의하면 1911년에 4권의 책을 묶은 사람은 계연수란 인물 입니다.
그리고 계연수가 환단고기를 필사한 장소는 묘향산 단굴암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계연수가 펴냈다는 이 환단고기의원본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는 어떻게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됀 것 일까요.
계연수가 펴낸 환단고기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9년이다.
재야사학자 송호수박사는 줄 곳 환단고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1979년에 인쇄된 영인본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영인본을 가지고 있고 20년 까가이 연구한 그도 환단고기 원본을 본적이 없다.
환단고기를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소문으로만 알고있을 뿐이다.
- 송호수박사 재야사학자 -
계연수란분은 지금까지 신분을 여러모로 다각적으로 살펴보면 이분이.. 애국투사인데 감시가 심하니까 제약군으로 위장을했습니다.
산에서 약을 캐는 제약군으로 위장을 해가지고 주로 묘향산 부근에 가서 있었는데 단군굴에 거기 있다가
묘향산 석벽에 있는 옛날의 최치원이 새겨 놓았다는 천부경을 탁본해 보내왔어요,....
그런분인데 일선에 의하며는 그 왜놈들이 압록강에다 시체를 던져 버려서 시체도 못찾았다는 그런 설이 있고.....
전설처럼 내려오는 계연수에 대한 이야기 ...계연수의 행적을 찾아보기 위해 수안계씨
대종회 종친회를 찾았다.
족보를 샅샅이 뒤져 계연수의 이름을 찿아 보았지만 끝내 확인할수 없었다.
계상겨 수안계씨 종친회장
이분은 먼 선대가 해외 일직 갔거나 또 계연수씨가 족보할때에 소장한 사람과 연락하
지 못하는 경우는 못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로선 계연수의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연수가 펴냈다는 환단고기 서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계연수가 어떤 사람인지 추정해 보기로 했다.
환단고기 서문 중.. 환단고기는 해학 이기의 감수를 거치고, 또 내가 정성을 다하여
옮겨 적었다.
또 홍범도, 오동진 두벗이 자금을 마련하여 인쇄를 했다.
먼저 환단고기를 감수했다는 이기, 이기는 한나라의 대표적 학자이자 애국계몽 운동가였다.
책을 인쇄하는데 자금을 댓다는 홍범도, 홍범도는 간도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홍범도와 함께 자금을 댓다는 오동진, 오동진역시 간도에서 활약한 독립투사 였다.
이기와 홍범도 오동진은 모두 독립운동가들이자 대중교와 관련있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계연수도 대중교도이자 독립운동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 최홍규교수 경기대 사학과 -
1910년에 와서 한단고기를 비롯해서 단기고사 이러한 책들이 많이 간했됐는데요..
이것은 바로 망실된 이 우리나라를회복해야하는 그러한 회복의 중심점에서 단군을 둬가지고 소위 단군 중심의 그러한 역사관을 표출하고 또.. 이러한 그 대중교도들이 중심으로 해가지구 또 민족주의를 갖고있던 지도자들이 이러한 대중교도가 입교를 해 가지고 이 분들이 민족운동에 투신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진것은 그로부터 70년후 이유립이란 인물이 공개 하면서부터이다.
70년후에야 책이 나타난 점 때문에 환단고기의 편자는 계연수가 아닌 이유립이란 의심이 끈임없이 재기 돼어왔다.
그러나 이유립은 이미 사망한 상태다. 그는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한 것일까? 이유립은 단군사상을 연구하는 단당학회의 회장을 지냈다. 단당학회에선 계연수도 전임회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인연때문에 계연수의 환단고기를 제자인 이유립이 펴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유립의 부인이 단당학회를 지키고 있다.
부인은 이유립이 평생 책을 읽고 글을 펴낸 학자였다고 증언했다.
- 신매녀(78) 이유립의부인 -
우리 뿌리 찿는거, 역사를 찿아가지고 우리뿌리를 찿아서 남북통일을 시키고 그때는 남북 통일이 아니지 그때는 우리나라를 찿는거지 우리나라를 찿아가지구 우리가 한번 우리세상으로 살아보자는 그런 뜻으로 여태 살아온 거죠..
