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2006년 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교섭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소위 투자자 대 국가간 분쟁해결절차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Procedure, 이하 "ISD 절차")가 양국간 핵심 쟁점으로 대두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관세율 인하와 서비스 시장 개방 문제 등 전통적인 통상 현안들이 양국간 교섭의 주요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협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한미 FTA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었으며 우리측 내부에서도 부처간 또 전문가 그룹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몬태나주에서 종료된 제5차 FTA 협상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양국간 협상에 상당한 진전은 있었으나 아직 양국간 입장 차이를 결정적으로 좁히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ISD 절차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점은 비단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만 제기되는 이슈라고 볼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ISD 절차와 관련한 동일한 문제점들이 향후 진행될 여타 국가와의 FTA 협상에서도 역시 지속적으로 핵심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과의 협상에서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바쁠 것이나, 어느 정도 숨돌릴 여유가 생긴다면 차제에 한미 FTA와 상관없이 이 문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보다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II. ISD 제도 개요 – 필요성 및 문제점
먼저 이 문제가 왜 한미 FTA 협상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대두되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보통 양자간 투자협정 (BIT)와 함께 FTA는 양국간 투자분쟁 관련 문제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최초의 협정이다. 기존의 WTO 체제하에서도 투자에 관한 별도의 부속협정이 존재하기는 하나 몇몇 기본적 규정만 나열하는데 그쳐 투자부분과 관련 WTO 체제에서는 사실상 규범의 부재 상태가 지속되어 왔고, 따라서 투자분쟁 관련 문제는 주로 BIT나 이의 확대된 형태인 FTA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우리의 경우 칠레 및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하였으나 투자분쟁 문제가 협상의 핵심적 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기에 사실상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이 문제를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ISD 절차의 핵심은 투자 분쟁과 관련하여 외국인 투자자 개인이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중재 판정부에 소송을 제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투자가 투자 유치국 정부에 의하여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고 판단하는 외국인 투자자는 동 정부를 해당국 국내법원뿐 아니라 국제 중재 판정부에도 선택적으로 제소 가능하도록 양국간 협정에서 보장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측은 미국인 투자자의 권리 보호 및 구제를 위해서는 한국 법원의 사법심사에 더하여 국제 중재 절차의 회부를 보장하기 위하여 ISD 절차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며, 한국측은 미국측 입장을 기본적으로 이해는 하나 ISD 분쟁의 특성을 감안, 상당한 수정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ISD 제도는 외국인 재산의 수용과 관련된 기존의 국제 분쟁이 국가 대 국가간 분쟁임에 비해 이를 “개인 (기업) 대 국가”간 분쟁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 그 본질적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 취지는 간단하다. 투자 유치국 정부와의 분쟁에서 분쟁 당사자인 투자 유치국의 국내법원에 제소하는 경우, 심리 및 결정의 공정성에 관하여 항상 의문이 제기되고 또 국내법원도 투자 유치국 정부의 일부인 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분쟁의 상대방이 분쟁 심리도 담당하는 모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ISD 절차는 분쟁 당사자의 국내법원이 아닌 국제법정에서 외관상 공정한 재판관을 통해 투자 분쟁 해결을 도모하여 최소한 형식적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일단 동 제도 자체의 그 기본적 필요성 및 타당성은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적 타당성에도 불구, 현실적 측면에서 ISD 절차는 다양한 문제점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먼저 제기되는 문제점은 이러한 형태의 분쟁해결절차는 기존의 국가 대 국가간 분쟁해결절차와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역학관계에 따라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분쟁에 관여하는 개인 (기업)은 주로 다국적 기업인 바, 이러한 다국적 기업과 외국 정부간 분쟁의 전개는 분쟁의 강도 및 대응방식에 있어 기존의 국가간 분쟁과 상당한 점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 관례 및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존중을 바탕에 깔고 있는 국가 대 국가간 분쟁 – 가령, WTO 분쟁 – 과 달리 ISD 분쟁은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기업 대 기업간 일반적 법률 분쟁의 속성을 그대로 시현하여 분쟁이 물량공세화, 첨예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투자 유치국 정부는 피고의 입장에만 서게 되고 민간부분에 비하여 자원 가용 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기본적으로 수세적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ISD 분쟁은 결국 투자 유치국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 및 심리를 그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투자 유치국 정부 패소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투자 유치국 국내적으로 심각한 정치/경제적 파급효과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ISD 절차가 점차 확산되어 감에 따라 국가들은 이러한 제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동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도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령 항소제도의 도입, 중재위원 선정 문제, 이해관계 충돌 (conflict of interest) 조정 문제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온 선진국의 경우에도 동 제도의 남용 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통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제반 문제점에도 불구, 증가하는 해외투자와 이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 보호 필요성 증대에 대한 전반적 공감대 형성으로 ISD 절차 자체는 기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ISD 절차에 내재한 기본적 문제점들이 치유 불가능한 치명적 문제점이라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동 절차의 기본적 골격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III. ISD 절차와 간접수용 문제
