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폐지 주장의 본질
나는 역전의 용사다.
내 스스로 질곡과도 같았던 우리나라 교육제도 앞에 마루타가 되어 온몸을 내 맡겨야 했고, 지난 몇 년간 아들 녀석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온 가족과 함께 숨죽이며 겪어야 했으니 ‘산전 + 수전‘은 겪은 셈이고, 이제 막 고딩이 된 딸아이와 함께 또 한번 치러내야 할 마지막 ’공중전‘을 앞두고 워커 끈을 바짝 조이고 있으니 역전의 용사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게다가 나나 아내나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우리나라 교육의 한 축을 맡고 있었으니 그래도 교육문제에 관한 한 방구깨나 뀌는 축에 속하지만, 이 지루하고 고된 포에니전쟁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견디다 못해 아이들 해외로 보내어 버린 부모들의 심정, 예전에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간다.
매달 꼬박꼬박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 없이 송금해 줄 여건만 된다면 아이들을 세계 유수의 교육기관에서 맘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지, 여기서 제일 좋은 대학에 보내봐야 세계 15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는 현실에서 지옥 같은 공부를 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도무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설령 그런 여건이 된다고 해도 나 자신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울화통에 열불 터지는 마음이 그렇단 얘기다.)
들리는 바로 자녀와 가족을 해외로 유학 보낸 ‘기러기아빠’ 중에 대학교수들이 랭킹 1위라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그저 별개의 사안인가 싶어 우리 사회가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그렇지 곰곰이 따져보면 참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없지 않다.
왜 대학교수들이 자식들을 해외에서 공부시키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을까. 첫째는 그럭저럭 금전적 형편이 돌아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본인 스스로 해외에서 유학을 해보니, 아니면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도무지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더 편한 여건 속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을 것이 뻔하니 말이다.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 교수란 양반들이 스스로 우리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고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지 자기 자식 해외 보내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거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그 스스로 더 깊은 연구를 통해 학과를 발전시키고 소속된 학생들을 우수하게 교육하여 해외유수의 대학과 견줄 수 있도록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저 그나마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런 교수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더 많은 연구비를 타내어 연구목적보다는 편법 운용을 통해 개인용도의 자금을 늘이고 그걸로 자신의 생활과 해외 가족들에 대한 지원을 더욱 윤택하게 할 수 있는가에 더 큰 비중을 두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바에 의하면 기대가 난망이고 마음은 콩밭이다. 그런 인간들이 교육제도 탓은 더하며 무언가 비난할 거리 찾는데 혈안이다.
그 속에 정운찬 같은 '쒸~레기' 학자가 있다. 그의 모습 자체가 우리 교육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다. 우리 교육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원인을 찾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런 인간이 지금까지 한 평생 우리 교육의 중심에 있어 왔고, 그런 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고, 그런 위인이 그 대학의 총장까지 오르고 대권까지 넘본다는 현실이 바로 우리 교육 수준의 한계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인게다.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한다.
세상은 진보한다. 인류도 진화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 방향으로 간다. 폭격을 맞은 도시가 폐허가 되는 수가 있어도 인류역사의 흐름을 볼 때 도시와 문화는 발전을 거듭해왔고 그것을 만들어 온 인류 역시 지적 발달을 거듭해 왔다.
적어도 우리가 학창시절을 보냈을 때 보다는 현재의 학생들이 접하는 지식도 폭이 넓고 다양하다. 굳이 인터넷의 위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관심사를 보나,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정보의 량이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것이다. 그럼에도 머리가 터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설파를 하던 시대나 베토벤, 모차르트 혹은 아인쉬타인과 같은 천재들이 세상을 풍미하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천재들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지금도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서 존재할 천재들의 존재를 지금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들은 항상 최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왔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사실이며 대명제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없다는 논리는 한마디로 '비열한 사기논리'다. 그것은 국민을 우스이 알고 우롱하는 짓이다. 이런 저런 제도로 인해 우수 학생 선발이 곤란했다면 '도대체 우수한 학생들이 어디로 숨었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과거 본고사 시절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똑똑했는데, 수능시대의 학생들은 그때보다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차이점, 바로 그것을 지적해야 옳은 것이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하는 것 역시 사기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현재의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다소 학력이 저하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자, 한 가지만 놓고 이야기해 보자. 과거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엔 영어공부도 대학생들도 쉽게 해석해내지 못하는 '1200제'까지 공부를 했다. 영어교과서는 달달 외울 정도였고 정통영어는 앞뒤로 서너번 훑었다. 수학은 해외 유수대학 입시문제라는 것을 구해다가 이해 안가는 내용을 머리 싸매가며 풀어보곤 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을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고3을 졸업한 학생의 영·수 실력이 그때만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엔 대학에서 내는 문제들이 엄청나게 어렵고 수준이 높으니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 또한 그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소위 SKY에 들어갈 정도의 두뇌를 가진 아이들은 그 수준에 맞추어 분명히 따라잡기 위해 달려가게 되어있다.
