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여객기 ‘동체 착륙’ 기장도 승객도 ‘침착’
입력: 2007년 03월 14일 18:27:44
‘상공에서 선회를 거듭하는 기장. 참사의 정경이 떠오르는 승객들.’ 지난 13일 일본 남서부 지방 도시 고치(高知) 상공에서 앞바퀴 고장으로 동체착륙을 감행했던 전일본공수(ANA) 여객기의 ‘악몽의 2시간’ 뒷얘기가 일본 사회를 뭉클하게 하고 있다.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침착하게 대응한 기장, 다급한 상황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승객이 만들어낸 ‘무사 착륙 드라마’에 대한 감동이다.
지난 13일 오전 일본 남서부 고치 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의 동체 착륙 과정에서 한 승객이 자신의 명함에 당시 기내 상황과 승객들의 표정을 꼼꼼이 적은 메모. /산케이신문 제공

특히 승객 중 일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내 상황과 느낌을 메모로 남겨, 기록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승객 56명과 승무원 4명이 탑승한 ANA 여객기가 오사카 공항을 이륙한 것은 이날 오전 8시25분. 고치 공항 도착 예정 시간은 9시1분이었다. 기장이 앞바퀴에 문제를 확인한 것은 착륙 10분 전. 관제탑에 보고하고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도착 시간이 지나도 착륙 기미가 보이지 않자 회사 동료 2명과 여객기를 탔던 건설 컨설턴트 다키하라 이사지(瀧原勇·58)는 명함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메모에는 당시 기내 움직임과 승객들의 표정이 생생히 담겨있다. ‘9시 도착 예정, 고치 상공에서 선회’ ‘20분 정도 지나, 기장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는다고 설명’ ‘화장실 앞에 있던 동료 얼굴 창백’.
동체착륙에 대한 불안감도 내비쳤다. ‘10·26 뒷바퀴 활주로에 닿은 뒤 다시 상승’ ‘10·32 몇차례나 뒷바퀴를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 같다. 무모한 일인가. 앞바퀴만으로 착륙할 것 같다. (기장은) 몇 차례나 훈련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훈련이 있는 것일까’라고 적기도 했다. 착륙 준비에 들어간 뒤에는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10·37 펜을 내리고, 넥타이를 풀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적막감에 사로잡힌 기내. 그리고 10시54분 동체 착륙이 시도됐다. 뒷바퀴만으로 활주로에 내려앉은 여객기는 400m를 달리다 기수가 지면에 닿으면서 다시 350m를 미끌어진 뒤 멈춰섰다. 이 과정에서 불꽃이 일었지만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키하라의 메모는 ‘10·55 무사착륙’으로 끝났다. 이렇게 쓰인 메모는 명함 뒷면에서 시작해 앞면까지 빼곡히 차였다.

일본에서는 1985년 8월12일 도쿄발 오사카행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추락해 승객 대부분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당시 기내 상황을 적은 다량의 메모와 유서가 발견돼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바 있다.
여객기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승객들을 안심시킨 뒤 무사착륙을 이끌어낸 이마자토 히토시(今里仁·36) 기장은 금세 일본 사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당시 승객들이 술렁거리자 직접 마이크를 통해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선회하고 있다. 동체 착륙을 하더라도 평소에 훈련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안심시켰다. 착륙을 앞두고는 기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부의 승객들을 뒤쪽으로 이동시켰다. 착륙 직전에는 착륙 5분, 2분, 1분 전이라는 카운트와 함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평소에 많은 훈련을 했다”며 냉정을 강조했다.
무사 착륙이 확인된 뒤 기장과 승객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TV를 통해 동체착륙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일본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쿄|박용채특파원〉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141827441&code=97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