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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의 성경해석의 오해

 

안식일교분이 자신들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 달라고 해서 제가 아래에 쓴 글을 다시 올려드립니다. 기독교분들은 잘 읽어 보시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

1. 기존기독교와 안식일교의 공통점

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이 구원의 핵심이시라는 것 등의 기본적 골격은 유사합니다.

2. 기존기독교와 안식일교의 차이점

기존교회와 안식일교회는 한 하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조화되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해석하는 시각 자체가 판이해서 결국 그 적용과 믿음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신학적인 구분 이외에도 실제 안식일교회는 안식일교회만이 구원이 있고 다른 곳에서 믿어봐야 헛것이고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비신자와 기존교회 사람들에게 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그들의 자료에는 분명히 명시하고 있고 이것은 심각한 교회의 분열과 상호비방을 야기합니다. 이것이 매우 유감입니다. 제 글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계속해서 안식일교회 사람들에게 2005년부터 이곳 비팍게시판에서 이런 행위들을 중지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도 계속해서 동일한 자료를 게시한 것을 이곳 회원님들도 다 아시는 일입니다. 상호간의 신학적 차이야 다를 수 있다지만 특정한 교단만이 바르게 믿고 있고 다른 곳은 다 거짓말장이고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주장하는 안식일예배의 정당성은 신학적 견해로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성경적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키겠다는 것은 그들의 성경해석의 결과라고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대로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다 악마에게 속고 있는 곳이고 기만당했으므로 그대로 계속 믿으면 구원을 얻지 못할것이라고 하는 것은 중상모략에 속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신학적 견해가 중요하다면 타 교단의 견해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최초의 안식일교회와의 이단시비가 불거진 것도 이 부분이었습니다. 기존교회가 안식일교회의 사상과 신학을 조사하기 시작한 원인이 바로 이 것 때문이었음을 제가 그 당시의 일간지와 단행본등의 기사를 통해 제시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들이 기존 교회를 엉터리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토요일이 성경적 개념의 안식일인데 주일을 안식일로 변경한 것은 4세기의 로마황제 콘스탄틴 황제가 이교도의 축제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변경했다. 또한 안식일이 주일예배로 변경된것은 성경에 없다. 따라서 주일예배는 거짓이고 인간의 예배이다.(안식일교회의 주장)

-> 물론 안식일 자체가 주일예배로 변경된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많은 논증을 필요로 합니다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주일예배가 형성된 것은 4세기가  아니라 1세기 속사도시대부터입니다. 요세푸스 등 1세기 근동지방의 유대사가들의 기록과 속사도시대의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비유대인들의 기독교인들의 예배모임이 시작된 기록이 모두 오늘날의 일요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교는 성경에 주일예배가 없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성경에 주일에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시작된 것은 여러군데 적혀 있습니다.(성경목록은 적지 않았습니다만 원하시면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서 4세기의 콘스탄틴황제의 일요일예배 명령은 새롭게 창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지켜지고 있던 예배를 추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날자가 태양신의 날이라 해서 배교라 한다면 토요일은 토성의 날이므로 역시 배교이겠군요.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추이를 제대로 따져야 할 것입니다. 1세기가 먼저인지 4세기가 먼저인지 말입니다.