지금은 어떤가. 그만큼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본고사의 시험문제와 지금의 수능문제의 차이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 역시 그에 맞추어 학습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 어렵게 내면 어렵게 따라간다. 조금 쉬워지니 그에 적응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고..
학생들의 공부시간이 적은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 싸매고 공부하긴 매 한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공부 좀 하려는 녀석들만 싸맸지만 지금은 모두가 싸매고 있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고 국민전체의 학습량으로 따져 본다면 지금이 평균적으로 훨씬 높은 셈이다. 그것을 부인할 사람 있을까?
만고불변의 진리, 과외열풍은 망국병
나는 고교시절 과외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학원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수업을 마치면 경쟁관계에 있었던 아이들 몇이 어울려 지들끼리 과외를 받으러 가는 것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 없었다. 수학. 영어. 과학. 국어.. 핵심적인 내용만을 골라 쏙쏙 입에 넣어주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을 터이니 수업시간에 그 녀석들 반응 자체가 달랐고 나보다 쉽게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외? 받으면 받는 만큼 성적 올라간다. 입에 쑤셔 넣어주는데 영양가 높아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과외열풍’으로 대변되는 사교육문제가 우리 사회를 휩쓸면서 얼마나 우리 아이들을 피폐하게 하고 서민들 가슴에 멍들게 했는지 그 과정은 우리가 겪었던 바와 같다. 과외열풍이야말로 망국병이다.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자신의 배를 주려가면서도 자식 공부에 열성인 우리 민족에겐 독약과도 같은 것이 바로 사교육문제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대안을 마련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이며, 그것이 성공을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어떤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하느냐’라는 문제가 있을 뿐이지 ‘과거로 되돌리자’라는 발상이야 말로 개미 대가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천박한 인식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인간이 국내 최고의 대학총장을 했다는 사실과 이제는 나라의 대표가 되겠다고 껄쩍대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지금의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과거 가장 피크(peak)였을 때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망국병을 앓지 않기 위한 댓가를 지불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에서 얼마든지 채워넣을 수 있을만큼 우리 아이들의 자질과 학습 능력은 뛰어나다고 확신한다. 유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두뇌의 소유자가 우리 민족 아닌가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정체하게 한 것이 정작 누구인지 대학당국자들은 자성해야 하는게 옳다.
그리고 공부의 량으로 따져보아도 지금 학생들 공부 많이 한다. 어쩌면 더 넓게 한다. 과거에는 첨탑을 쌓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였다면, 지금은 넓은 개마고원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첨탑을 쌓는 방식의 부작용이란 지금의 정운찬류가 대변해 주듯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아직도 세계 150위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만들어 낸 것으로 증빙이 되어버린 셈이다. 도대체 지금의 현실을 누구 탓으로 돌리려 한단 말인가. 어이없고 기가 찬다. 교육의 본질을 모르고 교육의 축을 담당한다고 하는 자들로 인해 우리 교육이 얼마나 정체하게 되는지 정말 안습이다.
말나온김에 정운찬씨에게 한가지만 묻자. 서울대학에서 요구하는 논술시험이란 것이 과연 고교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아이들이면 풀 수 있는 내용이란 생각이 드시는지 도대체가 궁금하다. 엊그제 어느 논객의 지적에 의하면 공교육에서 적어도 6년은 체계적으로 학습해 왔어야 제대로 풀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던데 그에 대해 나도 완벽하게 동의한다. 연.고대야 서울대가 한다고 난리를 치니 자존심땜에 이유없이 따라간다는 지적도 맞고.
고백하건데, 딴 건 모르겠지만 '논술'에 있어서 만큼은 용빼는 재주가 없더라. 아들녀석 대학은 원하는 곳에 보내야겠고, 학교에서조차 논술은 뜬금없어 하니.. 부랴부랴 서울에서 '한 논술' 한다는 교습에 상당한 고액을 감수하고 단기 속성으로 학습시켰다. 근데 정말 화나더라.. 이짓을 왜하나 싶어서이고, 한달간의 벼락 논술이 내 아이의 논리적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해 줬다는 느낌은 그리 들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난리 굿을 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수준이 아무래도 과거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신입생 테스트를 해보니 미적분 실력이 옛날만 못한 것 같아서 걱정이 많으신가?
그러면 간단하게 해결해라. F학점을 줘서 유급을 시키든지, 아예 졸업을 시키지 말든지 1학년 마치고 시험을 치러서 잘라내고 집으로 돌려보내든지 니 맘대로 하시란 얘기다. 대학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하길래 입학하면 자동으로 졸업하는겐가. 콘베이어로 제품 흘려보내나? 그리고 대학에서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것이 누구 책임인가.
우리는 분명히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보냈으니, 최고의 우수한 인재를 만들어 낼 책임은 바로 너한테 있다. 개미 대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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