ISD 절차와 관련 특히 현재 주요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소위 "간접수용 (indirect expropriation)" 문제이다. 이는 투자 유치국 정부가 직접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직접수용이 아닌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사실상의 재산권 박탈/감소 조치를 다루는 법리로서 가령, 투자 유치국 정부의 조치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자산에 대한 재산권을 사실상 행사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즉, 이 문제는 투자 유치국 정부의 제반 입법/행정/사법 조치 (measure)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자의 예상 투자수익 회수의 감소 또는 실패가 발생하는 경우 과연 이것이 국제법상 또는 투자협정상 “수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련되는 사안이다. 다시 말해 간접수용은 공식적인 수용조치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수용 (de facto expropriation)” 또는 “수용에 준하는 (tantamount to expropriation) 조치”가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개념 정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접수용이든 직접수용이든 일단 수용으로 확정되면 조치 시행국은 보상(compensation)의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간접수용 및 직접수용 문제는 특정 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일종의 선결문제와 연관되는 것이며 보상의 정도 및 방법과 연관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간접수용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으나 통계적으로 이러한 분쟁의 개연성이 가장 높은 부분으로는 공익 서비스 부분, 환경정책 부분, 및 공중보건 부분 등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미 FTA와 관련하여 간접수용 개념이 주목을 끌고는 있으나 사실 이 문제가 국제법에서 생소한 개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간접수용 개념이 최초로 대두된 사건으로는 1926년의 Chorzow Factory Case를 들 수 있겠다. 이 사건에서 상설국제사법재판소 (PCIJ)는 폴란드 정부의 직접수용 대상이 되지 않았던 독일계 공장에 대해서도 사실상 수용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음을 확인하고 수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결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판례를 통해 다소간의 불명확성에도 불구, 간접수용 개념 자체는 널리 인정되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1] 이러한 간접수용 관련 분쟁이 1990년 이후 급증하는 추세인 바, 이는 외국인 투자영역의 다양화와 외국 투자자의 기대이익 다변화에 따라 투자 유치국 정부 정책 도입 또는 변경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또는 “예상치 못한” 투자 손실을 입은 경우 이것이 과연 수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당사자간 대립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즉,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를 간접수용으로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반면, 투자 유치국 정부는 이러한 결과적 손실은 정부 정책의 파생적 효과에 불과한 일종의 상업상 위험으로 국제법상 또는 관련 투자협정상 수용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1. 미국 및 카나다의 간접수용 판단 기준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미국 및 카나다와의 협상 과정에서 간접수용 문제가 중요한 이슈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미국 및 카나다의 기본 입장은 이들 국가의 모델 조약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 미국
미국의 경우 최근 체결한 호주, 칠레, 중미, 모로코, 싱가포르와의 FTA에서 간접수용 해당 조치 여부 판단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동 FTA에 포함된 수용에 관한 Annex에는 간접수용 판단의 주요 고려사항으로 (i) 문제가 된 정부 정책이 초래하는 경제적 파급효과, (ii) 정부 정책이 합리적인 투자자의 기대에 영향을 행사하는 정도, 및 (iii) 정부 정책의 성격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한미 FTA 협상의 토대로 알려지고 있는 미국측 BIT 모델조약의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The determination of whether an action or series of actions by a Party, in a specific fact situation, constitutes an indirect expropriation, requires a case-by-case, fact-based inquiry that considers, among other factors;
(i) the economic impact of the government action, although the fact that an action or series of actions by a Party has an adverse effect on the economic value of an investment, standing alone, does not establish that an indirect expropriation has occurred;
(ii) the extent to which the government action interferes with distinct, reasonable, investment-backed expectations; and
(iii) the character of the government action.
Except in rare circumstances, non-discriminatory regulatory actions by a Party that are designed and applied to protect legitimate public welfare objectives, such as public health, safety and the environment, do not constitute indirect expropriations.
(2) 카나다
한편, 카나다의 경우도 유사한 내용의 모델 조항을 갖고 있다. 카나다의 모델 Foreign Investment Promotion and Protection Agreement (“FIPA”)는 정당한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실시되는 비차별적인 정부 정책은 기본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FIPA incorporates a clarification of indirect expropriation which provides that, except in rare circumstances, non-discriminatory measures designed and applied to protect legitimate public welfare objectives, such as health, safety and the environment, do not constitute indirect expropriation and are not subject, therefore, to any compensation requirements.