문제는 왜 안식일 회당예배가 일요일 주일예배로 변경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안식일교회에서는 죄다 무시하고 공부조차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성경만 갖고 이야기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역시 그 당시의 기록의 일부라면 역사의 흐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게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사건 이후 초대교회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대인들로 구성된 기독교인들과 비유대인들로 구성된 기독교인들과의 마찰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모세의 율법과 할레를 지키는 것이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바리새인들 출신의 기독교인들의 말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등으로부터 복음을 들은 비유대인들 기독교인들은 그 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마태복음과 야고보서는 이러한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목적과 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안식일을 비롯한 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개념인데다가 그대로 지킬수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1차 총회에서는 베드로가 결국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십계명을 포함)을 비유대인들에게 강제하지 말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이 결정에 여전히 강력하게 반대하고 항의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 결정에 불복한 유대인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것을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제지하며 그 부당성을 경고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보면 규례에 따라 안식일에 회당에 갔다는 이야기가 여러번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 그 때가 아니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때 모이므로 그때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문제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법과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율법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일례로 바울이 사도행전에 보면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에 대해 가르쳤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듣기 위해 다음 안식일에도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유대인 지도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부인한다고 해서 바울 일행을 내쫓는 사건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바울을 비롯한 제자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간것이 율법대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 글에만 매여 있다보면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저는 누누히 말씀드려왔습니다. 안식일 교회는 이 부분을 간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법에 더 이상 매여있을 필요가 없음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의 기독교는 주일예배를 지키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그 당시의 상황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 기독교들과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은 결코 섞일 수 없는 큰 골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안식일과 기타 절기들이 구원에 관련된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서로 싸우지 말라고 충고를 합니다만은 여전히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중요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A.D 70년에 벌어진 예루살렘 훼파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은 박살이 났고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완전히 불태워져 예수님의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하여 디아스포라를 겪게 되었고 유대인들의 신앙적 기반이 다 부서지게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바리새인들 랍비들을 중심으로 회당모임이 서서히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부서진 마당에 새로운 성전을 대신할 양식이 필요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유대인들의 회당이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안식일을 준수했고 조상들이 준수해온 율법들을 계속해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반해 비유대인 기독교진영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바울사도의 영향으로 세워진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에서마저 율법의 준수를 의무화하지 않기로 결정한 마당에 유대인들의 예배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는 차츰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모임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그게 가장 사람들에게 전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안식의 개념과 요한계시록의 요한이 주의 날이라고 일요일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신학적 변화입니다. 안식일이 주의 날이 아니라 주일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는 안식의 개념을 안식일이라는 날의 개념에서 벗어나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 더 이상 토요일 안식일 준수가 참된 안식의 개념을 계승한 것이 아님을 성경은 자체적으로 증언합니다. 결국 문자적 준수가 아닌 구원의 완성으로서의 안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해했고 그것이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주일예배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안식일교는 여전히 토요일만이 성경적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이고 개신교회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서로 입장이 다르다면 각각 다르게 믿으면 그만일것을 굳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배교한 것이므로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신학적 차이가 아닌 비방과 공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신학적 견해는 학자들이 해결할 일이지 서로 비방하고 저주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입니다. 개신교회에서는 그래서 많은 논문과 연구결과를 통해 안식일과 주일예배의 차이점을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안식일교회는 여전히 그것을 성경에 기록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거절합니다. 이것이 안식일을 둘러싼 양자간의 견해차이입니다.

이것은 제 사견입니다만 성경에 문자적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안식일교회의 창시자 중 하나인 화이트 여사의 꿈에 본 환상을 다 믿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정말 천국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만이 반짝거리는 것일까요? 좀 더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입니다.

 

2)지옥은 없고 지옥이 있다고 말하며 영혼이 영원히 거기서 멸망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톨릭의 이단사상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말하는 개신교회는 가톨릭의 하수인이며 멸망받을 짓을 계속 하고 있다.(안식일교회의 입장)

->이 부분은 제가 아랫글에 정리해 두었는데 다시 쓰기가 불편해서 그 내용을 다시 옮기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안식일교회의 영혼불멸사상에 대한 반대는 안식일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총에 의거합니다. 한없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잔인하게 영원하게 고통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인간적인 의구심]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은 [이치에 맞지않다]라고 결론을 지은 뒤 영원한 형벌과 악인의 영원한 존재에 관련된 모든 성구들을 부인하고 잘못 번역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맞지요?

물론 성경에는 인간의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시편과 전도서에 집중되어 있죠) 그러나 그것은 죽음 뒤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것들입니다. 영혼은 육신을 떠난 후에는 세상에 전혀 관여할 수 없고 영향을 끼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잠과 죽음은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상태로 인정되어집니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된 글들이 거의 시편과 전도서 같은 지혜문학서에서 시적 표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구성과 특성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여러군데에서 영혼이 죽음 직후에 잠에 빠지는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곧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가지게 되는 생활을 누리게 됨을 증거합니다.(눅 23 :43, 행 7 :59, 고후 5:8, 빌1:23, 계6:9-7)성경은 한쪽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봐야 되는데 안식일교에서 주장하는 사망 후 무의식에 빠진다는 설은 거의 대부분 시편과 전도서를 근거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혜문학의 차원에서 시편과 전도서를 이해한다면 다분히 문학적인 차원의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의 직접적인 언급에 비해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비교는 여러분들이 직접 해 보시지요.

