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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금쪽박을 깨고 있는 유시민을 미워할 수 없는 사정은

 

70년대 말에, 물려받은 재산 없이 선생질을 시작했다는 의미는 전형적인 가난뱅이 봉급생활자의 출발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월급이 10만원 남짓 되었을 것이다. 대기업 신입사원의 절반도 채 못 되었다.

당시엔 인재든 둔재든 너도 나도 기업 쪽으로만 몰려들었고 하다하다 안 되면 접장내지 면서기나 해볼까 하는 시절이었다. 교대나 사대에 남학생 지원자가 없어서 사회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던 그 당시에 조사된 인기직업순위 통계에 의하면 교사는 이발사 다음으로 27위였던가 그랬다. 그야말로 박봉이었다. 주변의 웬만한 경조사에는 눈을 감아야만 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생활이었다.

졸업 후 처음으로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동기생은 학창시절 반장이었던 내가 중학교 선생노릇 한다는 소릴 듣자마자 동정에 찬 표정으로 나를 위로하였다. “허어 참. 니가 우짜다가 그리 됐노?” 그랬다. 나는 어떻게 하다가 비참하게도 선생이 되었다.

사립학교 학부모였던 초등학교 동기생의 눈에 비친 선생은 촌지 봉투 하나에 울고 웃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촌지에 굴복(?)한 수많은 교사들... 그들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양심을 탯줄과 함께 잘라버렸을까마는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에도 미치지도 못하는 박봉이 그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사정을 감안한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교사들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10년 내 국영기업체 수준으로 처우개선을 하겠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건만 어떤 원로교사도 국영기업체 간부의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난데없이 말도 안 되는 구호와 함께 스승의 날이 생겨났다. ‘스승은 존경받아야 한다!’ 세상에...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못을 박다니... 그게 명령한다고 될 일인가... 존경 실시! 넷. 존경하겠습니다. 존경 중지! 즉시 시정하겠습니다...?

산에 나무가 없어서 식목일이 생겨났다. 준법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법의 날이 제정되었다. 우리가 쌀밥을 먹지 못하는 형편이라면 ‘쌀밥의 날’을 정하여 쌀밥 먹는 행사를 치를 것이다. 무슨 날이 생겨나는 것은 결핍을 뜻한다. 얼마나 선생이 대접을 받지 못했으면 ‘선생의 날’이 생겼을까... 스승의 날 본질이 이러하니 차라리 없애라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교직은 천직이다. 천직을 돈으로 환산하면 시세가 얼마일지는 모르나 수많은 교사들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천직에 종사하는 자부심으로 버텨오기를 30년... 이제 퇴직하면 약정된 미래의 봉급, 연금을 타기 일보직전에 연금개혁이라는 불똥이 튀더니 연금동산에 옮겨 붙어서 거대한 불길로 전국을 태우고 있다. 공무원노조나 교원단체 소방대가 개혁불길을 잡아보려 하지만 국민여론이라는 강풍이 세차게 불어 닥치는 바람에 연금개혁산불은 잡을 길이 없어 보인다.

내 연금쪽박이 타고 있는 것이다. 30년간, 어지간한 변호사나 의사보다도 더 많은 소득세를 꼬박꼬박 원천징수 당해가며 적립해온 내 연금쪽박이 불길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을 앞세우며 여론의 강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그 위세에 지난날 교사들이 받은 불평등했던 대우는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

2월 종업식 전날, 아직 정년을 5,6년 남겨놓은 동료들이 순전히 연금쪽박이 더 깨지기 전에 건질 요량으로 교직을 떠났다. 평생을 연금하나 보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교직관을 뉘라서 탓할 수 있으랴.

개혁... 그래 좋다. 인간사에는 언제나 개혁의 불씨가 남아있어야 하고 때로는 개혁의 불길로 구태의연한 것은 모조리 태워야 한다. 그렇지만 내 코가 석자다. 개혁도 좋지만 내 코만은 닦아야 한다.

누가 내 연금쪽박을 깨고 있는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 개혁당을 만든 유시민? 100분 토론에서 출연자들이 제일 꺼려한다던 논객 유시민? 독일로 유학 가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니 연금개혁도 경제논리로 무장했것다. 언젠가 방송에 나와서 기금이 몇 년 도에 고갈이 되며 이 상태로 가다간 젊은이들의 미래가 절단난다고 확신에 찬 연금개혁론을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불길한 느낌이었다.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뭔가 일을 저지르고 말 것 같은 강단이 비쳤다.

유시민... 하필 내가 정년을 앞둔 시기에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니... 묘한 악연이다. 젊은이들의 미래? 그래, 나 또한 장성한 자식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에 내 연금쪽박이 깨진다면 유시민이 염려하던 내 자식은 미래가 아닌 현재가 상처 입는다. 경제 논리는 흠잡을 데 없을지 모르나 인간적인 논리의 흠집은 어쩔 것이냐? 누구는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인생이어서 상대방으로부터 책을 잡히더라만 장성한 자녀가 백수인 인생 역시 유시민이 어찌 알 것인가?