이 처럼 우리의 뿌리 역사 찿기를 평생 소원했던 이유립은 생전에 많은 책을 썼다.
그리고 그런 이유립의 글 중엔 환단고기와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많이 발견된다.
실제로 이유립은 생전에 환단고기를 번역해 자기 나름대로 책을 내려고 했다고 한다,
이 환단고기 평주는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풀이해 놓은것으로 이유립은 이것을 책으로 펴내기 직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취재중에 또 한가지 확인할수 있었던 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 원문을 직접 수정한 흔적이다.
1979년에 펴낸 환단고기중엔 정오표가 달린 책이 있다.
정오표란 책에서 틀린 글자나 잘못된 내용을 고쳐 추가한 것이다.
이 정오표에 글씨는 이유립의 글씨가 분명했다.
이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의 내용을 어느정도 수정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1979년 이유립이 세상에 공개한 환단고기는 당시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환단고기가 주목받게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1982년에 일본에서 일본어 번역본이 나오면서 부터였다.
일본어 번역본은 신국민사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가지마노버루가 펴낸 것이다.
이것이 국내에 역수입 돼면서 커더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가지마노버루는 원래 변호사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환단고길 번역하게 돼었을까?
평소 한국과 중국에서 고서적을 수집한 그는 1979년 한국에서 환단고기 영인본을 발견 했다고 한다.
그는 영인본을 입수한 경위나 그것을 번역한 이유에 대해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다가 잠간 이런 대답을 했다.
(나는)환단고기를 완전히 이해할수있다. 거짓이 아니라 진짜 책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역사를 아는 혼 이 생기면 이 책을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가지마노버루가 얘기한 진실은 호나단고기가 일본 천황가 (왜국 신도의 뿌리)의뿌리를 밝히는 책 이라는 점 이었다.
그는 호나단고기를 통해 동양역사의 근원을 파악했는데 일본의 신도가 본류이고 단군은 지류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책이 국내에 들어와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그후 한국에선 가지마노버루의 해석과는 다른 독자적인 번역본이 출간 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환단고기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에는 수수게끼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1911년 계연수가 처음 필사한 원본이 사라진점 그후 70년이 지나서 이유립에 의해서 세상에 공개된점 1979년 이유립이 처음 펴낼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벋지 못하다가 일본인 가지마노버루가 일본어로 출판한 다
음 국내에서 주목을 받게된점 등..
이러한 미스테리한점 때문에 이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모호하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 돼지만 환단고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책에 사료로써 검토할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것이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환단고기에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아주 상세하게 실려있습니다.
단구에 기록이 최초로 발견된 책은 삼국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단군의 기록은 매우잛고 압축적입니다.
단군이 조선을 통치한기간이 1500년이며 그 수명은 1908세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환단고기에는 2000년이 넘게 지속 돼어온 고조선을 한사람이 통치한 것이 아니라 마흔 일곱명의 단군이 통치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47대 단군의 이름과 제위 기간 치적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이 구체적인것까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단군을 한사람으로 보지 않고왕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본것,
그리고 고조선을 수십명의 단군들이 통치했다고 본점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이렇게 환단고기에는 무시할수 없는 근거가 발견 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것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환단고기에 단군조선의 관한기록엔 다양한 천문현상이 나타난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오성취루 현상이다. 무진50년 (BC 1733)다섯개의 별이 모였다.
- 단군세기 -
오성취루란 목성과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나란히 늘어선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장관이 13대 흘단 단군때 나타났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초로 이기록에 주목한 사람은 서울대 천문학과에 박창범교수 그는 단군조선의 천문현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논문을 발표했다.
천문현상을 추적해 가면 그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물론 관측자의 위치도 알수 있기 때문에 연대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한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오성취루 현상은 서기 전 1733년에 나타난다.
천문 관측 프로그램에 입력해본 결과 1년전인 서기 전 1734년 7월13일 초 저녁에 다섯개의 별이 모인것을 볼 수 있다.
1년의 오차가 나지만 천문학계에선 거의 정확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런 프로그램 같은것을 이용하면 괘도 계산식들이 다 들어가 있고 저희들이 년도와 날짜만 입력 시켜주면 그 당시에 맞게 이 화면에 항성들의 위치를 표시해줄수 있는거죠.
