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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때로는 하나님보다도 위에 있을때...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경전입니다. 단순히 교리를 써 놓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것을 기독교 식으로 하면 [계시]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준과 법칙을 말해 주고 있고 그것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까지는 모든 기독교 분파들에게 별 이견이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경의 권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 수 많은 이단과 사이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연 절대무오한 하나님 말씀 그대로일까요? 이단 교주들과 교파들은 여기서 절대무오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틀릴 수도 없고 오류가 있을수도 없는 그야말로 절대무오한 신성하고 거룩한 것으로 강조하고 그것을 믿는것이 참된 신자라고 가르칩니다. 일견 굉장히 진실하고 거룩한 신앙인의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실제로 보면 번역상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역본마다의 차이는 꽤 많이 날 정도로 세세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는 책입니다. 이것은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럼 교회가 그동안 거짓말을 해온 걸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사이비 종파들이 이것을 잘못 전해 온 것일뿐 초대교회, 아니 그 이전의 구약시대때 부터 수 많은 역본들과 경전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지만 글자 하나하나까지 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쉬운 예로 현재의 개신교는 66권의 신구약 성경만을 인정하지만 카톨릭은 외경이라 하여 별도의 경전을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거기에 유대교의 구약에는 가경이 있고 신약시대에도 정식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외경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누가 과연 무엇은 정경이고 무엇은 외경으로 분류한 것일까요?

성경중에서 정경으로 인정된 것과 외경으로 인정된 것의 기준은 다름 아닌 [구속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경으로 인정된 성경은 모두 일관된 흐름을 지닙니다.  인간의 근원과 타락, 그리고 심판으로부터 그것을 회복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것을 이루기 위한 메시야의 예언과 기다림, 예언의 성취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사역 그리고 재림과 최후 심판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그 흐름이 이어집니다. 이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어지며 그것이 바로 정경의 기준이 됩니다. 즉, 초대교회때부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언급한 구약의 경전들과 또 사도들과(특히 바울) 그 제자들이 기록한 글들은 이 내용과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번의 종교회의를 거쳐 하나님의 뚜렷한 계시, 즉, 정경으로 인정되어 왔고 현재까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보여주시고 드러내신 계시라는 차원에서는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은 그 성경 자체는 그렇게까지 신적권위가 부여될 수 없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를 신성시한다는 것입니다. 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문자적 준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결국 곁길로 빠지게 됩니다. 종말론과 세대주의, 율법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은 모두 성경의 절대적 준수를 따르다 잘못된 해석으로 빠져버린 대표적인 분파들입니다.

성경무오설은 그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며 그분이 계시하신 구속사의 역사가 성취된다는 차원에서 틀림없다는 것이지 그 속에 쓰여진 글자하나하나가 신적 권위를 지닌다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만 살펴볼까요?

이단들이 항상 내세우는 절대무오설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 디모데 전서 3:16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전 3:16)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니 인간이 따질 것이 못된다. 믿어라 이건데요....

그런데 이 구절은 사실 앞뒤를 좀 살펴보아야 말이 됩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제자 디모데에게 해 준 말 중의 일부인데요 앞뒤를 포함시켜 보겠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전 3:15-17)

성경의 가치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즉, 책 자체가 무엇인가 신성한 권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뒤 구절까지 함께 보면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교육함에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즉, 성경은 신자들의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유익]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앞의 말과 상당히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이 구절을 쓸 때 신약성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경은 구약성경만을 지칭합니다. 신약성경이 정경으로 모두 인정된 것은 거의 5세기(AD 397년 카르타고 회의)가 다 되어서인데.... 말의 앞뒤 자체가 안맞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모든 신구약 성경은 다 바울이 말한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자 하나하나에 그대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해석이 될 수 있는지 한 예를 들어 드린 것입니다.

현대의 율법주의 계열의 이단들이 빠지는 함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단 그런 이단들 뿐만 아니라 소위 정통교회라고 하는 기존 교회들의 일부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자체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 그대로 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시고 인간들에게 보여주셔서 당신의 계획과 일정을 알려 주시는 하나의 메뉴얼입니다. 분명 가치 있지만 그것은 메뉴얼일뿐 하나님보다 더 권위를 부여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분명한 것입니다. 성경의 절대무오설에 빠져 버리면 나중에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말씀하셔도 어 예수님 그건 성경에 없는 말인데요 당신 가짜구만! 하고 말할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문제와 관련해서 여자는 남자보다 못한 존재고 남자를 위해 창조받았으며 예배 드릴때에는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말씀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헉! 놀랍지 않습니까? 절대적인 성경에 이런 글이 쓰여졌으니 교회다니는 여자들은 이제 남자의 종노릇이나 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하는 교회들이 있습니까? 아마 성경의 모든 말씀과 율법과 계명을 다 지킨다는 율법주의 교회들도 이건 안하고 있습니다. 이건 왜 안지킬까요?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상황을 보며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웃기는 답변입니다. 그럼 어떤 글은 그대로 믿어야 하고 어떤 글은 앞뒤 상황봐가며 믿어야 합니까? 자기들 스스로는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대로 믿고 지키고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요. 성경문자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말도 스스로 입증못할 자가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같은 고린도전서에 놀라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9-12)