또한 영혼불멸에 관해서도 님들의 영혼 멸절이라는 말은 영생이 의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라는 성경구절에 힘입어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시는 은혜인데 그것을 악인들이 받을리가 없다는 것이 그 주장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단어들을 그런 의미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의인 뿐만 아니라 악인들의 영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 12:7, 마 25:46, 롬 2:8-10, 계 14:11, 20:10) 여러분들은 아이온이라는 단어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만 영원한 것이고 사람과 사물에게는 유한하다고 하는데  마 25:46같은 구절은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영생과 영벌 모두 [아이온]이 쓰여졌고 동일하게 번역되었습니다. 못믿으시겠다면 다른 역본과 헬라어성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은 저는 영혼불멸설만이 맞고 지옥과 천국의 교리가 다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하나의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가를 지적해 드리는 겁니다. 성경은 매우 상반된 견해처럼 보이는 것이 동시에 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해석에 많은 혼동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당시의 문학적인 글의 작성방법과 성경의 기록 배경, 저자의 의도등을 잘 연구해 보면 의외로 그런 것들이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바울의 [이신득의]와 야고보 사도의 [이행득의] 사상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독자층에게 말하고 있다 보니 좀 더 이해가 쉽게 다루고 있다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지 말고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이상 아래의 본인 작성한 글 인용.............

저는 이 부분은 솔직히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기서 악인들이 어떻게 형벌을 받을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그냥 각자의 신학적 견해대로 믿으면 그만입니다. 죽으면 정말 결과는 훤하게 알 수 있을테니까요. 싸울 거리도 못되는 것을 가지고 배교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으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까지고 싸우는 것도 웃기거니와 자신들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하고 다른 교회들은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안식일교회의 주장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기존의 교회는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말하고 특히 안식일이 폐기되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엄연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행위로 멸망받을 짓에 해당한다.(안식일교회의 주장)

->이것은 안식일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파생된 문제입니다. 이것은 안식일교회가 완전히 기존교회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느 개신교회에서도 율법과 십계명이 폐기되었다고 가르치는 교단은 없습니다. 사이비 이단들이라면 모를까 어느 기존교단에서도 이런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안식일교회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 비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은 문자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기존 개신교회에서는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표상으로 이해합니다. 모든 율법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대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길잡이로서 이해하고 믿습니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이 의이고 불의인지에 대한 기준을 설명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 자체는 하나님께 도달하는 의에 대해 말하며 신명기서와 신약성경은 이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성 때문에 이것을 지킬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의를 이루실 완전한 의를 약속했고 그 분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문자적 준수를 말했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무엇이 참된 율법의 정신이며 의미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이루는 것이며 결코 그 문자적 준수에 있지 않음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것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확증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의 율법의 준수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율법 중 하나라도 그것을 지키면 그것은 모든 율법의 준수를 의미하는 것이라 율법의 내용과 그 의미는 이해하고 오늘날에 적용하되 그 문자적 준수는 지킬 의무에서 벗어납니다. 이 부분을 안식일교회는 폐기로 이해합니다만 전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십계명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무엇이 망령된 것일까요? 이것을 유대인들은 각종 항목을 붙여서 부연합니다. 그래서 최초 열개였던 계명이 예수님 당시 613개까지 늘어난 것을 보면 법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는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신약의 교회들은 이것을 다 암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을 모두 몰라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오신다고 성경과 예수님이 약속하셨는데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재하십니다. 그래서 무엇이 일일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이 우리안에서 그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이것이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면서도 율법의 정신을 어기지 않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또한 계명중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인간들은 이런저런 부연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 없이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합니다. 이것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즉,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얻어 성령의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율법의 문자적 내용을 다 몰라도 충분히 거룩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을 믿음과(신) 이웃에 대한 자비와(인) 공의와 정직(의)입니다. 더 줄이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사람은 온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선언합니다. 지금의 개신교회는 이 율법의 전승과 완성의 개념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폐기했다고 비방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 한 억지입니다.

만일 안식일교회의 주장대로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며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아무도 진실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안식일교인들조차도 성경의 문자적 준수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무도 하지 못합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것을 대신 이루실 구주를 약속하신 것이고 예수님이 그 사역을 이루셨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또한 안식일교회의 주장대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그야말로 다 암송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모른다면 영문도 모르고 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오늘도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평안을 주시겠다고 한 약속과도 위배되는 행위가 됩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 차이에 대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 산다고 하는 것이 얼핏보면 대단히 경건할 것 같은데 실은 자신을 더 내세우기 위한 허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질책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스스로 경건하고 하나님의 의를 지킨다고 하지만 실상은 너희도 그 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멍에를 지우고 있다고 말입니다.