뭐 행성뿐만이 아니라 다른것도 다 표현이 가능 하거든요..그러면서 이제 한번 기록을확인해 볼 수 있는건데 그... 이런 천문현상 같은 경우에 굉장히 잘 짜여서 움직이는 시스템과 같은 것 이기 때문에 가령 뭐
2000년대에 있었던 것을 1500년대로 또 이렇게 끌어와서 집어 넣기는 또 힘들거든요.
아마 이기록에 나오것 하고 이 시뮬레이션 해 본것 하고 거의 비슷하게 맞어 떨어지는걸 봐서는 맞는 얘긴것 같기도 해요...
또 한가지 주목 할 만한것은 고조선의 조선의 영역이다. 환단고기의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해 보면 지금의 북경에서 부터 만주의 전 지역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한다.
한 시대의 영토를 추정하는 방법중엔 문헌에 나오는 기록과 함께 그 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참고로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무기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된 지역을 살펴보면 고조선의 영역도 좀더 확실하게 추정할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이 비파형 동검은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 됐다.
- 윤내현교수 단국대 사학과 -
대표적인 무기인 비파형 동검이 지금의 북경 근처 부터 한반도 남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만주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 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얼 말하냐하면 청동기 시대에 고조선의 청동기는 지배층의 독점물 이 었거든요,
그래서 중앙에서 만들어서 공급했기 때문에 같은 천동기가 출토된 지역은 한 통치집단에 의해서 통치가 돼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이런 자료를 봐선 고조선의 영토는 지금의 북경지역부터 한반도 남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만주 전 지역이라는것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비파형동검의 출토지역과 환단고기의 고조선 지역을 비교해 보면 지금의 북경에서부터 만주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고 있어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을 알수 있다.
환단고기의 사료적이나치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근거는 조선 왕조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단서는 바로 수서령이다. 수서령이란 조선시대의 세조와 예종 성종때 팔도 관찰사에게 명령하여 옛부터 전해져 온 희귀서적을 전국에서 거둬들인 일이다.
지금 이 서적들은 전하진 않지만 우리역사의 자부심을 담고잇는 책 들로 추정 된다.
그런데 이러한 수서령이 내려진 책들중에 환단고기에 실려진 책과 제목이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삼성기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러한 책들은 왜 거둬 들였을까?
- 박성수박사 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이건 그대로 두면은 역사관이 문제가 되고, 명나라에서 중국에서 이의를 제기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교를 생각해서 나라를 생각해서 이런책은 비밀리에 가둬 두는것이 좋다. 이렇게 본거죠..
수서령이 대상이었던 책들중에 환단고기에 실려있는 책 제목이 나타나는 것은 1911년 개연수가 환단고기를 펴낼 당시 옛 부터 전해지는 책 들이 있었고, 그 것을 참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것을 볼때 환단고기는 그냥 무시하거나 버려둘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대부분 이 책을 사료로써 가치가 없다고 평가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결정적인 이유는 앞에서 지적한데로 이 책의 출처가 명확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먼저 환단고기를 이루는 다섯권의 책들의 저자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환단고기 말고는 그 책을 썻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할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1년에 다섯권의 책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펴냈다는 계연수에 대해서도 그가 펴낸 원본이 전하지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마지막으로 70년후의 계연수의 제자인 이유립이 공개한것도 납득할수 없다는 주장 입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책의 출처가 정확하지 않기때문에 학계에서는 사료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다른 근거는 이 책안에서 발견 할수 있습니다.
다음 두 문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 단군세기중 -
백성들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니 한사람도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이가 없었다.
학교를 세워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가 크게 진보 하여 명성이 날로 들어났다.
이 두 문장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나오는 부분 입니다.
그런데 이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의 사람인 행촌 이암이 썻다고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군세기에 나오는 산업이나 또 문화와 같은 용어는 근대에 등장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쓰였다기는 어렵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책의 곳곳에는 국가와 인류 전세계 남녀평등이란 말이 등장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용어가 이들 다섯명의 제자가 살았던 신라나 고려 또, 조선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이다.