신약성경 27권중에 13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기록한 사도바울도 자신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며 희미하게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정확하나 그것을 이해하고 기록한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쉬운 예로 똑같은 성경구절을 놓고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는가에 따라 수많은 분파와 갈래가 나눠집니다. 그리고는 서로 자기가 맞다고 쌈질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저는 교회들이 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절을 놓고 이게 맞니 저게 맞니 너는 맞고 너는 틀리고 너는 이단이고 나만이 진짜다 하는 이런 웃기지도 않는 짓들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구원]입니다. 즉, 죄를 지어 멸망의 운명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구원시키시고자 계획하시고 그 방법을 보여주시고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그 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지침서입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경에 보면 이 놀라운 사실만을 가르쳤고 전했습니다. 이것을 복음(Gospel)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거하고 증명하는 계시의 책이자 약속의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약속(Testment)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제가 한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이 구원의 약속은 신실하고 틀림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인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들은 내 삶을 실제로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글자 하나하나 권위를 부여하고 알려고 하면 그야말로 모순덩어리 의혹 투성이의 이상한 책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 자체는 글자로 이루어진 책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역도 있고 빠진 부분도 있고 잘못된 해석도 꽤 많은 오래된 책에 불과한 성경책에만 매달려 있다면 신앙이라는 영적인 면은 전혀 자라나지도 않고 자신의 삶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성경은 역사서도 아니고 과학책도 아니고 도덕경전이나 법전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경을 그런것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경은 그런 식으로 바라봐서는 엉터리 같은 책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역사로 과학으로 맞춰보려면... 죄송한 말이지만 제대로 맞는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경은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내면에 관한 책이며 죄와 구원을 다루고 있는 약속입니다. 성경을 이러한 맥락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성경의 구절들의 해석을 놓고 치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 비팍에서 안식일교단과 다른 교단과의 논쟁이 시끄러운데요...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도대체 나는 성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인식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너무나 많은 신적권위를 부여해 버리면 그때부터 그 성경은 하나님보다도 높은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안식일교단쪽에서 논증하시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글자를 죽 나열하는 것으로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텍스트(Text)가 아닌 상황(Context)에서 해석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글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성경과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의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리와 구원의 방법은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다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해석을 낳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의 모든 글자 하나하나를 다 알고 그대로 다 지키며 그대로 따르고 있고 모든 것이 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라면 둘 중 하나는 거짓입니다. 성경이 거짓말이던가 아니면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글자는 인간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도 적용도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지 못하고 성경의 형성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냥 문자적으로 성경에 매달리는 것은 본인에게도 또 교회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길로 가기 쉽상이됩니다. 더 문제는 기독교 바깥에 있는 믿음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오해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즉, 전도의 문을 가로막아 버리게 됩니다. 이게 더 무섭지 않습니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짜증나 합니까? 앞 뒤 다 짤라먹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가르침, 성령님의 인도의 참 의미를 상실하고 문구에 매어달리는 어리석음이 이제 중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글이 매우 길어져서 죄송하고 특히 교회와 상관없으신 일반분들께는 정중히 양해를 구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라고 생각하시고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들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007-02-24 03:16:47
2191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 마왕 ▒ '07.2.24 9:45 AM 신고
    제가 기독교에 관해서 자세히는 모르니 불교를 예로 들어 한마디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특히 선종에서는 불입문자(不立文字)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에 메달리지 말고 뜻을 이해하는데 방편이지 문자 자체가 목표가 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입문자에 대해서 자세한 뜻은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부처님 마져도 부처님의 말은 거짓이라 합니다....성철스님도 그랬썼고
    뜻은 그런말들이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또 글 자체로 부처님의 진리를
    다 표현할수가 없기때문입니다.

    제가 보는 기독교나 기타연관있는 종교들은 너무 그런쪽에 치우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모든것이 변한다 는것 외에는 변하지 않는것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장점만 내세우고 우길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타종교나 타 종파의
    좋은점도 수용해 가면서 발전하길 바랍니다.

    저는 기독교 뿐 아니라 불교도 잘못됀 점이 있으면 지적을 하고 시정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불교도 그런갈등을 격던 시절도 있었습니다...지금은 불교끼리 서로 싸우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만..

    종교의 가장큰 무기가 권선징악 입니다.

    기독교는 목표가 구원일테이고
    불교의 목표는 깨닫음이고 성불이니.

    최종적인 목표를 기준삼아 항상 자기들의 행동이나 말을 점검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댓글에댓글
  2. 2. 송이아빠 '07.2.24 12:12 PM 신고
    기독교의 정신은
    아무래도 불교와는 달리 유일신 사상의 바탕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의 눈에는 조금은 답답하고 편협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서로간의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입장이 불경을 불자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같을 수는 없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은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책이지 글자 하나하나를 생각없이 철저하게 따라야 하는 법전과도 같은 책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사람들과 타 종교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마왕님이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이러한 부분에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활동해야 할 근거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부정하거나 반대하고 대립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인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을 지킨다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사찰에 불을 지르며 모두가 사용하는 돈에 예수천당이라는 스탬프를 찍는 행위들은 모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짧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그렇게 나타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증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했고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오해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다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먼저 자신이 변하지 않고서는 절대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지식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중세시대의 왜곡된 신앙인들의 모습이 이것을 그대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왕님께서 하신 [최종적인 목표를 기준삼아 항상 자기들의 행동이나 말을 점검해봐야 할것 같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기독교인들도 귀담아 들어둘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때문에 있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는 끊임없이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부족한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들에게 속고 잘못된 교리에 현혹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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