안식일교회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항의합니다. 그럼 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거냐고 그러면서 그 기준이 성경이므로 성경대로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럼 성경을 다 모르는 사람은 어쩌란 말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하늘로 올라가고 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무엇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사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지 알려 주시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준수에만 매달려 있다면 더 중요한 이 사실을 간과하게 됩니다. 그럼 안식일교는 만약 성경이 없다면 아무엇도 못하는 사람들입니까? 성경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무엇도 하나님의 뜻인지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아닐테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거지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와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의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수천년전에 기록된 성경의 문자적 준수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한국의 이웃사랑의 방법과 미국의 이웃사랑의 방법이 같습니까? 그럼 무엇이 더 성경적입니까? 이걸 누가 판단합니까? 성경으로요? 성경에 그런 확고한 기준이 있습니까?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말하며 이스라엘의 율법을 통해 그 구체적 사례의 적용의 예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글자 그대로 무조건 따라야 되는 법전이 아닙니다. 성경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신 계시이자 그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성실하신 성취를 보여주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문자적 준수의 의무를 찾아내는 것은 성경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상황속에서 기록되었는가를 찾고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성경기록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임이라고 저는 계속해서 강조해 왔습니다. 이 부분은 안식일교회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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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큰 3가지가 기존교회와 안식일교회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이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매우 중요한 기독교의 근간을 다루고 있는 문제이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안식일을 지켜야 되는 날자, 지키는 방법, 율법의 준수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 이런 것은 얼마든지 교리적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자신들의 믿음대로 지키고 살면 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해 질만하면 안식일교회에서 기존 교회의 믿음은 다 가짜고 심지어는 가톨릭은 사탄의 표를 받은 멸망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 주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흑색비방이자 더러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서 교세를 확장하는 것은 신앙적 양심으로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7-03-08 09:37:06
1876 번 읽음
  총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1. wanalov '07.3.8 8:06 PM 신고
    이미 다 답변드린 내용이군요.
    수없이 말했듯이 일요일 개신교에 구원이 없다거나 또는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 얻을 수
    있다고 결코 말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수 천번을 얘기해도 믿지 않고
    억지만 부리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네요.

    십계명을 폐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안식일만 폐했기 때문에 지키지 않고 있나요?
    십계명이 영원한 것을 믿는다면 어찌하여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안식일을 짓밟고 우상
    숭배일인 사람의 일요일을 지키며 또한 일요일을 지킬 것을 채근하고 가르치고 있나요?
    어느 누가 보아도 그 앞뒤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일요일 개신교는 그들의 말로는 십계명
    을 폐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십계명을 짓밟고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일요일을 지키고 있으니 이는 폐하였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물론 사도 바울과 제자들과 구약과 신약성서에 나오는 주의 모든 신실한
    백성들은 제칠일 안식일을 철저히 구별하여 거룩히 지켰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성경과 상반되는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전통으로
    예수님과 순전한 주의 백성들에게 능욕을 돌리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지옥에 관한 건 이미 수없이 많은 글을 올렸으니 참고하시길 부탁드리며, 재림교회는
    각종 이웃 돕기와 구제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재림교회의 공식 입장과 전혀 다른 얘길 많이 하시는데 왜 자꾸만 꼭 같은 어처
    구니 없는 반론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올리는지 정말 알 수 없군요. 구원은 특정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천주교든 일요일 개신교든 여호와의 증이인든 몰몬교이든 구원 얻을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재림교인들 중에도 구원 얻을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할
    사람이 있듯이 다른 교단들도 다 마찬가지 입니다.

    중요한 건 어느 특정 교단에만 구원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전심을
    다하여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계명과 말씀과 명령에 기쁨
    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며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형제자매와 이웃과 더불어 생명의 말씀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의 실천
    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핵심입니다.

    아울러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사랑 계명이 마치 서로 다른 듯이 말하고 가르치는데
    이 또한 여러 번 이미 답변드린 것으로, 요한일서와 이서에서 새 계명은 곧 우리가 처음
    부터 가진 옛계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새계명이라 부른 것은
    이미 가진 십계명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요한일서2장 7절 (표준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기초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계명과 말씀과 명령에
    순종함으로 사람의 법과 사람의 계명을 따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송이아빠 '07.3.8 9:19 PM 신고
      이건 다 예전에 당신이 한 이야기 그대로 올린 것입니다. 특히 파란글씨는 당신이 한 말 그대로를 요약한 거요. 오리발 내밀지 말기 바랍니다. 저 밑에 당신이 올린글들은 다 뭐란 말이요? 난 당신이 한 말에 대한 논박을 했을 뿐이고 거기에 대한 재반론을 말해달라는건데 본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고 있군요.

      말을 길게 쓴다고 다 좋은게 아니요. 내용과 상관없는 말은 거절합니다. 난 당신네가 말하는 것이 근거의 부족과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할말이 있다면 내 본문에 대해 비평해 주세요. 예전에 안식일교 목사는 그래도 내용가지고 반론을 하던데 적어도 그정도의 상식은 지켜 주세요.