이런 용어의 문제 말구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환단고기를 사료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먼저 다른책을 베낀 흔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환단기에 나오는 이 문장 (나라가 형이면 역사는 혼이다 - 단군세기 서문 -)은
박은식의 한국통사에서 나오는 대목(역사는 형체요, 사기(역사)는 정신이다 -박은식의한국통사-)과 일치한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4권의 책을 그대로 묶인것이 아니고 편찬자가 카피를 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연구회 박찬규박사는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고구려 관련 기록을 다른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환단고기의 기록중에 많은 부분이 다른 사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고리군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아들이다 -
해모수의 둘째 아들로 나온다고 했을때 성이 고씨 로 쓰일리가 없습니다.
해진이라면 모를까...고진이 해모수의 아들이라면 성이 해씨여야.. 고진이라고 쓰일수는 없다라는 얘기입니다.
즉 고구려에서 성이 고로 쓰이는 것은 고주몽 이후 입니다.
분명히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고주몽이 성을 고씨로썻다 하는 것을 보이고
그런데 그 전에 본 성씨는 뭐였을까 하는 대목도 나오거든요..
본 성씨는 분명히 해씨이다 라고 나옵니다.
또한 환단고기에선 찬란한 역사를 강조하다 보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수 없는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단군조선시대의 인구 호구를 조사해보니 모두 1억8천만구였다.
- 서영배교수 인하대 사학과 -
환단고기 하면은 단군조선 시대의 호구가 1억8천만구 그러니까 인구로는 약 9억이 되겠습니다만 약 9억이라는 기록이있습니다.
그런데 3세기에 편찬된 삼국지 동의서를 보면 만주에서부터 저 한반도 남쪽에 이르기까지 당시인구가 140만명 정도 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또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던 7세기 말에 두나라의 인구가 약 7백25만 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각종 인구 통계를 보면 천만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자료들에도 문제가 없는것은 아니지만은 이러한 자료들과 비교를 해보았을때 환단고기에 나오는 단군시대의 인구가 9억이였다고 하는것은 아무래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면이 아니가 생각이 듭니다.
환단고기가 또 하나의 사료적인 가치가 없다고 보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이 책이 역사책보다는 경전에 가깝다는것 특히 태백일사에 삼신오제본기와 소도경전본훈에선 종교적인 경전의 색채가 강한 대목이 많다.
- 소도경전본훈의 "한 대목" -
천제님이 가라사대 너희5가와 중생들아 ! 저 푸른것이 하늘이 아니며 저 까마득한것이 하늘이 아니니라 하늘은 얼굴도 바탕도 없고처음도 끝도 없으며 위아래 사방도 없고 겉도 비고 속도 비어서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하나 싸지 않은 데가 없느니라.
이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엔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실려있다.
이러한 천부경은 대종교의 핵심이고 삼일신고는 대종교에 경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단고기를 역사책으로 보기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환단고기는 내용 하나하나까지 검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편찬자가 카피를한 흔적이 나타난다는점, 다른 문헌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점,
책의 성격이 불분명하지 않다는점 때문에 사료로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환단고기를 둘러싸고 진위 논쟁,가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최근 상고사에 대해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상고사의 화두는 단연 단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 단군을 둘러싸고 신화로 볼 것인가? 또.. 역사로 볼 것인가 하는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군의 대해서 두가지 주장이 대립하는 것은 환단고기 논쟁과 비슷한면이 많습니다.
이러한 환단고기 논쟁에도 불구하고 또,..상고사 열풍의 핵심에도 단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단군에 대해서 서로다른 인식이 나타나게된 배경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 9시 뉴스자료 단군상 훼손 우려 목소리...
"편협한 산앙이 빚은 충격적인 일"
올 여름 몇 몇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에 목이 잘려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종교계 갈등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단군에 대한 혼란된 인식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의 한 초등학교 이 곳에선 지난 7월4일 교정에 세워둔 단군상의 목이 감쪽같이 잘린일이 벌어졌다.
교사 인터뷰
애들이 보고 깜짝 놀랐죠. 끔직한 모습 이었고.. 또 저희도 놀랐는데 애들이야 오죽 했겠습니까?
사건이 발생한 당일 여주에선 이 학교 말고도 두 학교에서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교에선 파손된 단군상을 철거해서 창고 옆에 보관하고 있다.