네이버 검색창에 유시민을 입력했더니 유시민 인터넷 진지 사이트가 뜬다. 마인트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원 경제학 석사... 독일 유학을 했다니, 가난한 교사의 인생여정이 점철된 나하고는 부류가 다르다. 서른 살 사내의 자화상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일찍이 항소이유서를 작성한 문장가여서 그런지 벌써 서른에 회고록을 다 기록해 두었구나.


..........??
뭐야 이건? 가난한 역사 교사의 아들이었다니...
그것도 6,70년대 박봉의 절정인 시기에...... 혼란스럽다.

이해찬이 교원정년을 단축시키는 바람에 교사들의 공적(公敵)이 된 이유는 순전히 교사들 밥그릇을 건드린데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교육계 현실을 모르는 일련의 조처들, 예를 들면 멀쩡한 교무실을 갑자기 회사 사무실마냥 칸을 지르게 하여 사무실로 만들더니 성과급이니 뭐니 하여 잔인한 시장논리를 성급하게 교육계에 들이대는 바람에 교단개혁정책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준 것 같은 불안감을 먼저 발산했다는 점이다.

적절한 전희(前戱)과정이 생략된 성관계는 강간비스무리한 느낌을 준다. 개혁적 가치를 인식할 여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정년을 단축당한 교사들이 어찌 이해찬을 곱게 볼 것인가. 마찬가지로 내 연금쪽박을 건드리고 있는 유시민 역시 그 개혁적 색채하나는 일찍부터 현란했지만 연금에 녹아있는 교사들의 가난한 역사에 관해서는 담당부서 직원들로부터 브리핑 받은 것 밖에 더 있겠는가...

연금은 경제논리가 아닌 인간논리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서른 살 사내의 자화상에는 뜻밖에도 경제논리에 앞서 인간의 논리가 먼저 녹아 있다. 유시민 본인이 교사의 가난을 누구보다 먼저 체득한 인간적 고뇌를 안고 있다. 박봉에 시달린 부친의 내력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그런 유시민이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말문이 막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유시민을 공박할 건덕지가 없어져버렸다.

적어도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유시민은 교사의 가난을 가슴으로 체득한 내력이 없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는 연금에 얽힌 인간적 고뇌의 깊이를 내 항변의 근거지로 삼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유시민이 내 근거지에 먼저 똬리를 틀고 개혁의 불길을 지피고 있지 않은가? 젠장,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인간인가? 어쨌거나 유시민 그는 지금 내 연금쪽박을 깨는 당사자가 아닌가? 내 가난했던 과거를 보상받을 수 있는 희망을 흐리게 하는 당사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아무 이유 없이, 분기탱천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할복은 그렇다 치더라도 핏대선 목소리 정도는 계속 높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인가? 나 한 사람의 연금쪽박은 금이 갈지 모르나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받을 연금은 튼튼할 것이란 느낌이 드는 것은? 희망이라는 또 하나의 연금쪽박이 새로 생기는 기분은 무슨 조화인가?

고백하건대 나는 내 몫의 연금 외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장래에 받을 연금은 내 사고 밖에 놓여진 항목이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 대한민국의 코를 생각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어디 나 뿐이랴? 수많은 국회의원들, 탈당과 변절이 난무하는 것은 다 제 코 때문이 아니던가? 유시민 역시 제 앞에 늘어진 코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석자인지 넉자인지 치수는 모르나 분명히 흘린 코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대한민국의 코를 가늠하고만 있지 결코 자기 코의 치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더구나 그는 지금 나 같이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으로부터도 정신적 린치의 표적이 되고도 남을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자진해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용기를 지닌 그는 드물게 볼 수 있는 공직자이다. 유시민 그는 내 연금쪽박을 건드리고 있긴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2007. 2.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 신선생



2007-03-01 04:49:49
810 번 읽음
  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데이스토리 '07.3.1 4:51 AM 신고
    개혁이 남의 일일때는 모두 찬성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되었을때는 모두 반발을 하지요.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것을 감수하고 받아들이셨다는 점이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댓글에댓글
  2. 2. 덜렝이 '07.3.2 12:03 AM 신고
    에궁..
    70년대에 10만원이라... 난84년에 첯직장에서 6만원받았는데..
    근데 선생들 연봉요새 얼마죠?? 난주당 84시간 근무하고 120받는데 일요일도업구
    국경일도업이..물론초과근무수당도업이..체..더러워서 원"
    그리고 난 오히려 국영기업체 연봉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느끼는데 거기에맟춰달라라?
    지금댁들은 ..남들은 벤츠타는데 왜우린 벤츠살돈안주냐는식같소..! ↓댓글에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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