      난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모른다는 말로 교회의 역사와 성경의 내용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여기에 대해 반박할 내용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사절합니다. 성경의 내용의 변천과 안식일에대한 교회역사의 변천이 제가 이야기한 사실과 다르다면 그걸 말씀해 주세요. 모든 질문에 똑같은 내용의 복사글을 다시면 안되지요.

      내가 저번에 요한일서에 나온 새계명이 십계명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문을 통해 말씀드렸지요? 또 까먹으신 모양이네요. 다시 가르쳐 드리지요.

      당신이 말한 요일 2장 7절을 조금 더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7-11)
      여기까지의 본문을 다 살펴보면 요한이 말하고 있는 새계명은 다름아닌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의 연장해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이.삼서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법과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중에 본문인 2:7-11절의 내용은 새계명에 관련된 것인데 그 새계명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라고요. 그 계명은 예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이란 말씀입니다. 죽, 2:7절말씀은 새로운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은 예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딱 떼어서 새계명=옛계명=십계명 이라고 해석하는 수준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이없는 해석입니까? 본문은 그걸 말하고 있는것이 아닌데요. 문장을 조금만 더 앞뒤로 읽어 보시면 절대로 당신과 같이 해석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계명이라는 말만 나오면 다 십계명인줄 이해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어이없는 성경해석입니까?

      본문하고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지만 어이없는 해석에 다시 반론을 드렸습니다. 부탁하기는 논점을 흐리려고 하지 말고 재가 해석한 부분에 대한 오류가 있다면 그 부분을 다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2. 2. 장미아빠 '07.3.8 9:32 PM 신고
    요한일서2장 7절
    참 단순하시네요.
    지금 이 성경구절이 님이 주장하는 십계명 폐함을 증거하는 성경구절이라면 ,
    한 마디로 아니 올시다입니다.
    님은 뭐든지 성경의 전체 문맥보다 부분 단어로 자신의 주장을 나열하는 나쁜 습관이 있군요.
    위 내용은 사도요한이 형제애의 교훈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죄로 단절될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셔서 그것을 율법으로 하나님께 벌 받기 싫어 지키 던 것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옛 것이든 새 것이든 간에 우리 주님의 계명에 더욱더 순종하게 되는 것이라는 요한의 글입니다.
    따라서 구약 때에는 하나님께 복종하므로 인정을 받았지만,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정을 받으므로 예수의 사랑은 구약의 율법인 십계명을
    폐함이 아니라 완성을 이뤄으니 너희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율법의 형제 사랑도
    그리스도의 사랑함으로 하라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고린도 서신의 사랑과 요한의 행함의 서신은 서로 상반되어 있는 것 같으나
    성경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청소년 수준이라면 예수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이것에 나타남은 세가지로 알 수 있는데.....

    (1) 그러한 사랑이 없는 자들은 헛되이 빛 가운데 있는 체할 뿐이고(9절). 이들은 그 형제들 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동받지 못했으므로 계속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사랑으로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의 빛이 선하고 진실됨을 증명합니다(10절). 그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자들을 우리도 사랑해야 함이 얼마나 올바른 것인가를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는'(10절) 것이고. 기독교의 사랑은 우리에게 형제의 영혼을 매우 귀중히 여겨야 하며 그의 순결함과 평화에 해가 될 모든 것을 두려워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3) 미움은 영적 어두움의 표징이다(11절).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에 대하여 악의를 품는 자는 영적인 빛이 결코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다음과 같이 됩니다.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곳을 알지 못하나니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11절). 주 예수는 위대한 사랑의 주이십니다. 그의 제자들은 사랑의 제자들이며 그의 가족은 분명히 사랑의 가족인 것입니다. ↓댓글에댓글
  3. 3. wanalov '07.3.10 5:16 PM 신고
    이크크 답답하시네요
    제가 한 말을 거꾸로 해석하고 있군요. 이미 관련된 성경말씀을 다른 글에서 다 올렸기에
    한 구절만 예를 들어 다시 적은 것 뿐입니다. 이미 올린 글들에 상세한 설명이 있고 그대
    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성경말씀을 차분히 읽어보면 새 계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인 십계명인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착오 없길 바랍니다. ↓댓글에댓글
    • ㄴ 1. 송이아빠 '07.3.10 7:32 PM 신고
      차분히 읽어보면 요한일서의 새계명이 십계명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마 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문장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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