이 단군상을 세운 단체는 한문화운동연합 이 단체에선 지난 4월부터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목표로 전국의 학교에 단군상을 건립하는 목표로 펼쳐왔다.
우리가 한문화운동연합에서 전국에 3백68군데 단군상을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7월4일 여주에서 세군데 학교에서 목이 회손된 사건이 있었고 그 뒤로 마산,창원,삼천포,
그리고 울릉도등에서 최소한 7번이상 현재 알고 있는것만해도 큰 회손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의 뿌리를 바로 알고 이분이 남기신 정신을 오늘에 돼 살리자는 취지에서 우리가 세웠던 것인데 참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단군상을 건립하는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컷다.
단군이 역사적인 인물로써 적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군상을 건립하는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경재교수 한신 대학원 신학과-
이것이 오늘날 문제가 된 것은 그런 종파를 떠나서 단군이라고 하는 하나의 신화속에 나타난
저는 단군신화를 하나로 신화로 보는데 역사적 한 그..국조내지 인물로 그렇게 전제로 해놓고
건물이나 공공 장소에 상을 세움 으로써 어떤 문화 활동을 하는것은 우리 사회 구성에 전체의
합의와 동의를 얻은일이라 보지 않습니다.
현재 단군에 대해서 이렇게 신화와 역사라는 두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단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것일까?
금세기 초 만해도 단군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통일돼있었다.
그것은 1900년대 초에 발행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동국사략(1907년 순종 1년) 최초의 역사 교과서 이 교과서엔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단군을 국조로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고조선의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 교과서엔 단군의 초상화를 비롯해서 고조선과 삼한의 지도가 실려있다.
1900년대 초까지 단군에 대해 뚜렷한 역사의식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시대까지 단군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이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제사(마니산 첨성단)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성수박사 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단군을 모신 성전은 평양의 숙명전이라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군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황해도에 구월산에 있는데 구월산에 삼성사가 있었습니다.
이 삼성사에서 환인,환웅,단군 세 분을 모셨습니다.
우리 남한에도 강화도의 마니산에서 제천을 하지 안았습니까 이런것 다 단군에 대한 제사입니다.
조선왕조는 확실히 단군의 후신이기 때문에 단군을 모시지 않을수가 없었죠.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역사적인 존재였던 단군이 신화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는 일제의 상고사 말살정책 때문이다.
일제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우리의 역사를 축소하는 일이었다. (조선총독부 시정연보)
-양태진 전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일본의 역사가 기원 2천6백년으로 돼 있는데 우리나라 역사는 4-5천6천년 뭐 이렇게 되어 있지 안습니까..
그러다보면 자기들의 역사에는 반도 안되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우리를 정복해서 식민지정책을 핀다고 하는건 논리성으로 도저히 납득이 않되는거죠.
거기다가 후대의 역사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는 자기민족의 자기역사의 우수성을 확보해 가지고 가르쳐야 돼는데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하려면 먼저 우리 역사의 유구성을 말살을 시켜야 돼기 때문에 그에 관련돼는 기록들을 다 없애는것이죠.
- 조선구관제도 조사사업개요 본문중.. -
일본속에서는 우리역사를 단군조선을 그대로 생략을 해 가지고 바로 상고사만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뒤로 삼국시대 그 다음엔 고려,조선시대 그리고 자기들의 시정하는 식민정책사 이렇게해서 우리역사를 꿰어 맞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일제는 조선사 편수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서적들을 색출한다.
1910년부터 14개월동안 전국에서 거둬들인 책이 무려 총51종20여만권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거둬들인 책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단군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최근 잃어버린 상고사를 회복하고 신화로 머물러 있는 단군을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중심에 시인 김지하씨가 있다.
- 김지하(시인) -
기초적인 상고사 고조선사를 열어야 그 안에 들어있는 무궁한 문화적자산 신시,화백,풍류 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노마니즘 소위 유목적인 최초의 유목문화의 첫 고대국가 남방지역 농경문화하고 북방지역 유목민문화가 이중적으로 접합된 미묘한 문화라 이게 미래 세계체계의 굉장히 유리한 비젼이고 유용한 비젼이에요...
