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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완강하게 버틸때 - 선두와 느림보

 
선두와 느림보
#시속 100마일- 고속도로 비유에서 시속 100마일로 질주하는 자동차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기관을 대변한다. 기업이나 사업체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들은 사회 다른 부문의 변혁을 주도한다. 기업은 스스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급업체와 유통업체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변화할 것을 강요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술은 경영자와 직원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쏜살같이 질주한다. 금융부문 역시 새로운 기술은 물론 새로운 스캔들, 새로운 규제, 다각화되는 시장, 재무 상태 변동에 반응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회계나 다른 시스템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시속 90마일- 비즈니스 부문 바로 뒤에서 속력을 올리는 자동차가 있는데 이 차의 탑승자들도 매우 놀랍다. 2등 조직은 마치 서커스 광대들처럼 여럿이 한차에 올라탄다. 그들은 바로 집단적으로 견해를 형성하는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는 격렬하게 변하는 수천 개의 NGO들로 구성되어 급성장하고 있는 과보호 부문이다. NGO가 주도하는 운동들은 작고 빠르게 탄력적인 단위로 구성되며, 네트워크로 조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대 기업과 정부기관을 능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사회의 다른 어떤 주요 조직들도 비즈니스세계와 시민단체 두 부문의 변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시속 60마일- 세 번째 차에도 놀라운 탑승자들이 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가족이다.
수천 년 동안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형적인 가족 형태는 몇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가족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핵가족이 우세해졌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아버지는 나가서 일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하며 18세 미만의 자녀 둘이 있는 가족으로 규정되는 핵가족의 미래에도 우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핵가족의 의미에 적합한 가정은 25% 미만이다. 편모나 편부 가정, 결혼하지 않은 커플, 한 번이나 두 번 또는 그보다 많이 재혼하여 이전의 혼인관계에서 생겨난 아이들을 양육하는 가정, 노년 결혼, 최근에는 합법적인 동성 간의 결합이나 결혼을 통한 가정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 조직 중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유형에 속했던 가족체계가, 불과 수십 년 만에 변형되고 있다.
 
한편 오늘날의 미국 가정은 기업이 외부로 내보내고 있는 기능들을 가정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미 수천만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혁명은 쇼핑, 투자, 주식거래와 여러 기능들을 집안에서 해결하게 만들었다.
가족 형태, 이혼율, 성행위, 세대 간 관계, 데이트 패턴, 자녀 양육 등 가정생활의 모습들이 모두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시속 30마일- 기업, NGO와 가정이 초스피드로 변하고 있다면 노동조합은 어떨까?
우리가 보아온 그대로 미국의 노동 형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대체 가능한 기술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로, 맹목적인 반복 업무에서 혁신적인 업무로 변하고 있다. 노동의 이동성도 높아지고 있다. 비행기, 차, 호텔,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니 일할 수 있다. 몇 년씩 한 조직에서 같은 동료와 일하는 대신 프로젝트에 따라 이동해 가며 기존의 동료들과 해어지고 새로운 동료들과 협력한다. 많은 이들이 직원이라기보다 계약을 통해 일하는 프리에이전트이다.
기업은 100마일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미국의 노동조합은 호박에 박힌 화석처럼 1930년대 대량생산 시대의 조직, 방법,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사실 1955년 미국의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력의 33%를 대변했지만 오늘날에는 12%의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시속 25마일- 소리만 요란한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 기관들은 어떨까?
수십 년간 각종 비판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변화를 지체시키는 데 능력을 발휘해 온 피라미드식 정부 관료조직이 세계 각국의 일상사를 관리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아무리 진부하고 무익한 것이라 해도 새로운 관료제를 수립하기보다 구관료제를 타파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스스로 천천히 변화할 뿐만 아니라 빠르게 바뀌는 시장 조건에 반응하는 기업의 속도마저 떨어뜨린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새로운 의약품을 시험하고 승인하는 데 걸리는 오랜 시간 동안 가망 없는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때로는 세상을 떠난다. 정부의 의사결정은 너무나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져서 공항 활주로 건설을 승인 받기까지 10년 이상 걸리고, 도로 건설 프로젝트 하나를 승인 받는 데도 7년 이상이 걸린다.

#시속 10마일- 하지만 관료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백미러를 통해 자신들보다 훨씬 뒤쳐져 있는 자동차를 볼 수 있다. 타이어는 펑크가 나서 흔들거리고, 라디에이터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 차량은 뒤따라오는 차까지 속도를 없게 만든다. 이 부서진 고물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4,000억 달러를 들이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실제로 해마다 그만한 비용을 쏟아 붓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의 학교이다.
 
미국의 학교들은 대량생산에 맞게 디자인되어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받는다. 이들은 20세기 초의 경제체재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은 다른 나라의 학교들도 그보다도 나을게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속도 전쟁을 벌이며 변화에 매진하는 동안 공교육 체계는 독점의 특혜를 누리며 보호받고 있다.
 
학부모와 개혁적인 교사들, 언론은 강력하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적인 실험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공교육의 핵심 부문은 여전히 산업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진 공장식 학교로 남아있다.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체계가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는가?

#시속 5마일-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역기능적인 조직들이 국가차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나라의 경제는 실질적으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세계적인 관리기구의 영향을 받는다. 유엔(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이외에 국경을 넘나드는 활동의 규칙을 정하는 눈에 띄지 않는 다수의 실세까지 포함한 정부간국제기구(IGO) 들이 그것이다. 만국우편연합(UPU)처럼 100년 이상 된 조직이 있고, 약 75년 전 국제연맹이 활동하던 시기에 생겨난 조직도 있다. WTO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조직은 반세기 전인 세계대전 이후에 구성되었다.
 