사실 위 문구에서 알 수 있다시피 미국 및 카나다의 모델조약 초안 자체로는 간접수용과 관련 반드시 특정 국가에 대하여 유리, 불리하거나 또는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하겠다. 동 초안은 최소한 외관상으로는 협정 당사국 양측에 공정한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본질적 문제는 이러한 조항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실제 상황에 있어 관련국 정부에 대하여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중재 판정부에 해석 지침을 제공하는 데 미흡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미 FTA 협정에서 간접수용 문제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해소 내지 통제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간접수용 개념 자체는 이미 국제법상 그리고 각종 투자협정에서 기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만 간접수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은 설득력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실제 협상 과정에서 우리측이 우려하는 간접수용 관련 제반 현안들이 어떻게 반영되어 협정문이 구체화되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평가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2. 간접수용 분쟁의 특징
이러한 맥락에서 간접수용 관련 조항의 구체화 및 규범화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간접수용 분쟁의 기본적 특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기본적 특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이를 적절히 반영한 협정문의 구체화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접수용 분쟁은 다양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간접수용 분쟁에서는 법률,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국가간 근본적인 입장차이가 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국인의 재산의 국유화/몰수를 내용으로 하는 직접수용의 경우 그러한 수용조치가 국제법상 기본적 요건을 충족할 경우[2] 그러한 수용조치는 국가주권의 행사로서 간주되어 기본적으로 합법성이 인정되며 단지 보상범위와 방법의 문제만 남게 된다. 그러나 간접수용의 경우 투자 유치국 정부의 특정조치를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에 따라 해당 조치가 수용에 해당하는지 따라서 보상이 필요한지 여부가 결정되므로 국가간 입장차이는 주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령, 개인의 재산권 (property right)을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인정/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국과 한국이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접수용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안별 검토”와 “사실관계 중심적”의 성격을 보유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간접수용 분쟁에서는 중재위원 (arbitrator)의 재량적 판단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들의 판단 여부가 최종 판정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중재위원의 전문성 및 신뢰성 확보가 특히 간접수용 분쟁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간접수용 분쟁은 민감한 정치적 파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간접수용 분쟁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모든 행정/입법/사법작용으로부터 발생 가능하며 따라서 간접수용과 관련된 분쟁의 심리에 있어 중재위원은 문제가 된 투자 유치국의 제반 경제정책의 타당성, 합리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의하게 되는 바, 이러한 심의와 평가는 민감한 정치적/외교적 파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간접수용 분쟁의 또 다른 특징은 이 이슈의 국내적 적용인 “정부의 사유재산 수용 (“taking”)”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판례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간접수용 문제는 이러한 구별이 생소한 대륙법계 국가 및 제3세계 국가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접근과 대처가 용이하지 않은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접수용 문제에 있어서는 설사 수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정당한 보상 범위에 대한 합의가 곤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바로 외국 투자자의 예상 기대수익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가 용이하지 않고 정부 조치에 따른 기여분을 어느 정도 산정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한 이러한 사항들 이외에도 간접수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특징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3. 간접수용 분쟁의 특징에 대한 평가
현재 한미 FTA에 대한 비판론의 상당 부분은 이러한 간접수용의 내재적 특징 (또는 문제점)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수용이 국제적으로 이미 확립된 개념이라는 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간접수용 분쟁의 내재적 특징이 이 제도를 투자 유치국 정부의 주권행사를 불합리하게 제약하고 외국인 투자자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불평등한 메커니즘으로 변모시키는 지는 의문이다. 특히 위에서 살펴본 이러한 특징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보면 간접수용의 이러한 내재적 특징이 반드시 이 제도를 수용하지 못할 정도의 불확실성 및 불합리성을 우리측에게 초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러한 간접수용 분쟁에서 국제 중재 판정부는 투자 유치국 정부 정책의 의도, 배경, 효과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심리하므로 판정 결과에 대하여 논란이 존재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분명 간접수용 문제는 다양한 불확실성과 회색지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위에서 살펴본 ISD 절차의 기본적 문제점을 더욱 증폭시키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현재 법리는 간접수용을 무규범적으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분쟁 당사자에 대하여 일정한 수준의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지금까지의 여타 FTA상 ISD 절차를 통해 내려진 선례를 검토할 경우 단순히 외국인 투자자에 대하여 부정적 효과가 발생하였다는 정도의 막연한 기준이 아니라 사실상 직접수용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산권 침해가 존재하여야만 간접수용이 인정되고 따라서 보상/배상의무가 인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직접수용에 진배 없는 정도의 재산권 침해가 발생하여야 간접수용이 인정되는 것이며, 정부 규제의 불가피한 파급효과로 인하여 재산권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간접수용에 내재하는 불확실성을 다소나마 제거하고자 최근의 FTA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는 특정 영역을 명시적으로 협정문에 규정하는 추세이다. 