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wanalov님이 머릿말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6장에 관한 교훈은? ....
성도간의 불의한 일로 세상 법정에 송사한 일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하면서 성도가 세상의 판단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거룩함을 입은 존재로서 음행을 행하는 것이 합당치 않음을 밝히면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명하신 그런 내용입니다. 돼지고기나 술에 관한 직접적인 교훈으로써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성경에 세 부류로 불려진다면, 하나님께서도 이 셋에 따라 각기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1]유대인은, 택함받은 민족이지만 그들의 범죄로 징계를 받게 되고, 그후에 회복된다(롬 11장).
[2]이방인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과 또 메시야를 대적하다가 멸망하게 된다(시 2편, 단 2:44).
[3]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후에는 영광으로 들어가게 된다. 율법은 구약 시대 유대인들을 위한 규례로 주어졌고, 복음은 신약 교회를 위해 주어졌다. 신약 교회는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반대로 구약의 유대인들은 신약 교회처럼 “자유함”으로 행하면 안 되었다......
구약에 있는 수많은 명령 중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음식에 관한 규례가 있습니다(레 11:8, 신 14:8). 성경에 관한 모든 규례들이 문자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면 우리 또한 이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가? 지키지 않으면서도 불순종했다는 죄책감을 왜 느끼지 않는가? 그것은『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 등, 음식에 관한 규례들이 무의미하다는 신약성경의 말씀 때문입이다. 이외에도 많은 율법적인 규례들을 우리는 지키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약 율법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그 규례들이 무가치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비록 우리에게는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실제였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읍니다. 즉 역사적 적용과 영적 적용과 교리적 적용입니다.
역사적 적용은 그 구절이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에 적용되는가 하는 것으로, 역사책과 비교해 보면 되는 것이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고, 중요한 것은 영적 적용과 교리적 적용입니다.
영적 적용이란, 한 마디로 말해, 우리가 영적인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로마서 15:4에서『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교훈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좋은 설교를 듣습니다. 출애굽기와 역사서와 시편과 예언서들에서도 좋은 영적 양식을 먹습니다. 심지어 율법의 규례들에서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며, 왜 그와 같이 말씀하셨는가를 깨닫는 가운데 훌륭한 영적인 교훈들을 얻습니다. 영적 생활의 원리들도 깨닫습니다. 하지만 영적 적용에서는 직접적인 명령, 즉 규례화된 명령은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우리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단지 거기에서 영적인 “교훈”을 발견하고, 오히려 정확한 지침은 신약에서 발견합니다.
반면, 교리적인 적용은 신학적인 체계를 정확하게 세워 줌과 동시에 직접적인 명령을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율법 하의 백성들에게 교리적인 명령이 됩니다. 그들이 이 명령을 행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끊쳐지게 됩니다. 그들은 범죄하면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 중에 누구라도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육체가 하나도 없어.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거야. 더욱이 머지않아 메시야가 오실 텐데 뭐. 나는 메시야를 소망하는 믿음이 있지.”라고 말하며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그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경은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적인 지침이 되지 못합니다. 구약의 구원론이 다르고 신약의 구원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합당한 교리적 지침과 명령이 되는 책들은 신약 서신들, 즉 로마서부터 빌레몬서에 이르는 바울 서신들과, 일반 서신들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산상 설교(마 5-7장)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오른손이 범죄하면 자르지 않고도 전혀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그것은 산상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내용이 교리적으로 신약 성도들에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각기 교리적인 지침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지침이 신약 교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구절들은 구약 유대인에게 교리적 명령이 되고, 어떤 구절들은 신약 교회에게, 어떤 구절들은 환란 성도들에게, 그리고 어떤 구절들은 왕국 시대에 지켜야 할 교리적 명령들이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적용과 별개입니다. 우리는 산상 설교를 통해서도 훌륭한 설교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내용들을 신약 교회에게 주는 직접적인 명령으로 제시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경륜 속에서 지켜져야 할 명령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의 경륜이 아니고 다른 경륜 속에 있는 명령들을 지키려 할 때 헛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요, 또 교회 시대의 경륜에 속해 있는 명령들을 어기려 할 때 범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이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교리적 적용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에 대해서도 어떠한 소망도 갖지 못한 채 살아 갈 것입니다. 구약성경이나 환란 서신들을 교리적 지침으로 삼을 때는 구원의 확신도 갖지 못한 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앞에 신실한 청지기로 발견되기 위해서도 필히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는 앞으로 이 모든 경륜들과 그에 따른 교리적 지침들, 그리고 예언의 문자적 성취들 을 이해 할 때 비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오셨음을 확증하고 그 분의 사랑에 감격함을 느낄 수 있으며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으로 천국의 소망을 갖고 거듭난 자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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