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게시물을 올릴수있는 게시판입니다.
  • 유년추억
  • 학교생활
  • 입시준비
  • 대학생활
  • 군생활
  • 알바생활
  • 취업준비
  • 직장생활
  • 원룸생활
  • 연애중
  • 결혼준비
  • 집안살림
  • 자녀교육
  • 창업준비
  • 이민유학
  • 노후생활
  • 전체보기


1965년 9월 중앙일보의 창간에 얽힌 비밀 이야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정치인을 꿈 꿨다고 하면 무슨 잠꼬대 소리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주영이가 92년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니까 그로부터 30년 전 1965년 9월 22일 중앙일보를 창간하기 전에 정치인의 꿈을 꾼 적인 있다.

“나는 4·19와 5·16을 거치며 단 한번 정치가가 되려 생각한 적이 있다. 경제인의 힘의 미약함과 한계를 통감한 것도 정치가가 되려고 한 동기였다. 그러나 1년여를 숙려한 끝에 정치가로 가는 길은 단념했다. 올바른 정치를 권장하고 나쁜 정치를 못하도록 하며 정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회 조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한 끝에 종합매스컴의 창설을 결심했다.”

이는 1986년 출판된 이병철 창업주의 전기 <호암자전>의 중앙일보 창간 배경으로 한말이다. “정치보다 더 강한 힘” 이것이 중앙일보 창간 배경이었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중앙일보의 성장기

94년인지 95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비지니스 위크” 한국특파원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동아 중앙이 석간신문에서 조간신문으로 변신하고 한국일보가 조/석간 동시발행으로 신문사간의 출혈경쟁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들에게 00국장으로 불리던 그 한국특파원이 하루는 점심을 같이 하는데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불러 갔더니 중앙일보를 조선일보 이상의 일등신문으로 키워야 하는데 조언을 부탁한다고 해서 자기가 제안을 해주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자랑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제안의 내용은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데 “섹션신문”이었다. 경제 섹션, 스포츠 섹션 등으로 본지 외에 삽지형태로 섹션을 구분하여 신문을 발행하는 형태로 석간에서 조간으로 변신을 하고 있는 중앙일보로서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대대적으로 홍보 마케팅 활동에 활용하여 조간신문으로의 안착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즈니스 위크] 표지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나오고 커버스토리로 삼성그룹을 특집으로 다룬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 “섹션신문” 제안에 대한 보답이구나 했다. 당연이 대량광고와 함께 정기구독이 그룹차원에서 이루어져 내가 아는 그 특파원은 그 다음해 [비즈니스 위크] 아시아 지역 총괄책임자로 영전되는 것을 보았다.

아마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지원과 특혜 속에 3대 일간지로 자리 잡은 것이 90년대 중반의 바로 그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70-80년대만 해도 동아일보의 아성과 견제에 늘 수세적인 입장에 있던 것이 중앙일보였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의 한판 승부 “사카린 밀수 사건”

경향신문은 중앙일보가 창간되기 1년 전인 1964년 삼분폭리와 재벌기업의 부정비리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면서 경향과 삼성그룹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권과 대립하고 있던 경향신문이 삼성재벌과 박정희 군사정권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는 부정비리 사건에 대한 폭로였다.

삼분폭리란 5·16이후 민정이양기 동안의 사회혼란기를 틈타 1963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이 설탕·밀가루·시멘트 산업의 재벌로부터 불법이득을 취하게 해주는 대가로 3800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삼성은 법정싸움으로 끌고 갔고, 경향신문도 맞고소에 들어가자 정권의 비호를 받은 검찰은 경향의 고소는 각하하고 삼성의 고소는 받아들여 경향신문 사장을 불구속 수사했으며 삼성은 경향의 부동산과 유체동산에 가압류신청을 제기했다. 삼성과 정권이 한통속이었고 경향이 일방적으로 탄압받는 시절이었다.

삼성은 경향신문과의 싸움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했는지 그 이듬해인 1965년 9월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을 설립하여 종합매스컴 회사를 창설하게 된다. “정치보다 더 강한 힘” 삼성의 언론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은 “사카린 밀수사건” 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뒤로 하고 삼성쪽 논리를 쏟아내고 모기업 옹호에 나서는 삼성그룹 비호 보도가 언론계와 국민들의 지탄을 받자 다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재벌과 언론기업이 완전 분리하도록 지시해서 법제처가 경영과 편집의 분리, 신문과 방송의 겸업 금지 등을 뼈대로 한 언론공익법을 성안하기까지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자 당시 이병철 한국비료사장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고 언론과 학원에서도 손을 떼겠다고 다짐했다.

X파일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8천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하는 최근의 삼성그룹의 대응과 담지 않았는가?? 여전히 중앙일보는 계열분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삼성그룹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로부터 23년이 지난 1993년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병철 회장의 맏아들 이맹희는 <회상록-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당시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이 적극 감싼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 밀수였다고 주장했다.

“65년 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 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고 회고했다.

정권과 결탁한 삼성재벌은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현대와 함께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고, 지금의 삼성 공룡재벌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 것이다.



2007-03-04 20:53:34
690 번 읽음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캐시선물





365ch.com 128bit Valid HTML 4.01 Transitional and Valid CSS!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