이걸 꺼낼수가 없쟎아요..
즉 상고사에서 비젼을 얻어야 되는데 미래의 꿈을 발견해야 되는데 상상력을 자극할수가 없다구...
그 초입에 단군조선을 깨부수니까..이래서 이걸 열자는 겁니다.
이러한 상고사 회복운동에 대해 한쪽에선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것도 사실이다.
단군과 고조선의 체계적인 연구 그리고 학문적인 비판이 이뤄어지지 않는 한 단군은 역사와 신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할 것이다.
내일은 개천절입니다. 이곳은 개천절때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마니산 첨성단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이렇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단군을 모셨던 것은 여러곳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단군은 실제였던 역사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일고 있는 환단고기 열풍에는 이처럼 단군과 고조선을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 열망이 잠재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환단고기 열풍은 환단고기가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며
또 끊임없이 화제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 이런 관심과 달리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대하는 반응은 냉담합니다.
사실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학자들의 의견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학문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접근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책 환단고기를 둘러싼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환단고기를 취재 하면서 그 어느때보다도 학계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학자에게서 제작을 우려하는 팩스가 날아들기도 했다.
학계에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많은 학자들이 환단고기에 대해 언급하는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었다.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재야 사학계에선 이책에 대해 침묵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을 바라보는 기존 학계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는다.
이제 환단고기를 부정하려면 반듯이 육하원칙을 제시 해야돼요.
환단고기는 언제,어디서,누가,뭘 가지고 왜 어떻게 위조했다.라는 육하원칙을 제시해야지 막연하게 자기 종교성하고 상반 된다고해서 부정하고 자기학파하고 안맞는다고 부정하고 하는것은 학자다운자세가 아니다.
이러한 학계와 재야사학계와의 대립은 이미 1970년대 상고사 파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재야사학계에선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 규정하고 기존의 국사학계를 일제식민주의사관파로 비난한다.
일명 단군파동이라하는 이 파동은 1978년에 법정으로까지 비화 된다.
그리고 1980년대 환단고기가 등장하면서 양쪽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환단고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에게 몆 차례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고 전화상으로 간단히 얘기들을수 있었다.
환단고기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사들의태도,대응 이런 것도 하나의 문제가 될수 있습니다.
태도라면 주로 어떤 태도일까요?
그분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반다하는 주장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식민사관에 물들었다고 매도하고 심지어는 인신공격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본격적으로 영구하지 못하는것은 이책에대해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와 학문적인 접근이 어렵다고 했다.
-정영훈교수 정신문화연구원 사학과-
성립되고 공개 돼기까지의 과정에 매우 의문점이 많은 책입니다.
국사연구와 국사교육이 우리사회 구성원들한테 분명한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한다는 그런요구는 옳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료적가치가 검증되지도 않은 자료를 가지고 그 같은 목표에 접근하는 것은 마치 기초공사 없이 고층빌딩을 세우는것과 만찬가지로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대도가 아닌가 봅니다.
-노태돈교수 서울대사학과-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우리에 상고사 자체를 복원하는것은 자료적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19세기말 20세기초이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럼만큼 이 책은 이책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를 복원할수는 없습니다.
단 이책이 19세기말 20세기초 이후에 우리 선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벌였고하였냐는 당시의 지인들의 역사의식을 파악하는데는 유요한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일반인들의 관심은 좀 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그들이 열광하는 것은 믿고싶은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상고사에 대한 갈증이기도하다. 그렇다면 환단고기 열풍은 학계와 재야 사학계
양측에 상고사연구라는 과제를 던지는 것이다.
환단고기 지금 이책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고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 입니다.
지금 바로 환단고기를 사료로써 채택 하는것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은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참고가 되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는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않은 상고사를 연구하고 역사에 지평을 넓히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일본만해도 신화로 알려진 그들의 상고사를 연구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재야나 학계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끊임없이 역사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상고사는 민족의 보고입니다.
미래 씨앗이될 자산이 완전하게 개척하지 못한 상고사에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단고기가 촉발시킨 이 상고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 만큼은 되새겨 봐야 할것입니다.
그런 관심이야 말로 상고사에 대한 대장정의 출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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