가령, 정당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차별적으로 시행되는 환경, 보건, 위생관련 정책은 간접수용에 미해당하는 것으로 사전에 규정하여 일종의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수용 개념 그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고 당연히 국가 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ISD 절차 자체가 문제라든가, 혹은 간접수용 규정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다양한 문제점에도 불구, ISD 절차는 이미 광범위하게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쟁해결절차이며 간접수용 문제도 일정 부분 불확실성이 존재함에도 불구, 점차 법리를 확립하여 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ISD 절차나 간접수용이 초래하는 부담은 우리측뿐 아니라 우리의 상대방에도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황이므로 협정 내용이 일방적으로 불평등하게 규정되지 않는 한 이를 부당한 조항으로 간주할 근거는 상당히 희박한 상황이다. 결국 우리의 상대방이 ISD 절차의 도입을 FTA나 BIT 협상 과정에서 요구할 경우, 이에 대하여 이러한 절차 그 자체를 문제시하여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하기 보다는 그러한 협정에 포함될 세부적 내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 검토를 통하여 그 국가와 교역관계의 구체적 맥락에서 동 절차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파급효과를 우리에게 초래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파급효과가 우리측이 수인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IV. ISD 절차에 대한 현실적/구체적 접근
이와 같이 ISD 절차에 대한 현실적/구체적 접근의 모색은 다양한 요소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고려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특정국가와의 FTA에서 ISD 절차를 배제한다고 하여 이와 관련하여 현재 우려되는 문제들이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ISD 절차는 이미 상당수의 FTA 및 BIT에서 수용되어 있고 또 우리가 향후 체결할 타국과의 FTA 및 BIT 협상에서도 현재 우리측의 우려와 고민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인 바, 미국과의 FTA가 아니더라도 결국 조만간 동 문제를 우리 정부가 정면으로 대응하여야 할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설사 동 절차를 배제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는 한시적 해결에 지나지 않으며 조만간 동일한 문제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미 FTA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차제에 이 문제에 대한 회피가 아닌 적극적 접근을 통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동 제도를 우리측이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될 가능성도 아울러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제조업, IT 산업, 바이오 산업 등에 있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러한 비교우위 산업은 외국 시장으로 급격히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ISD 절차는 우리 기업이 해당국 법원을 벗어나 공정한 재판을 추구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가령, 알라바마 주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건설한 현대자동차와 같이 우리 기업이 미국으로 진출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FTA가 규정하는 ISD 절차는 국내 투자자에 대하여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미국 정부 정책에 대한 효과적인 제어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양국간 투자의 형태 및 규모가 상이하므로 ISD 절차의 실제 운용과정에서 반드시 양국 기업에 대하여 동일한 보호 효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나 최소한 우리 기업이 동 제도를 필요로 하게 될 상황도 발생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면밀한 득실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으로는 ISD 절차가 부재한다고 하여 문제가 된 투자 유치국 정부 조치와 관련된 분쟁 (underlying disputes)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투자 유치국 정부가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ISD 절차가 부재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와 투자 유치국 정부간 투자 관련 분쟁 발생시 정치적 타결로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투자 유치국 법원의 사법심사로 이행하거나 이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가 대 국가간 분쟁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정부 조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한다면 ISD 절차 여부와 상관없이 투자 유치국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는 항상 남아있게 된다. 