이들의 관료구조와 활동은 예전 그대로이다. 오늘날 국권은 새로운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고, 새로운 참여자와 문제가 국제무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새로운 IMF의 새로운 총재를 선출할 때, 미국과 독일은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결국 독일 후보가 선출되었을 때 <뉴욕 타임스>는 클린턴 대통령과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가 50년간 유럽 인물이 총재를 차지한 규칙을 깨뜨릴 수 없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시속 3마일- 그런데 이보다 더 느리게 변화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제 부국의 정치조직이다. 의회와 백악관에서부터 정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조직들은 수많은 단체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그 요구들은 모두가 느긋한 논쟁과 관료적인 나태함에나 걸맞는 체재에서 벗어나 빠른 반응을 기대한다. 미국 상원의원인 코니 맥(Connie Mack)은 “국회의사당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무언가를 논의해 본 시간이 채 2분도 되지 않는다. 생각할 여유나 지적인 대화를 할 시간이 없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주어진 시간 중 3분의 2를 공보 활동을 하거나 선거자금을 모으거나 혹은 선거운동을 하며 보낸다. 이 위원회, 저 특별팀, 다른 직업 단체, 그 외에 뭔지 모르는 여러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일을 모두 알아야 하는데, 내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그 모든 일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불가능 하다.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의 보좌관들이 점차 더 많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지식 기반 경제의 엄청난 속도와 고도의 복잡성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정당과 선거는 왔다가 사라질 수 있고 기금 모금과 선거운동의 새로운 방법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식 경제가 가장 발전되고 인터넷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새로운 정치 구성 요소를 형성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정치의 구조적인 변화는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사회 경제적으로 정치 안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2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미국의 정치 시스템은 1861~1865년 남북전쟁을 치른 후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고, 1930년대에 대공황을 거치면서 다시 변화했다. 그때 정치 시스템은 산업사회에 보다 충분하게 적응했으며 그 후 정부는 확실히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구조는 아마도 기본적인 조직의 개혁에 있어서 헌정의 우기가 닥칠 때까지 길가에서 자주 쉬어가며 변함없이 3마일 속도로 기어갈 것이다. 헌정의 위기는 세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찾아올 수 있다. 사실 연방 대법원의 다수결 의결로 대통령이 확정되었던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위험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졌었다.

#시속 1마일- 마지막으로 느림보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법이다. 법에는 두 부문이 있는데 하나는 법원, 변호사 협회, 법과대학원과 법률회사 등을 포함하는 기관들이다. 다른 하나는 이 기관들이 해석하고 수호하는 실질적인 법 그 자체이다.
미국의 법률회사들은 합병, 광고, 지적재산권 관련 법안 등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발하고, 원격화상회의를 실시하는 등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세계화를 추진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반면 법원과 법과대학원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 상태이다. 시스템이 작동하는 속도 역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은 몇 년째 법원에 계류되곤 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미국 정부가 기업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판이 끝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리고, 그때쯤이면 기술적인 진보로 인해 소송의 쟁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연대기 작가 로버트 크링글리(Robert X, Cringley)는 ‘고도로 가속화되는 인터넷 시간과 사법 시간의 격돌’이라고 평했다.
 
흔히들 ‘법은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 간신히 살아 있을 뿐이다.
수십 년의 논쟁을 거친 후 미국 의회는 지식 경제를 좌우하는 기본 법 2개를 다시 제정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변화한다는 전기통신산업은 1996년까지 1934년에 만들어진 법에 의해 규제를 받았다. 금융 부문에서 은행업을 규제했던 글래스-스티걸 법 역시 60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미국의 주식 발행과 다른 유가증권 발행에 대한 기본 규제들은 1933년 법으로 제정된 것이다. 한편 오늘날 약 2억 5,000만 개의 계좌와 약 7조 달러의 자산을 주무르는 8,300개 이상의 뮤추얼 펀드가 있다. 이 대규모 투자를 관리하는 법은 여전히 1940년에 제정된 것이다. 30만 개미만의 계좌와 68개개 펀드 그리고 오늘날의 14만 6,000분의 1에 해당하는 자산이 있었을 때 말이다.
 
진보된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저작권, 특허권, 사생활 보호와 같은 분야의 주요한 법들도 한심하게 시대에 뒤쳐져 있다. 그야말로 지식 경제는 이런 법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법률에도 불구하고 생겨나고 있다. 이는 안정성도 부동성도 아니다. 법조계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 가고 있지만 법 자체는 거의 변화가 없다.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었던 이전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존중을 받았던 이유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과거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볼 수 있어서였다. 미래가 과거의 모조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속도로 볼 때 옛 지식의 상당 부문은 무용 지식이 되어 젊은 세대가 인생을 헤쳐 가는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적다. 사실 이미 젊은 세대에게 있어 옛것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물론 예전 방식이 진실을 가려낼 수도 있지만 너무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떤가? 앞으로의 세대가 권위 앞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혹시라도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오늘날의 지식 기반 경제가 확산되는 곳이면 어디든 전문가로 무장한 권력기관들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환자들은 의사에게 의문을 품고 반발하며 블로커들은 전문 언론인들의 권위에 도전한다. 아마추어가 프로페셔널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텔레비전 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연예인이 전문 정치인과 맞서 정치에 출마하여 상당수가 당선되고, 수백만 명의 아마추어들이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감독, 제작, 연기까지 해낸다.
 
동시에 정부기관의 무능, 기업의 부실과 스캔들, 가톨릭교에서 벌어진 성희롱 등의 사건들이 진실의 당위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는 기존 권위체계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
오늘날 과학의 권위에 가해지는 공격도 이러한 산업시대 권위에 대한 반발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차이점이라면 과학은 지속적인 번영과 질 높은 생활환경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 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2007-03-07 23: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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