물론 투자 유치국 법원을 통한 심리의 경우 투자 유치국에 우호적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법의 지배 (rule of law)원칙을 받아 들인다면 동일한 협정 내용을 적용하는 국내법원의 경우도 문제가 된 협정 위반 조치에 대하여 결국 협정 위반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록, 구체적 사건에서 다소간 상이성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나 ISD 절차나 국내사법 절차나 동일한 실체법 (즉, 협정)을 적용할 경우 동일하거나 유사한 결론을 도출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결국 ISD 절차의 배제가 정부를 투자 관련 소송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안전판을 제공하여 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넷째, ISD 절차 도입 및 운용과 관련하여서는 협정 내용의 공정성 못지 않게 동 절차 운용 전반에 걸쳐 투명성 제고와 자료의 공개가 아울러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NAFTA 선례 등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논란의 상당부분은 사실관계 및 법적 주장의 배경에 대한 정보 부족인 경우가 많으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입장에 따라 판정의 정확한 의미와 법적 근거에 관하여 서로 상이한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향후 진행될 ISD 소송 절차에서 다양한 이해관계 그룹에 의한 사건 배경이나 판결 의미의 왜곡을 최소화하고 또 정부의 정책 입안과정에서 대처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ISD 절차와 분쟁 당사자의 입장에 관한 자료가 가급적 광범위하게 공개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다섯째, 협정 문안의 법리적 공정성 문제를 떠나 실제 적용시 발생 가능한 현실적 측면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한미 FTA의 체결로 인해 양국간 투자는 궁극적으로 쌍방향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나 최소한 상당기간 동안은 미국 투자자의 對韓 투자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규모가 클 것이므로 투자자 보호를 일방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ISD 절차를 도입할 경우 협정문의 형식적 공정성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우리측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설사 양국간 동일한 투자조건과 투자규모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 분야 분쟁에서 상대적으로 일천한 경험을 보유한 우리 정부의 경우 실제 분쟁에서 받는 부담은 상대방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를 담당할 정부내 전담 부서의 설치와 전문가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며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협정문의 공정성 여부를 떠나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V. 결론
현재 ISD 절차와 관련하여 진행되는 논란은 마치 ISD 절차 자체가 국제 투자분쟁의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하는 모든 악의 근원인 양 과장된 논리에 상당 부분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SD 절차 자체가 문제라든가 또는 동 절차를 배제하는 것만이 반드시 공정한 협정문을 보장하고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식의 흑백논리는 지양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동 절차의 목적, 취지, 관련 선례를 살펴보면 동 제도 자체를 백안시하여 이를 항상 배제하여야만 한다는 명제로 당연히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다 합리적인 판단 기준은 현재 제시된 ISD 절차가 양측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지, 협정의 형식적 공정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불평등을 초래할 만한 내용은 없는지, 새로운 형태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합리적인 기준을 발견, 발전시킬 수 있는 자체적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는지, 또는 중재위원 선임에 있어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는지 등과 같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검토일 것이다. 다른 모든 형태의 국제교섭과 마찬가지로 우리측 입장만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협정 내용을 상대방이 수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FTA 교섭에서도 비현실적이라고 하겠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 FTA 협정상 ISD 절차 또는 간접수용 관련 문제도 협정 초안이 완벽한가 또는 우리측에 어떠한 불리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기준이 아닌 동 초안규정이 전체적으로 양측 입장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예측 가능한 위험을 장기적으로 예측,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가 하는 기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 가령, 다음과 같은 판례들을 찾아 볼 수 있다.
(1) Case Concerning Certain German Interests in Polish Upper Silesia (Germany v. Poland), 1926 PCIJ (ser. A) No. 7 (May 25, 1926).
n 간접수용의 판단에 있어서는 단순히 형식적인 수용조치의 존재/부존재에 관한 기계적 접근이 아닌 정부 조치에 따라 실제 사업상의 손실이 초래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실질적 접근이 중요함.
(2) Oscar Chinn Case (U.K. v. Belgium), 1934 PCIJ (ser. A/B) No. 63 (December 12, 1934)
n 일국 정부가 외국계 기업에 대하여 단순히 호의적인 배려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부여된 권리”가 아니므로 해당 정부가 이를 철회하여도 수용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 또한 정부가 외국계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자국 기업에 대하여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음.
(3) Barcelona Traction, Light & Power Co. (Belgium v. Spain), 1970 ICJ 3 (February 5, 1970)
n 간접수용 여부 확인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는 직접수용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악의적 (in bad faith)”으로 “위장된 조치 (disguised measure)”가 채택되었는지 여부임.
(4) Eletronica Sicula S.p.A. (U.S. v. Italy), 1989, ICJ 15, 71 (July 20, 1989)
n 영업상의 손실이 투자 유치국 정부 조치가 아닌 자신의 사업상의 실책에 기인하는 경우 간접수용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
(5) Sea-Land Service, Inc. v. Iran, 6 Iran-U.S. Cl. Trib. Rep. 149, 166 (1984)
n 간접수용 해당 여부 판단에 있어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투자 유치국 정부의 특정 조치가 문제가 된 외국계 기업의 운영에 “고의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의도로 채택되었는가 하는 점임.
[2] 국제법상 또는 주요국의 국내법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는 합법적인 수용의 4대 요건은 공익의 원칙, 무차별의 원칙, 보상의 원칙, 및 국유재산 존중의 원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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